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신흥재벌 '왕서방' 추적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4.02.25 11: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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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부호와 모종의 거래

[일요시사=사회팀] 개인자산만 3조원이 넘는 중국의 대부호가 케이먼 군도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이 부호와 함께 나란히 유령회사에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린 한 사업가가 있었다. 최초 중국인으로 알려졌던 이 사업가는 확인 결과 한국인 왕모씨로 밝혀졌다. 서울과 중국을 오가며 옷 장사를 하고 있는 왕씨. 왕씨는 왜 중국인과 함께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던 것일까.




페이퍼컴퍼니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정·재계를 아우르는 유명인사들은 케이먼 군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여기서 조세피난처는 실제 발생한 법인 소득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에 대해 조세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나 지역을 뜻한다. 또 대부분의 조세피난처는 모든 금융거래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개인이나 법인 입장에서 '검은돈' 조성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갖는다. 때문에 조세피난처에 세워진 페이퍼컴퍼니는 불법적인 비자금 운용이나 탈세를 위한 창구로 의심받는다.


중국인? 한국인!


앞서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 작업한 결과물을 공개하면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은 모두 245명"이라고 밝혔다. 공개된 명단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재국씨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지낸 이수영 OCI 회장, 연극배우 윤석화씨 등 각계 유력인사가 대거 이름을 올렸다. 사회 고위층의 집단 탈세 의혹에 여론은 들끓었다.

그러나 열에 아홉은 "모르는 일”이라고 혐의를 잡아뗐다. 또 이들은 "명의만 빌려줬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세금을 회피할 목적이 아니라면 그들은 왜 이름도 생소한 작은 섬나라에 계좌를 개설해야 했을까.


지난달 24일 <뉴스타파>는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32명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추가된 한국인 명단에는 선궈쥔 인타이그룹(이하 인타이) 회장과 함께 케이먼 군도의 유령회사 '이소 인터내셔널(ESSO International (Group) Ltd)' 공동 이사로 등재된 한국인 왕모씨가 있었다. <뉴스타파>는 왕씨를 서울 강남에 있는 수출업체 대표라고 설명했다.

인타이는 중국 내 유통·부동산 업계의 강자로 국내에선 롯데그룹의 중국 현지 파트너로 잘 알려져 있다. 앞서 롯데그룹은 인타이와 합작으로 '인타이롯데백화점'을 베이징 등에서 운영했지만 실패한 뒤 지금은 파트너십을 해지한 상황이다.

인타이그룹의 총수 선궈쥔 회장은 개인자산만 29억달러(약 3조1000억원)로 추정되는 중국 내 손꼽히는 갑부다. 지난해 그는 '중국의 스티브 잡스'로 알려진 마윈 전 알리바바 회장과 함께 물류회사 '차이냐오 네트워크 테크놀로지'를 설립,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선궈쥔 회장은 마윈 현 차이냐오 회장이 만든 중국 내 그룹 총수들의 사교모임 '강남회'의 창립멤버로 소개됐다. 중국 재계에서 선궈쥔 회장의 남다른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의류무역업자 왕모씨 수상한 행보
3조 갑부와 손잡고 유령회사 설립


그런데 한국인 왕씨는 이런 선궈진 회장과 어떤 연유에서인지 2007년 5월 케이먼 군도에 '이소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회사를 설립했다. '이소 인터내셔널'의 이사는 법인을 빼고 모두 3명이며, 이 가운데 왕씨가 포함됐다고 <뉴스타파>는 전했다. 또 <뉴스타파>는 "왕씨의 주소지가 중국으로 기재돼 있었지만 'JR28'로 시작되는 한국 여권번호(종로구청 발행)를 확인했고, 여권에 기재된 왕씨의 국적이 한국이었다"고 확인했다.

그렇다면 문제가 된 왕씨는 도대체 누구일까. <일요시사>는 왕씨가 무슨 연유로 유령회사를 설립했는지 궁금했다. 우선은 왕씨가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수출업체 A사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A사는 '영 캐주얼 여성복 브랜드'를 갖고 있다. 해당 브랜드는 중국 내 서버로 운영되는 자체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적힌 브랜드 소개를 보면 '한국 브랜드'라고 명시돼 있다. 즉 왕씨는 자신이 런칭한 브랜드를 중국으로 수출하는 의류·무역업자다.


패션계 복수 관계자에게 A사를 물었다. 그러나 "알지 못한다"는 답을 들었다. 대신 그들은 "본사는 한국에 있지만 중국에 공장을 갖고 있는 업체가 꽤 많다"고 말했다.

A사는 2006년 2월 서울 강남에서 자본금 30억원 규모로 도매업을 시작했다. 사원수는 200명, 업종은 의류·원단·무역으로 소개됐다. 이로부터 1년 뒤 A사는 인근 건물 3층으로 등록주소를 옮겼다. 그리고 현재는 다른 법인명으로 고급 빌딩 2층에 자리하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A사의 설립과 법인명 전환이 페이퍼컴퍼니가 설립된 2007년 전후로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정리하면 왕씨는 ▲2006년 2월 A사를 설립한 뒤 ▲2007년 5월 페이퍼컴퍼니의 등기이사가 됐고 ▲2008년 4월 국내 법인명을 전환했다. 여기서 A사의 법인명과 역외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의 법인명은 동일했다.

또 2008년 4월 왕씨는 A사의 법인명을 변경한 것이 아닌 자본금 1억원 규모의 다른 회사(이하 B사)를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A사의 업무가 B사로 이관된 것으로 보인다. 즉 국내에 있던 A사를 해외로 넘긴 뒤 이름만 다른 B사를 새로 만들면서 세무당국의 추적을 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2013년 기준 B사는 등록된 회사 규모가 A사보다 1/20로 작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유명 성형외과가 밀집한 강남의 한 번화가. 기자는 A사가 최초로 임대했던 건물을 찾았다. 그러나 사무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건물을 임대하고 있는 곳은 의류업체였다. 이후 기자는 업체 관계자와 통화했지만 "모른다"는 말만 들었다.

B사가 사무실로 썼다던 다른 건물을 찾았다. 얼마 전까지 B사는 건물 2층과 3층을 사용했는데 건물 3층은 비어있었으며, 중국집 전단지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2013년 10월부터 전기료가 일부 미납된 것도 보였다. 인근 부동산 업자는 해당 건물 임대료가 "보증금 2000만∼2500만원에 월 150만∼200만원 선"이라고 귀띔했다. 생각보다 큰 금액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현재 B사가 있는 빌딩을 찾았다. 직원 3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직원들은 일체의 답변을 거부했다. "말할 게 없다. 빨리 나가시라"며 등을 떠밀었다.


"말할 게 없다"


B사의 브랜드는 중국내 70∼80개의 매장에 입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현지에서 유통업을 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이 같은 대량 입점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인이) 중국산 제품을 한국으로 들여와 역수출하는 건 흔한 경우지만 한국인이 중국 현지에서 시장을 직접 노리는 건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왕씨는 현재 중국 현지에 수백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사세를 확장 중이다.

한국에서 A사가 설립될 당시 실무를 맡았던 ㅅ씨는 특이한 이름 때문에 중국인이란 의혹을 샀다. 그러나 한 관계자는 "확인 결과 중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답했다. 왕씨와 비슷한 경우다. ㅅ씨의 유일한 연락처로 남아있는 이메일은 없는 계정으로 확인됐다. 이어 기자는 A사와 B사에서 일했던 복수 관계자에게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을 받을 수 없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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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