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사회2팀] 박효선 기자 = 이달 초 대학가는 온통 축제 분위기로 물들었다. 많은 불꽃이 터졌고, 많은 연예인들이 대학축제 분위기를 달궜다. 여기에 대학들은 수천만원의 돈을 썼다.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어야 할 캠퍼스축제는 점차 연예인들의 한탕 공연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대학축제의 주인공인 학생들이 축제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도저히 축제를 즐길 수 없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 도서관 밖으로는 음악소리와 함성소리가 ‘쿵쿵’ 울렸다. 마음은 심란했다. 언젠가부터 대학축제의 주인 자리를 연예인들이 꿰차고 있다.
주객이 전도
“와∼그대는 달콤해. 나의 달링 걸스데이!”
지난달 30일 인하대학교에서 걸스데이를 응원하는 힘찬 함성이 퍼졌다. 관객 중에는 이곳 학생들보다도 팬클럽, 인근 주민, 외국인 관광객 등 외부인이 눈에 띄었다. 주객이 전도된 분위기였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캠퍼스는 천막만 남은 채 텅 비었다.
대학들이 연예인 초청에 막대한 예산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교육부가 박대출 새누리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34개 전국 4년제 대학이 지난 3년간 연예인 초청에 지출한 비용은 축제 예산의 평균 43%(3411만209원)를 차지했다. 올 가을 축제를 마친 30개 대학의 연예인 섭외 평균 비용은 3622만원이었다. 재작년 서울대의 경우 연예인 섭외 비용은 4035만원으로 국립대학 중 4위를 차지했다. 가수를 부르는 데 1억1200만원을 쓴 국립대학도 있었다.
가수들에게 대학축제는 기업 및 지방자치단체 행사와 함께 그들의 주 수입원이다. 가수들은 매년 이맘때를 기다린다. 올해도 약 400개의 대학교가 연예인을 초청하는 데 돈을 쏟아 부었다. 올해 대학축제 섭외 1순위인 대세 아이돌은 걸스데이와 에이핑크, B1A4다. 이들은 이미 전국 20개 이상의 대학에서 계약을 맺고 축제무대에 섰다. 2순위는 블락비, 3순위는 신인 그룹이 주를 이룬다.
가요계에 따르면 대학축제 1순위 아이돌을 섭외하려면 2000만∼3000만원이 드는 것으로 추정된다. 2순위를 섭외하려면 1500만∼2000만원이 든다. 이 밖에 신인 그룹은 500만∼1500만원의 섭외비가 드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녀시대, 투애니원, 비스트 등 인지도가 높은 아이돌을 초청하려면 1순위 아이돌 보다 2배 이상의 돈을 써야 한다. 섭외비만 6000만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돌 그룹 외에 요즘은 힙합가수가 인기를 얻고 있다. 힙합 가수 중에서는 싸이, 다이나믹듀오, 리쌍, 배치기가 대학생들의 꾸준한 지지를 받고 있다. 올해는 스윙스, 범키, 산이 등의 힙합 가수가 강세다. 그들의 출연료 역시 1000만원 이상으로 아이돌과 비슷한 수준으로 오르고 있다.
이 같은 대학축제 비용은 학생회비, 학교 측 지원금과 일부 기업들의 스폰서로 충당된다. 특히 연예인 초청으로 인한 예산규모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제주대가 축제 비용만으로 3년 연속 2억이 넘는 돈을 쓴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있었다. 이 중 걸그룹 ‘씨스타’ 등 연예인 4팀을 초청하는 데 8000만원이 넘는 돈을 썼다. 3년 동안 축제 비용 중 35%가량을 ‘연예인 모시기’에 쓴 것이다.
특급 연예인 모시기에 학생회비 ‘펑펑’
수백만원서 많게는 억대…부르는 게 값
인기 연예인을 섭외하는 것은 점차 학생회의 능력으로 통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조직원 학생회장과 함께 축제비용 4억원을 빼돌린 조직폭력배가 검거된 일도 있다. 폭력조직원을 학생회장으로 당선시켜 이벤트업체를 차린 것이다. 학생회의 돈 씀씀이가 커지면서 조폭이나 이벤트 업자들이 끼어들어 이권을 챙겼다. 이 과정에서 ‘리베이트’가 오간 것이다.
아울러 최근 경기도 한 대학교 학생회간부는 대학축제 행사대행을 맡은 공연기획업자로부터 3700만원의 사례비를 받고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지난 2월에는 학생회비 수천만원을 횡령한 서울 소재 사립대학의 총학생회장이 졸업을 하루 앞두고 제적된 일도 있다.
연예인 공연에 몰려다니는 극성팬들의 무례와 몰염치한 태도도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모 대학 가을축제에서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 극성팬은 대학생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곳 대학생이 “여기는 대학교 축제지 아이돌 콘서트가 아니다”라고 지적하자 여성팬은 “우리 오빠들이 너네 학교까지 와 주는 걸 감사하라”며 적반하장이었다.
연예인 없이는 대학축제가 아예 진행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연예인 섭외비용은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정작 학생들 자체행사 지원에는 인색해지고 있다. 학생들이 창의력과 아이디어로 꾸몄던 동아리 천막마저도 점차 기업 판촉 장소로 전락했다. 화장품과 휴대전화 등 기업의 판매 부스가 빼곡히 들어서 공공연한 영업 및 판촉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사라진 낭만
지난 2011년 한 대학축제에서 사회를 보던 개그맨 장동민은 축제 말미에 시작한 불꽃놀이를 보며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대학등록금이 터지고 있습니다”
이후 장동민은 대학 축제 섭외가 끊겼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전해진다. 올해도 건국대학교 축제에서는 불꽃이 터졌다. 건국대 한 재학생은 “불꽃을 보는 순간 눈은 즐거울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요즘 취업 때문에 도서관에 박혀 있는 학생들이 많아 실제로 본 학생도 별로 없을 테고 우리한테 뭐가 남는지 모르겠다”며 “게다가 박명수, 나인뮤지스 등 섭외하는데 내가 힘들게 알바하며 낸 등록금이 그들에게 들어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열 받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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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그때 그 시절’ 대학축제는?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김민기가 쓰고 양희은이 불렀던 ‘아침이슬’이다. 가수 양희은은 ‘아침이슬’이 저항가요가 아니었음을 뒤늦게 고백했지만 과거 이 노래는 상처 입은 시대를 어루만진 명곡이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아침이슬’은 하나의 저항이자 대안이었다.
대학축제 전성기는 70년대와 80년대로 기억된다. 시대는 어지러웠지만 낭만이 살아 있었다. 많은 명곡이 당시 대학축제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만큼 정권은 대학축제가 두려웠다. 사회성찰이 담긴 음악과 주장은 무서운 감동과 전율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대학축제는 말 그대로 대학생들의 축제였다. 사회문제를 성찰했고, 화합과 단결의 공간이었다. 대학생들의 단결을 중시했던 만큼 당시 대학축제 이름도 ‘대동제’였다. 대학축제는 지식인 젊은이들의 장소였다. 학술 문화 프로그램, 스포츠경기, 여왕대관식(일부 여자대학), 대학밴드 공연, 쌍쌍파티 등 학생 위주의 행사였다. 축제참가대상은 한정됐다. 축제참가 자체가 특권이었다.
‘유신정권’으로 시작된 70년대 대학축제에서는 민족, 민주, 자유 등이 화두였다. 통기타로 상징되는 젊은이 문화가 다양하게 시도됐다. ‘5.18사태’로 시작된 80년대에는 이념적 양극화로 어수선했던 사회분위기 속에서 대학축제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다.
90년대 후반부터 대학축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대학축제 주인공은 학생이 아닌 연예인들이 차지했다. 젊은이들의 순수한 놀이판이었던 대학축제가 이제는 인기 ‘아이돌 스타’의 경연장이 돼버린 모습이다. <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