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밝혀진' 국회의원 비서 살인사건 전말

단돈 500만원 받고 “죽여줬다”

[일요시사=사회팀] 단순 변사사건으로 처리됐던 전직 국회의원 비서(경기도 부천 모 재건축조합 감사) 사망 사건이 10년 만에 청부살인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인천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 재소자로부터 제보를 받고 2개월간 설득해 진술을 이끌어 낸 뒤 변사사건 기록을 재검토했다. 끈질긴 수사 끝에 변사가 아닌 살인사건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의 전말을 공개한다.

10년 전 단순 변사로 종결된 사건이 검찰의 끈질긴 재수사 끝에 청부살해 사건인 것으로 밝혀졌다. 국회의원 비서 출신의 한 아파트 재건축 조합 감사를 청부살해한 일당이 검찰에 붙잡혔다.

지난달 3일 인천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정규영)는 평소 갈등을 빚던 아파트 재건축 조합 감사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강도살인)로 경기도 부천의 전 재건축 조합장 A(59)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A씨의 지시를 받고 범행에 가담한 택시기사 B(47)씨 등 2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재건축 갈등

검찰에 따르면 A씨 등은 지난 2004년 5월11일 오후 9시10분께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의 한 아파트 인근에서 귀가하던 재건축 조합 감사이자 전 국회의원 비서관 B(당시 45세)씨를 둔기로 2차례 때려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A씨는 평소 자주 찾던 게임장에서 알게 된 C씨에게 현금 500만원을 주고 범행을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C씨는 친구 D(39)씨와 함께 B씨의 아파트 인근에서 잠복했다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시각 A씨는 경찰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다른 장소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등 알리바이를 만들었다. B씨는 조합 감사를 맡기 전 지난 1991년부터 2004년까지 4선 국회의원 등의 비서와 정책실장을 지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경찰은 B씨가 재건축 조합 내에서 A씨와 갈등 관계였다는 사실을 파악했지만, 구체적인 범행 증거를 찾지 못해 지병으로 인한 단순 변사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이들의 범죄는 인천구치소에 수감된 한 남성이 검찰에 제보하면서 밝혀졌다.

검찰은 올해 초 인천구치소에 수감된 한 재소자를 통해 ‘C씨 등 2명이 돌로 재건축조합 감사의 머리를 때려 살해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검찰은 제보자의 진술을 확보한 뒤, B씨의 변사 사건 기록을 재검토하고 A씨의 통장 거래 내역 등을 파악해 이들을 검거하게 됐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은 원한 관계와 단돈 몇 백만원에 살인이라는 범행을 서슴없이 저질렀다”며 “이후 재판에서도 공소 유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단순변사 결론 이후 청부살인 확인
재소자 제보로 재수사…용의주도 범행 드러나

10년 전인 2000년 설립 인가를 받은 경기도 부천 모 아파트의 재건축 조합장 A(59)씨에게 조합 감사 B(당시 45세)씨는 가시 같은 존재였다. 1991년부터 2004년까지 국회의원 3명의 비서와 정책실장을 지낸 B씨는 2004년 사표를 쓰고 재건축조합 감사를 맡았다. 감사였던 B씨는 회의 때마다 번번이 A씨에게 딴죽을 걸었다. 당연히 A씨는 체면이 구겨진다고 생각했다. 이후 둘은 앙숙이 됐다. B씨는 언제나 감사일에 충실했다. 반면 A씨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들은 조합비 지출 등 조합 운영 문제를 두고 사사건건 부딪혔다. 어느 날 B씨가 조합 이사회 회의에서 ‘무능하다’며 A씨에게 조합장을 그만두라고 소리쳤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A씨는 평소 자주 찾던 부천 상동시장 인근 게임장 직원 C(47)씨에게 현금 500만원을 주고 검은 거래를 제안했다. B씨가 조합 회의에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강도로 위장해 B씨를 폭행하라고 지시했다.
 

B씨의 얼굴 사진, 집 주소, 귀가 시간 등도 미리 알려줬다. 2004년 5월11일 C씨는 태권도 유단자인 친구 D씨(39)를 끌어들여 B씨의 집 앞에서 숨 죽이며 잠복했다. 이들은 오후 9시10분께 조합 회의를 마치고 귀가하던 B씨가 아파트에 나타나자 둔기로 머리를 2차례 때려 혼수상태에 빠지게 한 뒤 달아났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B씨의 생일이었다.

B씨는 출동한 119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10일 뒤 심정지에 의한 뇌손상으로 결국 숨졌다. 당시 경찰은 B씨와 평소 갈등을 빚던 A씨를 의심하고 범죄 연관성을 수사했지만 치밀한 A씨의 사전 준비를 알아채지 못했다.


A씨는 C씨가 범행을 저지를 시각을 계산한 뒤 인터넷에 접속해 온라인 게임을 했다. 범행 당시 다른 장소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려는 의도였다. 부검의도 두개골 골절보다는 관상동맥 경화로 흔히 일어나는 심장질환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사건 현장에서는 범행에 사용된 깨진 돌멩이가 발견됐지만, 사건을 맡은 경찰은 감식 의뢰를 하지 않았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유족도 당시 타살 가능성에 대해 의심했지만(경찰 조사) 결과가 지병에 의한 사망으로 나와 냉가슴만 앓았다”며 “당시 철저하게 수사를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B씨가 지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고 졸지에 수입이 없어진 가족들은 셋방살이를 전전하면서 10년 동안 모녀가정을 지켰다. 그러나 10년 만에 사건의 진실이 알려지면서 미제사건이 풀림과 동시에 가족들에게도 작은 희망이 생겼다.

잠복하다 둔기로

검찰은 B씨가 사망한 뒤 혼자 딸을 키우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족을 위해 피해자지원센터와 연계해 생계비 1000만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피해자보호법에 따른 유족지원금도 알아봤지만 사건 발생 후 최대 5년인 청구기간이 이미 지나 불가능했다”며 “그래도 유족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 준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경찰동료 청부살인, 왜?

지난달 2일 대구지방검찰청 형사3부는 빚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시켜 전직 경찰동료를 살해하게 한 장모(40)씨를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또 장씨의 청부를 받고 살인을 저지른 배모(33)씨를 같은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장씨는 전직 동료 경찰관인 PC방 업주 이모(48)씨가 빚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씨에게 “이씨를 살해하면 채무를 탕감하고 3000만원을 주겠다”고 제시해 배씨가 지난 2월 중순 이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장씨는 칠곡경찰서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알게 된 이씨에게 억대의 돈을 빌려준 뒤 돌려받지 못하자 보험금을 노리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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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