<유준호 칼럼> 야구선수의 재질(Talent)

  • 야구학교 www.baseballschool.co.kr
  • 등록 2017.10.23 11:22:00
  • 호수 1137호
  • 댓글 0개

몇 해 전 한양대학교의 야구부 감독이었던 김한근 전 한양대 감독과 야구선수들의 재질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다. 

김한근 감독은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와 한양대학교를 거쳐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 시 삼성라이언즈의 원년 선수로 활동했고, 1985년 빙그레이글스(현 한화 이글스)로 이적해 빙그레 이글스의 창단 원년 선수로 활약했다.

후로 다시 1989년 태평양 돌핀스로 이적한 후 1990년 시즌이 끝난 후 현역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대구상고와 한양대, 그리고 삼성 라이언즈를 거치는 동안 국내 야구의 역사상 불세출의 타격천재라 일컬어지는 고 장효조와 함께 현역 시절의 대부분을 같은 팀에서 활약했었고, 김 감독 본인 또한 장타력을 동반했던 타격의 재질이 뛰어났던, 수비의 보직으로는 주로 3루수를 맡아 보았던, 명 내야수였다.

그러했던 김한근 감독은, 가장 가까이서 오랜 세월 동안 지켜보았던 ‘타격의 달인’ 장효조의 예를 들어가며 야구선수의 재질과 그 원천이 되는 ‘야구선수의 신체적 힘’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원래 부산 태생인 장효조는 어린 시절 대구 이주 후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고, 대구중학교를 거쳐 대구상고에 진학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게 되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고교 2학년 재학 시절, 대통령배와 봉황대기, 그리고 황금사자기 등의 메이저급 고교야구대회를 대구상고가 연달아 석권하는 데 주역으로 활약하면서 두 개 대회의 타격왕에 5할이 가까운 타율로 올랐고, 고교 재학 시절을 통틀어 다섯 번의 타격왕을 거머쥐었다.

1975년 한양대 진학 이후 거의 모든 대회의 타격상을 휩쓸었는데 특히 1976년 국내 성인 야구팀들이 모두 출전하며 프로야구 출범 이전의 가장 큰 권위를 자랑했던 ‘백호기’대회에산 7할이 넘는 경이로운 타율로 타격왕을 차지했고, 그해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해에는 그해 국내서 개최됐던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출전으로 아마추어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당시의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원년 참가를 못하고 1983년 시즌에 삼성 라이언즈의 프로선수로 데뷔 시즌을 치른 후 0.369의 타율로 데뷔 시즌 타격왕이 됐다.

1992년의 시즌이 끝난 후 은퇴하기까지 10시즌을 거치며 그가 세운 국내 프로야구의 통산타율(0.331)과 3년 연속의 타격왕 등극(1985∼1987)은 아직도 역대 최고의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그 밖에도 통산 네 번의 타격왕과 6번의 출루율 1위, 그리고 통산 1009개의 안타를 기록했다.

야구선수로는 상대적으로 작은 체격(170cm, 70kg)을 지녔지만, 수비의 보직이었던 외야수로서 보살에 능했던 강견의 소유자였고, 그에 따른 힘과 스피드, 정확성, 수비력과 근성까지 갖췄던, 흔히 말하는 ‘야구의 5툴(Five Tools)’을 모두 가지고 있던 선수로 회자된다. 

수치상의 기록은 없지만 장효조의 배트 스피드는 아직도 우리나라의 모든 야구선수들 중 가장 빨랐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장효조가 치지 않는 공은 모두 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탁월한 선구안까지 가지고 있었다.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타격시 상대하는 투수들의 공을 자신의 몸에 가장 가까이 붙여 놓고 빠른 배트 스피드로 휘둘러 야구장의 좌 우측 어디든 자유자재로 타구를 보내는 그의 ‘부챗살 타법’은 그에게 ‘안타 제조기’ 혹은 ‘타격 기계’라는 별명까지 안겨줬다.


그날의 대화서 김한근 감독은 야구선수의 최고 재질로, 바로 선수 자신이 가진 ‘신체의 힘’을 꼽았다. 
 

투수로서 빠르고 강한 공을 던질 수 있는 것도, 타자로서 빠른 배트 스피드를 이용해 공을 쳐낼 수 있는 것도, 주루 시나 수비 시에 활용되는 빠른 주력과 스피드도 모두 신체적인 힘의 우위서 나온다는 지론이었다.

그의 오랜 친구였던 장효조는 체구가 작은 선수였지만 자신보다 체구가 훨씬 큰 다른 선수들을 모두 압도하는 신체의 힘을 소유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고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장효조는 이미 고교 시절이었던 1970년대 초반부터 개인훈련의 과정에 지금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도입했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고등학교 엘리트 야구서 조차 필수적이고 당연시 되는 훈련 프로그램의 개념이지만 국내 야구계에 훈련과정의 일환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이 도입되었던 시기는, 1990년 대 초반 무렵, 당시 LG트윈스의 감독으로 이른바 ‘자율야구’ 혹은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던 이광환 감독이 미국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서의 코치 연수 경험을 바탕으로 도입해 야구선수들의 피지컬 트레이닝에 대한 개념을 한 단계 진전 시키면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개념이었지만, 그 이전,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우리나라 야구계는 물론이고 축구계까지 선수들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절대 안 된다 라는 비과학적인 개념이 지배했던 시기가 있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단지 전문적인 보디빌더들이 근육을 키우는 개념만으로 이해해 야구나 축구 선수들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근육이 굳어져서 유연성을 잃고 경기력에 해가 된다는 미신적인 속설이 있었다. 

그런데 장효조는 이미 고교시절부터 ‘역기’를 활용해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것에 주력했었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자신의 자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던 선수들의 예는 비단 장효조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에게서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나이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현역 선수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일본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가 동체시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평소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번호판을 보며 외우려 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TV 시청은 물론, 게임이나 휴대폰의 사용조차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야구선수에게 눈이란 생명과도 같은 신체 기능의 요소이다.

비슷한 예는 축구에도 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일본을 3위로 입상 시키며 7골로 대회 득점왕이 되었던 가마모토 구니시케라는 선수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차범근보다 한 세대 정도 위의 선수인데 아직도 일본 축구대표팀 A매치 역사상 80골로 최다 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최고의 축구 스타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다.

어린 시절의 가마모토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그의 ‘왼발’에 의한 킥과 기술의 구사였다. 


오른발잡이였던 그는 언제나 자신의 왼발이 오른발만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그러한 왼발을 좀 더 잘 사용하기 위해 평소의 훈련 때도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해 왼발의 킥과 기술을 연마했으나 노력만큼 왼발의 기술이 늘지 않아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의학 관련 서적을 읽던 중 우연히도 사람의 인체 중 오른쪽은 왼편의 뇌가 그 활동을 지배하고 왼쪽의 신체는 오른편 뇌의 활동으로 지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날 이후 가마모토는 밥을 먹을 때도, 글씨를 쓸 때도 모두 왼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왼쪽의 신체를 조정하는 오른 뇌의 기능을 향상 시키면 왼발의 기능 또한 자연스럽게 향상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과학적 근거로부터 출발한 행동이었다.

가마모토는 또한 평소 버스나 전철을 이용할 때도 절대로 자리에 앉거나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양쪽 발로 중심을 잡으며 신체의 밸런스를 잡는 감각을 훈련 시간에서 뿐만 아니라 평소의 생활에서도 향상시키려 했었던 노력의 일환이었다.

시대와 종목을 막론하고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던 선수들은 몇 가지 공통된 개념들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기존의 상식과 통념에 얽매여 자신의 훈련 방식과 한계를 설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훈련의 시간뿐만 아니라 모든 일상의 시간서 이뤄지는 행동들조차도 훈련의 일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LA 다저스 시절의 박찬호가 마이너리그로 강등된 후 취했던 대표적인 행동은 숙소와 야구장을 오갈 때 차량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런닝으로 오가며 하체의 힘을 강화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스포츠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신체적인 재질, 스피드와 민첩성, 힘과 유연성 등의 모든 신체적 행동의 요소들을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서 부여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맞는 말이지만 달리 보면 틀린 말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스포츠 종목의 선수들이, 자신의 훈련과 그 프로그램의 실행에 있어, 단지 기술을 배양하는 데에만 할애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위에서 예를 들었던 최고 수준까지 도달했던 선수들처럼 일상서조차도 자신의 신체적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권유하고 싶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