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끝나지 않은' 해병대캠프 참사 뒷이야기

유족들 두번 울린 “별지 이면합의 있었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여객선 세월호 침몰 참사와 관련된 안타까운 소식이 연일 전해지면서 국민들의 슬픔이 가시지 않고 있다. 비통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바다에 갇힌 아이들이 떠올라 죄책감마저 든다. 전형적인 ‘인재’인 이번 사고는 지난해 발생한 사설 해병대캠프 실종 사고와 어느 정도 닮아 있다. 사고를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가 곳곳에서 드러났기 때문. 문제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뒷짐 지고 물러나 있다는 점이다. 해병대캠프 실종 사고로 인한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해 윗사람이 잘해야 아랫사람도 잘한다는 것. 이번 여객선 세월호 침몰 참사는 국가운영의 총체적 난국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발생한 사설 해병대캠프 실종 사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어떻게 보면 해병대캠프 실종 사고는 세월호 사고의 축소판인지도 모른다. 사고 중심에 있으면서도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와 닮은
해병대캠프 사고
 
해병대캠프 사고는 지난해 7월18일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서 열린 사설 해병대캠프에 참가했던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벗고 바다로 들어가라는 교관의 지시를 따르다가 깊은 갯골에 빠진 뒤 그중 5명의 학생들이 파도에 휩쓸려가 실종·사망한 사건이다.
 
세월호 사고 당시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한 선원들의 선내방송과 오버랩된다. 당시 갯골에 빠져 허우적대던 학생들은 교관들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쳐 애원했지만 교관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호각만 불 뿐이었다.
 

바다에 빠진 학생들이 믿은 건 친구뿐이었다. 학생들은 서로의 손을 연결해 갯골에 빠진 친구들을 구조해냈지만 끝내 5명은 물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교관들은 5명이 실종됐다는 학생들의 말을 무시한 채 “숙소에 있을 거다”라며 숙소를 찾아보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처신을 보이면서 구조할 시간을 허비했다. 그제서야 사고 30분 뒤 해경에 신고했다. 그리고  다음날 동틀 무렵, 첫 아이의 시신을 시작으로 마지막 아이까지 모두 바닷속에서 인양됐다. 아이들은 바다로 끌려들어간 지 하루 만에 원혼으로 육지로 돌아왔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고 책임자인 훈련교 김모(38)씨와 이모(31)씨, 그리고 교육훈련 본부장인 이모(44)씨 등 세 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금고 2년~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이 사고로 교육부는 사설 해병대캠프에 학생들의 참가를 금지하기로 결정했고, 해병대사령부 측도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하며 해병대캠프 상표등록을 신청했다. 난무하는 사설 해병대캠프를 없애기 위한 취지였다.
 
당시 공주사대부고 이상규 교장은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밝혔으나, 유족들은 사퇴가 아닌 파면을 원했다. 결국 이상규 교장은 서만철 전 공주대 총장(현 충남교육감 예비후보)에 의해 파면됐다. 그러나 사고 이후 희생자 유족들은 책임자 엄벌과 근본적인 재발 방지책 마련을 다짐한 정부의 약속 중 어느 것 하나 지켜지지 않았다고 호소하며 130여일 넘게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이 와중에 지난 2월17일 경주 마리나 리조트 체육관이 무너지며 부산외대 학생 등 10명이 목숨을 잃었고, 지난달 16일에는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며, 안산 단원고 학생 수백명이 사망·실종됐다. 이처럼 ‘학생활동’이 ‘죽음’으로 변모한 이유는 어른들의 무책임 때문이었다.
 
해병대캠프 사고 유족들은 “작년 7월 강압적인 훈련 속에서 구명조끼 없이 바다로 들어갔다가 5명의 학생들이 희생된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는 이러한 잘못된 군사교육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학생들이 희생된 지 300일이 돼 가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에 대해 전면 재수사를 실시하고 현장검증을 통해 사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며 관련 책임자들을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들은 정부가 여전히 군사훈련과 안보교육을 장려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소식에 동병상련의 눈물을 흘리면서 진도체육관을 방문해 세월호에서 실종된 단원고 학생 가족들을 위로했다. 또한 해병대캠프 참사에 대한 전면적인 재수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어린 원혼 만든

무책임한 어른들
 
애초에 해병대캠프 참가 학생들이 머물렀던 H유스호스텔은 돈을 벌고자 인근 앞바다를 이용해 이전부터 해병대체험을 실시해오던 해당 유스호스텔 건물을 인수했다. 그러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걸림돌이 생겼다. 바다를 사용해 돈을 벌기 위해선 공유수면점사용허가를 받은 후 해경에 수상레저사업등록을 해야 하는데, 허가기관의 이용협의 과정에서 제동이 걸렸다.
 
당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사익 추구를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H유스호스텔은 국립공원 경계를 조금 벗어난 곳에 다시 허가를 신청했고, 결국 ‘공유수면점사용허가’를 받아냈다. 그리고 해경은 H유스호스텔 앞바다 사용권(수상레저사업등록)을 허락했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를 통해 법적 문제없이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해병대체험 프로그램’이 그것. 문제는 학생들을 교육할 교관 채용이었는데 베테랑이 아닌, 갓 전역한 해병대 청년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하면서 문제를 만들었다.
 
결국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사고의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라”고 말했지만, 사정당국의 수사는 미적지근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해경 합동수사본부는 사고 발생 보름여 만에 서둘러 수사를 마무리했다. 사고 직후 지역 언론을 통해 ‘A사가 H유스호스텔의 실소유주다’는 정황이 알려졌지만 검·경 모두 A사에 대한 수사를 접은 채 사안을 매듭지었다.
 
검찰은 해병대캠프 진행 관계자 5명만 업무과실상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정작 H유스호스텔 측은 솜방망이 처벌만 받았다. 때문에 각종 의혹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러나 사고 책임자들은 부당을 주장하며 항소했고, 현재 대전고법에서 2심 재판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세월호 닮은꼴’ 사고 10개월째 갈등 여전
자식 잃은 슬픔과 합의 문제로 고통 나날
 
지난해 12월31일 발표된 금융감독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H유스호스텔은 A사의 종속기업이다. H유스호스텔은 청소년수련시설로 허가받은 4개동, 숙박용 2개동, 근린생활시설 6개동 등 모두 12개동의 건물로 이뤄졌다. 이 가운데 H유스호스텔 등이 소유한 건물은 단 3개동에 그쳤다. 지난해 7월 해병대캠프 사고 직후 A사에 대한 감사보고서를 살펴본 금감원은 A사가 H유스호스텔의 실소유주라고 설명했다. 사고 발생 4개월여 후인 지난해 11월, 정부는 A사 측에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해병대캠프 사고는 잊혀지는 듯 했지만 사고로 인한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합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지난해 공주대 측은 유족들에게 ‘이면합의’를 했다고 전해진다.

끊이지 않는 잡음
비리의 온상
 

지난해 7월24일 새벽, 서만철 전 총장, 교육부 사무관, 공주대부고동창회 관계자와 유가족 대표가 보상 등에 대해 구두 합의를 한 후 별지를 작성하여 서명을 했다는 것이다. 그 별지에는 국가보상금 외에 특별위로금 지급, 장학재단 설립, 의사자 지정, 공주대부고 명예졸업장 수여, 추모비 건립 등이 기재돼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보상 등과 관련해 약속 위반사항이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이에 유족 측은 크게 분노하면서 인권 침해 진정과 함께 거센 항의를 하며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내 합의해주는가 싶더니 결국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지만 합의는 여전히 미궁 속이다. 유족들의 합의 과정을 지켜본 관계자들은 원만한 합의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현재 유족들을 자식을 잃은 슬픔과 더불어 합의 문제로 2차 고통을 받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 문제의 전적인 책임이 공주대 측에 있는 건 아니지만,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 서만철 충남교육감 예비후보 측은 이면합의서에 대해 잘 모른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부처 간 떠넘기기가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가운데 이면합의를 내세운 것으로 알려진 서 후보 관련 논란도 적지 않다. 서 후보의 두 자녀가 외국인학교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서 후보의 두 자녀는 대전외국인학교(TCIS)를 졸업하고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이 지난 3월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전국제학교 학비는 1인당 연 5032만원으로 전국의 외국인학교 중 가장 비싼 편에 속한다. 이 학교는 2012년 국정감사에서 부유층 자녀가 다니는 학교라는 지적을 받았다. 공주대 총장을 역임하고 충남교육감 후보로 나선 서 후보가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보냈는데 어떻게 공교육의 수장을 맡겠냐는 비판이 나온다.
 
아들의 병역문제도 제기됐다. 서 후보의 아들은 2003년 미국국적을 선택하면서 병역 의무를 벗었다. 관련법에 따르면 남자의 경우 18세 전 국적포기 신고를 해야 병역이 면제된다. 서 후보의 아들은 2012년 6월, 대전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 후보의 장녀는 미국 국적을 유지하다가 2011년 한국 국적을 재취득했다. 미국에서 결혼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와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서 후보는 자신의 자서전인 <교육솔루션>을 통해 “(미국 유학시절에 자녀들이 태어나) 미국에서 출생신고를 하는 바람에 두 아이 모두 이중국적 상태였다”며 “한국으로 돌아와 미련 없이 두 아이의 미국 국적 포기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국 국적이 말소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국제학교를 졸업한 이후) 아이들이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싶다고 해 존중해줬다”며 “이렇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한국 교육제도와 미국교육제도를 비교 연구하고 나만의 교육 철학을 가다듬는 데에도 많은 보탬에 됐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 후보가 공주대 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교수 채용 비리가 연속적으로 발생하기도 했다. 2012년 음악교육과 교수 채용 비리로 전·현직 교수 4명이 구속 기소됐다. 같은 해 체육학과 교수 채용 심사 오류로 합격자 번복 사건이 발생했다. 2013년에는 공주대 산업과학대학 원예학과 교수 채용 관련 비리 의혹이 일어 교수들이 공주지청에 진정서를, 총장에게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서 후보는 독단적인 학교운영 등으로 학내 교수회의 불신임을 받기도 했다. 2012년 4월 공주대 교수회에서 총장불신임 투표를 진행하여 참여교수 65.5%가 찬성할 정도였다. 공주대 한 교수는 “서만철 전 총장과 관련된 비리가 수십 가지”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 공주대 교수들 대부분이 서 후보가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한다는 것.
 
비리로 얼룩진 공주대…구조적인 문제 부각
서만철 충남교육감 후보 둘러싼 의혹들 부상
 
비교적 최근에 논란이 된 ‘공주대 성추행 교수 사건’은 2012년 12월 미술교육과 재학생 26명이 2명의 교수로부터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하고 있다며 학교 상담실에 피해를 호소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피해 학생 중 4명이 고소하면서 가해 교수들은 2013년 4월 각각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그해 2학기, 수업을 그대로 진행하면서 공주대는 학생들의 수업 배제 요구를 묵살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은 이어졌다. 2014년 1학기 수업도 개설될 정도였다. 이때부터 언론이 관심을 가졌고 결국 가해 교수들은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게 됐다. 일각에서는 서 후보가 당시 교수들을 비호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서 후보가 총장직에 사퇴한 뒤에야 여론 악화를 이유로 징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공주대 운영 
무능력 도마
 
공주대 산학협력단을 둘러싼 의혹도 제기됐다. 현 충남교육감 김종성은 장학사 비리사건으로 구속된 상태다. 그는 1심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과 위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징역 8년형, 2심에서는 위계 공무집행 방해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받아 징역 3년형을 받았다. 특정 교사를 장학사로 뽑도록 지시한 혐의다. 
 
이 산학협력단은 서 후보가 총장 재직시절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산학협력단에 낙하산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2011년, 민주당 김유정 의원은 이러한 문제를 국정감사에서 지적했다. 김 의원은 교과부 국정감사에서 “휴직 중 국립대 산학협력단에 억대 연봉으로 취업해 사업비 수주 로비활동을 벌이거나 유관 연구소에 취업해 자문 역할을 하면서 억대 연봉을 챙겨온 교과부 공무원들이 수두룩하다”고 밝혔다.
 
당시 김 의원이 공개한 사례를 보면 먼저 한 국장은 휴직 전 연봉(8170만원)보다 46.9%(3830만원) 많은 1억2000만원에 1년간 공주대 산학협력단 연구협력본부장으로 취업했다. 그가 공주대 산학협력단과 맺은 고용계약서에 따르면 주당 2∼3일 근무에 월 1000만원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김 의원은 “연구협력본부장이란 직함이 국가 R&D사업을 따오는 영업이사로 취업한 것을 자인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공주대 산학협력단을 둘러싼 비리가 나오는 이유는 충남교육청의 각종 용역을 이 산학협력단이 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산학협력단을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도 나오고 있다. 앞서의 공주대 한 교수는 “서만철 비리와 관련해 검찰이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해 선거를 앞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군사훈련식 병영체험, 무엇이 문제인가?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을 제외한 16개 시·도의 병영체험 참가 학생 수는 11만1300여명에 이른다. 윤명화 서울시의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 시내에서만 병영체험에 참가한 학생 수는 3만5500여명에 이른다. 또한 지난 3년간 국가보훈처를 통해 체험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약 30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이러한 훈련 속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불합리한 제도와 반인권적 처우에 정당한 이의를 제기하는 법이 아니라 순응하는 법만을 배우게 된다”며 “사회의 부조리에도 ‘침묵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관리자들의 무책임한 선내 방송에 순응하다 희생당한 학생들은 전체주의적인 규율문화에는 익숙했지만, 재난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구체적인 방법 그리고 상황에 대처할 비판적 사고와 자율적 결정 능력 발휘와 관련해서는 국가로부터 제대로 교육받은 적도 훈련한 적도 없는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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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