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중단 '수학여행 잔혹사'

추억 만들러 갔다가…돌아오지 못한 학생들 '왜?'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세월호 침몰 사고 후 수학여행에 대한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교육부는 전국의 초·중·고교 1학기 수학여행을 전면 중지하는 방침을 내렸다. 이와 동시에 수학여행 존폐 논란이 한창이다. 수학여행의 운명은 오리무중이다. 그간 단체 이동 중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수학여행의 기록을 되짚어봤다. 
 
최근 3년간 수학여행 중 발생한 사고가 576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실에 따르면 2011∼2013년 각급 학교가 수학여행 중 발생한 사고로 학교안전공제회에서 보상받은 건수가 576건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학교가 접수하지 않은 사고까지 고려하면 사고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수학여행 중 일어난 대형 참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죽음 부른
비극적 결말
 
모산 수학여행 참사는 1970년 10월14일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모산역(현 배방역) 부근에서 건널목을 건너던 관광버스가 열차에 부딪혀 일어난 사고다. 당시의 사고 버스는 서울 경서중학교 3학년 학생 77여 명을 태우고 현충사에 소풍갔다 귀경하던 도중이었으며, 모산역 북쪽에 위치한 이내건널목을 지나던 중 서울발 장항행 열차에 버스 왼쪽을 들이받힌 채 약 80여 미터 가량 밀려가면서 연료통이 폭발, 불길에 휩싸였다.
 
사고 원인으로는 여행 분위기에 심취한 학생들이 심한 소란을 피움으로서 운전기사의 주위 집중력을 저하시킨 데에서 야기된 혼란으로 운전기사가 경보기 신호를 무시하고 건넜던 점이 결정적이었다. 또한 승차정원 초과, 안전 지도 책임교사가 단 한 명도 승차하지 않았던 것도 원인이었다.
 

당시 사고 장소의 건널목은 경보기만 설치되어 있을 뿐 차단기도 없고 안전 책임관도 없는 3등급 철도 건널목이었다. 자동차 운전자가 주의하기에 부족한 문제점이 있었다. 사고 버스 운전기사도 사망 당시 57세의 고혈압 환자로 장거리 운행에 부적합한 상태임이 드러났다. 설상가상으로 관광버스 운전기사가 음주 운전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 사고로 학생 45명과 운전기사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30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2명만 피해를 입지 않았다. 사고 버스는 완파 및 전소되었고 기관차도 일부가 화재에 소실되었다. 장항선 열차 상하행선 모두 사고 순간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전면 불통됐다.
 
사고를 당한 경서중학교는 5일 동안 임시 휴학 조치가 내려졌으며, 사고 발생 수 일이 지나 원주 삼광터널 열차 충돌 사고가 발생하면서 전국 중 고등학교 수학여행이 전면 금지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이 사고로 경서중학교 교장 등 4명의 교직원이 파면되고 8명이 해직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사고를 낸 관광버스 회사에 대해 사업자 면허 취소 처분을 내렸고, 책임을 들어 당시의 서울 교육감의 사표를 수리한 데 이어 서울 철도국장이 제출한 사직서를 수리하는 등 철도계 내부에서도 인사 조치가 이루어지는 일도 벌어졌다.
 
부일외고·경남중 안전불감증 사고 터져 
최근 3년간 사건 576건 “남 일 아니다”
 
앞서 언급된 원주 삼광터널 열차 충돌 사고는 1970년 10월17일 삼광터널 안에서 수학여행 학생단을 태운 열차가 맞은 편에서 오던 화물열차와 정면충돌해 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야기한 사고다.
 

당시 사고를 당한 열차는 인창고교 2학년 학생 430명과 보인상고 185명 및 보성여고 110명 등의 서울 시내 3개 고등학교 학생과 교사를 태우고 청량리역을 떠나 제천역으로 가던 6량 단위의 제77호 보통열차였다. 이 열차는 당일 청량리역을 출발해 울산 공업단지 및 경주 수학여행을 할 계획이었다.
 
인창고 학생들은 1호차에서 3호차를, 보인상고 학생들은 4호차에서 5호차를, 보성여고 학생들은 6호차에 승차하고 있었으며, 충돌을 한 화물열차는 제1508열차로 화차 28량 편성으로 석탄과 목재를 싣고 제천역을 떠나 청량리역으로 가던 중이었다.
 
원주역을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사고 지점인 삼광터널을 지나가게 되었으며, 터널 끝단에서 화물열차와 충돌하면서 발생한 반동으로 기관차 위로 객차가 올라타면서 대파되어 많은 인명 피해를 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
전면 폐지가 능사?
 
결정적인 사고 원인은 열차 집중 제어장치(CTC)의 조작 착오로 밝혀졌다. 사고를 낸 CTC는 1968년에 당시 물가 기준으로 약 9억원의 비용을 들여 설치, 가동하기 시작한 설비이며, 열차를 집중 제어하는 임무를 가진 망우지휘탑 상황판에서 사고 직전 두 열차의 충돌 조짐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관사에게 제대로 통보하지 않아 사고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원인을 조사하던 철도 당국과 원주경찰서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였던 CTC 신호 사령장, 조정자 등 2명의 철도 직원을 직무 태만과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긴급 구속했다. 이 참사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수학여행 자체가 금지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또한, 사고가 발생하였던 삼광터널은 현재 원주터널로 명칭이 변경되어 있다.
 
추풍령 경부고속도로 연쇄추돌 참사는 2000년 7월14일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 추풍령 고갯길에서 부산 부일외국어고등학교 수학여행단을 태운 버스 2대와 고속버스 1대, 5톤 트럭 1대, 승용차 3대 등 8대가 연쇄추돌한 사고다. 이 사고로 총 18명이 사망했고 100여 명이 부상당했다. 순식간에 8대의 차량이 추돌사고에 휘말리며 좁은 2차선 도로상에 뒤엉켰고, 승용차에서 치솟은 불길이 삽시간에 옮겨붙어 버스 2대와 승용차 3대, 트럭 1대가 전소되는 등의 대규모 화재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커졌다.
 
당시 사고로 경부고속도로가 2시간 동안 전면 통제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양방향 20km 이상의 정체 행렬이 이어졌다. 이러한 정체 행렬은 경부고속도로 역사상 최초였다. 당초 285명의 학생과 인솔교사 9명 등으로 구성된 부일외고 1학년 수학여행단은 7월11일 7대의 전세버스를 이용해 3박4일 일정으로 설악산과 통일전망대 등 강원도 일대와 용인 에버랜드 등을 둘러보는 여행 일정을 모두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가던 중 참사를 당했다. 사망자 18명 중 14명이 부일외고 학생들이었으니, 부일외고 참사 피해 규모가 가장 컸다. 사고 다음 날 부일외고는 임시 휴교령을 내렸고 교내에서 합동영결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침울한 분위기를 수습하고자 조기 여름방학을 실시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세월호 침몰에 올스톱
 
사고 원인으로는 안전거리 미확보가 꼽혔다. 사고 당일 노면이 미끄러웠던 데다 S자 커브 내리막길 구간에서 차량들이 과속을 일삼았던 것이다. 사고 이후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고갯길에서의 과속 단속이 대폭 강화됐다. 또한 예산 확보 문제로 미루어졌던 추풍령 고갯길의 왕복 6차로 확장 및 선형개량 공사가 급속도로 추진됐다. 사고 현장이었던 기존 고갯길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더불어 전세버스 운행과 관련된 안전 규정도 대폭 강화되어 2대 이상 운행 시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하는 등 대열운행이 전면 금지되고 버스 5대 이상 또는 200명 이상의 단체 이동 시 주최 측에서 요청할 경우 경찰의 호위가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은 오늘날에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전세버스의 대열운행은 버젓이 계속되고 있다.
 
먼 곳으로 여행갈 기회가 흔치 않았던 시절, 수학여행은 특별한 의미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수학여행지는 열차를 이용한 경주행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설악산, 제주도 등 여행지가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중국·일본 등 해외 수학여행도 늘었다. 본래 취지가 퇴색되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여행은 여전히 학생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볼 때 수학여행 때만큼 진한 추억을 안겨주는 것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학여행 사고는 그동안 빈번하게 발생해 왔다. 대부분 안전불감증이 낳은 사고였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정부는 ‘수학여행 금지령’을 내렸다. 동시에 수학여행 존폐 논란이 일고 있다. 첨예한 찬반 논쟁이 예상된다.

“가야”vs“말아야”
존폐 논란 한창
 
한편, 수학여행에 대한 정부의 지침을 두고 일각에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수학여행 일정 취소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바로 학교와 여행사 간 커넥션 의혹이다. 수학여행 계획 전 학교 측이 여행업체로부터 뇌물을 받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것. 그래서 일부는 이번에 정부가 내린 수학여행 금지령이 달갑지 않다고 한다.
 
 
<khlee@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