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중 야구부 노영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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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17.04.03 10:30:01
  • 호수 11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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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가 끈질기면 선수들이 바로 선다

양천중 야구부에 2014년 2월 부임한 노영시 감독은 올 시즌 첫 번째 공식대회였던 ‘제46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서울지역 예선서 우승을 함으로써 다시 한 번 국내 유소년 야구계의 명장임을 확인시켜줬다. 특히 이번 대회 우승의 주역이었던 양천중 야구부 3학년 선수들은 노 감독 부임 이후 직접 선발한 첫 번째 선수들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각별하다. 다음은 노 감독과의 일문일답.

- 시즌 첫 번째 대회 우승을 축하한다.

▲행운이 많이 따라줬다. 8강의 준준결승전과 4강의 준결승전서 각각 신월중학교와 상명중학교와의 승부를 어렵게 이겨내며 선수들의 사기가 크게 오른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사기가 결승전 상대였던 자양중학교와의 승부서 초반 리드를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역전할 수 있었던 정신적인 밑바탕으로 작용했다.

- 우승의 일등공신은?

▲선수들이 치고 올라가는 경기의 흐름을 잘 만들어줬다. 특히 이번 대회서 활약했던 3학년 투수 4명(이용준, 김동주, 심우용, 홍승원)은 어느 학교를 가더라도 모두 에이스 투수로 꼽힐 만큼의 실력들을 갖춘 선수들이고, 그들의 투구가 이번 우승에 많은 힘이 됐다. 다른 야수들도 본 대회에 들어가기 이전에 이미지트레이닝을 시켰는데 모두 다 잘 따라주며 결승전서 우승할 때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 선수들의 몸 상태를 보니 동계전지훈련을 잘 치른 느낌이다.

▲1월 함안 지역으로, 2월에는 양산의 리그대회에 참가했다. 1월 전지훈련의 가장 큰 목적은 선수들의 부상 방지기 때문에 무조건 온천지역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선수들에게 매일 온천욕을 시켰다. 그리고 2월에는 경기감각을 익히기 위해 양산의 리그대회에 참가했다. 계획대로 보낸 동계훈련이었다.

- 양천중 운동장이 크지 않은데 훈련에 지장이 없나?

▲훈련장으로 사용하는 학교 운동장이 작기 때문에 훈련 시 프로그램을 여러 요소에서 생각한다. 한정된 공간과 자투리 지역을 나누어서 선수별로 맞춤 훈련을 하고 있다.

- 감독 본인의 이력과 경력은?

▲서울 마포구에 있었던 ‘백마리틀야구단’이라는 곳에서 야구를 시작했고, 이후 성남중학교와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 경남대, 상무를 거치며 현역으로 선수생활을 했다. 상무팀에서는 마해영(전 롯데 자이언츠), 권오영(현 배재고등학교 감독), 조성현(현 연세대학교 감독), 박성균(현 성남고등학교 감독) 등과 더불어 당시 성인 실업야구팀 중 최강의 팀을 형성했다.

유소년 선수들은 ‘인성’이 먼저
재질 판단할 때 보는 건 ‘스피드’

주 포지션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투수를 하다가 이후 야수로 전향해 내야 3루수와 외야수 등을 맡았다. 전역한 후 두산 베어스와 프로계약 직전까지 갔었는데, 당시로는 많았던 나이(당시 27세)가 걸림돌이 돼 프로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후 선린상고와 성남서고, 배재고 등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하다 2001년 서울의 고명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했다.

- 제자들은 누가 있나?

▲고명초에선 13년 동안 감독으로 생활하며 2005년과 2006년, 2008년, 2009년 4차례 서울 지역대표로 소년체전에 출전했다. 첫 해였던 2005년 소년체전 동메달을 수상했다. 당시 내가 지도했던 제자들 중에 조지훈(한화 이글스), 이도윤(한화 이글스), 김혜수(넥센 히어로즈), 신동민(SK 와이번즈) 등이 있었다. 양천중 야구부의 감독에는 2014년 2월 부임해 올해로 4년차 감독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 유소년 선수들 지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인성’이다. 이것은 선수들은 물론이고 지도자인 나와 코치들에게도 해당되는 요소다. 야구는 선수와 지도자들 모두에게 엄청난 인내와 성실성을 요구하는 스포츠다. 선수는 날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연습해야 하고, 지도자는 그러한 선수들 곁에서 끈질기게 올바른 동작으로 연습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고 초심과 열정, 그리고 많은 성실성이 따라줘야 되는 일이다. 특히 지도자는 더욱 열정을 가져야 한다. 선수들의 올바르지 못한 동작과 자세는 지도자의 열정으로 반드시 고칠 수 있다. 동작과 자세가 올바르게 나올 때까지 끈질기게 선수 곁에 붙어서 수정을 해줘야 한다.

- 초등학교와 중학교 지도에 차이가 있나?

▲초등학교 선수들은 야구에 처음 입문하는 어린이들이기 때문에 야구의 기본동작은 물론이고 야구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지도자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경기에 나가서도 지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중학교에선 야구의 기본기가 갖추어진 선수들이 존재하고 선수들과 아직 기본기가 제대로 갖추어지지가 않은 선수들을 따로 관리하며 팀 전체의 수준을 끌어 올리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 경기에서 지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60%는 될 것이다.

- 선수들의 재질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스피드’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스피드를 갖춘 선수는 야구의 어떠한 포지션과 역할도 충분히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어떠한 방식으로 선수들과 소통하나?

▲사실 비난과 칭찬을 잘 하지 않는다. 잘못했을 때는 선수 본인이 깨닫도록 시간 차를 두고 그때의 상황을 인지시켜주며 타이르는 편이다. 그리고 선수 개인에 대한 칭찬은 절대 하지 않는 편인데, 그것은 나의 선수시절 경험에 따른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굉장히 활약했던 경기가 있었는데, 당시 감독께서 내가 아닌 다른 선수를 칭찬하는 것을 내 어머님이 목격하신 후, 오랫동안 그 섭섭함을 말씀하셨다. 그때의 경험으로 선수 개인을 공개적으로 칭찬하지 않는다.

다만 정말 잘한 선수들은 오고 가며 엉덩이를 몇 번 두드려주는 것으로 칭찬과 고마움을 대신한다. 야구 외적으로 예절과 학교생활서도 선수들의 태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나이니 만큼 성교육까지 틈나는 대로 시키고 있다.

- 현재 양천중 야구부의 구성은?

▲양천중학교의 지리적인 위치가 학생들이 통학하기 쉬운 곳은 아니다. 근처에 전철역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입생들은 초등학교 야구부에선 관내의 갈산초등학교서 진학해오는 선수들이 거의 유일하고, 그 밖에 경기도 지역의 리틀야구단서 많이 진학해 오는 상황이다. 현재 선수 구성은 3학년 11명, 2학년 10명, 1학년 12명으로 총 33명으로 야구부를 구성하고 있다.

- 작년 시즌 3학년 선수들은 어느 고등학교로 진학했나?

▲나의 모교인 선린인터넷고와 덕수고, 성남고, 서울고, 장충고, 배재고, 청원고 등으로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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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만 아는 보수대연합

장동혁만 아는 보수대연합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방선거를 53일 앞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자 일각에선 “장 대표가 지방선거 패배 후 부정선거론을 제기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장 대표가 취임 직후 구상했던 보수 대연합은 이미 무너졌다. 그의 구상은 왜 무너졌을까? 그리고 누가 그다음을 노리고 있을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11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장 대표는 미국 국제공화연구소의 초청을 받았다. 원래는 지난 14일부터 2박4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초청 측의 요청으로 3일 앞당겨 출국했다. 누가 뭐래도 앞당긴 출국 장 대표는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세계의 자유를 지키는 최전선 워싱턴 DC로 출발했다”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코 외면할 수 없기에 나아간다”고 주장했다. 6·3 지방선거를 53일 앞둔 시점에서, 그것도 일정을 더 늘린 출국이었다. 그 스스로는 “6·3 지방선거는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거대한 전선이 될 것”이라며 “지방선거를 앞둔 현재의 분열과 고통의 시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고, 위기의 대한민국 앞에서 우리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선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지난 14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너무 갑작스럽게 비밀스럽게 가셔서 명분을 모르겠다”며 “선거를 코앞에 앞둔 상황에서 공천도 마무리가 안 됐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도 같은 날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지금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것은 선거가 어려운 상황에서 뛰어야 하는 후보들이 단 하루라도 낭비하지 않도록 후보를 빨리 결정지어 주는 일”이라며 “그걸 포기하고 미국에 간 것은 이번 선거가 이미 어렵게 된 마당에 포기하는 심정으로 차라리 다음에 어떤 정치적 행보를 위해서 지지층 결집을 목적하려고 간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지난 11일 경기 수원 방문 도중 기자들을 만나 “미국에 지방선거 표를 찍어줄 유권자가 있느냐”며 “리더가 이번 지방선거를 포기한 거 아니냐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런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이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9일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국제공화연구소의 중요한 목적·역할 중 하나는 각국 부정선거 감시”라며 “장 대표가 그에 대한 기법을 배우고 와서 지방선거 패배 후 부정선거 때문에 졌다고 얘기하려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윤희석 전 대변인도 같은 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비슷한 주장을 했다. 보다 못한 <조선일보>는 지난 10일 국제공화연구소 근무 경력이 있다는 익명의 워싱턴 DC 외교·안보 싱크탱크 연구원의 발언을 인용해 “개발도상국·후진국의 선거 도중 발생할 수 있는 부정을 감시하는 국제공화연구소를 단순히 부정선거론 연구기관으로 매도하는 것은 상당히 모욕적인 수사”라면서 장 대표를 두둔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8월 당 대표 당선 과정에서 대여 투쟁과 단일 대오를 강조했다. 선출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단일 대오로 뭉쳐 제대로 싸우는 야당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지금부터 단일 대오에서 이탈해 내부 총질하는 분들과 당론을 계속 어기는 분에 대해서는 결단하겠다”고 주장했다. 선거 앞두고 미국행…일각선 “부정선거론 배우러?” 극복 못 한 모순…당내 한 제외하고 당외 이와 연대? 이후 진행된 것은 한 전 대표·김 전 최고위원 제명과 배 의원 당원권 1년 정지 등 친한계 일원들에 대한 징계였다. 이들 중 배 의원은 법원에 징계 효력 정치 가처분을 신청했고, 지난달 인용돼 징계 효력에서 벗어났다. 친한계 구성원들은 다수의 방송 시사 프로그램에 활발하게 출연하면서 이익과 불이익을 동시에 전달하고 있다. 원외 인사들도 방송 출연을 통해 존재감을 유지하면서 이들의 의견을 왕성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장 대표 등 친한계가 아닌 국민의힘 인사들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의견을 밝히기 때문에 비판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장 대표는 지난해 9월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면서 “방송에서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를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가 한 전 대표 대신 선택한 연대 시도 대상은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였다. 지난 1월엔 이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공천 헌금 의혹·통일교 게이트 특검법 공동 추진을 합의했다. 지난달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여 투쟁 방안을 논의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이 대표와의 연대를 통해 보수 대연합을 시도한 것이라는 해석이 다수 나왔다. 하지만 이 대표는 “공조와 연대는 다르다”면서 선거 연대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도 이 대표가 국민의힘에서 징계를 받고 대표직에서 물러나 개혁신당을 창당하기까지의 과정을 토대로 국민의힘에 대한 강한 반감을 유지하고 있다. 당내 경쟁자와의 투쟁을 위해 불미스럽게 당을 나간 외부 인사와의 연대를 추구하는 그림에 대해선 한동안 “모순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보수 대연합은 당내 갈등을 봉합한 후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인 순서”라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당선 과정에서 구 친윤(친 윤석열)계와 강경 보수 성향 윤 어게인 세력의 지원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장 대표의 구상을 확인할 수 있다. 장 대표는 친한계를 국민의힘에서 내보낸 후 구 친윤계·윤 어게인을 묶어 강경한 선명 보수 야당을 만들어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구 친윤계 중 상당수는 대구·경북·강원 등 국민의힘의 텃밭으로 통하는 지역 내 유지들과 밀착해 정치활동을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어게인 세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두둔하면서,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했다. 두 세력에 대해선 “같은 ‘보수’라는 테두리 안에 있을 뿐, 성향이 전혀 다르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구 친윤계는 언론 노출을 가급적 피하면서 지역구 관리에 공을 들이는 토착 보수 성향을 보인다. 반대로 윤 어게인 세력은 대규모 집회 개최·유튜브 활동 등 강경한 의견을 왕성하게 표현하는 것에 주력한다. 실패한 연대 이대로 포기? 아울러 구 친윤계는 윤 어게인 세력과 밀착하는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지난달 국민의힘 의원 전원 명의로 발표된 절윤(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 선언에도 참여하는 등 윤 전 대통령을 이미 지웠다. 반대로 전한길씨 등 윤 어게인 세력은 절윤 선언을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장 대표에 대해서도 독한 비난을 이어갔다. 장 대표로선 지난해 당 대표 선거 출마 이후부터 구상했던 “구 친윤계·윤 어게인을 묶는다”는 목표가 어긋난 것으로 보여질 여지가 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 지방선거 패배와 장 대표 체제 붕괴에 대비해 ‘포스트 장동혁’을 거론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거친 후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할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포스트 장동혁에 도전할 수 있는 인사로는 ▲오세훈 서울시장 ▲한 전 대표 ▲신동욱 수석최고위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달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공천 1차 마감 시한까지 신청하지 않았다. 이어 당의 인적 쇄신·절윤 선언 실천·혁신 선대위 설치 등을 요구하면서 장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다. 오 시장은 추가 공모 기간 내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이때까지도 “서울시장 출마가 아니라 장 대표 체제 붕괴 후 당권에 도전하려는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아다녔다. 따라서 오 시장의 선거 당락을 떠나 그가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되지 않는다. 서울시장 5선에 성공하더라도 당 대표 출마 및 당선 후 겸직을 막을 법적 제한은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4일 전입신고를 하는 등 부산 북갑에서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확정된 전재수 의원은 이곳에서 3선을 했고, 현재 부산 내 유일한 민주당 의원이다. 한 전 대표가 이곳에서 당선돼 민주당의 부산 내 근거지를 소멸하면 국민의힘에 복귀해 다시 당권·대권에 도전할 명분이 붙는다. 신 최고위원에 대해선 지난해 12월부터 “포스트 장동혁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장 소장은 지난해 12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민의힘 내 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몇몇 의원이 장 대표로는 안 되겠다면서 신 최고위원이 비대위원장을 맡으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고 주장했다. “구 친윤계로서는 오 시장도 구 친윤계와 성향이 다른 수도권 내 보수 성향 엘리트에 속해 부담스러워할 것이고, 오랫동안 갈등했던 한 전 대표는 말할 것도 없다”는 분석도 돌아다녔다. 신 최고위원에 대해선 한동안 서울시장 출마설도 돌았지만, 실제로 출마하지는 않았다. 3인방 행보는? 성향이 전혀 다른 세력을 조율하면서 그 수장으로 군림하는 데에는 ▲전략적 경계 설정 및 수용 ▲고도화된 소통 ▲정치적 영향력 행사 기술 ▲유연한 지도력 등 고난도 정치술이 필요하다. 이 정치술을 갖추고 세력 조율을 시도했던 대표적인 정치인은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였다. 효종·현종은 어느 한 세력이 일방적인 우위를 점하지 않는 방향으로 서인·남인의 당쟁을 관리했다. 하지만 2대 독자로서 강한 정통성과 고집 센 성격을 가졌던 숙종은 주기적으로 환국을 일으켜 한 세력에 일방적으로 정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왕권을 강화했다. 서인은 학문 방향·남인에 대한 대응 등 논점에서 의견이 엇갈려 노론·소론으로 갈라졌다. 영조가 즉위했을 때는 노론·소론의 당쟁이 극대화됐다. 이 때문에 소론·남인 강경파가 영조를 인정하지 못해 군사 반란을 일으킨 이인좌의 난이 발생했다. 이후 영조가 추진했던 탕평책은 노론·소론의 온건파만 조정에 남겨놔 균형을 유지하는 완론 탕평이었다. 이 때문에 종전엔 없던 탕평파라는 당파가 탄생했다. 이들은 영조의 완론 탕평에 협조해 살아남았다. 하지만 탕평파에는 영조의 사도세자 살해를 끝까지 막지 못했다는 정치적 약점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탕평파의 핵심이었던 사도세자의 처가 풍산 홍씨는 세손 정조의 정치 보복을 우려해야 했다. 정조의 즉위를 도왔던 세력은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처가 경주 김씨 가문이었다. 결국 영조의 완론 탕평은 유교에서 금기시하는 척신 정치로 나아갔다. 정조는 즉위 초엔 홍인한·정후겸 등 자신의 즉위를 방해한 세력의 핵심을 숙청한 후 측근 홍국영에게 전권을 맡겼다. 그러다가 홍국영이 과도한 권력욕을 드러내자 숙청한 후 영조와 정반대로 준론 탕평을 추진했다. 준론 탕평은 각 당파의 강경파를 전면에 내세워 당파마다 선명한 당론을 내세우게 한단 것이다. 이는 곧 “영조 이전의 정치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고, 각 당파에 스스로 생각하는 의리를 명확하게 밝히라고 요구하는 체제였다. 그들의 의리 중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택하는 심판 겸 절대자는 정조 자신이었다. 정조가 홍국영 숙청 이후 선택한 정국 관리 대리인은 소론 강경파 겸 시파였던 서명선이었다. 이어 그를 견제하기 위해 영조 대에 사실상 조정에서 사라졌던 남인을 조정에 편입시키려고 남인 영수 채제공에게 고위직을 부여했다. 아울러 자신의 스승이었던 김종수와 초강경파인 심환지 등 노론 벽파와 정민시 등 노론 시파도 조정에 공존시켰다. 각 당파의 수장들을 골고루 챙겨 자신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한 경쟁을 시킨 것이었다. 각 당파의 강경파만 엄선해 조정에 공존시켜야 했기 때문에, 정조의 갈등 조정 업무는 매우 많았다. 김종수는 이따금 갈등을 일으켰다. 정조는 매번 적당한 선에서 김종수를 처벌하면서 그 갈등을 무마했다. 정조도 김종수에 대해선 “위험에 직면하면 위험에서 건져주고, 거의 죽게 되면 죽음에서 구원해 줬다”고 말했다. 선거 패배하면 주목받을 ‘포스트 장’ 누구? 정조의 준론 탕평 갖가지 비결…누가 갖췄나? 서명선은 공개적으로 “저는 채제공과 의리상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고, 채제공이 역적이 아니면 저는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명선은 이인좌의 난 이후 남인에 대한 감정이 격렬해진 소론 일각의 정서를 조정에서 공론화했다. 그런데 막상 서명선은 심환지로부터 탄핵당했다. 서명선이 영의정이 된 것에 심환지가 불만을 품은 것이었다. 그러자 정조는 크게 분노해 김종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렵다”면서 벽파를 ‘우리 벽패는’이라고 일컫는 등 심환지에게 수많은 밀지를 보냈던 사람은 정조였다. 심환지는 보는 즉시 태워 없애야 하는 밀지를 보관해 후세까지 전하게 했다. 이 밀지 모음이 ‘정조 어찰첩’이다. 정조는 심환지에게 밀지를 보내 정국 관리 구상을 밝히면서 심환지에게 구체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등 막후에서 ‘정국’이란 거대한 연극의 감독 겸 주연을 맡았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정조는 세자에게 양위한 후 스스로 정예부대로 육성했던 장용영을 데리고 수원 화성으로 물러앉아 조정을 감독하는 원격 통치를 구상했다. 정조가 정했던 시기는 1804년이었지만, 정조는 1800년 훙서했다. 정조가 구상했던 준론 탕평은 정조 말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정조는 할아버지의 극진한 총애를 받을 정도로 공부에 몰두해 즉위 후엔 스스로 성리학의 정통이자 스승을 자처했다. 이는 신하들이 임금을 가르치는 경연을 없애고, 임금이 신하를 가르치는 초계문신제를 채택한 것에서 확인된다. 아울러 서명선·김종수·정민시 등은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면서 사조직 동덕회를 조직할 정도로 측근이었다. 조정 내부엔 정조의 준론 탕평에 동조하는 시파가 있었고, 정조 어찰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벽파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조정 외곽엔 영남 남인 1만명이 연명해 정조의 사도세자 복권을 시도하고 정조의 준론 탕평에 호응하는 등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친위 무력 기반 장용영도 있었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밀지를 주고받으면서 막후에서 정국을 설계하면서 이끄는 부지런함까지 갖췄다. 꿈꾸는 잠룡들 과연 국민의힘은 서로 전혀 다른 구 친윤계·친한계·강경 보수를 모두 조율할 수 있는 수장을 배출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선 모두의 인정을 받는 월등한 실력과 부지런함을 갖춰야 한다. 장 대표가 지금이라도 이를 소화할 수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누군가가 나타날지, 보수 성향 유권자의 가슴은 타들어 가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