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활동 선교사 3인 '납북 미스터리'

사라진 그들은 국정원 정보원?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북한에는 납치 및 억류된 남한 국적 선교사들이 장기간 억류돼 있으나 이들의 신변과 안전에 대해선 확인이 불가능하고 사회적 관심도 낮은 편이다. 현재 북한 억류 남한 국적자는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 등 3명. 이들에 대해 북한정권은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감행한 ‘국정원 첩자’라고 주장하는 반면, 남한정부는 북 정권이 별다른 이유 없이 순수한 선교활동과 탈북자 지원을 해온 종교인을 억류했다고 보고 있다.

국정원은 억류자들과의 관계를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으나 정작 본인들은 국정원의 지원을 받아 활동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북한의 주장대로 국정원 협조자일까. 아니면 독재정권에 의한 유인 납치의 피해자일까. 납북 억류자들을 둘러싼 진실을 추적해 봤다.

현재 정부는 외국정부 기관, 대사관, 종교기구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북한정권에 조속한 석방 및 송환 의사를 전달하고 있으나 일단 간첩으로 지목, 대외적으로 발표된 이상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엔 어려움이 크다. 그동안 북정권이 입국 목적이 불분명한 외국인들을 추방한 예는 많았으나, 선교활동을 하고 탈북자를 도와온 종교인들을 석방한 예는 거의 없다.

정작 본인들은
“지원받아 활동”

김정욱(53) 선교사는 지난 2013년 10월, 평양에 들어간 지 3일 만에 억류됐다. 지인들에게 “북한 지하교회의 실상을 확인하고 선교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북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다음해 2월 북한은 내외신기자회견을 열어 그가 간첩행위를 했다고 주장했고 3개월 뒤인 5월, 국가전복음모죄, 반국가선전선동죄 등을 내세워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김 선교사는 북중접경도시인 단둥에서 6년 동안 북한주민 쉼터와 대북지원용 국수공장을 운영하며 중국을 방문한 북한주민에게 생필품 등을 나눠주고 선교활동을 했다.


북측은 지난해 3월엔 정탐·모략 행위를 목적으로 침입한 남한 간첩 김국기(62), 최춘길(53)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했다. 이때 두 사람이 북중접경지역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영상이 공개돼 두 사람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기도 했다.

5월엔 김국기-최춘길 선교사가 CNN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과의 연계를 부정하는 국정원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 달 후 북한은 최고재판소에서 두 사람에게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하는 법정 장면을 공개했다. 특히 최 선교사가 선고 직후 흐느껴 우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김국기 선교사는 2003년 중국 단둥으로 파송돼 탈북자 쉼터를 운영하면서 선교활동을 펼쳤다. 북 정권은 최 선교사가 2014년 12월30일, 북한경내에 불법침입해 국경경비대가 체포했다고 주장했으나 그에 대한 진위는 알 수 없다. 이들 세 선교사의 북한 입국은 비슷한 패턴을 취하고 있다.

김정욱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50대 여성에 의해, 김국기-최춘길씨 역시 지인인 화교 두 사람에 의해 유인·납치됐다고 알려졌다. 납치자들은 모두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이하 보위부)와 밀접한 연계를 맺고 있다고 단둥 교민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문제는 선교사들이 수년 간 알고 지낸 이들의 치밀한 공작에 속아 북한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신뢰 쌓은 뒤
“북 가자” 유인

이병대 한국교회언론회 사무총장은 “선교사들은 대부분 북한과의 독자적인 채널을 구축하길 원한다. 하지만 북한 국경 밖에선 북한과의 연계를 만들기 쉽지 않다”며 “북한의 주요결정권자와 만나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들어간 거다. 오랫동안 신중하게 탐색했는데도 신자를 가장한 공작원에게 당한 것이다. 북한은 평상시엔 선교사들을 물질을 가져가는 통로로 이용하다 정치적 이슈가 필요해지면 유인을 해서 간첩으로 만든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사무총장에 의하면, 보위부 공작원들은 탈북자나 중국을 오가는 장사꾼으로 가장해 선교사에게 접근한다. 함께 성경을 읽고 예배를 하는 등 종교활동을 하고, 의식주를 제공받으며 몇 년에 걸쳐 교류한다. 공작원들은 처음엔 아지트 규모를 파악하고 물질을 최대한 제공받다가 완전한 신뢰가 구축됐다고 판단되면 선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고위인사를 만나러 북한 경내로 함께 들어가자고 설득한다.


현재 북한에 억류 중인 캐나다 국적자 임현수 목사도 약 20년간 대북지원을 해오며 북 정권에 의해 영웅 대접을 받았다. 북한의 각지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임 목사는 캐나다 한국계 신도들의 막대한 후원을 배경으로 대규모 대북지원을 했으나 갑자기 태도를 바꾼 북 정권에 의해 하루아침에 억류돼 간첩으로 몰렸다.

현재 이 같은 잦은 억류로 인해 대북선교가 위축된 상황이며 북중 국경을 넘지 않아도 중국서 탈북자를 돕다가 보위부에게 보복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실상 납북 위험, 보위부의 보복, 공안의 감시 등 종교인들이 큰 위험 속에 노출돼 활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에 납치·억류 남한국적 선교사들
장기간 억류…신변·안전 확인 불가능

국내 북한선교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기에 아사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고 국경을 넘나드는 이탈자가 생기는 등 북한체제에 허점이 생기면서 시작됐다. 현재 세계선교협의회 (KWMA) 통계에 따르면, 중국 파송선교사 수는 1000명을 헤아린다. 북한과 중국 선교를 모두 합한 숫자다.

교계는 선교사들이 탈북자 및 북한주민에게 성경책을 나눠주고 예배 보는 법을 가르치는 등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렇게 기독교를 접한 북한주민이 북한으로 들어가 점조직화해 ‘지하교회’를 세우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 실체와 정확한 규모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대규모 교단 소속인 경우도 있으나 개별 교회에서 파송하거나 지인들에게 헌금을 받고, 자비를 보태 포교에 나서는 선교사들도 있다. 이렇게 중국에 나와 선교사 신분을 감추고 빵공장, 국수공장, 탁아시설 등을 운영하며 선교활동을 하지만 신분이 탄로나 중국정부에 의해 추방당하는 경우도 있다.

선교사들은 오랫동안 중국에서 머물면서 교회나 교단의 지원이 줄어들거나 끊어지기도 한다. 현지인과 결혼해 부양가족이 생기기도 한다. 현지인들을 선교사, 목사로 키웠다가 오히려 교회를 빼앗기고 배신당하는 일도 잦다. 선교활동을 정리하고 국내에 들어와도 어딘가에 들어가 뿌리내리기도 쉽지 않다고 호소한다. 이때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국정원이 이들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돈으로 접근
돈으로 유혹?

익명을 요구한 한 교계 관계자는 “국정원 직원이 와서 한 달에 30만∼100만원씩 돈을 건네며 용돈 써라, 밥 사먹어라 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뭐라도 찾다가 보위부의 표적이 되어 그런 일(납북)을 당하는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 관계자는 또 “국정원이 선교사들에게 직접 줄을 대지 않는다. 선교사-탈북자-조선족 등 몇 단계를 거쳐야 국정원과의 연결이 드러난다. 보위부가 이들을 체포해도 윗선을 알아낼 수 없는 구조”라고 귀띔했다. 

그는 “선교사들이 국정원과 연계를 맺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오래 살아서 경계심이 느슨해져서 실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정원이 선교사들에게 접근해 푼돈을 주고 그들을 첩보전의 희생양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교계 인사에게 “단둥 같은 국경도시에 있으면 국정원 직원과 선교사가 서로 잘 알지 않냐”고 질의하자 “아마 알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건 뭐라고 못 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2014년 태양절(김일성 생일)에 북한의 대남 선전용 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공개한 평양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욱 선교사는 “국정원이 나와 만난 사실조차 없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정말 무책임하고 황당한 행태”라고 밝힌 바 있다.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북측 ‘국정원 첩자’ 주장

또 “국정원 간부가 먼저 나를 찾아와 협조를 요구했다”며 “국정원이 선교사들을 협조자로 이용하고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면서 흡수, 이용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대북한사회를 연구하는 한 북한학 연구자는 “공산주의는 인간의 심리와 육체적 한계를 잘 알고 그것을 교묘하고 철저하게 이용한다”고 전제한 뒤 “억류자들이 결국 강제노역을 견디지 못하고 ‘전향’할 가능성도 있다. 전향하면 노동자 신분으로 크게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북한정권이 주선해 주는 북한 여성과 결혼해서 일반 주민으로 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전향 외에 이들의 석방 및 송환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일까. 앞서 북한학 연구자는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사전 실무자 접촉을 통해 풀려나올 수도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어렵지 않겠나”라며 “외국에선 인권을 중요시해서 긴 협상 끝에 풀려나오지만 한국은 그런 것에 관심이 적고 교단에서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이어 “김정욱 선교사가 억류되고 난 후 오히려 그가 속한 교단의 이단 논란이 일어났다”며 “사람부터 구하고 봐야 하는데 기가 찬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과 진술을 통해 볼 때 국정원이 경제적 도움을 주고 선교사, 목사들을 첩보에 활용해 위험에 빠뜨리고 희생시킨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국가는 자국민 보호의 의무가 있다. 북한의 주장처럼 그들이 간첩행위를 했다고 해도 우리 국민이기 때문에 당연히 송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억류자 협상은 물밑과 물위 협상을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 그런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북한은 일관되게 내세우는 메시지가 있다”며 “어느 정도 남북관계가 회복되면 그 과정에서 해결 가능한 문제인데도 현재 남북관계가 좋지 않고 신뢰 수준이 바닥이라서 먼저 일정한 정도의 신뢰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첩보 활용하고
위험 땐 나몰라?

정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의 질의에 “통일부 이산가족과에서 계속 추진 중이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고 있는 것처럼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현재 세 사람이 잘 있는지 정보수집을 위해서도 노력 중”이라며 “북한에서는 이들에 대해 범법자라고 하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공개적으로 석방을 추진하면 더 안 좋을 수 있다. 통일부 차원에서뿐 아니라 외교·민간 라인의 채널을 총동원해 조속한 석방과 송환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답했다.   


<shi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북한 보위부의 돈벌이

우리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북한의 조직이 국가안전보위부다. 보위부는 인민보안부(남한의 경찰에 해당하는 치안조직)와 함께 주민들을 감시하는 대표적 억압기구다. 9만∼10만명 규모의 비밀경찰 및 정보기관으로, 어떠한 법적 절차없이도 주민을 체포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하거나 사형시킬 수 있는 막강 권한을 가진다.

보위부는 탈북자를 돕는 선교단체 및 인권단체의 활동도 감시하고 있으며 중국이나 국경지역에서 탈북자를 추적, 심문하고 이들을 감금하는 수용소도 관리한다. 탈북자들이 많은 동북 3성, 동남아시아에도 보위부 요원을 암암리에 파견하고 있다. 

북중국경지대에서 탈북자 구출 일을 해온 한 북한인권운동가에 의하면, 단둥, 센양, 옌지 같은 도시에서 국정원과 보위부가 물밑에서 암약하며 서로를 경계한다.

이 운동가는 “중국에선 보위부의 힘이 예전보다 약하다”며 “국정원이 공안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공안의 눈을 피해야 하므로 활동에 제약이 많다. 하지만 보위부 군관과 공안이 사적으로 아는 경우는 많이 있다. 북중관계가 좋지 않아 두 기관 사이에 대단한 밀착관계는 없다”고 설명했다.

보위부 요원은 중국에 탈북자 체포 및 정보 수집 등 정탐 목적으로 파견돼 있다. 하지만 정작 단속엔 관심이 없다고. 앞서의 운동가는 “배고파서 탈북한 사람들이란 걸 잘 알고 있고 뇌물만 주면 풀어준다”고 귀띔했다.

대신 그들 대부분이 돈벌이 목적으로 나와 있어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쁘다. 중국으로 파견되기 위해 상부에 뇌물을 준 경우도 있어 그만큼 돈벌이에 적극적이다. 

예전엔 위폐를 제조하고 마약, 담배를 팔아 달러 벌이에 열중했으나 근래엔 국경도시에서 생산한 각종 공산품을 빼돌려 중국에 몰래 내다파는 일이 빈번하다. 그 와중에 정부에 단속돼 처벌을 피하기 위해 탈북한 보위부 군관 출신들이 남한에도 여럿 있다고.

김상헌 북한인권정보센터 명예 이사장은 “세상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가 북한이다. 뇌물이면 다 해결되고 어느 조직이건 가장 힘 있는 자에게 줄을 대기 바쁘다”며 “그 다음으로 부패한 나라가 중국이다. 사람들은 중국이 앞으로 세계의 패권을 쥘 것처럼 전망하지만 민주주의가 없으면 경제는 발전을 멈춘다. 공산주의는 부패를 불러오고 인간의 자율성을 말살한다. 그것이 공산주의의 가장 무서운 점”이라고 경고했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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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