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간이역 여행 ①경기도 양평

'양평 구둔역' 녹슨 철길에 첫사랑이 내려앉다

오래된 역에는 지난한 세월이 묻어난다. 빛바랜 낙엽 위로 사연이 겹겹이 쌓이고, 옛 역사와 녹슨 철길에는 겨울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는다.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에 자리한 구둔역은 설립 80년을 목전에 뒀다. 퇴역한 노병처럼 주름 깊은 은행나무 한 그루, 엔진이 식은 기관차와 객차 한 량, 역 앞을 서성이는 개 한 마리가 구둔역의 친구다. 구둔역은 간이역의 흔적을 뒤로한 채 폐역이라는 명패를 달고 겨울 벌판에 섰다.

80년을 목전에

1940년 4월, 중앙선의 간이역으로 문을 연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을 지켜봤으며, 한국전쟁이라는 질곡의 세월을 견뎌왔다. 청량리에서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몇 차례 지나가던 간이역은 청량리-원주 간 중앙선 복선화 사업으로 종전 노선이 변경되면서 2012년 폐역의 수순을 밟았다. 최근에는 추억의 간이역보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첫사랑이 담긴 촬영지로 세간에 알려졌다.
 

목조 양식의 구둔역은 역사와 광장, 철로, 승강장까지 등록문화재 296호로 지정됐다. 삐걱거리는 대합실 문을 열고 들어가 승강장에 서성거리다 철길을 걷는 동선이 모두 근대문화를 더듬는 행위와 연결된다. 천장이 나무로 된 대합실, 사무실, 숙직실 등이 남았으며, 대합실에는 열차가 오가던 시절의 시간표와 매표소 유리창 등이 빛바랜 모습 그대로 보존됐다.

승강장으로 나가면 노목에는 나뭇잎 대신 소원지가 매달렸다. 청량리행을 알리는 이정표도 햇살을 머금고 철로변을 지킨다. 멈춰 선 기관차와 객차 역시 철로 한편에서 겨울 역의 아련한 정취를 더한다.
 


구둔역이 있는 구둔마을은 예부터 군사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때 한양으로 넘어서는 언덕길에 진지 아홉 개가 있어 ‘구둔(九屯)’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을 주민에 따르면 구둔역은 전란 때마다 격전지였으며, 마을이 폐허가 된 한국전쟁 당시에도 허물어지지 않고 남았다고 한다.

전란 때마다 격전지, 전쟁에도 살아남아
주민의 구둔역 새 단장으로 새로운 여정

아픈 과거를 뒤로한 구둔역에 이제 사랑이 녹아들었다. 구둔역이 화려한 조명을 받은 것은 수지를 ‘국민 첫사랑’으로 만든 영화 〈건축학개론〉 덕분이다. 극중 승민(이제훈)과 서연(수지)의 풋풋한 장면이 담긴 이곳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를 끌었다.

구둔역은 한 시절 추억이 됐고,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뒤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다. 김국진과 강수지가 〈불타는 청춘〉서 훈훈한 철길 데이트 코스로 선택한 곳도 구둔역이다.
 

양평장이 서는 날이면 북적거리던 구둔역 일대는 이제 한적한 시골로 남았다. 주말에 번잡해지는 용문산관광지와 달리 용문을 거쳐 구둔까지 들어서는 길목엔 저수지와 고갯마루의 한적한 도로가 이어진다. 기차를 이용하면 구둔역의 배턴을 이어받은 일신역에서 내려 15분 정도 걷는다. 마을 풍경을 감상하며 역까지 한적하게 다가설 수 있다.


데이트 코스로

기관차 엔진은 식었지만 구둔역은 올해 말부터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구둔마을 주민들은 올가을 구둔역 단장을 마쳤다. 역사 옆에는 빨간 벽돌과 나무 한 그루가 어우러진 ‘고백의 정원’을 조성,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할 장소를 마련했다.


열차 옆 공간에 있는 새끼 돼지와 토끼는 역 앞을 서성이던 견공 몽구와 함께 아이들의 사랑을 고대한다. 사무실은 카페로 꾸미고, 고구마피자와 빵 만들기 체험장도 문을 연다. 승강장 옆에는 군불을 쬐며 추위를 다스릴 모닥불터도 마련할 계획이다.

고즈넉한 구둔역에서 벗어나 용문 방향으로 가면 용문사, 친환경농업박물관 등이 자리한 용문산관광지다. 천년 고찰 용문사까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 코스가 좋고, 주말에는 등산객으로 다소 붐빈다. 용문사 경내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호)는 수령과 높이가 국내 최대다. 용문산관광지는 주차료 3000원에 입장료(어른) 2500원이며, 관광지 입장시 현금 이용만 가능하다.
 

한적한 숲 속 산책을 원한다면 쉬자파크로 발길을 옮긴다. 백운봉 자락에 위치한 공간으로 휴식과 문화, 예술이 어우러졌다. 관찰데크와 잔디광장, 초가원, 솔쉼터 등이 있으며, 산책로 중간에 만나는 의자는 예술미가 돋보인다. 허브정원과 다양한 조각상이 볼 만한 남한강 변의 들꽃수목원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야간 개장해 운치를 더한다.

양평 나들이할 때는 숲속에서 하룻밤 묵어보자. 중미산자연휴양림은 토성과 목성 등 행성을 테마로 한 숙소를 새롭게 개장했고, 휴양림 옆엔 중미산천문대가 들어서 밤하늘의 별자리와 추억을 나눌 수 있다.

두물머리

다채로운 먹거리도 발걸음을 들뜨게 한다. 들꽃수목원 건너편의 ‘옥천냉면’은 평양냉면 족보에 이름을 올린 맛집 중 한 곳으로, 담백한 국물에 면발이 특색 있다. 용문산 초입에는 들깨, 곤드레나물 등으로 힐링 푸드를 내는 식당이 여럿 있다. 곤드레나물밥 한그릇이면 추운 몸을 녹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양평 여행의 마무리는 단연코 두물머리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는 ‘만남’의 사연까지 더해져 연인들의 야외 데이트 성지로 자리 잡았다. 산책로와 카페촌이 조성되어 주말이면 강변 조명 아래 은은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나들이의 시작은 구둔역에서, 마무리는 해질 무렵 두물머리가 안성맞춤이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구둔역→용문사→쉬자파크→들꽃수목원→두물머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구둔역→쉬자파크→용문사→친환경농업박물관→중미산자연휴양림
-둘째 날: 들꽃수목원→양평레일바이크→두물머리

관련 웹사이트 주소
-양평관광(양평군 관광 포털) tour.yp21.net
-쉬자파크 swijapark.com
-용문사 www.yongmunsa.biz
-중미산자연휴양림 www.huyang.go.kr
-들꽃수목원 www.nemunimo.co.kr

문의 전화
-양평군청 관광진흥과 031-770-2490
-쉬자파크 031-770-1009
-용문사 031-773-3797
-중미산자연휴양림 031-771-7166
-들꽃수목원 031-772-1800


자가운전 정보
팔당대교→국도6호선→양평읍→용문읍→345번 지방도 지평 방면→구둔역

대중교통 정보
기차 청량리역-일신역: 무궁화호 하루 3회(07:05, 08:25, 19:07) 운행, 약 50분 소요.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용문-구둔역: 용문터미널에서 987-3, 987-4, 987-5, 987-6번 버스 하루 각 1회 운행, 약 50분 소요.
*문의: 용문시외버스터미널 031-773-3100

숙박 정보
-블루힐펜션: 양평읍 백안3리길, 031-772-7702, blue-hill.kr (굿스테이)
-한옥마을황토펜션: 강하면 전의1길, 031-773-6300, www.hanok54.co.kr (한옥스테이)
-중미산자연휴양림: 옥천면 중미산로, 031-771-7166, www.huyang.go.kr

식당 정보
-옥천냉면: 냉면, 옥천면 경강로, 031-773-3575
-마당: 곤드레돌솥밥정식, 용문면 용문산로, 031-775-0311, madang.114up.co.kr
-우리한우: 등심, 용문면 다문북길, 031-773-6401
-나루터家: 닭볶음탕·막국수, 양서면 두물머리길, 031-773-6372, naruterga.modoo.at

주변 볼거리
경기도민물고기생태학습관,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세미원, 양평보릿고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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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