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활동 선교사 3인 '납북 미스터리'

사라진 그들은 국정원 정보원?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북한에는 납치 및 억류된 남한 국적 선교사들이 장기간 억류돼 있으나 이들의 신변과 안전에 대해선 확인이 불가능하고 사회적 관심도 낮은 편이다. 현재 북한 억류 남한 국적자는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 등 3명. 이들에 대해 북한정권은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감행한 ‘국정원 첩자’라고 주장하는 반면, 남한정부는 북 정권이 별다른 이유 없이 순수한 선교활동과 탈북자 지원을 해온 종교인을 억류했다고 보고 있다.

국정원은 억류자들과의 관계를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으나 정작 본인들은 국정원의 지원을 받아 활동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북한의 주장대로 국정원 협조자일까. 아니면 독재정권에 의한 유인 납치의 피해자일까. 납북 억류자들을 둘러싼 진실을 추적해 봤다.

현재 정부는 외국정부 기관, 대사관, 종교기구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북한정권에 조속한 석방 및 송환 의사를 전달하고 있으나 일단 간첩으로 지목, 대외적으로 발표된 이상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엔 어려움이 크다. 그동안 북정권이 입국 목적이 불분명한 외국인들을 추방한 예는 많았으나, 선교활동을 하고 탈북자를 도와온 종교인들을 석방한 예는 거의 없다.

정작 본인들은
“지원받아 활동”

김정욱(53) 선교사는 지난 2013년 10월, 평양에 들어간 지 3일 만에 억류됐다. 지인들에게 “북한 지하교회의 실상을 확인하고 선교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북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다음해 2월 북한은 내외신기자회견을 열어 그가 간첩행위를 했다고 주장했고 3개월 뒤인 5월, 국가전복음모죄, 반국가선전선동죄 등을 내세워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김 선교사는 북중접경도시인 단둥에서 6년 동안 북한주민 쉼터와 대북지원용 국수공장을 운영하며 중국을 방문한 북한주민에게 생필품 등을 나눠주고 선교활동을 했다.


북측은 지난해 3월엔 정탐·모략 행위를 목적으로 침입한 남한 간첩 김국기(62), 최춘길(53)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했다. 이때 두 사람이 북중접경지역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영상이 공개돼 두 사람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기도 했다.

5월엔 김국기-최춘길 선교사가 CNN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과의 연계를 부정하는 국정원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 달 후 북한은 최고재판소에서 두 사람에게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하는 법정 장면을 공개했다. 특히 최 선교사가 선고 직후 흐느껴 우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김국기 선교사는 2003년 중국 단둥으로 파송돼 탈북자 쉼터를 운영하면서 선교활동을 펼쳤다. 북 정권은 최 선교사가 2014년 12월30일, 북한경내에 불법침입해 국경경비대가 체포했다고 주장했으나 그에 대한 진위는 알 수 없다. 이들 세 선교사의 북한 입국은 비슷한 패턴을 취하고 있다.

김정욱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50대 여성에 의해, 김국기-최춘길씨 역시 지인인 화교 두 사람에 의해 유인·납치됐다고 알려졌다. 납치자들은 모두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이하 보위부)와 밀접한 연계를 맺고 있다고 단둥 교민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문제는 선교사들이 수년 간 알고 지낸 이들의 치밀한 공작에 속아 북한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신뢰 쌓은 뒤
“북 가자” 유인

이병대 한국교회언론회 사무총장은 “선교사들은 대부분 북한과의 독자적인 채널을 구축하길 원한다. 하지만 북한 국경 밖에선 북한과의 연계를 만들기 쉽지 않다”며 “북한의 주요결정권자와 만나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들어간 거다. 오랫동안 신중하게 탐색했는데도 신자를 가장한 공작원에게 당한 것이다. 북한은 평상시엔 선교사들을 물질을 가져가는 통로로 이용하다 정치적 이슈가 필요해지면 유인을 해서 간첩으로 만든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사무총장에 의하면, 보위부 공작원들은 탈북자나 중국을 오가는 장사꾼으로 가장해 선교사에게 접근한다. 함께 성경을 읽고 예배를 하는 등 종교활동을 하고, 의식주를 제공받으며 몇 년에 걸쳐 교류한다. 공작원들은 처음엔 아지트 규모를 파악하고 물질을 최대한 제공받다가 완전한 신뢰가 구축됐다고 판단되면 선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고위인사를 만나러 북한 경내로 함께 들어가자고 설득한다.


현재 북한에 억류 중인 캐나다 국적자 임현수 목사도 약 20년간 대북지원을 해오며 북 정권에 의해 영웅 대접을 받았다. 북한의 각지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임 목사는 캐나다 한국계 신도들의 막대한 후원을 배경으로 대규모 대북지원을 했으나 갑자기 태도를 바꾼 북 정권에 의해 하루아침에 억류돼 간첩으로 몰렸다.

현재 이 같은 잦은 억류로 인해 대북선교가 위축된 상황이며 북중 국경을 넘지 않아도 중국서 탈북자를 돕다가 보위부에게 보복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실상 납북 위험, 보위부의 보복, 공안의 감시 등 종교인들이 큰 위험 속에 노출돼 활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에 납치·억류 남한국적 선교사들
장기간 억류…신변·안전 확인 불가능

국내 북한선교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기에 아사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고 국경을 넘나드는 이탈자가 생기는 등 북한체제에 허점이 생기면서 시작됐다. 현재 세계선교협의회 (KWMA) 통계에 따르면, 중국 파송선교사 수는 1000명을 헤아린다. 북한과 중국 선교를 모두 합한 숫자다.

교계는 선교사들이 탈북자 및 북한주민에게 성경책을 나눠주고 예배 보는 법을 가르치는 등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렇게 기독교를 접한 북한주민이 북한으로 들어가 점조직화해 ‘지하교회’를 세우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 실체와 정확한 규모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대규모 교단 소속인 경우도 있으나 개별 교회에서 파송하거나 지인들에게 헌금을 받고, 자비를 보태 포교에 나서는 선교사들도 있다. 이렇게 중국에 나와 선교사 신분을 감추고 빵공장, 국수공장, 탁아시설 등을 운영하며 선교활동을 하지만 신분이 탄로나 중국정부에 의해 추방당하는 경우도 있다.

선교사들은 오랫동안 중국에서 머물면서 교회나 교단의 지원이 줄어들거나 끊어지기도 한다. 현지인과 결혼해 부양가족이 생기기도 한다. 현지인들을 선교사, 목사로 키웠다가 오히려 교회를 빼앗기고 배신당하는 일도 잦다. 선교활동을 정리하고 국내에 들어와도 어딘가에 들어가 뿌리내리기도 쉽지 않다고 호소한다. 이때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국정원이 이들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돈으로 접근
돈으로 유혹?

익명을 요구한 한 교계 관계자는 “국정원 직원이 와서 한 달에 30만∼100만원씩 돈을 건네며 용돈 써라, 밥 사먹어라 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뭐라도 찾다가 보위부의 표적이 되어 그런 일(납북)을 당하는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 관계자는 또 “국정원이 선교사들에게 직접 줄을 대지 않는다. 선교사-탈북자-조선족 등 몇 단계를 거쳐야 국정원과의 연결이 드러난다. 보위부가 이들을 체포해도 윗선을 알아낼 수 없는 구조”라고 귀띔했다. 

그는 “선교사들이 국정원과 연계를 맺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오래 살아서 경계심이 느슨해져서 실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정원이 선교사들에게 접근해 푼돈을 주고 그들을 첩보전의 희생양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교계 인사에게 “단둥 같은 국경도시에 있으면 국정원 직원과 선교사가 서로 잘 알지 않냐”고 질의하자 “아마 알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건 뭐라고 못 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2014년 태양절(김일성 생일)에 북한의 대남 선전용 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공개한 평양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욱 선교사는 “국정원이 나와 만난 사실조차 없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정말 무책임하고 황당한 행태”라고 밝힌 바 있다.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북측 ‘국정원 첩자’ 주장

또 “국정원 간부가 먼저 나를 찾아와 협조를 요구했다”며 “국정원이 선교사들을 협조자로 이용하고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면서 흡수, 이용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대북한사회를 연구하는 한 북한학 연구자는 “공산주의는 인간의 심리와 육체적 한계를 잘 알고 그것을 교묘하고 철저하게 이용한다”고 전제한 뒤 “억류자들이 결국 강제노역을 견디지 못하고 ‘전향’할 가능성도 있다. 전향하면 노동자 신분으로 크게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북한정권이 주선해 주는 북한 여성과 결혼해서 일반 주민으로 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전향 외에 이들의 석방 및 송환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일까. 앞서 북한학 연구자는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사전 실무자 접촉을 통해 풀려나올 수도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어렵지 않겠나”라며 “외국에선 인권을 중요시해서 긴 협상 끝에 풀려나오지만 한국은 그런 것에 관심이 적고 교단에서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이어 “김정욱 선교사가 억류되고 난 후 오히려 그가 속한 교단의 이단 논란이 일어났다”며 “사람부터 구하고 봐야 하는데 기가 찬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과 진술을 통해 볼 때 국정원이 경제적 도움을 주고 선교사, 목사들을 첩보에 활용해 위험에 빠뜨리고 희생시킨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국가는 자국민 보호의 의무가 있다. 북한의 주장처럼 그들이 간첩행위를 했다고 해도 우리 국민이기 때문에 당연히 송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억류자 협상은 물밑과 물위 협상을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 그런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북한은 일관되게 내세우는 메시지가 있다”며 “어느 정도 남북관계가 회복되면 그 과정에서 해결 가능한 문제인데도 현재 남북관계가 좋지 않고 신뢰 수준이 바닥이라서 먼저 일정한 정도의 신뢰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첩보 활용하고
위험 땐 나몰라?

정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의 질의에 “통일부 이산가족과에서 계속 추진 중이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고 있는 것처럼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현재 세 사람이 잘 있는지 정보수집을 위해서도 노력 중”이라며 “북한에서는 이들에 대해 범법자라고 하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공개적으로 석방을 추진하면 더 안 좋을 수 있다. 통일부 차원에서뿐 아니라 외교·민간 라인의 채널을 총동원해 조속한 석방과 송환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답했다.   


<shi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북한 보위부의 돈벌이

우리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북한의 조직이 국가안전보위부다. 보위부는 인민보안부(남한의 경찰에 해당하는 치안조직)와 함께 주민들을 감시하는 대표적 억압기구다. 9만∼10만명 규모의 비밀경찰 및 정보기관으로, 어떠한 법적 절차없이도 주민을 체포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하거나 사형시킬 수 있는 막강 권한을 가진다.

보위부는 탈북자를 돕는 선교단체 및 인권단체의 활동도 감시하고 있으며 중국이나 국경지역에서 탈북자를 추적, 심문하고 이들을 감금하는 수용소도 관리한다. 탈북자들이 많은 동북 3성, 동남아시아에도 보위부 요원을 암암리에 파견하고 있다. 

북중국경지대에서 탈북자 구출 일을 해온 한 북한인권운동가에 의하면, 단둥, 센양, 옌지 같은 도시에서 국정원과 보위부가 물밑에서 암약하며 서로를 경계한다.

이 운동가는 “중국에선 보위부의 힘이 예전보다 약하다”며 “국정원이 공안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공안의 눈을 피해야 하므로 활동에 제약이 많다. 하지만 보위부 군관과 공안이 사적으로 아는 경우는 많이 있다. 북중관계가 좋지 않아 두 기관 사이에 대단한 밀착관계는 없다”고 설명했다.

보위부 요원은 중국에 탈북자 체포 및 정보 수집 등 정탐 목적으로 파견돼 있다. 하지만 정작 단속엔 관심이 없다고. 앞서의 운동가는 “배고파서 탈북한 사람들이란 걸 잘 알고 있고 뇌물만 주면 풀어준다”고 귀띔했다.

대신 그들 대부분이 돈벌이 목적으로 나와 있어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쁘다. 중국으로 파견되기 위해 상부에 뇌물을 준 경우도 있어 그만큼 돈벌이에 적극적이다. 

예전엔 위폐를 제조하고 마약, 담배를 팔아 달러 벌이에 열중했으나 근래엔 국경도시에서 생산한 각종 공산품을 빼돌려 중국에 몰래 내다파는 일이 빈번하다. 그 와중에 정부에 단속돼 처벌을 피하기 위해 탈북한 보위부 군관 출신들이 남한에도 여럿 있다고.

김상헌 북한인권정보센터 명예 이사장은 “세상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가 북한이다. 뇌물이면 다 해결되고 어느 조직이건 가장 힘 있는 자에게 줄을 대기 바쁘다”며 “그 다음으로 부패한 나라가 중국이다. 사람들은 중국이 앞으로 세계의 패권을 쥘 것처럼 전망하지만 민주주의가 없으면 경제는 발전을 멈춘다. 공산주의는 부패를 불러오고 인간의 자율성을 말살한다. 그것이 공산주의의 가장 무서운 점”이라고 경고했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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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