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람 잡는 아청법 '앞과뒤'

“미성년 야동 받으려던 게 아닌데…” 졸지에 성범죄자 낙인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유명 웹툰작가 ‘마사토끼’가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아청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은 뒤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만화를 그려 배포하면서 아청법의 맹점이 다시금 도마에 올랐다. 한 번의 클릭으로 단순히 파일만 잘못 다운로드받아도 아동음란물 배포자로 기소돼 멀쩡한 청년이 성범죄자로 낙인찍히는 불편한 현실이다.


유명 웹툰작가 ‘마사토끼’가 의도치 않게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을 위반해 처벌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의 걱정을 샀지만, 마사토끼는 웹툰 작가답게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만화로 표현했다. 아청법 제도의 모순점을 생생하고 재치 있는 모습으로 지적한 것이다.

껍데기 까보니
엉뚱한 알맹이
 
지난달 28일 인터넷 업계에 따르면 마사토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만화가 겸 스토리 작가 양찬호(30)씨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blog.naver.com/masaruchi) 등에 ‘마사토끼 아청법에 걸리다’라는 8편짜리 웹툰을 연재했다. 이 웹툰에 따르면 앞서 마사토끼는 지난 9월 경찰로부터 아청법상 아청법을 위반했다. 그리고 어렵사리 문제의 사건을 떠올려 만화로 구성했다.
 
웹툰 ‘마사토끼 아청법에 걸리다’에 따르면 마사토끼는 어느 날 갑작스레 아청법 위반에 대한 참고인 출석요구서를 받았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음란물 소지·음란물제작·배포 등)’ 그는 불안한 마음에 만화가 인생이 끝이라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했다. 자신을 성범죄자로 인식할 팬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마사토끼는 이 일을 평생 비밀로 안고 살아가려고 결심하던 찰나, 자신이 겪은 일을 만화로 정리하고자 결심했다. 이내 마사토끼는 불안했던 자신의 마음을 만화를 통해 풀어냈다. 자신과 비슷한 실수를 하지 말라는 공익적인 목적도 담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우선 그는 출석요구서가 날라온 부산의 모 경찰서로 전화를 했다. 해당 서는 그에게 사건 경위를 설명해줬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마사토끼는 P2P(peer to peer) 프로그램으로 한 파일을 공유했다. 경찰은 서울에서 조사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반성문을 써가면 좋다는 팁까지 알려줬다. 큰일이 아니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이후 마사토끼는 자필로 준비한 반성문을 들고 인근 경찰서 사이버수사과를 찾았다. 분위기는 강압적이지 않았고 날카로운 조사도 없었다. 그저 그가 다운로드 받은 영어와 숫자로 된 파일명을 알려줄 뿐이었다. 마사토끼는 파일명에 대해 알지 못했다. 당초 구체적인 파일명이 아닌, 검색어를 통해 다운로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이 제시한 파일 안에는 일본 여학생 나체사진이 가득했다. 에로 셀카 모음집이었던 것이다.
 
 

사실 마사토끼는 에로만화를 보기 위해 P2P 내에서 검색을 하던 중 특정 단어를 검색, ‘요정전설’이라는 제목의 파일을 발견했다. 이 파일에는 만화 권수마냥 넘버링까지 붙어있었다. ‘요정전설 1, 요정전설2…’. 마사토끼는 이 파일을 다운로드 받았고 이 파일은 클릭과 동시에 배포가 시작됐다.
 
마사토끼가 아청법 위반에 대한 참고인 출석요구서를 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받았던 파일의 제목과 내용이 달랐기 때문이다. ‘요정전설’을 다운 받은 뒤 재생시켰지만 정작 요정과 전설과 관련된 내용물은 없었다. 아동 음란물이 나왔던 것이다. 당황한 그는 해당 파일을 즉시 삭제했다. 그러나 파일을 내려받는 즉시 업로드를 하게 되는 P2P 특성상 아동 음란물을 배포한 파렴치범이 된 것이다. P2P에서는 제목과 내용이 다른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기에 충격이 더했다.

클릭 잘못했다가…
성범죄자로 등록
 
마사토끼는 가짜 파일에 속은 뒤 곧바로 다른 파일을 다운로드 받았지만 그가 아동 음란물을 다운 받은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마사토끼는 결국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했고 며칠 뒤 사건 관할서가 서울로 옮겨졌고 검사가 배정됐다는 우편을 받았다. ‘마사토끼가 아청법에 걸렸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팬들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한 팬에 의해 그의 아동 음란물의 정체, 정확한 파일명이 ‘요정전설 13세의 성노예’인 것으로 밝혀졌다.
 
마사토끼는 해당 웹툰을 통해 자신의 사례뿐 아니라 논란이 되는 아청법의 비현실적인 부분도 짚었다. 일례로 아청법은 아동이나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배포하거나 소지한 경우도 처벌하게 돼 있는데, 가상 세계가 아닌 현실의 아이들을 보호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아청법의 취지에 대해서는 찬성한다”면서 “다만 기왕 규제할 것이라면 무엇이 미성년자 대상 범죄의 원인인지 파악해 현실성 있는 규제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마사토끼는 비록 실수이긴 하지만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내려받고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법적 책임을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마사토끼는 지난 11월28일 법원에서 벌금 200만원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24시간 이수, 신상정보 등록 명령을 받았다.
 

유명 웹툰 작가 만화 다운받다가 걸려
카톡 대표 얼떨결에 피의자 신분 소환
  
남일 인 줄 알았던 아청법을 피부로 직접 느낀 마사토끼의 실화를 접한 팬들은 그를 비난하기 보다는 현실과 맞지 않는 아청법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한 팬은 “마사토끼는 비난받아야 할 아청법 위반자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실수한 부분을 무시하고 법전의 글자만을 근거로 입건한 경찰 측이 잘못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청법 관련 헌법소원을 진행 중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동 포르노를 봤다고 해서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다는 인과관계는 어디에도 없다”며 ”아청법은 현실 세계의 아동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만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도치 않게 성범죄자로 몰린 마사토끼 사건의 핵심에는 P2P가 있다. P2P 파일 전송 네트워크는 서버란 개념이 없다. 어떤 사용자가 한 파일을 올리면 다른 사용자들이 내려 받는 방식이다. 올리는 쪽과 내려 받는 쪽 모두 동시에 접속하지 않아도 된다. 보통 오디오나 비디오, 데이터 등 임의의 디지털 형식 파일의 공유에 적합한 서비스로 과거부터 꾸준히 사용돼 왔다.
 
이처럼 이용자 간 공유가 활발히 이뤄지다 보니 일부 콘텐츠에 대한 신뢰도는 다소 떨어지는 측면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P2P에 떠도는 음란물 중 10%가량이 아청법에 위반되는 음란물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즉 지뢰찾기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특정 콘텐츠를 다운 받고자 검색해서 클릭해도 막상 파일을 실행해보기 전까지는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P2P는 10년이 넘도록 이어져온 파일공유 서비스다. 어느 정도 위험성을 안고 있지만 그간 큰 문제 없이 수많은 이용자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아청법 시행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파일 제목에 낚여 잘못 다운로드 받았다가 수백만원의 벌금과 함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신상정보 등록 등 성범죄자로 낙인찍힐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기존의 이용자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설익은 법…
엉뚱한 화살
 
아청법의 화살은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에게도 향했다. 지난달 10일 이 대표가 아청법위반 혐의로 경찰에 소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간에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 대표는 10일 대전 서구 대전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이 대표는 다음과 합병하기 전 카카오에서 대표로 있을 당시 ‘카카오그룹’을 통해 유포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에 대해 사전에 전송을 막거나 삭제할 수 있는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온라인 서비스 대표에게 아청법을 적용해 입건한 첫 사례였다.
 
이후 24일 이 대표는 아청법 위반 혐의를 받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를 두고 관련 업계에서는 말이 많다. 경찰이 이 대표를 검찰에 송치한 법률적 근거는 아청법 제17조 1항이다. 관련법에는 ‘자신이 관리하는 정보통신망에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발견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거나 발견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즉시 삭제하고, 전송을 방지 또는 중단하는 기술적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아동음란물 배포 안 해도…줄줄이 기소

“본래 취지와 달리 과도하게 집행” 지적
 
이 법에 따르면 이 대표는 카카오그룹에 유통된 자료들 가운데 아청법에 위반되는 음란물을 찾아내 즉시 삭제하거나 사전에 이러한 자료들이 이동할 수 없도록 기술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설익은 법이 멀쩡한 사람을 괴롭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아청법을 따르자면 카카오그룹 대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봐야한다. 그러나 카카오그룹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에 해당되기 때문에 아청법을 실행하면 통비법을 어길 수밖에 없다.
 
통비법 제3조에는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정취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가운데 감청이란 ‘전기통신에 대하여 당사자의 동의없이 전자장치·기계장치 등을 사용하여 통신의 음향·부호·영상을 청취·공독하여 그 내용을 지득 또는 채록하거나 전기통신의 송·수신을 방해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즉 실시간 모니터링은 ‘감청’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특히 아청법은 ‘사전적 기술조치’를 요구하지만 관련법 시행령에는 구체적인 조치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 현재 네이버나 다음은 성인음란물에 대해 ‘해시값(복사된 디지털 증거의 동일성을 입증하기 위해 파일 특성을 축약한 암호 같은 수치)’을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 기술적으로 음란물 유통을 막고 있다. 온라인 포털 또한 이용약관을 통해 아청법 관련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어 감청 논란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법률 간 충돌
과도한 법집행
 

반면 카카오그룹에는 동일한 적용이 어렵다. 통비법 위반 소지도 그렇지만 아청법 11조에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임을 알면서 이를 소지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즉 아청법에 위반되는 음란물 DB 구축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음란물 이동을 막을 길이 없다.
 
아청법은 지난 2011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이던 최형희 당시 민주당 의원은 음란물이 온라인으로 유포될 때 온라인서비스제공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넣은 아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해 9월15일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 이듬해인 2012년 3월16일부터 개정된 아청법이 시행됐다.
 
아청법은 개정안 시행 이후에도 꾸준히 개정됐지만 17조 조항은 그대로 유지됐다. 또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전적 기술조치에 대한 기준도 명확히 마련되지 않았다. 앞서 설명한 통비법과의 충돌도 여전한 상태로 ‘미완의 법’으로 남아 애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소관부처 간 칸막이가 높아 의견조율이 어려운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는 졸속으로 법을 만들었다는 비판이 흘러나오고 있다. 애당초 법을 제정할 때 법 간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충분히 검토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교복 성인물’ 판결 보니…
“발육 상태로 성인 판단”
 
음란물에서 교복 입은 인물이 성행위를 하더라도 명백히 아동·청소년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면 이 음란물의 제작·유포자를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달 23일 부산지법 형사합의 1부는 아청법에 위반되는 행위로 기소된 채모(46)씨의 파기환송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100만원에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재판부는 “동영상 속 여성이 외모나 신체 발육 등에 비춰 아동·청소년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명백하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해 성행위를 한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면 해당 동영상은 아동·청소년 성 보호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실 이번 판결의 발판은 지난 9월에 있던 재판이었다. 당시 박모(34)씨도 앞서 채씨 처럼 기소됐지만, 재판부는 해당 성인 동영상에 교복을 입은 여성이 등장해 음란행위를 하지만, 외관상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되지 않는 만큼 아청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며 박씨에게 벌금 300만원에 성범죄 재발방지 강의 40시간 수강 등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1심과 2심 재판부는 교복을 입은 학생으로 연출된 인물이 음란 행위를 하는 동영상은 일반인에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다며 벌금 300만원과 성범죄 재발방지 강의 40시간 수강을 선고한 바 있다.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배포·제공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 이를 소지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아동 음란물 단속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지만 모호한 법 조항 때문에 수사당국이나 법원에서 사건마다 판단이 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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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