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계 달군 시청자 제보 '비화'

초유의 4벌타, TV는 제2의 심판

지난달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ANA인스퍼레이션은 뜨거운 논쟁을 남겼다. 우승이 확실시 되던 미국의 렉시 톰슨이 TV 시청자의 제보로 4벌타를 받으며 판세가 뒤집혔기 때문이다. 이후 ‘렉시법’이라는 이름으로 룰이 개정될 만큼 큰 사건이었다.

렉시 톰슨은 마지막 날 4라운드 12번홀까지 3타 차 선두를 달렸다. 당일 톰슨의 경기력 등을 감안했을 때 우승을 눈앞에 둔 순간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톰슨이 리더보드 맨 위에서 사라졌고 경기 중이던 톰슨은 경기위원회로부터 4벌타를 받았다. 그 바람에 유소연과 연장까지 치렀지만 결국 우승하지 못했다.

결과 뒤엎는
제보의 위력

갑작스러운 4벌타는 렉시 톰슨이 전날 3라운드 17번홀에서 마크를 했던 지점에서 약 2.5㎝ 정도 홀 가까운 곳에 공을 놓고 퍼트했다는 TV 시청자 제보에 의해서였다. 4라운드 경기 도중 제보를 받은 경기위원회는 녹화 화면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선두를 달린 톰슨에게 규정 위반으로 2벌타, 스코어 카드 오기로 2벌타 등 4벌타를 부과했다.

4벌타는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골프 규정에 의한 페널티였다. 골프 규칙 6-6에 보면 ‘경기자가 스코어 카드 제출 전에 규칙 위반을 몰랐을 경우는 경기 실격은 아니지만 적용규칙에 정해진 벌을 받고 경기자가 규칙을 위반한 각 홀에 2벌타를 추가한다’고 돼 있다. 20-7에도 ‘경기자가 오소(잘못된 장소)에서 스트로크한 경우 그는 해당하는 규칙에 의하여 2벌타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2016년 이전에 일어났다면 톰슨은 4벌타를 받지 않는 대신 2벌타와 스코어 카드 오기로 실격이다. 과거 수많은 선수가 스코어 카드 오기로 실격당했다. 2016년부터 실격이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본인이 몰랐을 경우 2벌타로 줄였다. 톰슨은 실격 대신 경감된 2+2벌타를 공개적으로 받은 첫 선수다. 골프팬들은 4벌타에 충격을 받았지만 오히려 실격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최근 남녀골프 메이저 대회에서는 최종 라운드 도중 선두권 선수에 대한 벌타가 나와 논란이 일었다. 지난달 10일 끝난 마스터스에서는 ‘메이저 무관’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가 감동 드라마를 빚어내며 우승했지만 TV 시청자의 제보로 벌타를 받을 뻔한 사실이 하루 뒤 밝혀졌다. 렉시 톰슨의 ‘4벌타’ 사건에 이어 TV 시청자가 경기 결과를 바꿀 뻔한 상황이 일주일 만에 또 벌어진 것이다.

그린 핫이슈 된 렉시 톰슨 사태
마스터스컵 주인도 바뀔 뻔했다

가르시아가 4라운드 13번홀(파5)에서 공 주변을 정리하다 공이 살짝 움직이는 듯한 장면이 TV 화면에 잡혔고, 이 장면을 담은 2초 분량의 동영상이 트위터 등으로 확산됐다. 마스터스대회 조직위원회는 곧바로 경기위원회를 열고 “룰 위반은 없었다”고 밝혀 가르시아는 우승컵을 지킬 수 있었다. 만일 시청자 제보를 받아들였다면 가르시아는 오소 플레이에 해당돼 2벌 타를 받고 연장에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시청자 제보에 의해 벌타를 받은 경우는 여럿 있다. 2013년 10월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한국오픈 최종 4라운드에서 5언더파 선두로 홀아웃한 김형태는 13번홀 2벌타가 뒤늦게 알려져 정상에서 내려왔다. 티샷이 해저드 구역에 떨어졌고, 두 번째 샷을 할 때 클럽을 지면에 댔다는 제보로 17번홀에서 2벌타를 통보받았다. 먼저 경기를 마친 호주 출신 선수들이 클럽하우스에서 TV로 중계를 지켜보다 경기위원회에 제보해 김형태는 제동이 걸렸다. 미셸 위(미국)는 2005년 데뷔전이던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의 제보로 실격당한 적이 있다.

이 사건을 둘러싼 골프계의 논란은 네 가지로 압축된다. TV 시청자가 심판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나중에 승패까지 뒤집는 게 온당한 것인가, 선수도 모르는 실수를 찾아내는 건 옳은 일인가, 이 같은 결정이 심판 없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경기하는 ‘골프 정신’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TV 심판’을 두고 골프계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시청자들의 골프 판정 개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타이거 우즈(미국)는 자신의 SNS에 “집에서 TV를 보는 사람이 심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도 SNS에 “전화로 경기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 규칙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키 파울러는 “대회 주최 측이 카메라, 감시위원 등을 배치해 플레이를 모니터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며 “다른 스포츠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 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연락한 뒤 결론을 내리는 것은 어떤 스포츠에도 없다”고 덧붙였다. 메이저대회서 4번이나 우승한 베테랑 여자골퍼 로라 데이비스(영국)는 “모든 샷이 감시를 받는 게 아니라 선두권에 있는 선수들이 주로 TV에 비치지 않나”며 “이건 불공정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승부 좌우하는
공정성 논란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는 리치 빔(미국)도 “톰슨이 선두권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를 좇는 카메라도 없었을 것”이라며 “그렇다면 어느 누구도 문제가 된 장면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셸 위 역시 “시청자들이 어디에 전화를 거는지 궁금하다. 도대체 시청자들이 전화 건다는 곳의 번호는 무엇이냐”고 불편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반해 규칙을 적용하는 골프 단체의 의견은 달랐다. 김태연 KPGA투어 경기위원장은 형평성의 원리를 적용하기 위해 TV 시청자 제보도 받아들여 경기 운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넓은 운동장을 사용하는 골프의 특성상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규정을 위반해 이득을 보는 선수가 있다면 공정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렉시 톰슨 사건 때 LPGA 측도 “어떤 상황에서든 규정을 위반했다면 처벌하는 게 원칙”이라는 입장이었다.

가장 뜨거운 논란은 판정을 소급해 적용하는 것(승패까지 바꾸는 것)이 가능하냐는 점이다. 임경빈 골프아카데미원장은 “골프는 사실상 심판 없이 경기를 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사후 처벌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경기가 끝난 뒤 결과를 바꿔 버린다면 혼란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했다.

판정 개입
찬반 팽팽

김 위원장도 “경기를 마치고 난 뒤 벌 타를 소급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라운드가 진행 중일 때는 어떤 제보라도 받아들여야 하지만 일단 끝나고 나면 축구나 야구 등 다른 스포츠처럼 경기 결과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3자 제보가 처음 나온 건 1957년으로 알려져 있다. 브리티시오픈 마지막 날 18번홀에서 우승을 앞둔 바비 로크(남아프리카공화국)는 그린에서 마크한 뒤 공을 집어 들었지만, 상대의 퍼트 라인에 걸려 마크를 옮겼다. 이후 자신의 퍼트 차례에서 공을 원위치로 되돌려놓지 않고 옮겨둔 곳에서 플레이했다.

경기는 그대로 끝났지만 이를 본 관중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대회를 주관한 R&A는 오소 플레이에 의해 2벌타를 부과해도 로크의 우승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골프대회에서 발생한 최초의 시청자 또는 관중의 제보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시청자와 관중의 제보가 활발해졌으며 경기위원회도 이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직접 본 관중의 제보 외에는 실제로 미셸 위의 의문처럼 시청자들이 어디에 제보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국내의 상황을 봐도 따로 시청자 또는 관중의 제보를 받는 곳은 없고 대회가 열리는 현장에도 제보센터 등은 마련돼 있지 않다. 대회를 주관하는 협회에 제보를 전담하는 직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홈페이지 등에도 별도의 공간이 없다.

“영향력 어떻게 볼 것인가”
시청자 개입에 엇갈린 반응

시청자 제보의 대부분은 시청자 게시판 또는 직접 전화를 거는 등 방송국을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가 들어오면 이런 내용이 경기위원회에 전달되고, 경기위원들은 당시 상황을 조사한 뒤 해당 선수에게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판정을 내린다.

골프는 골프 규칙, 매너, 에티켓까지 따질 정도로 공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골프는 넓은 경기장에서 펼쳐진다. 하지만 드넓은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만큼 모든 홀에 심판(경기위원)을 배치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골프에서는 선수 스스로가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경기위원들이 선수가 판정을 내리기 애매한 상황에 관여하고, 시청자의 제보를 받아들이는 건 경기위원들이 모든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가장 공정한 방식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렉시 톰슨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시청자들이 심판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골프 규정을 관할하는 영국 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일명 ‘렉시법’이라 불리는 규정 변경 내용을 지난달 26일 발표했다. 새로 도입된 이 규정은 즉시 시행됐다.

비디오 기술력보다는 선수의 정직성에 더 무게를 두고 벌타 부과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렉시법의 핵심이다. 비디오 재생 화면에서 선수의 규정 위반이 발견됐다 하더라도, 규정위원회가 ‘이 위반 사실은 맨눈으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해당 선수는 벌칙을 받지 않는다.

승부보다 중요
에티켓 준수

골프라는 종목의 특성을 존중하는 게 우선이라는 이들도 있다. 고덕호 SBS골프 해설위원은 “규정 위반을 한 선수를 TV 시청자의 제보로 잡아내 벌타 등 징계를 내리는 시스템이 공정하다고는 생각한다”며 “그러나 선수들의 플레이 자체를 어느 정도 존중해줘야 한다. PGA투어도 그런 차원에서 최근 스코어 오기에 대한 실격 처리를 없앴다. 선수들이 스스로 규정을 위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골프지도자협회(USGTF) 정회원이자 2PM 골프스쿨 소속인 최원석 프로 역시 “골프는 서로의 양심을 믿고 하는 스포츠다. 인성 등이 특히 강조되는 ‘매너 스포츠’인 만큼 선수들의 기본 소양이 가장 중요하다. 필 미켈슨(미국)은 ‘필드의 신사’라는 이미지로 엄청난 수입을 벌어들인다”며 “‘TV 심판’이니 그런 말들이 나오기 전에 선수 개인이 알아서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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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