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천우희

28세 내공이…영화마다 신들린 연기

[일요시사 사회2팀] 최현목 기자 =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다.’ 우리는 흔히 스크린에서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배우를 가리켜 이런 수식어를 붙인다. 전도연, 송강호 등 국내 굴지의 배우들에게 붙는 찬사로 쓰이기도 하는 이 타이틀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신예가 있다. 배우 천우희는 ‘그녀만의 색깔’이 아닌 ‘그녀가 낼 수 있는 색깔’로 중무장한 충무로 ‘히든카드’다. 2014년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주인공 천우희에 대해 낱낱이 알아보자.

2014년을 가장 빛낸 여배우로 천우희가 선정됐다. 천우희는 영화 <한공주>(감독 이수진)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한 여고생 ‘한공주’역을 맡아 내공 있는 연기를 선보였고 당당히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녀는 그동안 많은 작품에 출연하진 않았지만 하는 영화마다 크고 작은 역할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덕분에 관객들 사이에서는 ‘신스틸러’로 불렸다. 그런 그녀는 이번 수상을 통해 개인 타이틀은 물론 존재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게 됐다.

2004년 데뷔
줄곧 단역만

현재 천우희의 나이는 28살, 연기 내공을 보여주기엔 아직 젊지만 그녀에게 나이는 중요치 않아 보인다. 벌써 경력 10년차인 그녀는 2004년 영화 <신부수업>을 통해 데뷔했다. 비록 맡은 역할이 ‘깻잎무리2’라는, 흔히들 얘기하는 ‘행인2’만큼 비중이 없었지만 이 작품을 통해 천우희는 영화배우로서 발걸음을 땠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17살, 지금의 그녀를 있게 만든 ‘한공주’의 극중 나이가 17살이었다는 점은 우연치곤 기막힌 접점이 아닐 수 없다.

이후 그녀는 2년간 공백기를 가진 후 2007년 영화 <허브>에서 껄렁껄렁한 깻잎 소녀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단역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그녀에게 조연으로 출연할 기회가 찾아온다. 2009년 원빈 주연의 영화 <마더>에서 그녀는 배우 진구(진태 역)의 여자친구로 발랄하면서 은밀해 요사스러운 기운마저 풍기는 재수생을 연기하게 된다. 단역이 아닌 조연으로 출연한 그녀의 실질적 데뷔였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과감한 노출연기를 선보였다. 23살의 나이로, 또 여성으로서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베드신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부모님께는 ‘노출연기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연기에 대한 욕심이 컸던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현장과 잘 맞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그대로 온전히 연기자의 길을 가게 된다.


이후 천우희는 영화 <사이에서>를 통해 주연배우로 거듭난다. 데뷔 후 빠른 시간에 주연을 맡았지만 영화에 대한 반응은 좋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한동안 침체기를 겪게 된다. 생각보다 빠른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던 중 대중들에게 확실히 얼굴을 알릴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누적 관객 수 700만명을 넘긴 영화 <써니>의 오디션 기회가 생긴 것이다. 대게 많은 연기자들이 오디션에서 제대로 기량을 선보이지 못하고 떨어진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간만에 찾아온 기회였지만 긴장하지 않고 임해 당당히 배역을 따냈다.

그 비결에 대해 그녀는 “오디션을 볼 때 오디션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는데,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했지만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그냥 인연이 아니구나 생각하기 때문에 긴장을 별로 안 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오디션에 임하다보니 ‘쟤 뭔데 저러지. 뭔가 엄청난 걸 숨기고 있는 거 아냐’라고 감독들이 생각했다는 후문이다.

노출, 본드 등
파격연기 맡아

<써니>에서도 천우희가 맡은 배역은 파격적이었다. 극중 본드를 마시는 여고생 상미로 분해 열연을 펼쳤는데 일부에서는 ‘진짜 본드를 마시고 연기한 것 아니냐’는 괴담이 돌 정도로 그녀의 연기에는 리얼리티가 있었다. 결국 그녀는 <마더> <써니>로 대표되는 두 파격연기로 관객들의 뇌리에 자신의 연기 스타일을 각인시켰다. 어떻게 이런 선택이 가능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부모님이 엄청 보수적이다. 그래서 ‘이제 나 다 컸어. 터치 하지 마’ 같은 심정으로 연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천우희는 기세를 몰아 2011년 <뱀파이어 아이돌> <뻑킹 세븐틴>, 2012년 <26년>, 2013년 <우아한 거짓말>에서 주·조연을 넘나들며 실력을 쌓아가던 중 지금의 그녀를 있게 만든 <한공주>를 만나게 된다.

2014년 가장 빛낸 여배우로 선정
집단성폭행 당한 여고생 역 소화


<한공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2004년, 경남 밀양에서 고등학생 44명이 울산의 여중생을 지속적으로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가해자들은 약 1년 동안 수차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찰이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상이 보호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수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가해자는 평범하게 대학을 다니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등 전과기록 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반해 피해를 당한 여성은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던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이 사실을 접한 국민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감한 사건을 다룬다는 것, 또 성폭행 당한 여성을 연기한다는 것은 여배우로서 꺼려지는 부분이 많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천우희가 말한 것처럼 영화를 봤을 때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역을 받자마자 몰입했고 표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연기하겠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한공주’를 연기하기 위해 고민도 많이 했다. 보통의 배우들은 어떤 사건을 겪고 난후 슬픔에 빠지는 캐릭터를 표현할 때 강한 의지로 극복해내는 연기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악을 쓰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트라우마를 서서히 이겨내는 모습을 표현해냈다. 그녀는 관객의 분노를 유발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에 집중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천우희는 ‘한공주’를 강한 아이라고 정의했다. 그렇지만 순탄치 않은 환경 속에서 그녀를 지지해 줄 버팀목과 같은 장치가 필요했다. 천우희는 그 장치로 음악을 택했다. <한공주>라는 영화 속을 관통하는 것은 음악이다. 그녀는 음악을 통해 관객에게 희망을 전달함은 물론이고 과거의 ‘한공주’와 현재의 ‘한공주’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즉 ‘한공주’가 과거에는 혼자 음악을 했다면 현재에는 친구와 얼굴을 마주하며 아카펠라를 부르는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쌓아놓은 마음의 벽을 조심스레 허무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영화에는 ‘Ciao,Bella,Ciao’라는 제목의 아카펠라 노래가 삽입곡으로 등장한다. 비록 전주만 나오지만 이 노래의 가사를 찾아보면 ‘한공주’가 맞닥뜨리고 있는 세상과 연관성이 있다. 노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체주의에 맞서던 파르티잔이 부른 것으로 세계적으로 저항운동에서 많이 쓰였다.

“오 사랑스런 사람아. 침입자를 발견했다. 이제 죽을지도 모르니 만약 내가 죽는다면 꽃 아래 묻어다오. 사람들은 날 보고 아름다운 꽃이라고 하겠지. 그러면 자유를 위해 죽은 꽃이라고 말해주오”

<한공주>는 천우희가 연기를 그만두고 싶을 때 선물처럼 찾아온 영화다. 그리고 그녀는 이 영화로 인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배우이자 가수인 마리옹 꼬띠아르는 천우희의 연기를 극찬한 바 있다. 패션·뷰티 매거진인 <GEEK>은 ‘만약 당신이 지금 주목할 만한 새로운 여배우를 찾고 있다면, 그건 단연 천우희일 거다’고 전했다.

한공주 연기로
세계적 여배우

영화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제13회 마라케시 국제 영화제 금별상, 제43회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 타이거상, 제16회 프랑스 도빌 아시아 영화제 심사위원상 국제비평가상 관객상, 제28회 프리부르 국제영화제 대상, 제3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 등 해외 영화제 9관왕을 차지했다.

저예산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국내 흥행에도 성공했다. 다양성 영화로 최단기간 내에 1만명 돌파, 한국 독립영화 사상 최단기간 10만 돌파, 최단기간 최다관객 동원이라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모든 것이 철저히 '한공주'의 상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한 그녀의 연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녀는 여우주연상을 받은 날 자신의 SNS를 통해 “수상소감을 준비하지 못해서 아쉬웠다”며 “또 이런 날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자기 일처럼 기뻐해준 저의 지인들과 글로써 격려해준 기자님들, <한공주>를 함께하고 사랑해준 모든 분들…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못다 한 소감을 밝혔다.
 


그녀가 <한공주> 이후 차기작으로 선택한 영화는 <카트>다. <부러진 화살> <변호인> <집으로 가는 길>등과 같이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된 사회고발 영화인 <카트>는 2007년 이랜드가 운영한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의 일방적 해고통지에 맞서 마트를 점거, 농성을 이어가던 중 경찰의 해산 명령에 불복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천우희가 맡은 배역이 어두웠다면 영화 <카트>에서는 그녀의 밝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녀는 여기서 현대사회를 불안정함 속에 살아가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주위에 ‘긍정의 힘’을 전파하는 88만원 세대 ‘미진’역을 맡았다. 물론 아픔도 있다. ‘미진’은 계속되는 취업난 속에 점점 지쳐만 간다.

그러던 중 계약직으로 함께 일하는 다른 마트 언니들과 함께 회사 측의 부당해고에 맞서게 되고 그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주위사람에게 힘을 북돋아준다. 그런 의미에서 ‘미진’의 존재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관객에게 청량제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등 쟁쟁한 선배들의 연기에 묻힐 수 있었던 상황에서도 그녀의 존재는 빛이 난다.

한편 <카트> 시사회장에서 천우희는 “(연기를 위해)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지금 내 나이 때 고민할 수 있는 것들,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 봤다. 많이 공감하셨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충무로 기대주 그녀가 떴다
끊임없이 고민하는 연구벌레

천우희는 철저히 변두리에서 시작했다. 지금이야 아역 배우부터 연기를 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있지만 그녀가 데뷔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그녀는 ‘맨땅에 헤딩’과도 같이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취미처럼 시작했다.


친구따라 연극반에 갔다가 연기를 하게 됐고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처럼 <마더> <써니> 등을 찍었다. 25살 때까지는 소속사도 없이 혼자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회사를 들어간다 해도 ‘내가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 줄 것이다’고 믿었다. 또래 여자에 비해 두둑한 배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배짱도 두둑하지만 뚝심도 남달랐다. 주위의 간섭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캐릭터를 빚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한송이’를 연기할 때도 참고로 한 캐릭터 없이 본인이 고민해서 만들어냈다. 또한 관객의 평가는 신경 쓸지언정 주위의 목소리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도화지 같은 외모는 그녀의 가장 큰 무기다. 그녀의 얼굴은 ‘매일매일 달라진다’고 할 정도로 어떤 심리 상태를 가지냐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그렇기에 마치 감정을 물감삼아 얼굴에 채색하는 듯 이채롭게 보인다. 그녀를 본 사람은 천우희가 누구를 닮았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 선뜻 말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천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연기를 할 때도, 모델로서 사진을 찍을 때도 그녀는 본인만의 다양한 모습을 선보인다. 이런 점들이 그녀를 어떤 배역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만들었다. 자기복제가 판치는 세상에서 그런 그녀의 가치는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배역을 만들 때 특정 이미지에 맞춰 배우를 섭외하는 국내 영화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천우희를 두고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과거 전도연이 그러하듯 단지 예쁘다는 아우라를 넘어서서 다양한 캐릭터의 색깔을 덧칠할 수 있는 배우. 얼굴과 연기에 비어 있는 모호함이 넉넉이 고여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배우”라고 평했다.

천의 얼굴 가진
청룡영화제 퀸

천우희가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 13편 가운데 주연을 맡은 건 3번밖에 되지 않는다. 그 외에는 모두 조연이나 단역이었다. 그런 그녀가 3번째로 주연한 영화에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탔다. 그리고 2015년 그녀가 주연을 맡은 영화 <곡성> <뷰티인사이드>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녀는 이제 스포트라이트 중심에 섰다. 그리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여배우로 거듭났다.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보다 ‘보여 줄 모습’이 많기에 전문가는 물론이고 팬까지 그녀의 행보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천우희는 패션·뷰티 매거진 <GQ>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넘어설 수 없는 배우로 이영애를 꼽았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혹적인 분위기 때문이라 밝혔다. 하지만 그녀를 본 사람이라면 알수 있다. 블랙홀처럼 상대를 빨아들이는 그녀의 눈은 충분히 고혹적이라고, 그 안에 담지 못할 배역은 없다는 사실을. 앞으로 그녀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해줄지 사뭇 기대가 된다.

 

<chm@ilyosisa.co.kr>

 

[천우희는?]

▲경기도 이천 출생
▲양정여자고등학교 졸업
▲경기대학교 연기학 전공
▲제14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 여자 신인연기자상
▲제3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제15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연기상
▲제3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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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