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30만 성매매녀 사생결단

거리로 나서는 성매매 여성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성매매특별법 도입 11년째를 맞았지만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성매매특별법 위헌여부를 가리기 위한 첫 공개변론이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성매매 처벌을 두고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주장이 첨예하게 갈렸다. 각각의 입장으로 격론을 벌였지만 모범 답안은 이미 나와 있다고 보는 게 중론이다.

 
지난 2004년 시행된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특별법)’의 핵심조항인 21조 처벌규정을 두고 성매매여성 측과 정부가 법정에서 격돌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9일 오후 2시 대법정에서 성매매특별법 21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의 공개변론을 열고 양측의 입장을 들었다.

성매매 처벌
찬반 엇갈려
 
성매매 여성 측은 “성매매특별법 21조는 생계형 성매매여성들의 생존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며 성매매근절의 효과도 없어 위헌이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 측은 “심판 대상 조항은 근본적으로 성매매라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막고 선량한 성풍속과 질서유지를 보호하고 있어 합헌”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리면 성매매에 대한 무정부상태가 될 것이다”고 맞선다.
 
성매매특별법 21조 1항은 ‘성매매를 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매수를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알선자, 성매매 여성을 모두 처벌하는 이 법의 핵심 조항이다. 이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은 이번이 처음이다. 벌금 50만원으로 약식기소 된 성매매여성 김모(44)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법원이 청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사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심판대상 조항이 성매매여성의 기본권 제한, 성매매 근절의 입법 목적과 정당성, 성매매 처벌규정이 과잉금지원칙 위배로 기본권을 침해하는지가 주 쟁점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하지만 양측의 공방으로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합헌성 전반이 쟁점으로 부상했다.
 
헌재 심판대 오른 성매매특별법
제청 2년4개월만에 첫 공개변론
 
이날 성매매여성 측 대리인으로 나선 법무법인 정률 정관영 변호사는 변론에서 “성매매특별법의 입법목적은 건전한 성풍속 보호”라며 “개인의 사생활과 관계된 내밀한 관계까지 형벌권을 가동하는 것은 헌법상 필요최소성의 원칙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또 “2007년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표면적으로는 성매매업소가 줄어들었지만 실제로는 음성적 성매매가 성행하는 등 풍선효과가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으로 떠올랐다”며 “실효성이 입증된 어떤 자료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심판대상 조항은 실질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성매매를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이른바 ‘생계형 성매매여성’들도 처벌하기 때문에 직업선택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침해한다”며 “최소한 국가가 지정한 구역(집창촌)에서 생계를 위해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 측 대리인은 성매매특별법이 보호하고 있는 선량한 성풍속과 질서유지 면에서 해당 조항은 합헌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법무공단의 서규영 변호사는 “성매매는 생계 목적이든 아니든 인간의 소중한 성을 상품화하는 것으로 인권침해이며 성매매사업은 사회적인 유해행위”라고 반박했다. 또 “성매매를 처벌하지 않으면 성매매사업이 확대되면서 인신매매 등 범죄가 확대되고 노동력의 흐름까지 왜곡시켜 국가의 산업을 기형화 시킬 수 있다”며 “이 문제는 단순한 사생활의 문제를 넘어서는 사회적 법익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양한 쟁점

뜨거운 설전
 
이어 “여성가족부 조사를 보면 법 시행 전보다 집창촌 규모가 줄어들었고 이것은 성매매 불법성에 대한 국민인식이 개선된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위헌결정을 내리면 성매매에 대한 무정부상태를 불러 여러 비극적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측이 채택한 참고인들의 설전도 주목됐다. 성매매여성 측 참고인을 출석한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건전한 성풍속의 함양을 보호법익으로 본다면 간통 등 유사범죄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심판대상 조항으로 생계를 위해 성을 제공하는 여성들은 범죄자의 낙인이 찍혀 폭력적인 포주, 매수자들에게 고통을 받고 있으며 자의적인 수사당국의 단속에 떨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UN 등 국제 인권기구에서도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처벌은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다며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박 교수는 “현재 30만명으로 추산되는 생계형 성매매여성들이 심판대상 조항으로 인한 잠재적인 피해자들”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7세 아이와 아버지 부양을 위해 성매매를 하던 27세 여성이 투신자살한 사건을 예로 들었다.
 
한때 ‘미아리 텍사스’를 집중 단속하면서 ‘미아리 포청천’이라는 별명을 얻은 김강자 전 종암경찰서장도(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객원교수)도 성매매여성 측에 서서 의견을 진술했다. 김 전 서장은 변론에서 집창촌의 필요성에 대해 긍정하면서 성매매특별법의 졸속 제정과 이후 시행된 정책 실패가 화를 불렀다고 비판했다.
 
그는 “성매매특별법이 군산 집창촌 화재사건을 직접적인 계기로 제정된 만큼 성매매여성들의 인권유린 문제를 집중적으로 점검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집창촌을 초토화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며 “쫓겨난 여성들이 주택가로 스며들면서 음성형 성매매라는 부작용을 낳았고, 법은 이를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인간 존엄성 훼손 vs 생계수단 처벌 안돼
끊이지 않는 논란…이번엔 결론날까 주목
 
이어 김 전 서장은 “특정지역에서는 생계형 성매매를 허용해야 한다”며 “음성 성매매를 하고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비생계형 성매매자이고, 집창촌을 극히 수치스러워하는 만큼 목적에 따른 분리는 자연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집창촌 화재 등을 계기로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유린을 막기 위해 성매매특별법을 도입했지만 인권보호 취지는 온데간데 없고 단속과 처벌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정부 측 참고인인 오경식 강릉원주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피해자 보호가 미흡하다고 위헌이라고 선언하면 사회적 혼란을 감당해야 한다”며 “위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정책적·제도적 개선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합헌론에 힘을 보탰다. 
 
 
최현희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도 “성매매는 여성의 몸과 인격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등 인간을 대상화하고 인격적 자율성을 침해한다”면서 “성적 자기결정권의 문제로 접근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성매매특별법 이후 변종 성매매가 증가한 것은 사회적 환경 변화에 따른 것이고 독일·네덜란드 등 성매매 합법화 이후에 오히려 성범죄나 성매매를 위한 인신매매가 더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이번 변론 내용을 참고해 해당 조항의 위헌여부를 심리한 뒤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선고 기일은 이르면 올해 안에 결론지어진다. 


위헌? 합헌? 
올해 결정날까
 
성매매특별법의 위헌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공개변론이 헌법재판소에서 열리기 직전 한터전국연합·한터여종사자연맹 등 성매매 종사자들이 헌재에 이 법 폐지를 위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대표자 김모씨 외 882명 명의로 된 탄원서에서 “착취나 강요가 없는 성매매는 피해자가 없다”면서 “성매매를 엄격히 단속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도덕적 가치가 향상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라며 성매매특별법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은 성매매특별법이 음성적인 성매매를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는다고 전제한 뒤 “개인 대 개인 거래 방식의 음성적 성매매의 경우 종사자가 폭력적인 상황에 놓이고서도 고발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부작용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인 간의 성행위를 반사회적 범죄로 규정하고 형사 처분할 것인가”라며 “미성년자도 아닌 성인 여성의 자발적인 선택까지도 형벌로 다스린다는 것은 법의 최소개입(원칙)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기자회견과 탄원서 낭독에 앞서 ‘성매매 특별법 폐지’ ‘우리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습니다’ 등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특별법 폐지를 촉구했다.
 
성매매특별법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지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군산 개복동 한 유흥업소에서 화재가 일어나 인명피해가 일어났다. 군산 개복동의 대가·아방궁 유흥 주점에서 무선 전화기의 전기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해 15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전체 26평에 불과한 2층에만 1평이 조금 넘는 쪽방이 무려 7개가 설치돼 있었고 내부 통로는 겨우 한 명만이 오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다. 창문과 출입문은 쇠창살로 막혀있고 안과 밖에서 모두 잠글 수 있는 2중 자물쇠가 설치돼 있어 위급 상황 시 탈출이 불가능했다. 미로 같은 통로에서 여성 종업원 14명과 남성 지배인 1명 등 15명이 감금 상태에서 2층 철문 계단에서 질식해 숨졌다.
 
이후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취업 각서와 현금 보관 각서까지 쓴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이를 계기로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정치권에서 성매매특별법이 논의됐고 2004년 이 법이 제정돼 시행에 들어갔다. 시행 초기에는 성매매 집결지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게 사살이다. 그러나 풍선효과로 인해 오피스텔, 주택가 등 음지로 파고들면서 부작용을 낳았다. 근원적인 문제해결은커녕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후 성매매특별법은 줄곧 실효성 논란을 빚었다. 2012년 7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화대 13만원을 받고 성매매를 하다 적발돼 재판에 넘겨진 여성 김모씨가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면서 성매매특별법 위헌론이 고개를 들었다. 김씨는 당시 성매매가 아니고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김씨는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것은 기본권과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북부지법은 이런 요청을 받아들여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명분·실리 두고
끝없는 도돌이표
 
지난 2004년 성매매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던 조배숙 변호사는 10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성매매특별법 위헌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조 변호사는 “법이 제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법에 위반되는 일이 일어나다보니 실효성 논란이 있었다”며 “그러나 우리 사회가 포기할 수 없는 어떤 기본적인 성 풍속, 성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발적인 성매매라고 하더라도 성은 인격권의 불가분의 핵심적인 요소인데 그것을 판매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독일과 네덜란드는 성매매를 합법화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다. 일단 성매매 합법화 이후 성매매 여성이 눈에 띄게 급증했고 인신매매 등 각종 범죄가 늘어나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급기야 이를 막자는 풍자 캠페인 광고까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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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