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소신 지킨 김이수 헌법재판관

남들 ‘예스’할 때 혼자만 ‘노’

[일요시사 사회2팀] 최현목 기자 = 군계일학.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후 한 정치평론가가 김이수 재판관을 가리켜 비유한 말이다. 물론 나머지 재판관이 닭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만큼 김 재판관의 소신이 돋보인 것을 사자성어를 빌어 표현한 것이다. 소수자 억압, 인권 침해 등을 헌법의 이름으로 막아달라는 헌법재판소 출범의 기본 취지를 끝까지 지킨 그의 삶을 짚어보자.

지난 19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정부가 청구한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이 있었다. 심판을 위해 참석한 재판관은 총 9명. 그중 8명은 ‘인용’ 판결을 내려 통진당 해산을 찬성했다. 반면 김이수 재판관은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결국 8대1의 압도적 결과로 통진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5명의 소속 국회의원들도 의원직을 상실했다. 헌정사상 유례없는 결과에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쳤다. 각종 언론에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한 분석과 예측이 쏟아졌다. 그리고 유일하게 해산을 반대한 김이수 재판관(61·사법연수원 9기)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1953년 출생
전남고 출신

김 재판관은 195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1972년 전남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쭉 호남지방에서 생활했다. 그러다가 서울대학교 법대에 진학하게 되면서 상경하게 되는데 그때 마침 ‘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한다.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을 중심으로 발생한 민청학련 사건은 유신체제에 맞서 반독재·반체제 시위를 벌인 대학생 180명이 구속기소된 사건이다.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의 자격으로 맞선 김대중이 신병 치료를 위해 일본에 체류하던 중 1973년 8월8일 도쿄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된다.


이 사실은 삽시간에 퍼졌고 9월 개학과 더불어 대학생들의 반유신체제운동이 시위형태로 발생하게 된다. 그러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1월8일 긴급조치 1, 2호를 공포, 일체의 개헌논의를 금지했고 위반자를 심판할 비상군법회의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사태는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고 불씨는 더욱 거세져갔다. 이에 4월3일 박 대통령은 긴급조치 제4호를 발동했다. 긴급조치 제4호가 선포된 후 관련자는 구속·기소되었다.

이때 김 재판관과 부인 정선자씨는 함께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받게 된다. 그리고 김 재판관은 64일간 구금 조치를 당하고 부인 정선자씨는 양심선언문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하게 된다.

구금에서 풀려난 김 재판관은 대학을 졸업한 후 1977년 제 19회 사법시험을 통과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법조인의 길을 가게 된다. 이후 1982년 대전지법판사를 시작으로 서울고등법원 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청주·인천지법원장, 특허법원장, 사법연수원장을 역임하는 등 줄곧 법의 수호자로서의 삶을 산다. 그러던 중 2012년 야당의 추천을 받아 지금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일하게 된다.

그의 판결은 가히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할만 했다. 2004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시절 도로와 학교부지 등 사회기반시설도 마련하지 않은 채 건설사에 아파트 신축허가를 내준 지방자치단체의 무분별한 ‘난개발’에 대해 제동을 거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만 해도 시민들의 안전과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주먹구구식 개발이 한창인 시절에 나온 이례적 판결이었다. 또한 해당 지자체의 무분별한 아파트 신축허가 남발에 대해 “지자체가 피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내용의 확정결론이 나온 첫 판결이었다.

같은 해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전철역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하반신 1급 장애로 전동휠체어를 타던 윤씨(당시 62세)는 2002년 5월 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역내 근무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모두 식사하러 갔다는 이유로 도와주지 않았고 혼자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다 뒤로 추락해 사망했다.

군계일학
낭중지추


이 사실을 토대로 김 재판관은 윤씨의 아들(당시 37세)이 서울시 도시철도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항소심에서 “공사 측은 원심보다 위자료 5400만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휠체어리프트 사고를 처리할 때 장애인의 시설접근권이란 개념을 정립한 첫 번째 판결로 일반인에 비해 가중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김 재판관은 판결문에서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은 인간적 존엄과 가치, 행복을 지킬 수 있게 시설접근권이 보장돼야 하는데 공사 측은 사고 전 수차례 안전문제를 지적받았을 뿐 아니라 역무원들이 당시 윤씨가 안전하게 리프트를 타도록 작은 배려도 해주지 않은 잘못이 인정된다”며 “1심보다 위자료 5400만원을 더해 모두 1억4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밝혀 실질적으로 도시철도공사를 대상으로 괘씸죄에 따른 가중처벌을 내렸다.

근로자를 위한 행보도 빼놓지 않았다. 2005년 유씨는 산업용 전자기판 감광성 필름을 만드는 직장으로 출근하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쓰러져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평소 고혈압 증세가 있고 심폐기능이 약한 상태에서 매일같이 연장근무를 하다 출근 도중 숨진 것이다. 그러나 근로복지관리공단은 “의학적·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다.

이에 유족이 “사망원인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에서 김 재판관은 “유씨가 맡은 업무가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고 작업환경이 쾌적하지만 근무정황상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 만성적인 과로에 시달려 왔다는 점이 인정된다”며 “유씨의 사망은 업무와 인과관계가 있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통합진보당 해산 유일한 반대표 던져
“일부 지향을 전체 정견으로 간주 안 돼”

법의 사각지대는 상식이 통하는 판결로 메웠다. 홀로 자녀를 키우는 택배 배달운전기사 심씨가 술을 마신 뒤 차량을 3미터 이동시켰다가 운전면허가 취소된 사건이 발생했다. 운전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면허증은 생명증과도 같았다.

이에 김 재판관은 경찰 처분의 위법성에 대해 법적 판단을 내렸다. 김 재판관은 판결문에서 “원고가 운전한 것은 노상주차장에서 유료주차장까지 왕복 3미터에 불과하고 이 거리 중 대부분은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비록 음주운전을 했지만 경찰청의 처분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 재판관은 부당한 공권력 사용에 대해서 엄벌을 내렸다.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이 있은 후 검찰과 국정원은 사실을 왜곡 발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 말 그대로 피해자를 두 번 죽인 처사였다. 김 재판관은 이러한 사실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하며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위법한 국가권력에 대해 단호한 법률적 제재를 가한 것이다.

고용환경에서의 성차별을 깬 역사적 판결도 있었다. 소위 ‘김영희 사건’으로 불리는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전화교환원 정년차별 사건에서 눈에 잘 드러나진 않지만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내린 고용상의 성차별 관행에 철퇴를 가한 바 있다.

그 외에도 청소년 고용으로 물의를 일으킨 ‘미아리 택사스 사건’ 업주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보호하는 판결을 내려온 인물로 평가된다.

2012년 헌법재판관이 된 후에도 그의 신념은 바뀌지 않았다. ‘한미FTA 반대 시위 물대포 사용 사건’ ‘국가공무원법상 교원 정치활동 전면금지 조항’ ‘정당법·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교사 정당가입 금지 조항’ 등에서 위헌 의견을 내 다수의 의견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김 재판관은 평소 포용력 있고 온화한 성품으로 잘 알려졌다. 특히 타인의 주장을 경청해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 후배 법관들과 직원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이에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인간미와 합리적 사고가 적절히 공존하는 선배’로 통한다. 또한 김 재판관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당사자가 직접 수행하는 사건에 대해 적극적이고 적절한 소송지휘로 당사자의 권리 보호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 왔다.


약자와 소수자 보호
합리적 판결

그가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에도 지금과 같이 합리적 사고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남다른 체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마라톤 마니아로서 2003년부터 입문, 다음 해인 2004년부턴 풀코스 완주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그는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들다는 풀코스 완주를 10회나 기록할 정도로 강철 체력을 보유하고 있다. 부인 정씨도 마찬가지다.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먼저 시작한 그녀는 2002년부터 입문해 이듬해 마라톤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진보성향 강한 호남출신 법조인
장애인 기본권 향상에 큰 공헌

취미가 같다보니 부부동반으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 지난 2005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6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 김 재판관은 부인과 함께 참가했고 풀코스를 완주했다. 결승선을 끊고 나서 김 재판관은 “서울 도심을 가로질러 달려보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뤘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부인 정씨는 마라톤 선배답게 김 재판관보다 10분 앞선 4시간26분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비록 부인에겐 졌지만 김 재판관 역시 자신의 최고기록을 30여분이나 앞당겼다. 이를 위해 김 재판관은 지난 3개월간 혹독한 ‘동계훈련’을 거쳤다는 후문이다.

합리적 사고가 마라톤을 통해 뒷받침 됐다면 김 재판관의 인간미는 신앙심과 낭만을 즐길 줄 하는 성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김 재판관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유명하다. 또한 평소 즐겨 부르는 노래는 ‘애수의 소야곡’으로 알려졌다. “운다고 옛 사랑이 오리요마는”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가사는 떠나간 연인을 그리면서 우수에 젖어 있는 체념적인 가사가 특징이다. 서정적인 가사와 고요하고도 애절한 가락이 가수 남인수 특유의 미성과 잘 어우러져 오랫동안 사랑받은 곡이다. 최근 가수 정인이 <불후의 명곡2>에서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재판관은 이번 통진당 해산 판결에서도 그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김 재판관이 밝힌 반대의견의 핵심은 그들의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범위와 시기, 그리고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먼저 김 재판관은 일부 당원의 행위를 당 전체의 움직임으로 볼 것인가 하는 범위의 측면에 대해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이나 중앙위원회 폭력 사건, 야권단일화 여론조작 사건과 같은 피청구인 일부 구성원의 개별 활동이 당내 민주주의를 훼손하거나, 민주적 의사결정원리를 존중하지 않았거나,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그러나 피청구인 전체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목적을 위해 조직적, 계획적, 적극적, 지속적으로 위와 같은 활동을 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한 시기면에서 “과거 독일에서 공산당 해산심판이 청구되고 해산 결정이 이루어진 후 다시 독일공산당이 재건되기까지, 12만5000명에 이르는 공산당 관련자가 수사를 받았고, 그 중 6000∼7000명이 형사처벌을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는 문제가 발생했던 것에 비추어 보면, 이 결정으로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일이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현 상황을 우려했다.

통진당 해산
국민 손으로

마지막으로 방법적인 측면에서 “강제적 정당 해산은 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정당의 자유 및 정치적 결사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약을 초래한다”며 “해산 결정은 사상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소수자들의 정치적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한 정치평론가는 김 재판관을 ‘군계일학’으로 비유한 데 이어 베스트 인물로도 선정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의 투표로 해결할 수 있음에도) 헌정사상 처음으로 특정 정당을 장외로 밀어버리는 판결에 대해서 정말로 소신있게, 국민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재판소의 존재 의미를 강하게 대변한 김이수 재판관,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chm@ilyosisa.co.kr>


[김이수는?]

▲제19회 사법시험 합격
▲대전지방법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특허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청주지방법원 법원장
▲특허법원 법원장
▲사법연수원 원장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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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