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의 메이저' 최연소 우승, 김시우 이야기

될성부른 떡잎서 활짝 핀 꽃으로

마스터스, US오픈, 디오픈 챔피언십, PGA챔피언십에 이어 제5의 메이저 대회로 불리는 더플레이어스챔피언십. 전 세계 골프계 최대 상금 대회로 불리는 이 대회의 올해 우승자는 만 21세의 김시우였다.

엄청난 상금 규모, 만만치 않은 골프 코스,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대거 참여하는 이 대회에서 어리지만 침착한 강심장의 김시우는 끝까지 흔들림 없이 플레이하며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통산 2승을 달성했다. 이로써 김시우는 타이거 우즈, 세르히오 가르시아, 조던 스피스에 이어 22세 이전에 투어 2승을 올린 4번째 선수가 됐다.

미완의 대기서
태풍의 눈으로

김시우는 지난달 15일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 베드라비치의 소그래스 TPC 스타디움 코스(파72)에서 열린 PGA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에서 참가 선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보기 없는 플레이를 펼쳤다. 만 21세의 나이에 마지막 라운드가 주는 압박감을 거뜬히 이겨낸 것. 최종합계 10언더파 278타를 적어낸 김시우는 한국과 미국 골프 역사를 새로 썼다. 아담 스콧(호주)이 세운 대회 최연소 우승 기록을 2년 이상 앞당긴 사상 최연소 대회 우승 기록이자 2011년 최경주(47·SK텔레콤)에 이어 두 번째로 플레이어스를 제패한 한국 선수가 됐다.

대회가 열린 소그래스 TPC 스타디움 코스는 결코 만만한 코스가 아니다. 특히 저주의 홀로 불리는 파3 17번홀은 올해도 많은 선수들에게 좌절을 안겼다. 3라운드까지 중간합계 7언더파를 쳐 선두에게 2타 뒤진 4위로 출발한 김시우는 이번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보기 없는 플레이를 펼친 유일한 선수였다. 이날 홈스와 스탠리에 2타 뒤진 4위로 출발한 김시우는 버디만 3개를 잡아냈고 후반 9개 홀은 모두 파로 마쳤다.

공동 선두였던 J.B.홈즈(미국)는 무려 12오버파를 치며 일찌감치 우승에서 멀어졌고, 카일 스탠리(미국)도 3오버파로 처졌다. 올해 마스터스 우승자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도 6오버파를 치면서 공동 7위에서 공동 30위까지 떨어졌다. 세계랭킹 1위 더스틴 존슨(미국)이 이날 하루에만 4타를 줄였지만, 보기도 2개가 있었다. 3위로 출발한 루이스 우스투이젠(남아공)이 2번 홀(파5)에서 1타를 줄이며 선두로 올라섰으나, 4번홀(파4)에서 더블보기를 하며 순위가 떨어졌다. 이렇듯 우승권의 선수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운데서도 김시우는 흔들리지 않았다.


최종라운드 보기 없는 깔끔한 마무리
PGA투어 2승…역대 ‘두 번째’페이스

김시우의 우승은 7번홀(파4)에서 예감됐다. 두 번째 샷이 그린에 올라왔고 홀까지는 약 7m 60㎝. 버디 하기에는 쉽지 않은 거리를 남겨둔 상태였으나 김시우가 퍼팅한 공은 왼쪽으로 포물선을 그린 뒤 홀 오른쪽 끝을 지나 홀컵으로 쏙 들어갔다. 김시우가 단독 선두로 치고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8번홀이 지나고 파5 9번홀에서 또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세 번째 샷이 홀 약 5m50㎝를 남겨둔 쉽지 않은 거리였고 퍼팅 라인도 약간 내리막으로 까다로운 상황이었으나 김시우는 정확히 퍼팅 라인을 읽었고, 공은 제자리라도 찾아가듯 홀로 빠져들었다. 2위와 격차를 2타 차로 벌린 순간이었다.

이렇게 2타 차로 벌어진 상태에서 김시우는 후반 들어 욕심을 부리지 않고 안정적인 플레이로 임했다. ‘저주의 홀’이라 불리는 파3 17번홀, 워터해저드로 티샷한 공이 들어가면 승부는 알 수 없는 상황. 김시우는 침착하게 티샷을 그린 위에 올린 뒤 파로 막아냈다.

1995년 6월28일 서울에서 태어난 김시우는 여섯 살 때 골프를 시작했다. ‘싱글 핸디캡’ 골퍼인 아버지의 손을 잡고 연습장에 놀러갔다가 골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여섯 살 꼬마가 자신의 키만 한 드라이버를 둘러메고 나타나 신기하게도 골프공을 똑바로 멀리 날리는 것을 보며 구경하던 골퍼들이 ‘한국의 타이거 우즈’라는 감탄과 찬사를 쏟아냈다.

초등연맹이 주최하는 마루망골프대회를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4년 연속 제패한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은 전설로 남아 있고 중학교 때는 적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원도 속초 교동초등학교 5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됐고, 고교 진학 후 곧바로 국가대표에 오르며 골프 천재로 불렸다. 300야드를 훌쩍 넘기는 장타를 바탕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2012년에 경험 삼아 응시했던 PGA투어 퀄리파잉스쿨에 합격하면서 국내 프로 무대를 밟지 않고 곧바로 미국행을 택했다. 최연소 합격자였고 당연히 골프계는 그를 주목했다.

완벽한 마무리
변수는 없었다

그러나 만 18세 미만은 투어 활동을 제한하는 PGA투어 규정에 걸려 데뷔는 늦춰졌다.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투어 카드를 잃었고 그 이후 2부 투어인 웹닷컴투어에서 담금질을 거쳤다. 웹닷컴투어 성적에 의해 2015시즌에 PGA투어에 정식 복귀한 김시우는 지난해 8월 시즌 마지막 대회인 윈덤 챔피언십서 우승하면서 자신이 ‘될성부른 떡잎’임을 챔피언십에서 입증했다.


김시우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PGA투어 통산 2승을 차지했다. 미국 출신이 아닌 선수가 22세 전에 PGA투어에서 2승을 차지한 것은 가르시아에 이어 두 번째다. 세계랭킹 1위 더스틴 존슨(미국), 2위 로리 맥길로이(북아일랜드) 등 세계랭킹 10위권 내 최강 골퍼들이 모두 출전해 우승컵을 다툰 이 초대형 ‘쩐의 전쟁’에서 김시우는 대회 최연소(21세10개월14일) 우승 기록을 세웠다.

통 큰 기부
훈훈한 선행

이번 우승에 대해 김시우는 “자신의 롤모델 최경주 선수의 조언과 마스터스 챔피언 가르시아를 보고 따라 연습한 집게발 퍼팅 그립이 우승의 견인차였다”고 밝혔다.

김시우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통 큰 기부까지 결정했다. 이번 더플레이어스챔피언십 우승 상금 189만달러(약 21억원)중 대한골프협회에 1억원, PGA투어에 10만달러를 기부하겠다는 뜻을 아버지를 통해 밝혔다. 대한골프협회에 기부를 결정한 것은 자신이 국가대표 상비군과 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기량을 연마해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는 고마움의 표시로 받아들여진다. PGA투어 기부금은 자선기금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1974년에 창설된 더플레이어스챔피언십(총상금 1050만달러)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선수들의 잔치’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매년 총상금을 증액해 지구촌 골프계 최대 상금 대회라고 불린다. 우승상금은 4대 메이저 평균치를 능가한다.

1982년부터는 PGA투어 본부가 있는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비치 소그래스TPC(파72  ·7245야드)를 개최지로 선택해 역사성을 부각시켰고 2006년 세계적인 코스설계가 피트 다이(미국)를 초빙해 무려 4000만달러(451억원)를 쏟아부어 대대적인 코스 리뉴얼까지 완성했다. 2014년에는 연장전을 PGA챔피언십과 같은 3개 홀(16~18번홀 스코어 합산)로 확대해 일단 메이저에 걸맞은 모양새를 갖췄다. 

지난해에는 2006년 이후 10년 만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해 도전에 따른 확실한 보상과 위험이 따르도록 난도를 조정했다. PGA투어 측은 보수공사 후 열린 첫 대회에서 우승자가 두 자릿수 언더파를 기록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김시우 선수가 최종합계 10언더파를 기록하며 그 예상은 빗나갔다.

순식간에 올라간 입지
진기록 양산해 화제

‘더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리는 플로리다주 폰테 베드라비치 소그래스 TPC 스타디움 코스(파72·7245야드)에는 전설적으로 악명 높은 저주의 홀이 있다. 바로 파3 17번홀. 17번홀 그린은 연못 한가운데 섬처럼 자리 잡고 있어 ‘아일랜드 그린’으로 불린다. 티잉그라운드에서 홀까지 120m 안팎에 불과해 거리상 아이언샷으로 충분히 공략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린의 지름이 24m에 불과하고, 그린 주변은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회조직위원회는 홀컵을 그린 가장자리에 붙여 선수들을 괴롭혀왔다. 짧은 거리지만 티샷이 조금만 틀어지면 여지없이 그린 옆 연못에 ‘퐁당’ 빠지기 때문에 매년 대회마다 수십 개의 공이 물속에 빠진다. PGA가 공식 집계한 2003년 이후 지난해까지 이 홀에서 634개의 티샷이 물속으로 사라졌고 매년 대회마다 45개가 넘는 공이 수장됐다. 

올해는 대회 최종라운드까지 총 67개의 공이 물에 빠지면서 2007년 93개 이후 10년 만에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잭 블레어, 조던 스피스, 필 미켈슨, 질 퓨릭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도 17번홀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올해 마스터스 챔피언 세르히오 가르시아만이 1라운드 이 홀에서 홀인원을 기록했다.

우승자 특전 역시 남다르다. 5년간 PGA투어카드(일반 투어 2년)를 보장하고, 세계랭킹 포인트는 80점, 페덱스컵은 600점으로 메이저와 똑같다. 마스터스와 US오픈, 디오픈 3년간 출전권과 그해 PGA챔피언십 시드도 주어진다. ‘초대 챔프’ 잭 니클라우스(미국)를 비롯해 그렉 노먼(호주), 데이비드 듀발(미국), 타이거 우즈(미국) 등 당대 세계랭킹 1위가 모두 이 대회의 역대 챔프다.


김시우의 이번 대회 수확은 풍성하다. 만 21세에 우승하며 2004년 애덤 스콧(호주)이 우승하던 때의 23세를 뛰어넘어 이 대회 최연소 우승자가 됐다. 우승상금을 거머쥐며 시즌 상금랭킹 13위(234만6599달러)로 올랐고 PGA투어 5년 시드를 받아 신분 걱정 없이 골프에 매진할 수 있다. 마스터스, US오픈, 디 오픈 등 메이저대회 3년 출전권도 확보했다. 지금까지 세계랭킹 50위 안에 들어본 적이 없는 김시우는 대회 후 발표된 19주차 세계랭킹에서 전주 75위에서 47계단 뛰어오른 28위에 자리했다.

랭킹 급상승
풍성한 수확

페덱스컵 포인트도 600점을 받아 167점에서 767점으로 페덱스컵 랭킹 22위(5월 말 기준)에 올라 있다. 정규 시즌을 마친 뒤 페덱스컵 포인트 상위 랭커 125명만 출전할 수 있는 플레이오프 대회에도 나갈 수 있다. 페덱스컵은 4개의 플레이오프 대회를 치르며 최종 우승 땐 1000만 달러의 보너스가 주어진다. ‘돈방석’에 앉은 것은 물론 각종 대회에 초청될 경우 초청료가 크게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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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