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희망의 궁전 ‘딜쿠샤’를 아십니까

주민도 모르는 ‘귀신 나오는 집’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딜쿠샤요? 그게 뭡니까?” 행촌동에서 40년을 살았다는 중년 남자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지도를 보여주며 재차 물었다. “일제강점기에 미국인 기자가 살았던 집이에요. 국가문화재로 지정된다고 하던데요”. 남자는 지도를 들여다보더니 “근처에 홍난파 가옥은 있는데…”라며 기자를 안내했다. 1930년 건립된 홍난파 가옥까지 오자 길게 뻗은 외길을 따라 언덕 위로 붉은색 2층 벽돌집이 보였다.

40년을 한 동네에서 산 주민도 잘 모르는 ‘귀신 나오는 집’ 딜쿠샤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옆엔 권율 장군 집터 자리에 460살 먹은 은행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서 있었다. 1920년 이 곳을 처음 찾은 테일러 부부도 이 나무를 보고 바로 옆에 집을 짓고 싶어 했다. 100여년 사이 풍경은 급격히 변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은행나무와 근처 홍난파 가옥, 서울성곽, 테일러가 수감됐던 서대문형무소와 독립문은 그대로다.

40년 거주민도
“몰라요∼”

경고 안내문이 붙은 딜쿠샤 외벽은 아직도 붉은색 프랑스식 벽돌이 선명했다. 아치형의 높은 창문과 널따란 포치도 인상적이었다. 지난해 초 안전진단에서 재난위험시설에 해당하는 D등급을 받아 임시 보강작업을 했다고 하지만 한눈에도 긴 세월을 견뎌온 온 것이 느껴졌다.

원형 복원이 가능할지 첫눈에 의구심이 들었다. 외부인 출입 자제를 당부하는 문구와 신발을 벗고 들어오라는 문구가 동시에 눈에 띄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오래된 목조바닥에서 찬 기운이 올라왔다.

내부는 6·25 전후로 시작된 오랜 무단 점거로 원형을 잃고 쪽방으로 잘게 나눠져 있었다. 앨버트의 부인 메리가 서 있던 넓고 화려한 거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삐거덕거리는 계단을 조심스럽게 오르자 전면의 넓은 유리창에서 한줌 빛이 새어 들어왔다. 2층으로 올라가는 코너에 공용화장실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 천정을 보니 합판에 비가 새 얼룩진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다.


2층은 1층보다 더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2층 입구의 격자문은 언제 설치된 것일까. 좁은 복도를 따라 방들이 나란히 나눠져 있다. 달력도 있고 공연 포스터도 붙어 있다. ‘CCTV 작동 중’이라는 붉은색 경고문도 눈에 띈다. 방송에서 여러 차례 다큐 등으로 소개되면서 사람들이 몰린 후로 맘 편히 집 밖을 나서본 적이 없다는 입주민의 하소연이 떠올랐다.

서둘러 나오면서 발바닥을 들어보니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다 허물어져 가는 집에 빠듯한 살림살이일지언정 나름대로 깨끗이 쓸고 닦는 부지런함이 느껴졌다. 한때는 20여 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9가구만 남았다. 젊은이 둘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70대 노인이다.

일제강점기 미국인 기자 부부 거주
경고문 붙은 외벽 붉은벽돌이 선명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 3월1일 개관을 목표로 딜쿠샤를 복원할 예정이다. 이 집에 3·1운동을 외부 세계에 알리고 그 해 4월 일어난 제암리 학살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아마추어 기자 겸 금광업자인 앨버트 테일러(1875∼1948)와 가족이 살았다.

아내 메리는 1920년 초, 성벽 산책길에서 은행나무가 있는 평평하고 높은 언덕을 발견하고 남편을 졸랐다. 첫 소유주인 미국인 엘리어트가 얼마 후 사망하자, 서양인들의 토지매매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어느 날 밤 서양인 클럽에서 포커를 치며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 테일러는 4752평의 대형 필지를 10만엔(현재 가치 20억원)에 매입했다.

딜쿠샤의 건축가는 밝혀지지 않았다. 메리(1889∼1982)의 자서전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 1992)에서 집을 설계하기 위해 필지를 방문할 때 건축가와 동행했다고만 나와 있을 뿐 건축가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 딜쿠샤는 배우 출신인 메리가 세계 순회공연을 할 당시 방문했던 인도 러크나우 지역에 있던 궁전의 이름이다. 메리는 이때 집을 갖게 되면 딜쿠샤로 이름 붙이겠다고 마음먹었다.


딜쿠샤는 ‘이상향’ ‘희망의 궁전’이라는 뜻의 힌두어다. 1924년 집이 완공되자 대리석 주춧돌에 ‘DILKUSHA 1923’이라고 새겼다. 영국과 미국 주택 양식이 혼합된 형태로 지하 1층∼지상 2층, 총면적 624㎡(189평) 규모다. 최초엔 지상 3층으로 건립됐으나 1926년 벼락에 의한 화재로 중건하면서 2층에 그쳤다.

테일러는 광산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따라 조선에 들어와 평안도의 운산 금광 감독관을 지내고 충청도의 직산 금광을 직접 운영했다. 1919년 2월28일 외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태어난 경성 세브란스 병원에서 침대 밑에 숨겨진 3·1 독립선언서를 발견하고 이것을 남동생 편에 몰래 일본 도쿄 AP통신사에 보내 전 세계에 알렸다.

그 공로로 AP통신 임시특파원이 돼 민족지도자의 재판과정을 취재, 보도했다. 그는 태평양전쟁 개전으로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되기 전까지 딜쿠샤에서 20여년을 살았다. 1948년 심장마비로 숨지면서 “한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부친과 함께 마포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안장됐다.

기본 원형 잃고
쪽방으로 잘려

2006년 외아들 브루스(1919∼2015)가 이곳을 찾기까지 사람들은 집에 얽힌 사연을 전혀 몰랐다. 그저 행촌동민들 사이에서 미국인 기자가 살던 곳이라고만 전해 내려왔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양기탁과 어니스트 베델이 발행한 <대한매일신보>의 사옥으로 잘못 추정되기도 했다.

브루스가 찾아오면서 아버지 앨버트의 행적과 가옥의 내력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손녀인 제니퍼 테일러가 지난 2월28일, 아버지의 생일에 맞춰 딜쿠샤를 방문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시는 원형 복원 후 부근 경교장과 서대문형무소, 서울성곽 등을 아우르는 도보관광 벨트, 행촌권역 성곽마을 조성을 계획 중이다.

1963년 국유화 되기 전부터 이곳은 무주택 서민들의 공동주택으로 사용됐던 것으로 보인다. 건축주의 역사적 행적과 근대 서양식 주택이라는 건축사적 가치를 동시에 갖고 있음에도 딜쿠샤는 복원은 물론 보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 가옥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기획재정부로부터 위탁받아 관리 중이다. 지난해 초, 거주자들의 안전을 우려해 임시 보강 공사를 하고 지붕에 두꺼운 비닐막도 씌웠다.

 

현 거주자들을 무단 침입 내지는 무단 거주라고 규정하기도 쉽지 않다. 거주자들이 다음 입주자들에게 돈을 받고 ‘거주권’을 넘기는 관행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만난 한 입주자는 1977년 들어와 현재까지 40년을 살았다고 했다.

그는 “무단거주라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지 걱정된다”라며 “아버지께서 당시에 돈을 주고 들어왔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요즘은 주말이면 사람들이 몰려서 아예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1980년대 말 신문기자와 함께 딜쿠샤를 처음 찾았다는 한 건축사학자는 “붉은 벽돌집으로 자세히 보면 근사하고 흔한 건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면서 “누가 설계했는지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최초에 조사하고 신문에도 나니까, 언론학, 건축학을 하는 학생과 연구자들이 가끔 찾아갔다”고 설명했다.

국유화 전부터 서민들 공동주택 사용
3·1운동 100주년 2019년 목표로 복원

이어 그는 “처음 방문했을 때 동네사람들이 미국인 언론인이 살았던 곳이라고 말했었다”며 “그 덕분에 살아난 거다. 일본인 집이었다고 하면 벌써 없어졌을 거다. 살려보자고 계속 어필했다. 이번에 복원계획을 발표한 후에 지난 회의 때도 현장조사를 해서 역사성을 담기로 결정했다. 테일러 일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테일러의 자료들이 일부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그는 “원형 복원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가능하다. 잘 고칠 수 있다”며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현재 딜쿠샤 가옥은 종로구(재난위험시설지정 및 관리), 서울시(복원 및 운영주체), 기획재정부(현 관리청), 문화재청(국가문화재 등록권자) 등 관여 주체가 여러 곳으로 나눠져 있다. 딜쿠샤는 외관은 벽돌집이나 구조는 목조다. 늘 화재 위험과 붕괴 위험이 있기에 이주대책이 시급하다.

“이주대책에 대해 정부에서 들은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앞서의 입주자는 “들은 것은 딱히 없다. 3년 전에 주민센터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제안한 적은 있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 조건에 맞는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 “대책위를 구성한다던지 논의를 한 적은 없느냐”는 질문엔 “논의한 적은 아직 없다. 다들 법도 잘 모르고 귀도 어둡고 몸도 불편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이어 “시에서 낮에 몇 번 방문한 것 같다. 우리가 먼저 함부로 말하긴 어렵다. (서울시에서) 먼저 얘길 해야지 우리가 어떻게 해달라고 말 못한다. 이왕 할 거면 조속히 말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또 “우리도 언론보도를 보고 안다. 우리에게 직접 얘기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손녀가 온다는 것도, 국가문화재로 지정된다는 것도, 관광코스로 개발이 된다는 것도 모두 신문을 보고 알 뿐”이라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또 다른 주민은 “빠듯한 사람들이 막상 나가라면 나갈 수 없다. (관계 부처에서) 서로 미루는 것만 같다. 서울 집값이 한두 푼도 아니고 갑자기 아무 연고도 없는 지방에 가서 살 수도 없지 않나”라며 근심을 드러냈다. 


무작정 퇴거?
이주대책 논의

서울시 관계자는 “무작정 퇴거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주대책을 마련해 설득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강제적으로 진행할 계획은 전혀 없다.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환경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인근에 임대주택을 알아보고 있다. 시에서 전문상담인력을 따로 구성해 면담을 조심스럽게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7차례 면담을 하고 의견을 취합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shi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딜쿠샤는?

테일러가의 안주인 메리 린리 테일러는 영국 첼트넘의 부유한 가정 출신이다. 연극배우로 동양 각지를 순회하던 중 일본에서 앨버트를 만나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1917년 9월, 경성에 왔다.

부부는 처음엔 서대문 근처에 신혼집을 짓고 살았다. 메리는 자서전에서 최초의 집을 ‘서대문의 작은 회색집(The little grey home at West Gate)’이라고 불렀다. 1920년대 초, 늘어나는 살림과 새로 장만한 가구를 수용할 만한 공간이 없어서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당시 경성에 거주하던 서양인들 사이엔 ‘가구 세트’를 맞추는 것에 대한 경쟁의식이 있었다. 19세기 말부터 먼저 거주하기 시작한 서양인들의 가구 세트가 다른 소유주에게 넘어가면서 각기 흩어지게 됐다. 1920년대엔 각 가정에서 다시 가구 세트를 모으는 일에 열중했다. 테일러 부부는 1919년 죽첨정 1정목 18번지에 위치한 벨기에 영사관이 문을 닫으면서 남긴 다이닝룸 테이블을 구입했다. 이 테이블은 짙은 자코비언 스타일 가구였는데 같은 스타일의 가구 세트를 완성하기 위해 경매에 나온 사이드 보드를 샀다. 하지만 신혼집엔 이 가구들을 놓을 자리가 없었고, 이것을 계기로 새집을 짓기로 결정했다.

집을 짓는다는 소문이 나자, 인근 조선인들이 이것을 막기 위해 우차를 뒤집고 무당을 동원해 저주를 했다. 부부가 사들인 부지엔 권율 장군의 신성한 은행나무와 두 개의 공용 우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딜쿠샤는 일본 경찰의 보호 아래 완공됐다. 현재 그들의 손녀 제니퍼는 조부모의 생애와 집에 얽힌 역사를 영화화하기 위해 딜쿠샤 프로덕션을 설립해 한국인 제작자를 물색 중이다. <신>     
 

※ 참고문헌
유제연, <행촌동 알버트 테일러 가옥의 건축과 변화과정에 관한 연구 : 현황실측과 자료 분석을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2014
허유진, <20세기 초 서울의 서양식 저택 연구 : 현존하는 7채를 중심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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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