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실화> ‘장기매매’ 공포의 택시괴담 경험담

기사가 건넨 사탕 ‘먹어? 말어?’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한 청년이 부산에서 일정을 마치고 복귀하는 길에 아찔한 경험을 했다. 부산역을 향하던 택시기사가 갑자기 의문의 사탕을 청년에게 건네고는 목적지와 다른 엉뚱한 곳에 차를 세운 것이다. 이후 벌어진 상황은 더욱 미심쩍었다. 마치 인터넷에 떠도는 ‘택시괴담’ 같았다. 장기매매를 위한 포석이 아니었을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이런 오싹한 경험은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다. 장기매매가 의심되는 실제 경험담과 갖가지 괴담, 과연 소문의 진실은 무엇일까.

지난 6월, 업무 차 수일 동안 부산에 머물렀던 A씨는 일을 잘 마무리한 뒤, 미리 예약한 서울행 KTX를 타기 위해 늦은 밤 택시를 잡았다. A씨는 택시기사에게 목적지인 부산역을 말하곤 피곤한 몸을 반쯤 눕혔다.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이 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잠에 곯아떨어졌다. 5분에서 10분 정도 잤을까. 진작 도착했어야 정상인 거리인데, 택시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어두워서 밖은 잘 보이지 않았다.

기사가 건넨
의문의 사탕
 
A씨가 정신을 차리고 두리번두리번 거리자 택시기사가 알사탕을 건넸다. “많이 피곤하죠? 이거 먹고 정신 차려요. 거의 다 왔어요.” 갑작스러웠지만 택시기사의 호의에 마음이 안정됐다. 그러나 평소 원체 단 음식을 멀리 했던 터라 바로 먹지는 않고 가방 주머니에 넣었다. 그더런 중 시계를 바라보니 택시를 탄 지 벌써 20분이나 지나 있었다. 뭔가 수상함을 느끼고 정신을 차린 A씨는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기사님 도대체 어디로 가시는 거죠?” 택시기사는 덤덤한 말투로 거의 다 왔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부산역은 보이지 않았다. 흔하디 흔한 건물 간판도 없었다. A씨는 확실히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택시기사가 요금을 더 받기 위해 빙빙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어이없는 상황에 화가 난 A씨는 “택시 승차 지점에서 부산역까지 5분에서 10분 거리에 불과한데, 20~30분 걸리는 게 말이 되냐”며 당장 세워달라고 소리쳤다.
 

똥 밟은 셈 치고 다른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순간 택시가 급정차했다. 그리고 택시기사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손님, 차량에 문제가 생겼어요. 요금은 받지 않을 테니 저기 옆에 있는 택시로 갈아타세요.” 이에 A씨는 문제의 원인을 물었지만 뚜렷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사실상 택시 환승은 강요였다.
 
KTX열차 시간이 다가와 점점 초조해진 A씨는 시간이 지체돼 불쾌했지만, 택시기사의 점잖은 태도에 크게 화를 낼 순 없었다. 그래서 그의 말대로 인근 도로가에 정차돼 있는 택시로 군말 없이 옮겨 탔다. 이때까지 A씨는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차된 택시로 갈아탄 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갈아탄 택시를 탄 지 불과 5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택시기사가 길이 막힌다며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또 A씨는 전 택시에서 건네받은 사탕과 유사한 사탕을 환승한 택시에서도 받았지만, 먹지 않고 손에 쥐었다. 불안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돌던 ‘택시괴담’이 떠올랐다.
 
괴담의 주 내용은 택시 납치 후 장기매매까지 이어진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머리 속에는 이미 수많은 시나리오가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이미지트레이닝으로 최악의 상황을 면하고자 했던 것. 게다가 A씨는 태권도4단에 합기도1단, 육상과 수영으로 다져진 만능 체육인이었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이 온다 해도 잘 대처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수상한 움직임
의문의 수신호
 
이때 A씨는 자신의 처한 실제 상황을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실시간으로 기록했다. “나 부산역 갈려고 택시 탔는데, 택시 기사가 사탕을 줬어. 그러고는 옆 택시로 갈아타래. 갈아탔더니 똑같은 사탕을 또 받았어. 그러더니 자꾸 엉뚱한 곳으로 돌아간다. 나 장기 팔리는 건가?” A씨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작성한 글이었지만, 친구들은 이 글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반응 대부분은 ‘장기 탈탈 털려라’ ‘심판의 날이구나’ ‘네가 싱싱해 보였나봐’ ‘꼭 살아 돌아와라’ 등이었다. 물론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빨리 내려’ ‘사탕 절대 먹지마라’ ‘경찰에 신고해’ ‘무사히 돌아와’ 등 실시간 댓글이 달렸다. A씨는 이를 통해 그나마 위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을 다스리던 중, 갑자기 택시기사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전화를 받은 택시 기사는 “어” “아니” “그러니까” “맞아” “빨리” 등 단답형의 대답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뭔가 다급해보였다. A씨는 앞서 받은 사탕과 지금 쥐고 있는 사탕이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먹으면 잠드는, 미끼라고 판단했다. 택시기사끼리 통화를 주고받은 것 자체가 ‘플랜B’를 가동했다고 본 것.
 
갑자기 정차한 택시, 기사의 수상한 움직임
불길한 직감에 기겁하며 살기위해 전력질주
 
택시의 움직임을 의심하던 A씨는 이들의 꾀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택시 탈출을 결심했다. 그러나 달리고 있는 택시에서 내릴 순 없었다. 그래서 차가 서서히 서행할 때 문을 열고자 했다. ‘덜컥’ 문이 잠겨 있었다. 이내 옆으로는 여러 대의 택시가 따라 붙으면서 택시를 감쌌다. 그리고 기사들은 서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이 와중에도 택시기사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계속 주변을 빙빙 돌기만 했다. 
 
A씨는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이대로 있다간 서울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얼굴은 창백해졌다. A씨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아저씨 내려주세요!” 택시기사는 말이 없었다. A씨는 언성을 높이며 급히 세워달라고 외쳤지만, 택시기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엑셀을 더 세게 밟았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한 A씨는 순간 이성을 잃고 택시 내부에서 온 힘을 다해 문을 걷어찼다. 저항이 거셌던 탓일까. 택시기사는 급정거했고, 이내 A씨는 택시에서 급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고, 택시를 등진 채 앞으로 전력 질주했다. 1분 정도 달렸을까. 따라붙던 택시들은 시야에서 멀어졌고 A씨는 금세 지쳐 그 자리에 주저 않았다. 머리 속이 하얘지며 흥분이 가셨고 가로등 불빛 아래 덩그러니 남게 됐다. 신고할 틈도 없이 ‘택시괴담’을 온몸으로 느낀 채 뒤늦게 부산역에 도착했다. 
 
A씨는 이 같은 일을 겪기 전 SNS를 통해 ‘택시괴담’을 접했었다. 택시에 타면 특정 화약물질의 냄새에 취해 기절하게 되고, 가짜 택시기사가 장기를 적출해가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근거 없는 괴담이지만, 이 내용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불안 심리를 부추겼다. 

장기 건강한
청년들이 표적
 
그런데 A씨의 경우와 비슷한 사례는 또 있었다. 서울에 거주 중이던 B씨는 천안에 볼 일이 있어 새벽에 일어나 신림역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서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B씨의 옆구리를 쿡 쿡 찔렀다. 옆을 돌아보니 키 작은 아저씨가 휴대폰을 쥐고 찌른 것이었다. 아저씨는 뜬금없이 자신이 경찰이라고 밝혔고, 수사 때문에 급하니 전화를 받고 현재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했다.
 
아침이슬이 마르지 않은 새벽에, 경찰이 혼자 와서 위치를 물어본다는 자체가 의아하긴 했지만,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의 말에 따라 전화를 받아 신림역 7번 출구에서 오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돌려주니 아저씨는 횡설수설했다. “이렇게 알려줘도 길을 못 찾으니, 같이 좀 가서 그 사람한테 길을 알려줍시다.” 황당했다. 그 사람을 만나게 되면 길을 알려주고 말고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B씨는 아저씨가 경찰이라고 주장하는 게 의심됐다. 불편한 직감이 들어 서울역으로 가는 버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먼저 오는 버스를 급하게 탔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아저씨가 버스를 따라 탄 것. 그러더니 아저씨는 B씨를 향해 소리쳤다. “이 사람 안 되겠네 이거. 나 경찰인데 급하다니까 같이 가서 위치 좀 알려달라고.” 범죄자 같은 행색으로 새벽에 동행하자는 아저씨를 보니 한숨만 나왔다.
 
B씨는 확실히 하기 위해 아저씨에게 경찰 신분증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당황하며 “나 경찰인데 못 믿나? 허 참‥” 혀끝을 찼다. 그러더니 태도가 바뀌어 “내가 사실은 경찰이 아니고 지금 전화 받고 있는 사람이 경찰이야. 이런 거까지 말해야 하나. 이 경찰한테 위치 말하면 아마 나 잡으라고 할 텐데‥” 조용히 공포 분위기를 잡은 것이다.
 
결국 B씨는 불안한 마음에 두어 정거장 가서 내리고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에 섰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또 따라 내려 B씨를 쫒아왔다. 그러던 중, 불 꺼진 택시 한 대가 섰다. 조수석에는 이미 손님이 타 있었지만 택시기사는 “이 손님 저 앞에서 내릴 거니까 타요”라며 B씨를 택시에 태웠다. B씨는 상황 자체가 수상함을 느꼈지만, 경찰을 사칭하던 아저씨를 떼어 냈기 때문에 안심했다. 이 아저씨는 택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길 좀 알려주세요” 안내해주니
골목길에 불쑥 칼든 괴한 나타나 
 
그런데 택시 문을 닫으려는 순간, 꺼져있는 미터기를 발견했고 순간 소름이 돋았다. 문득 ‘택시괴담’이 떠올랐다. B씨는 닫혀가던 뒷좌석 문을 걷어차고 빠르게 내렸다. “저 택시 안타니까 그냥 가세요.” 그러자 택시기사는 왜 내리냐면서 B씨를 붙잡았다.
 

이 와중에 경찰을 사칭하던 아저씨가 다가왔다. B씨는 흥분하며 본능적으로 반대편으로 재빨리 뛰었다. 그리고 인적이 많은 도로에서 다른 택시를 잡고 서울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B씨에게는 1년 같은 1시간이었다. 근처에 경찰서가 있었지만 신고할 정신이 없었다. B씨는 자신이 겪은 일이 하마터면 장기매매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남부럽지 않은 건장한 몸을 갖고 있었지만, 죽음의 공포 앞에선 한없이 작아졌던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C씨는 예비군을 마친 뒤 술을 한 잔 걸치고 구파발역에서 내리고 담배를 피면서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체구가 왜소한 아버지뻘 되는 한 남성이 다가와 담배 한 대를 부탁했다. C씨는 거리낌 없이 담배와 함께 불을 붙여줬다. 같이 담배를 피다가 슬슬 가려던 찰나, 이 남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C씨에게 토로했다.
 
“아들과 단둘이 사는데, 아들이 술만 먹으면 집안을 다 부수고 나를 때리려고 해서 도망 나왔어.” 이 남성은 군복을 입은 C씨가 듬직하다고 했다. 같이 좀 가줄 수 있냐는 부탁이 이어졌다. 그래서 C씨는 이 남성과 함께 어두운 골목길을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앞길에 남자 2명이 걸어왔다. 그러더니 담배를 빌리던 남성이 갑자기 C씨의 입에 천 조각을 쑤셔 넣고 칼을 들이댔다. “너 그거 뱉으면 배에 구멍 난다?”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이들은 C씨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것이 장기매매인가’ 이대로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온 몸에 힘을 줬다. 그리고는 휴대폰으로 이들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어수선해진 사이 C씨는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달렸다. 이들은 계속 C씨를 쫒아왔지만, 대로변의 한 편의점으로 들어가면서 위험한 순간을 넘겼다. 다행히 편의점에는 남자 손님 1명과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C씨는 거친 숨을 내쉬고 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자신을 위협했던 남자들이 사라진 것을 보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운명의 밧줄로
가까스로 모면
 
장기 이식을 위해 금전 수수를 수반하고, 인간의 장기를 알선해 제공하는 행위를 장기매매라 부른다. 아직 정확한 실체는 밝혀진 바 없지만, 세계 곳곳에서 장기 브로커를 통해 비밀리에 또는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고 알려진다.
 
2012년, 경기도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뒤 사체를 280여 조각으로 나눈 오원춘이 붙잡히면서 장기매매 의혹이 증폭됐다. 당시 유가족은 “오원춘 범행동기는 인육제품 생산”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인터넷에는 ‘오원춘 인육 살인설’이 떠돌아다녔다. 이후 장기매매와 관련된 괴담이 난무했다. 그중에는 거짓된 루머도 포함됐다.
 
캐스 선스타인의 <루머>에서는 루머의 발생요인을 ‘사회적 폭포효과’와 ‘집단 극단화’로 소개한다. 폭포효과란 우리가 판단을 내릴 때 타인의 생각과 행동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의미하고, 집단 극단화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 극단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이러한 요인으로 발생하는 루머의 진실여부를 결정하는 핵심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이다.
 
개인의 가치관이나 신념에 따라 루머 수용정도가 다른 것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불신, 불안, 불만과 같은 부정적인 심리상태가 괴담의 확산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괴담이 성행하는 이유를, 각종 사회적 위험, 미래의 잠재위협에 비춰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우선과제는 ‘신뢰 회복’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매매 장기 얼마? 시세 보니…위 57만원…신장 3억원
 
장기매매 범죄가 증가하는 가운데 신체부위별 거래가격도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학전문사이트 <메디컬트랜스크립션> 자료에 따르면 장기매매 부위별 가격은 신장(2억9560만원), 간(1억7000만원), 심장(1억3420만원), 소장(280만원), 심장동맥(170만원), 쓸개(137만원), 두피(68만원), 위(57만원), 어깨(56만원), 손과 팔(43만원), 혈액 0.473ℓ(38만원), 피부 평방인치당(1만1000원)으로 거래된다. 국내에서는 국제 가격 기준보다 2∼3배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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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