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명실공히 예능왕 유재석

국민들 웃음 책임지는 영원한 국민MC

사전적 의미로 ‘국민’은 소재지와 관계없이 원칙적으로 일정한 국법의 지배를 받는 국가의 구성원을 뜻한다. 그렇다면 국민MC의 뜻은? 그런 구성원에게 대중적 사랑을 받는 진행자를 일컫는다. 여기 국민MC로 대표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유재석이다. 온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남자, 안티가 없는 연예인, 1인자, 예능 천재로 통하는 유재석. 그의 변치 않는 인생사를 알아보자.

지난달 30일 TV에는 SBS <연예대상>이 방송됐다. 올해 마지막 예능 시상식에서 가장 큰 관심거리는 과연 KBS와 MBC에서 대상을 차지한 유재석이 방송3사 석권이라는 금자탑을 쌓을 수 있을지 여부였다. 모두의 눈과 귀가 집중된 가운데 발표된 대상 수상자는 <힐링캠프 - 기쁘지 아니한가>의 진행자인 이경규였다. 카메라는 일제히 그를 비췄고 객석에서는 축하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때 군중들 사이에서 가장 열렬히 환호하는 한 사람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졌다. 유재석은 선배의 수상에 두 손을 번쩍 들고 마치 제일인 듯 축하하고 있었다.

메뚜기·둘리춤
최고의 예능인

1972년생인 유재석은 1991년까지 유현초등학교, 수유중학교, 용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처음 TV에 나온 시기를 1991년 이후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끼를 선보인 시작점은 1989년 <비바 청춘>이란 프로그램에서다. 그는 당시 용문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18살의 나이로 <영웅본색>의 장국영을 패러디해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1991년 ‘서울예술대학교’에 진학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5월5일 어린이날 특집으로 방영된 <제1회 KBS 대학 개그제>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친구 최승용과 함께 ‘개그 칼럼’이라는 코너를 기획해 시청자들 앞에 선보였다. 앞서 발생한 ‘페놀 사태’를 은유한 그들의 코미디는 신선하긴 했지만 유재석은 심각한 무대 우울증으로 제대로 실력발휘를 하지 못했다. <해피투게더>에서 그는 이때를 회상하며 “안 떠는 척 당당한 척 했지만, 시선은 허공으로 갔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무대에서 유재석과 최승경은 장려상을 받았다. 충분히 큰 상이었지만 당시 갓 20살이 된 꿈 많은 유재석에게는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장려상이 발표되자 그는 왼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오른손으로 귀를 만지며 시상식 자리로 향했다. 몇 년이 지난 후 <무한도전>에서 그는 당시 대상을 기대했었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장려상을 받았으니 실망이 컸던 것이다. 그는 “실제 시상식이 끝난 후 선배들에게 많이 혼났다.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고 철없는 행동이었다”고 그때의 행동을 반성했다.


이후 대학을 중퇴한 유재석은 본격적으로 KBS에서 개그맨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10년간의 무명생활을 견뎌야 했다. 틈틈이 심형래 감독이 제작한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함께 시작한 박수홍, 남희석, 김용만, 김국진 등이 TV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특히 심각한 무대 울렁증은 ‘방송을 그만둘까’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그를 괴롭혔다.

나경은과 결혼
슬하에 아들 하나

오랜 무명생활에 지쳐갈 때쯤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1999년 방송이 시작된 <진실게임>을 통해 인지도를 다지기 시작해 2000년 <목표달성! 토요일 -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 첫 메인 진행자로 발탁된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 30세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은 깐족거리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마치 <톰과 제리>에서 ‘제리’를 연상시키는 캐릭터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2001년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해피투게더>에서 발군의 끼를 발산하기 시작한다. 이어서 2004년에는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와 같은 공익성 프로그램을 맡아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끌어내는 등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재치로 범국민 책읽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KBS·MBC 연예대상 “최다 수상자 등극”
올해 43세…24년간 승승장구 개그인생

2006년은 유재석의 예능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해였다. <X맨> <무한도전>의 진행을 맡으면서 최고의 진행자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쪼아’ ‘당연하지’ 등 다양한 신조어와 ‘후라이팬 놀이’같은 기발한 게임을 통해 전 국민적 사랑을 받은 <X맨>에서 그는 재치 있는 입담과 몸개그를 선보여 공동 진행자 강호동과 함께 ‘국민 MC’로 발돋움 하게 된다. 이후 방송국에서는 유재석과 강호동이 없으면 진행이 안 된다는 속설이 돌 정도로 입지를 탄탄히 다지게 된다. 이후 그 둘은 때로는 선의의 라이벌로서 때론 친한 동료로서 함께 성장한다.

유재석을 얘기하는 데 있어 <무한도전>을 빠뜨릴 수 없다. 그는 <무한도전> 시즌1격인 <무모한 도전> 진행을 맡아 수많은 폐지 논란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낸다. ‘국내 최초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표방하는 <무한도전>에서 그는 몸을 사리지 않고 시청자들을 위해 매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한다. 덕분에 MBC 예능 역사는 <무한도전> 전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그 파급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시청률이 높든 낮든 트렌드를 이끌어 간다는 측면에서 <무한도전>이 현존 최고의 프로그램 중 하나라는 데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것은 물론 한 여성과의 사랑에도 성공하게 된다. 그는 <무한도전>을 통해 당시 객원 아나운서로 활약한 나경은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81년생인 그녀는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할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다. 한 방송에 의하면 그녀는 학창시절 ‘공부 잘하는 아이’로 통했다고. 이후 그녀는 2004년 MBC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요리보고 세계보고> <뽀뽀뽀> 등에서 활약하게 된다. 그러던 중 유재석을 만나 교제를 시작하게 되고 2008년 7월 결혼식을 올렸다. 나경은·유재석 부부는 결혼 3년 만인 지난 2010년에 아들 지호 군을 출산했다. 현재 그녀는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아나운서를 사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재석은 빠르게 변하는 예능 판도 속에서도 뒤처지는 모습 없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1박2일>을 시작으로 야외 버라이어티가 예능계를 주도할 때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해 후배들에게 뒤지지 않는 예능 감각을 선보여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끌었다. 그리고 2010년에는 차세대 예능을 표방한 <런닝맨>을 통해 10대 아이돌과 비교했을 때 결코 떨어지지 않는 체력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유재석을 비롯한 멤버 전원이 열심히 뛴 덕에 <런닝맨>은 최근 중국에 포맷이 수출되는 등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예능으로 거듭났다.
 

이처럼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다 보니 상복도 따라오기 시작한다. 2003년 KBS <연예대상> ‘TV진행부문 최우수상’을 시작으로 매해 굵직굵직한 시상식에서 상을 탔다. 현재까지 KBS에서 2회, MBC 4회, SBS 4회, 백상예술대상 1회 등 총 11차례 대상을 거머쥔 그는 2005년부턴 매년 빠지지 않고 수상받고 있으며 이미 2013년 대상을 통해 방송사상 최다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무한도전·런닝맨
종횡무진 활약

그의 활약은 예능에 그치지 않았다. 최근 ‘10억 뷰’를 기록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 유재석은 노란색 옷을 입고 화려한 퍼포먼스와 존재감을 보여줘 해외에서는 ‘옐로우 가이’로 통한다. 또한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음악의 한 장르인 랩에도 도전해 최근 랩퍼 스윙스와 CF촬영도 함께 하는 등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팔색조 활약은 부단한 노력과 소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의 말처럼 오래도록 방송을 하기 위해 술·담배 등을 일절하지 않고 헬스로 기초체력을 관리한 결과 지금과 같이 꾸준한 활약을 이어갈 수 있었다. 또한 현재 가장 소통을 잘하는 진행자로 알려진 그는 선배는 물론 후배와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노력에 재능이 더해지니 장기집권의 끝은 아마도 그가 은퇴를 해야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가 이처럼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배려와 사려 깊음 속에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난 MBC <연예대상>에서 탤런트겸 영화배우인 박슬기는 뮤직·토크쇼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는데 소감을 이야기하며 “유재석 선배님 얼굴만 보면 눈물이 난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유재석의 남다른 배려심 덕분이다. 2007년 <무한도전> 멤버 전원이 대상을 수상했을 당시 상을 받지 못한 박슬기는 무대 뒤에 밀려나 있었다. 그때 유재석이 나타났고 많은 케이블TV, 아침방송 카메라들이 그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결국 박슬기는 더욱 뒤로 밀려났다. 자칫 연예인으로서 서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때 유재석은 “우리 슬기씨 자리 좀 내 달라”고 양해를 구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설움이 복받쳤다. 그녀는 그날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후 유재석을 만나면 늘 눈물이 난다고 전했다. 이어서 그녀는 “내가 늘 동경하던 인물이었는데 그런 분이 나를 챙겨주시니 어떻게 안 좋았겠냐”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부단한 자기관리와 진심 다한 소통
최고 자리에서 최선 다하는 예능인

MBC 공채 20기 개그맨 오지환이 지난달 30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남긴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해당 글에 따르면 오지환은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무한도전> 멤버들과 마주쳤다. 당시 느낌에 대해 오지환은 “저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말이 선배님이지 저에겐 그저 연예인일 뿐이고 그분들은 제가 개그맨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며 회상했다. 자칫 어색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결국 오지환은 용기를 내 인사를 건넸는데 걱정과 달리 따뜻하게 인사를 받아줬다.

특히 유재석은 “개그맨 생활 힘들죠?”라며 “이 바닥은 잘하는 사람이 뜨는 게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 뜨는 거예요. 힘들어도 개그 포기하지 말고 버티세요”란 조언을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오지환은 당시 개그맨으로서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껴 포기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시기였는데 조언을 받고 나니 다시 마음을 다잡고 개그에 몰두하게 되었다.


유재석의 이런 진심 어린 말은 수상 소감 때도 이어졌다. MBC <연예대상> 수상 후 그는 “우리 예능의 뿌리는 코미디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아쉽게도 오늘은 동료들, 후배들이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오지랖 넓은 말을 하는 거 같지만 다시 한 번만 더 꿈을 꾸고 무대가 필요한 후배들에게 내년에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최고의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심은 더 높은 자리와 명예가 아닌 힘들고 어려운 후배들을 향해 있었다.

존경받는 선배
연예인 멘토 1위

지난 2011년 <무한도전> 특집 프로그램으로 방송된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그는 ‘말하는 대로’를 불렀고 젊은이들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곡은 그의 유년 시절 겪었던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다짐을 담고 있다. 지금은 최고의 진행자가 됐지만 그도 지금의 20대 못지않게 힘든 삶을 살았고 앞날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다.

최근 에듀윌이 문화공연이벤트에 참여한 회원 92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멘토로 삼고 싶은 연예인’ 1위를 유재석으로 꼽았다. 믿음과 신뢰가 뒷받침 되어야 형성될 수 있는 것이 ‘멘토-멘티’의 관계라는 점에 비추어보면 국민들이 생각하는 유재석이 과연 어떤 인물인지 유추가 가능하다.

“만약 내가 스타가 된다 해도 힘들었던 순간들을 잊지 않고 변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싶다.” 유재석이 밝힌 이 말처럼 2015년에도 그는 변함없이 시청자들에게 최고의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도전’하고 ‘달릴’ 것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SBS 연예대상은 이경규

2014 SBS <연예대상>에서 이경규가 대상을 수상한 가운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수상소감을 전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오후 9시부터 시작된 2014 SBS <연예대상>에서 이경규는 유재석을 비롯해 강호동, 김병만 등 쟁쟁한 후배들을 제치고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수상자가 발표되자 후배들의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이경규는 놀란 표정을 지었고 곧이어 후배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특히 유재석과 강호동은 두 손을 번쩍 들며 제 일처럼 환호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혀 훈훈함을 더했다.

이경규의 수상소감도 화제가 됐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상을 받게 돼 영광이라고 입을 연 뒤 “아버님이 조금 더 오래 사셨다면 이런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셨을 것이다”며 “하늘에 계신 아버님께 큰 재능을 물려받았기에 아버님에게 이 상을 바친다”고 전해 보는 이를 뭉클하게 했다. 이어 “파이팅 넘치는 강호동, 배려하는 유재석, 정글에서 고생하는 김병만. 여러분 발목을 붙잡아서 미안하다”며 후배들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이경규는 현재 <힐링캠프 - 기쁘지 아니한가>와 <붕어빵>의 진행을 맡고 있으며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과 노련한 진행 솜씨를 보여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SBS에서 연예대상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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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