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단독 집권' 시나리오

"연대는 없다" 끝까지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국민의당이 ‘단독 집권’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나섰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제3당인 국민의당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여권이나 야권과의 연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대선을 1년여 앞두고 국민의당이 단독 집권의 자신감을 드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이 지난 3일 ‘국민의당, 단독 집권 가능한가’란 제목의 토론회를 열었다. 유 의원은 토론회에서 “필승 전략만 마련하면 국민의당 단독 집권도 가능하다는 게 제 개인적 판단”이라며 “온 국민의 관심사와 열망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극복해달라는 것이다. 경제난 극복 방안만 발굴하면 대선 승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단독 집권 가능?

유 의원은 당초 자신이 맡고 있는 당 경제재도약추진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토론회를 개최하려고 했지만 최고위원회로부터 "벌써 단독 집권을 언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지적당했다.

그러자, 그는 당이 아닌 유 의원 개인 명의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원내 제3당인 국민의당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여권이나 야권과의 연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야권연대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아왔지만 막상 대선에 임박해서는 당내부에서 단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올 텐데 이를 버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유 의원은 이번 토론회를 개최한 이유에 대해 “당내 일각에서 내년 대선 집권계획으로 연립정부론이 제기되고 있다”며 “당내 기류는 승리의 길과는 거리가 멀다. 벌써부터 연립정부가 거론될 정도로 패배주의가 나온다. 패배주의가 승리한 역사는 찾아보지 못했다. 야권연대·통합 등을 논의하는 것은 패배주의의 전형”이라고 주장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당내에서 벌써부터 여러 가지 이합집산 시나리오가 난무하자 단독 집권 카드를 선제적으로 내세우며 주도권을 잡겠다는 포석이다.

유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38석을 얻으리라고, 정당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보다 앞서리라고 예측한 전문가는 없었다”며 “그만큼 획기적인 성과다. 우리 모두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국민의당의 단독 집권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토론회에 참여한 최광웅 데이터정치연구소장은 발제문을 통해 “일자리와 내수경기 부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결선투표가 도입되지 않는다면 지역연합 방식으로도 집권이 가능하고 정권이 유지될 것”이라며 “스윙보터 중심으로 사고하면 민주진영에 유리한 국면”이라고 내다봤다.
 

최 소장은 내년 대선 투표자 수를 3000만명으로 볼 때 다자구도에서 각 정당의 고정표를 ▲새누리당(800만∼1000만표) ▲국민의당(600만∼750만표) ▲더불어민주당(450만∼600만표) ▲진보정당(200만∼250만표) ▲기타 부동층(400만∼950만표) 등으로 관측했다.

그는 “양자구도면 무난하게 (국민의당이) 승리하고 3자구도면 부동표의 향배가 승패를 결정할 것”이라며 “달(달구벌, 대구)·빛(빛고을, 광주) 동맹을 강고하게 하면 유권자수 절반인 수도권에서 1위 탈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 소장은 또 4·13 총선과 관련해 “국민의당이 이번 총선에서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스윙보터의 표를 가져왔다”며 “야권분열은 필패가 아니었다. 제3당의 성공은 예견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최 소장은 지난달 4일 스페인 총선에서 신생 좌파 정당 포데모스와 중도 우파 시우다다노스가 돌풍을 일으켜 30년간 지속된 양당 체제를 무너뜨린 점을 예를 들면서, 젊은 유권자들이 기성정당을 심판하는 건 세계적인 추세라고도 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정권 교체를 위한 방안으로 ‘이념 우클릭’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왔다. 최용식 국민의당 경제재도약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은 “진보는 오른쪽으로 가야, 즉 경제성장을 앞세워야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합집산 난무하자 선제적 대응
유권자들 전략적 투표 염두했나

최 부위원장은 또 “유력 대선후보 등 특정 정치인 중심 정치로는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다”며 “이번 총선에선 '집권여당의 오만'이라는 자충수가 야권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지만 대선에서는 이런 실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이 안철수의 사당이란 세간의 평가를 뛰어 넘어 정책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잇달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국민의당의 지지율도 단독 집권 자신감의 한 근거다. 지난 4일 <돌직구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와 공동으로 성인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민주는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국민의당에 밀려 3위로 추락했다.
 

새누리당은 지난 조사(27.8%)에 비해 0.1%p 하락한 27.7%를 유지해 1위로 올라섰다. 국민의당은 지난 조사 결과와 동일한 27.3%을 기록하며 새누리당과도 오차범위 내에서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대선주자 지지율에서도 국민의당 안 대표는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를 바짝 뒤쫓았다.

문 전 대표는 24.4%로 지난 3월6일 조사 이후 줄곧 1위를 수성했지만 안 대표의 지지도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22.7%를 기록해 두 사람의 격차는 불과 1.7%p에 불과했다. 현재 지지율 추이만 놓고 보면 다자구도 하에서도 안 대표의 승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국민의당이 너무 일찍 단독 집권 카드를 못 박은 이유에 대해 유권자들의 전략적 투표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상당수 유권자들은 비례대표 투표는 국민의당에게 하면서도 지역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더 높았던 더민주를 찍는 전략적 투표를 했다.

차기 대선에서 국민의당이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아놓으면 유권자들이 정권교체를 위해 전략적으로 표를 분산시키지 않고 국민의당 대선주자에게 표를 주지 않겠느냐는 계산이다. 특히 안 대표가 이번 총선 때와 같이 호남에서의 지지만 굳건히 지켜준다면 야권 지지자들로서는 안 대표 외에는 대안이 없게 되는 셈이다. 야권의 대선 주자가 호남의 지지를 얻지 않고 당선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리더십부터 갖춰야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국민의당이 연대 없이 단독 집권에 성공하려면 가장 먼저 대권주자로서 안 대표가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아직도 많은 유권자들은 안 대표가 대통령이 되어 제대로 직무수행을 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때 단독 집권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민의당 야권공조 딜레마

국민의당이 자칫하면 ‘샌드위치 정당’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지층은 새누리당과 일부 겹치면서 정책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과 공조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야권 공조가 강화될수록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중도 보수층이 새누리당으로 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은 더민주와의 정책 공조에 얽혀 있는 상황이다. 최근 어버이연합 불법 자금 지원 의혹을 놓고 공동대응 방침을 밝혔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시한 연장,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 등에서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기존 여권 지지층을 잡아두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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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