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식품 ‘솜방망이 처벌’ 논란

대장균 시리얼…고작 300만원이 끝?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최근 ‘동서식품 시리얼’ ‘크라운 유기농웨하스’ 등 대기업 브랜드 제품에서 식품안전사고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안이 확산됐다. 식품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치닫자, 당국은 해당 제품을 조사해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시정명령과 약간의 과태료가 전부였다. ‘솜방망이 처분’을 내린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에 충분했다.

 
동서식품과 크라운제과는 자신들의 브랜드 제품이 ‘판매 부적합’ 제품이라는 걸 알고도 판매해 소비자들의 공분을 샀다. 동서식품은 충북 진천공장에서 생산된 ‘포스트 아몬드 후레이크’ 자체 품질검사에서 대장균이 검출된 걸 알았지만, 이를 폐기하지 않고 다른 제품과 섞어 완제품으로 재생산했다. 크라운제과도 ‘유기농 웨하스’와 ‘유기농 초코웨하스’ 등을 자체 품질 검사한 결과 세균량이 기준치를 넘어 판매할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보건당국에 보고하지 않고 무려 5년간 31억원어치를 판매했다. 

“약하다 약해∼”
 
대기업 브랜드 제품을 믿고 사 먹은 소비자들은 뿔났다. 이후 논란이 거세지자 동서식품과 크라운제과는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면서 “문제의 제품을 회수해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두 기업 모두 ‘자발적 보고’를 하지 않았다. 자가품질검사를 이행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지만, 부적합 결과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고하지 않다가 적발될 경우에는 과태료만 물면 된다. 대기업들이 처벌규정을 악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1일 식약처는 자가품질검사 결과 대장균이 검출된 시리얼 제품을 알고도 이를 처분하지 않고 다른 제품에 섞어 판매해온 국내 최대 시리얼 제조사 동서식품에 과태료 300만원을 부과했다. 대장균이 검출된 제품을 다시 다른 제품의 원료로 사용한 행위에 대해서는 시정명령만 내렸다. 식약처는 또 동서식품의 그래놀라 파파야 코코넛, 오레오 오즈, 그래놀라 크랜베리 아몬드, 아몬드 후레이크 등 시리얼 전품목에 대해 총 139건을 수거, 검사한 결과 시중에 유통된 시리얼 제품에서는 대장균군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식품위생법 제31조에 따르면 식품 등을 제조·가공하는 영업자는 총리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제조·가공하는 식품 등이 제7조(식품 또는 식품첨가물에 관한 기준 및 규격) 또는 제9조(기구 및 용기·포장에 관한 기준 및 규격)에 따른 기준과 규격에 맞는지 검사해야 한다. 검사를 직업 행하는 영업자는, 국민 건강에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지체 없이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제조업자가 부적합 결과를 식약처장에 보고하지 않거나 허위로 보고한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 데 불과하다.
 
 

동서기업에는 별 타격이 없었다. 대기업에 과태료 300만원을 내린 것은 관대한 처분이라는 비판이 쏟아질 뿐이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4대악(성폭령,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으로 규정해 뿌리를 뽑겠다고 적극적으로 단속해온 불량식품 문제였지만, 처분의 실효성에는 물음표가 던져지고 있다. 동서식품 300만원 과태료 소식이 알려지자 소비자들은 불만을 표했다. ‘0이 몇 개 빠진 것 아니냐’ ‘벌금 300만원은 그냥 또 하란 소리지?’ ‘대기업에 관대한 대한민국’ 등 비양심적 업체에 대한 당국의 처분이 약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너무 적은 과태료…여론 ‘부글부글’
“사실상 면죄부 아니냐” 지적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동서식품이 대장균 시리얼을 알고도 판매했다며 ‘불매운동’이 번지는 등 식품업체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동서식품에 대해 소비자 집단소송, 불매운동 등을 펼치기로 하고 동서식품 대장균 시리얼 피해자를 모집하고 있다.
 
동서식품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5270억원이다. 이 중 시리얼 제품 매출은 22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번 사건에 대한 식약처의 조치를 두고 논란이 일자 식약처는 뒤늦게 처벌 규정을 강화하기 위해 식품위생법과 시행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업체가 자가품질검사를 통해 나온 부적합 결과를 식약처에 보고하지 않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영업정지 1개월의 행정처분을 내린다.
 
또한 부적합 제품을 회수하지 않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이 강화된다. 완제품에 대해 자체 품질 검사 결과 부적합이 나올 경우 반드시 식약처에 보고해야 한다. 매월 모든 식품에 대해 자가품질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식품업계의 관심은 ‘해썹(HACCP)’ 인증 유지 여부로 쏠리고 있다. ‘해썹’은 안전한 먹거리 선택을 위한 위생관리 제도로, 이 마크를 부착한 제품은 비교적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번 식약처 조사에서 동서식품의 법 위반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 ‘해썹’ 인증 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동서식품은 이미 지난 2010년에도 시리얼 제품에서 대장균이 검출돼 회수조치와 행정처분을 받은 바 있다.
 

만약 동서식품이 ‘해썹’ 인증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이 제도에 대한 신뢰도 저하문제를 낳을 수 있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인재근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해썹 지정 식품에서 이물질 검출사례가 254건이나 확인됐다. 당시 인 의원은 “먹거리 사고가 계속 반복되는 것은 법이 너무나 형편없어서 몇 푼 안 되는 과태료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재 검찰은 대장균이 검출된 제품을 다른 제품의 원료로 사용한 행위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지난달 14일 동서식품 진천공장을 비롯해 16일 동서식품 본사와 인천 부평구에 있는 연구소를 압수수색을 실시한 바 있다. 특히, 식약처 역시 수사결과에 따라 위법사실이 확인되면 추가 조치를 취할 방침이어서 소비자들의 관심이 검찰 수사결과에 쏠리고 있다.
 
사실 식품업계의 먹거리 사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08년 1월에는 농심 ‘노래방 새우깡’에서 쥐머리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돼 ‘쥐머리 새우깡’ 논란이 일었다. 당시 농심은 사과성명을 발표함과 동시에 문제가 되는 제품을 회수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같은 해 3월, 동원 F&B는 주력제품인 동원참치에서 칼날이 발견돼 제품을 회수한 바 있다.

이러니 또…
 
2012년에는 농심이 라면 수프에 사용한 조미료 가쓰오부시에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벤조피렌은 1급 발암물질로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전격 회수 결정을 내린 후 세계 각국에서 라면의 안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식약청이 “포함된 벤조피렌이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라고 발표하면서 사태는 진정국면에 접어들기도 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법담배 617억원 과태료는 200만원
 
지난달 24일 새정치민주연합 김현미 의원이 기획재정부, 국세청 등으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해 KT&G 세무조사에서 면세율을 적용받는 외항 선원용 담배를 영세율을 적용받는 수출용 담배로 무단 용도변경·판매했다. 국세청이 적발한 KT&G의 무단 용도변경·판매 규모는 2009∼2012년 동안 2728만 5200갑으로, 약 617억원 어치다.
 
그러나 국세청은 올해 4월에야 뒤늦게 기재부에 KT&G의 ‘담배사업법’ 위반 사실을 보고했고, 이에 기재부는 KT&G에 과태료 200만원 처분을 결정하고 그대로 부과했다. 김 의원은 “기재부는 현행 법령상 과태료 최고금액을 부과한 것이나 KT&G와 같은 시장독점 대기업이 600억원 규모의 불법 행위를 저지른 데 대한 과태료가 200만원에 불과한 건 문제”라며 “불법행위의 규모에 맞게 과태료 처분을 강화할 수 있도록 ‘담배사업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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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