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활동 선교사 3인 '납북 미스터리'

사라진 그들은 국정원 정보원?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북한에는 납치 및 억류된 남한 국적 선교사들이 장기간 억류돼 있으나 이들의 신변과 안전에 대해선 확인이 불가능하고 사회적 관심도 낮은 편이다. 현재 북한 억류 남한 국적자는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 등 3명. 이들에 대해 북한정권은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감행한 ‘국정원 첩자’라고 주장하는 반면, 남한정부는 북 정권이 별다른 이유 없이 순수한 선교활동과 탈북자 지원을 해온 종교인을 억류했다고 보고 있다.

국정원은 억류자들과의 관계를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으나 정작 본인들은 국정원의 지원을 받아 활동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북한의 주장대로 국정원 협조자일까. 아니면 독재정권에 의한 유인 납치의 피해자일까. 납북 억류자들을 둘러싼 진실을 추적해 봤다.

현재 정부는 외국정부 기관, 대사관, 종교기구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북한정권에 조속한 석방 및 송환 의사를 전달하고 있으나 일단 간첩으로 지목, 대외적으로 발표된 이상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엔 어려움이 크다. 그동안 북정권이 입국 목적이 불분명한 외국인들을 추방한 예는 많았으나, 선교활동을 하고 탈북자를 도와온 종교인들을 석방한 예는 거의 없다.

정작 본인들은
“지원받아 활동”

김정욱(53) 선교사는 지난 2013년 10월, 평양에 들어간 지 3일 만에 억류됐다. 지인들에게 “북한 지하교회의 실상을 확인하고 선교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북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다음해 2월 북한은 내외신기자회견을 열어 그가 간첩행위를 했다고 주장했고 3개월 뒤인 5월, 국가전복음모죄, 반국가선전선동죄 등을 내세워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김 선교사는 북중접경도시인 단둥에서 6년 동안 북한주민 쉼터와 대북지원용 국수공장을 운영하며 중국을 방문한 북한주민에게 생필품 등을 나눠주고 선교활동을 했다.


북측은 지난해 3월엔 정탐·모략 행위를 목적으로 침입한 남한 간첩 김국기(62), 최춘길(53)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했다. 이때 두 사람이 북중접경지역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영상이 공개돼 두 사람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기도 했다.

5월엔 김국기-최춘길 선교사가 CNN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과의 연계를 부정하는 국정원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 달 후 북한은 최고재판소에서 두 사람에게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하는 법정 장면을 공개했다. 특히 최 선교사가 선고 직후 흐느껴 우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김국기 선교사는 2003년 중국 단둥으로 파송돼 탈북자 쉼터를 운영하면서 선교활동을 펼쳤다. 북 정권은 최 선교사가 2014년 12월30일, 북한경내에 불법침입해 국경경비대가 체포했다고 주장했으나 그에 대한 진위는 알 수 없다. 이들 세 선교사의 북한 입국은 비슷한 패턴을 취하고 있다.

김정욱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50대 여성에 의해, 김국기-최춘길씨 역시 지인인 화교 두 사람에 의해 유인·납치됐다고 알려졌다. 납치자들은 모두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이하 보위부)와 밀접한 연계를 맺고 있다고 단둥 교민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문제는 선교사들이 수년 간 알고 지낸 이들의 치밀한 공작에 속아 북한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신뢰 쌓은 뒤
“북 가자” 유인

이병대 한국교회언론회 사무총장은 “선교사들은 대부분 북한과의 독자적인 채널을 구축하길 원한다. 하지만 북한 국경 밖에선 북한과의 연계를 만들기 쉽지 않다”며 “북한의 주요결정권자와 만나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들어간 거다. 오랫동안 신중하게 탐색했는데도 신자를 가장한 공작원에게 당한 것이다. 북한은 평상시엔 선교사들을 물질을 가져가는 통로로 이용하다 정치적 이슈가 필요해지면 유인을 해서 간첩으로 만든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사무총장에 의하면, 보위부 공작원들은 탈북자나 중국을 오가는 장사꾼으로 가장해 선교사에게 접근한다. 함께 성경을 읽고 예배를 하는 등 종교활동을 하고, 의식주를 제공받으며 몇 년에 걸쳐 교류한다. 공작원들은 처음엔 아지트 규모를 파악하고 물질을 최대한 제공받다가 완전한 신뢰가 구축됐다고 판단되면 선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고위인사를 만나러 북한 경내로 함께 들어가자고 설득한다.


현재 북한에 억류 중인 캐나다 국적자 임현수 목사도 약 20년간 대북지원을 해오며 북 정권에 의해 영웅 대접을 받았다. 북한의 각지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임 목사는 캐나다 한국계 신도들의 막대한 후원을 배경으로 대규모 대북지원을 했으나 갑자기 태도를 바꾼 북 정권에 의해 하루아침에 억류돼 간첩으로 몰렸다.

현재 이 같은 잦은 억류로 인해 대북선교가 위축된 상황이며 북중 국경을 넘지 않아도 중국서 탈북자를 돕다가 보위부에게 보복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실상 납북 위험, 보위부의 보복, 공안의 감시 등 종교인들이 큰 위험 속에 노출돼 활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에 납치·억류 남한국적 선교사들
장기간 억류…신변·안전 확인 불가능

국내 북한선교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기에 아사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고 국경을 넘나드는 이탈자가 생기는 등 북한체제에 허점이 생기면서 시작됐다. 현재 세계선교협의회 (KWMA) 통계에 따르면, 중국 파송선교사 수는 1000명을 헤아린다. 북한과 중국 선교를 모두 합한 숫자다.

교계는 선교사들이 탈북자 및 북한주민에게 성경책을 나눠주고 예배 보는 법을 가르치는 등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렇게 기독교를 접한 북한주민이 북한으로 들어가 점조직화해 ‘지하교회’를 세우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 실체와 정확한 규모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대규모 교단 소속인 경우도 있으나 개별 교회에서 파송하거나 지인들에게 헌금을 받고, 자비를 보태 포교에 나서는 선교사들도 있다. 이렇게 중국에 나와 선교사 신분을 감추고 빵공장, 국수공장, 탁아시설 등을 운영하며 선교활동을 하지만 신분이 탄로나 중국정부에 의해 추방당하는 경우도 있다.

선교사들은 오랫동안 중국에서 머물면서 교회나 교단의 지원이 줄어들거나 끊어지기도 한다. 현지인과 결혼해 부양가족이 생기기도 한다. 현지인들을 선교사, 목사로 키웠다가 오히려 교회를 빼앗기고 배신당하는 일도 잦다. 선교활동을 정리하고 국내에 들어와도 어딘가에 들어가 뿌리내리기도 쉽지 않다고 호소한다. 이때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국정원이 이들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돈으로 접근
돈으로 유혹?

익명을 요구한 한 교계 관계자는 “국정원 직원이 와서 한 달에 30만∼100만원씩 돈을 건네며 용돈 써라, 밥 사먹어라 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뭐라도 찾다가 보위부의 표적이 되어 그런 일(납북)을 당하는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 관계자는 또 “국정원이 선교사들에게 직접 줄을 대지 않는다. 선교사-탈북자-조선족 등 몇 단계를 거쳐야 국정원과의 연결이 드러난다. 보위부가 이들을 체포해도 윗선을 알아낼 수 없는 구조”라고 귀띔했다. 

그는 “선교사들이 국정원과 연계를 맺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오래 살아서 경계심이 느슨해져서 실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정원이 선교사들에게 접근해 푼돈을 주고 그들을 첩보전의 희생양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교계 인사에게 “단둥 같은 국경도시에 있으면 국정원 직원과 선교사가 서로 잘 알지 않냐”고 질의하자 “아마 알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건 뭐라고 못 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2014년 태양절(김일성 생일)에 북한의 대남 선전용 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공개한 평양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욱 선교사는 “국정원이 나와 만난 사실조차 없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정말 무책임하고 황당한 행태”라고 밝힌 바 있다.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북측 ‘국정원 첩자’ 주장

또 “국정원 간부가 먼저 나를 찾아와 협조를 요구했다”며 “국정원이 선교사들을 협조자로 이용하고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면서 흡수, 이용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대북한사회를 연구하는 한 북한학 연구자는 “공산주의는 인간의 심리와 육체적 한계를 잘 알고 그것을 교묘하고 철저하게 이용한다”고 전제한 뒤 “억류자들이 결국 강제노역을 견디지 못하고 ‘전향’할 가능성도 있다. 전향하면 노동자 신분으로 크게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북한정권이 주선해 주는 북한 여성과 결혼해서 일반 주민으로 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전향 외에 이들의 석방 및 송환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일까. 앞서 북한학 연구자는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사전 실무자 접촉을 통해 풀려나올 수도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어렵지 않겠나”라며 “외국에선 인권을 중요시해서 긴 협상 끝에 풀려나오지만 한국은 그런 것에 관심이 적고 교단에서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이어 “김정욱 선교사가 억류되고 난 후 오히려 그가 속한 교단의 이단 논란이 일어났다”며 “사람부터 구하고 봐야 하는데 기가 찬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과 진술을 통해 볼 때 국정원이 경제적 도움을 주고 선교사, 목사들을 첩보에 활용해 위험에 빠뜨리고 희생시킨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국가는 자국민 보호의 의무가 있다. 북한의 주장처럼 그들이 간첩행위를 했다고 해도 우리 국민이기 때문에 당연히 송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억류자 협상은 물밑과 물위 협상을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 그런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북한은 일관되게 내세우는 메시지가 있다”며 “어느 정도 남북관계가 회복되면 그 과정에서 해결 가능한 문제인데도 현재 남북관계가 좋지 않고 신뢰 수준이 바닥이라서 먼저 일정한 정도의 신뢰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첩보 활용하고
위험 땐 나몰라?

정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의 질의에 “통일부 이산가족과에서 계속 추진 중이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고 있는 것처럼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현재 세 사람이 잘 있는지 정보수집을 위해서도 노력 중”이라며 “북한에서는 이들에 대해 범법자라고 하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공개적으로 석방을 추진하면 더 안 좋을 수 있다. 통일부 차원에서뿐 아니라 외교·민간 라인의 채널을 총동원해 조속한 석방과 송환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답했다.   


<shi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북한 보위부의 돈벌이

우리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북한의 조직이 국가안전보위부다. 보위부는 인민보안부(남한의 경찰에 해당하는 치안조직)와 함께 주민들을 감시하는 대표적 억압기구다. 9만∼10만명 규모의 비밀경찰 및 정보기관으로, 어떠한 법적 절차없이도 주민을 체포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하거나 사형시킬 수 있는 막강 권한을 가진다.

보위부는 탈북자를 돕는 선교단체 및 인권단체의 활동도 감시하고 있으며 중국이나 국경지역에서 탈북자를 추적, 심문하고 이들을 감금하는 수용소도 관리한다. 탈북자들이 많은 동북 3성, 동남아시아에도 보위부 요원을 암암리에 파견하고 있다. 

북중국경지대에서 탈북자 구출 일을 해온 한 북한인권운동가에 의하면, 단둥, 센양, 옌지 같은 도시에서 국정원과 보위부가 물밑에서 암약하며 서로를 경계한다.

이 운동가는 “중국에선 보위부의 힘이 예전보다 약하다”며 “국정원이 공안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공안의 눈을 피해야 하므로 활동에 제약이 많다. 하지만 보위부 군관과 공안이 사적으로 아는 경우는 많이 있다. 북중관계가 좋지 않아 두 기관 사이에 대단한 밀착관계는 없다”고 설명했다.

보위부 요원은 중국에 탈북자 체포 및 정보 수집 등 정탐 목적으로 파견돼 있다. 하지만 정작 단속엔 관심이 없다고. 앞서의 운동가는 “배고파서 탈북한 사람들이란 걸 잘 알고 있고 뇌물만 주면 풀어준다”고 귀띔했다.

대신 그들 대부분이 돈벌이 목적으로 나와 있어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쁘다. 중국으로 파견되기 위해 상부에 뇌물을 준 경우도 있어 그만큼 돈벌이에 적극적이다. 

예전엔 위폐를 제조하고 마약, 담배를 팔아 달러 벌이에 열중했으나 근래엔 국경도시에서 생산한 각종 공산품을 빼돌려 중국에 몰래 내다파는 일이 빈번하다. 그 와중에 정부에 단속돼 처벌을 피하기 위해 탈북한 보위부 군관 출신들이 남한에도 여럿 있다고.

김상헌 북한인권정보센터 명예 이사장은 “세상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가 북한이다. 뇌물이면 다 해결되고 어느 조직이건 가장 힘 있는 자에게 줄을 대기 바쁘다”며 “그 다음으로 부패한 나라가 중국이다. 사람들은 중국이 앞으로 세계의 패권을 쥘 것처럼 전망하지만 민주주의가 없으면 경제는 발전을 멈춘다. 공산주의는 부패를 불러오고 인간의 자율성을 말살한다. 그것이 공산주의의 가장 무서운 점”이라고 경고했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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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