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최고의 진기명기 '장면들'

믿을 수 없는 리커버리 샷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지만 골프에서도 위기의 순간 최고의 샷이 나온다. 선수들이 보여주는 창의적인 샷에 갤러리는 열광한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 of America)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PGA투어에서 실제 일어난 믿을 수 없는 9개의 리커버리 샷을 선정해 소개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비롯해 필 미컬슨, 빌 하스(이상 미국),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미구엘 앙헬 히메네즈, 세르히오 가르시아(이상 스페인), 빅토르 뒤뷔송(프랑스), 비제이 싱(피지)의 샷이 최고의 진기명기로 꼽혔다. 특히 미컬슨은 9가지의 샷 중 2개가 선정돼 ‘쇼트 게임의 달인’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위기의 순간
최고의 샷

최고의 샷은 가르시아의 나무 위 샷이다. 그는 2013년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최종 4라운드 10번홀에서 티샷이 나무로 올라가는 불운을 맞았다. 보통 선수들은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할 법한 상황에서 가르시아는 그대로 샷을 하기로 결정했다.

나무 위로 올라간 가르시아는 자세가 나오지 않아 여러 번 다양한 각도에서 어드레스 자세를 취해야 했다. 결국 페어웨이를 등진 채 왼손으로는 나뭇가지를 잡고 오른손으로 클럽을 쥐어 등 뒤쪽으로 볼을 쳐냈다. 다행히 볼은 페어웨이로 빠져나왔다. 나무 위 샷의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가르시아는 나무에서 내려온 뒤 첫 번째 샷을 30야드밖에 보내지 못했고 결국 더블보기를 범했다.

히메네즈는 2010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열린 디 오픈에서 ‘벽치기’ 샷을 선보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히메네즈는 로드 홀로 불리는 17번홀에서 볼이 그린 뒤 돌담 바로 앞에 멈추자 궁여지책으로 돌담을 향해 볼을 쳤다. 볼은 벽에 맞고 바운스된 뒤 그린에 올라갔고 갤러리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세계 랭킹 2위 조던 스피스(미국)도 지난해 디 오픈을 앞두고 로드 홀에서 벽치기 샷을 연습한 적이 있다.


하스가 2011년 투어 챔피언십 연장전에서 보여준 ‘워터해저드 샷’도 명장면에 선정됐다. 이스트레이크 골프장 17번홀에서 열린 연장 두 번째 홀에서 하스는 절제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두 번째 샷이 그린 왼쪽 연못 가장자리에 떨어져 볼이 반쯤 물에 잠긴 것. 오른발은 물에 담근 채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 까다로운 상황이었다.

가르시아 나무 위 샷 ‘최고’
창의적 샷에 갤러리는 열광

그러나 하스가 물을 튀기며 친 워터해저드 샷은 홀을 약 90㎝ 지나친 지점에 절묘하게 멈춰 섰다. 가볍게 파 세이브하며 고비를 넘긴 그는 세 번째 연장전에서 파를 지켜내 승리했다. 하스는 당시 우승으로 페덱스컵 보너스 1000만달러까지 챙기는 ‘잭팟’을 터뜨렸다. 그의 샷은 그해 PGA투어가 선정한 ‘올해의 샷’으로도 뽑혔다.

뒤뷔송은 지난 2014년 월드골프챔피언십(WGC) 시리즈 액센추어 매치플레이 결승에서 호주의 제이슨 데이에게 비록 패했지만 당시 연장전에서 보여준 두 차례의 리커버리 샷이 명장면으로 꼽혔다.

뒤뷔송은 연장 첫 번째 홀에서 선인장 밑 모래밭에 들어간 볼을 홀 1.2m에 붙여 파 세이브에 성공했고, 연장 두 번째 홀에서도 덤불 사이로 빠진 볼을 다시 2m에 붙인 뒤 기어이 파를 잡아냈다. 뒤뷔송은 연장 다섯 번째 홀에서 백기를 들긴 했지만 두 번의 파세이브는 최고의 샷으로 뽑혔다. 데이는 당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한때 우즈를 밀어내고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싱은 2001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16번홀에서 퍼터로 이색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파5 홀인 이곳에서 싱의 두 번째 샷은 그린 옆 프린지와 러프 사이에 떨어졌다. 싱은 퍼터를 90도로 돌려 잡더니 페이스가 아니라 ‘토’(헤드 앞 끝)로 볼을 쳐내 5m 거리의 홀에 집어넣어 이글을 잡았다.

싱은 경기 후 “연습을 많이 해본 샷이었으나 대회에서는 처음 써먹었다”며 “볼이 프린지와 러프 사이에 멈춰 있어서 샌드웨지를 썼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진기샷 잘하는
톱랭커 압권

미컬슨은 2008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콜로니얼 골프장에서 열린 크라운플라자 인비테이셔널 최종 라운드 18번홀에서 환상적인 로브 샷을 앞세워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미컬슨의 티샷은 왼쪽 나무 숲 러프로 들어갔다. 핀까지 거리는 140 야드. 키 큰 나무들이 가로막고 있어 파 세이브도 결코 만만치 않은 상황. 미컬슨은 로브 샷을 감행했고, 나뭇가지 위로 붕 떠오른 볼은 그린에 안착하더니 홀 2.7m 거리에 멈췄다.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우승을 차지한 미컬슨은 “내 생애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멋진 샷”이라고 했다.

미컬슨은 2014년 WGC 캐딜락 챔피언십 1라운드 때도 쇼트 게임의 진수를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대회장인 블루 몬스터 TPC 17번홀. 파4 419야드인 이 홀에서 미컬슨의 티샷은 그린 주변까지 날아가 카트 도로에 멈췄다. 카트 도로 뒤쪽엔 갤러리 스탠드가 있었다. 구제를 받고 드롭을 해도 상황이 더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미컬슨은 카트 도로에서 그대로 샷을 하기로 결정했다. 홀까지 47야드. 미컬슨은 웨지 샷을 했고, 볼은 그린에 떨어진 후 홀 2.7m 거리에 붙었다. 미컬슨은 버디로 연결했다.

나무 위에서…
최고의 장면

세계 랭킹 3위 매킬로이는 지난 2014년 메이저 우승자들만 출전하는 이벤트 대회인 PGA그랜드 슬램에서 ‘왼손 해저드 샷’으로 트러블 상황을 탈출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당시 2라운드 17번홀(파5)에서 그의 티샷은 페어웨이 왼쪽 워터해저드 가장자리에 빠졌다. 스탠스를 잡을 수 없게 된 매킬로이는 웨지 헤드를 거꾸로 잡은 뒤 왼손잡이 스윙으로 볼을 페어웨이에서 꺼냈다. 매킬로이는 세 번째 샷을 러프로 보내고, 네 번째 샷으로도 볼을 그린에 올리지 못했지만 다섯 번째 웨지 샷을 그대로 홀에 집어넣어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우즈가 2005년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 16번홀(파3)에서 보여준 ‘기적의 칩샷’은 우즈의 명성과 어우러진 까닭에 골프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명장면으로 꼽힌다. 당시 우즈의 티샷은 러프에 빠지고 말았다. 파 세이브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우즈는 회심의 칩샷을 날렸고, 홀 8m 거리의 그린에 떨어진 볼은 90도로 꺾이면서 경사를 타고 내려가더니 홀 앞에서 약 1.5초 동안 멈춰선 뒤 거짓말처럼 빨려 들어갔다.
이 장면은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을 뿐

니라 TV뉴스와 인터넷 등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다. 더구나 우즈의 볼은 마치 연출한 듯 홀에 들어가면서 나이키의 상징인 갈고리 모양의 로고를 보여줘 극적인 효과를 더했다.

하지만 역대급 진기명기 샷도 통하지 않는 악명높은 벙커들이 골퍼들을 골탕먹이고 있다. 올 시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샌드세이브율이 가장 높은 선수는 데이비드 톰스(미국)로 66.67% 성공률을 자랑하고 있다. 가장 나쁜 선수는 34.57% 확률을 보이는 키건 브래들리(미국). 전체 199명 중 정확히 중간인 100위 자리에는 세계 랭킹 3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올라 있다. 공교롭게도 확률도 절반인 50%다. 세계 최고 선수들도 벙커에 들어갔을 때 빠져나와서 1퍼트로 마무리하는 확률이 평균적으로 50%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난감한 골퍼들…색다른 흥밋거리
아무 것도 안통하는 치명적 벙커들

스코틀랜드 출신 골프코스 설계가 도널드 로스는 “골프 코스 내에 잘못 배치된 벙커는 없다. 따라서 벙커가 어디에 있든지 그것을 피하는 것은 플레이어 몫”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전 세계 골프장에는 한번 빠지면 탈출하는 것 자체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하는 ‘마의 벙커’가 꽤 있다.

오크몬트 골프장의 ‘교회 의자들(Church Pews)’로 불리는 벙커도 한번 빠지고 나면 악명에 치를 떠는 곳이다. 3번홀과 4번홀 페어웨이 사이에 있는 이 벙커는 길이가 100야드 이상 될 정도로 엄청나게 크다. 이 벙커 내에 있는 기다란 러프 둔덕들이 마치 교회 의자를 일렬로 정렬해놓은 것 같아 이런 닉네임이 붙었다. 원래 6개 벙커로 나뉘어 있었지만 이것을 하나로 만들면서 유명해졌다. 처음에는 7개 ‘의자’밖에 없었지만 점점 늘어 지금은 12개가 됐고, 각 의자들은 두껍고 질긴 페스큐 잔디로 구성됐다. 이곳에 공이 빠지면 탈출은커녕 찾는 것조차 힘들다.


2011년 디오픈이 열린 잉글랜드 로열 세인트조지스 골프장의 4번홀 12m짜리 벙커는 깊고 위협적인 시각 효과로 ‘히말라야 벙커’라는 애칭을 얻었다. 정말 벙커 한쪽 사이드가 히말라야를 보는 것 같은 웅장함을 준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벙커가 많다고 해도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17번홀의 ‘나카지마 벙커’보다 더 악명을 떨친 벙커는 없을 것이다. ‘로드홀’로 불리는 이 홀에서도 나카지마 벙커는 유독 유명세를 타고 있다. 1978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일본 나카지마 쓰네유키는 이 홀에서 9타를 치며 우승 경쟁에서 멀어졌다. 볼을 두 번 만에 그린에 올렸지만 첫 퍼트가 길어 ‘그린 OB’가 나면서 벙커에 빠졌고, 벙커에서 나오는 데 5타를 소비했다.

악명높은 벙커
선수들 눈물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파인밸리 골프장 10번홀(파3) 그린 앞 벙커는 ‘악마의 항문(Devil’s Asshole)’이라는 아주 독특한 닉네임을 갖고 있다. 그 모양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깊이는 3m밖에 되지 않지만 너무 작아서 백스윙 각도가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체임버스베이 골프장 18번홀 페어웨이 중앙에 있는 벙커는 ‘지하실(Basement)’이란 애칭이 있다. 3.6m 높이에 지하실처럼 넓은 이 벙커는 레이업하는 공을 모두 잡아먹는 것으로 악명 높다.

‘모래 언덕’을 연상시킬 정도로 높아 탈출하기 힘든 샌드힐스 골프장 18번홀 벙커, PGA 웨스트스타디움 코스 16번홀 5m짜리 벙커, 로열포트러시 골프장 17번홀 벙커 등도 피하는 게 상책인 치명적인 벙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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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