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지 않는' 5만원권의 비밀

그 많던 ‘신사임당’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일요시사 =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돈의 일생. 한국조폐공사에서 태어난 지폐는 세상에 나와 돈이 되어 국내를 떠돈다. 조폐공사에서 시중은행으로, 은행에서 고객이나 특정 기관 등을 거쳐 비로소 돈이 된다. 제 역할을 다해 너덜너덜해진 돈은 한국은행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돌아온 돈은 재활용되고 끊임없이 환생한다. 그런데 고액권인 5만원이 한국은행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누군가의 금고 속으로, 장롱 속으로, 땅 속에 묻혀 깊고 어두운 곳에 숨어버렸다. 그 많던 5만원권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해외에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개설한 뒤 수천억원대의 도박판을 운영한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북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2일 해외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에 가담한 국내 현금 인출책 양모(76)씨 등 3명을 도박개장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양씨의 아파트에서 수익금의 일부인 28억9000만원을 발견해 현장에서 압수했다. 모두 5만원권이었다. 경찰은 5만원권 5만7800매를 공개했다.

많이 풀렸는데…
절반 자취 감춰

5만원권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다. 가장 고액권이라 갖고 다니기 가벼우면서도 수표보다 사용이 편리하다. 명절 때마다 5만원권은 시중에 대량 유통되고 있다. 그런데 찍어내기 무섭게 5만원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5만원 지폐는 유난히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다. 발행을 많이 해도 한국은행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3년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은행권 발행잔액은 61조1000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9조원 증가했다. 이 가운데 5만원권만 7조9000억원 증가하면서 전체 은행권 발행잔액 중 66.6%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년 말보다 3.7%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4년여 동안 수요가 늘면서 5만원권 유통량은 40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으로 돌아오는 5만원권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지난해 5만원권 환수율(한국은행으로 돌아오는 돈의 비율)은 전년보다 13.1% 포인트 떨어진 48.6%를 기록했다. 5만원권 환수율은 2011년 59.7%, 2012년 61.7%를 기록했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2장 중 1장은 중간에서 잠적한 셈이다.


40조 넘게 발행…환수율 절반 이하로 ‘뚝’
시중은행선 부족해 쩔쩔…한국은행 팔짱만

환수율이 낮아지면서 국민은행, 하나은행, 외환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5만원권이 부족해 쩔쩔매고 있다. 일부 은행에서는 현금 자동지급기에 충전시킬 돈조차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고객들의 5만원 인출 요구에 응하지 못해 창구에서는 만원권 지폐를 섞어 인출해 주는 곳도 있을 정도다.

최소한의 현금지급기용 보유고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새마을금고, 신용협동조합,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도 마찬가지다. 고객들의 인출 요구는 많은데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5만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은행과 조폐공사 측은 5만원권 지폐에 대해 평소보다 적게 발행하거나 인위적으로 통화량을 축소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있을 확률이 높다.
 

1만원권은 평균 100개월(8년4개월), 5000원권은 평균 65개월(5년5개월), 1000원권은 평균 40개월(3년4개월)을 누군가의 소유로 지냈다. 5만원권의 수명은 적어도 100개월을 넘을 것이다. 2009년 6월 탄생한 5만원권은 아직 60개월도 채 안 돼 정확한 수명을 알 수는 없다.

5만원권은 지난 2009년 편익과 화폐 발행비용 절감을 위해 발행됐다. 많은 현금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5만원권의 등장을 반겼다. 그러나 서민들은 많은 돈을 들고 다닐 일도, 보관할 일도 없다. 따라서 얻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꼬리표가 없는 5만원은 지하경제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 증대라는 현 정부의 정책목표와 달리 지하경제가 확대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깊은 곳 숨어
검은돈으로

5만원권은 지하경제로 흘러 들어갔을 확률이 가장 크다. 고액 자산가와 자영업자의 금고, 사설 카지노 등으로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근로자와 교포 등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갔거나 10만원권 수표 대신 어디선가 비자금으로 돌고 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5만원권이 악용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11년에는 전북 김제의 한 마늘밭에서 5만원권 22만장의 110억원대 뭉칫돈이 발견됐다. 이 금액은 인터넷 도박으로 벌어들인 범죄수익금이었다. 옷장과 침대 밑에 5만원권 지폐 22만장이 숨어있었다. 

당시 수사당국은 자신의 처남 등이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로 벌어들인 돈을 소유하고 있던 마늘밭에 숨긴 이모씨 등을 검거했다. 주범인 그의 처남 이모씨는 수배 중이다.

지난 2012년에는 서울 강남에서 유명 여성전문병원을 운영하는 여의사의 집에서 현금 24억원이 발견됐다. 이 의사의 자택에서는 5만원권이 가득 찬 박스와 가방들이 안방 장롱, 베란다, 책상 등에서 쏟아져 나왔다. 모두 탈세를 위해 빼돌린 돈이었다. 지난해에는 원전 비리와 관련돼 한국수력원자력 간부의 집에서 5만원권 6억원어치 뇌물이 발견됐다. 

이렇게 5만원은 보란 듯이 지하경제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5만원권이 깊은 곳으로 숨을수록 지하경제 규모는 더욱 커진다. 지하경제가 커진다는 것은 세금을 걷기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세금을 더 올릴 수밖에 없다. 5만원권이 지하경제 깊은 곳으로 숨어들수록 악순환은 되풀이되는 것이다. 유리지갑 월급쟁이들과 성실한 납세자들만 올라간 세금을 모두 떠안게 된다.
 

그런데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한국은행은 ‘5만원권 환수율 하락’이 경제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팔짱만 끼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5만원권이)어디에 잠겨있는지 부서마다 조사를 하고 있다”며 “아무래도 고액권이다 보니 지하경제로 들어갔을 확률이 커 추적이 어렵다”고 말했다. 5만원의 행방 추적에 사실상 손놓고 있는 모습이다. 

로비로 빠지고
해외로 빠져나가

5만원은 최고의 로비 수단이다. 부피와 중량의 효율성 때문이다. 무게가 가벼워서 이동이 쉽다.

로비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 건설사, 제약회사 등의 업체들은 5만원권 확보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5만원권을 많이 확보할 수록, 로비를 잘할수록 능력있는 직원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5만원권이 없으면 상품권으로 로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상품권은 5만원권보다 위험하다. 추적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5만원은 자금 추적으로부터도 안전하고 무게도 가볍다.

1억원은 5만원권 2다발로 무게가 2kg도 되지 않는다. 와인이 2병 들어가는 007가방에 보관해도 5억원은 충분히 들어간다. 그만큼 거액의 돈을 보관하거나 운반하는 게 쉽다. 가정용 금고는 보통 소형 사이즈도 10억원 정도는 들어간다. 자금 추적으로부터도 안전하다.

그래서 5만원권의 행방은 자주 뉴스거리로 등장하곤 한다. 뇌물 혹은 비자금 관련 소식이 주를 이룬다. 

지난 2012년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공개한 5만원권 100장 묶음 10개 다발이 대표적이다. 당시 장 전 주무관은 자신이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은폐 의혹을 폭로하려 하자 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이 5000만원을 주며 회유했다고 밝혔다.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전 회장은 5만원권 240장(1200만원)을 브로커에게 내고 중국으로 밀항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5만원권이 정치권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선거철을 맞아 5만원권이 뇌물로 빠지고 있다는 뒷말이 오간다.

경북도내에서는 선거법 위반 적발 사례가 4년 전 지방선거 때보다 크게 늘었다. 경북도선관위는 지방선거 91일 전인 5일 현재 도내에서 모두 171건의 선거법 위반 사례를 적발했다. 이는 2010년 지방선거 91일 전의 63건 적발과 비교하면 3배나 늘어난 수치다.


없어질수록 지하경제 확대
도박자금·비자금으로 활용
암암리에 해외로 퍼져 유통

또한 일부 5만원권은 해외로도 빠져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동포들이 국내에서 번 돈을 중국으로 가져가 위안화로 바꾸고 있다는 것. 옌볜 등 일부 지역의 사설 환전소는 국내보다 더 좋은 환전 조건을 제시한다.

중요한 변수는 환율이다. 옌볜에서는 위안화 대비 원화의 가치가 떨어질 때마다 5만원권이 인기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화가치가 다시 올라갈 것에 대비해 저렴할 때 원화를 사두려는 교포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교포들은 환전 조건이 한국보다 좋은 사설환전소에서 휴대가 편리한 5만원권을 바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내국인의 해외여행으로 5만원권이 빠져나가기도 한다. 한류에 의해 동남아 등에서 원화 환전수요가 높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외국 금융회사 원화 환전이 2006년부터 허용된 데 이어 해외 유출 원화에 대한 규제도 완화돼 이 같은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를 수치로 확인할 수는 없다.

위조지폐 활개
5만원 딜레마

5만원권 수요가 늘어난 만큼 위조지폐도 시중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지난해 적발된 5만원권 위폐만 100여건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 규모는 1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현금 거래를 하는 전통시장이나 편의점, 택시 등에서 위조지폐가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에는 울산과 경남지역에서 위조지폐들이 발견됐다. 울산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울산시 남구 삼산동 현대백화점 앞에서 남자 승객 2명을 내려준 택시기사가 요금으로 받은 5만원권이 위조지폐인 것을 확인했다. 택시기사는 남구 야음동 울산세관 앞에서 태운 승객들이 5만원을 요금으로 내 거스름돈 4만6000원을 줬다.

앞서 같은 날 남구 신정동 수암시장 앞에서도 하차한 남자 승객 2명이 5만원권을 요금으로 냈다가 택시기사가 지폐의 상태를 의심하자 다른 돈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승객들 말투가 중국동포(조선족)처럼 들렸다”는 택시기사들의 진술을 토대로 용의자를 쫓고 있다.

경남 남해군에서는 남해읍의 한 마트 직원이 물건값으로 받은 현금을 은행에 입금하는 과정에서 컬러복사기로 위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5만원권 한 장을 발견했다.

남해에서는 지난해 연말부터 5000원권과 5만원권 위조지폐가 4차례나 발견됐다. 경찰은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있으나 아직 범인을 붙잡지 못했다.

적발된 위폐 감별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불빛에 비춰 지폐 왼쪽 여백에 신사임당이 나타나지 않거나 나타나더라도 일그러지면 위조지폐다. 상하좌우로 움직였을 때 홀로그램 안쪽 태극마크가 움직이지 않아도 위폐다. 또 심하게 낡고 구겨진 5만원권은 위폐를 의심해 봐야 한다.

LG경제연구원 보고서는 캐시 이코노미(Cash Economy)의 증가에 대해 ‘지하경제 확대의 경고등’이라고 지적했다. 캐시 이코노미는 거래가 신용카드, 계좌이체 등이 아니라 주로 화폐, 즉 현금으로 이뤄지는 경제를 뜻한다. 캐시 이코노미는 지하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보고서는 5만원권이 사라지면서 한국 경제에서 캐시 이코노미가 확대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화폐개혁’가능할까 ‘경→조?’, ‘억→만?’

화폐개혁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정부는 이를 구체화한 대북 제안인 ‘드레스덴 구상’까지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 내부에서 리디노미네이션(화폐액면 단위변경) 검토 중이다. 특히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조(兆)를 넘어 경(京)단위 화폐통계가 실물경제 부분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자금 흐름을 보여주는 한국은행 자금순환표 상의 금융자산은 작년 말 1경263조원, 금융부채는 1경302조원으로 집계됐다. 최근 경 단위 화폐 통계의 확산은 무엇보다 경제 규모 증대에 따른 것이다.

한국은행은 외국인들에게 통계를 설명할 때 1000조원만 돼도 ‘1쿼드릴리언’(quadrillion, 1000조)이라는 생소한 영어 화폐 단위를 사용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통계 단위의 대부분이 10억(billion) 단위로 해결되고 최대치라도 조(trillion) 단위에 그친다. 이는 과거 5만원권이 나오기 직전 화폐액면 단위 변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액면 단위변경 검토

또한 화폐개혁은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구권을 신권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탈루된 현금 소득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에 묻힌 자금을 끌어내고 세수를 늘리는 데 화폐개혁이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감한 사항인 만큼 한국은행도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현 상황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 3월 인사청문회에서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시행 시 부작용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상당한 논란과 비용이 불가피한 화폐 단위 변경을 추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화폐개혁 움직임이 있었지만 매번 엎어졌다. 화폐개혁은 김영삼 정권 시절 한국경제에 파장을 일으켰던 금융실명제보다 더욱 강력한 수단이다. 화폐를 새로 만들고 물품 가격을 바꿔 표시하는 것은 물론 전국에 있는 은행 현금 지급기, 자판기 등 관련 기계와 각종 시스템을 모두 손봐야 하기 때문이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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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