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 감도는 검찰 폭풍전야 막후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4.01.07 15: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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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 vs 특수 '칼자루 전쟁' 터진다

[일요시사=사회팀] 지난 2012년 사상 초유의 '검란' 사태로 위기를 맞았던 검찰은 2013년에도 '정치권력의 시녀'란 오명을 끝내 벗지 못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이 터지면서 순항 중이던 검찰은 태풍 속에 놓였다.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 외압 논란, 윤석렬 여주지청장의 정직 징계 등 봉합되지 않은 조직내부의 갈등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제 관심은 조직의 명운을 짊어진 김진태 검찰총장과 청와대의 칼자루가 어디로 향할지다.




박근혜정부 1년 동안 검찰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겨냥한 미납 추징금 수사로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검찰은 조직의 수장인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혼외아들 의혹에 휩싸이며 격랑의 한 가운데 섰다.

앞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검찰총장 찍어내기'와 '수사 외압 시비'에 휘말리며 내홍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케 했다.

채동욱 떠난 검찰
정치검사 부활하나

박근혜정부는 지난 1년 동안 국정원, 경찰, 국세청, 감사원을 차례로 접수했다. 그리고 5대 권력기관의 중추인 검찰도 종국엔 박근혜정부의 수중에 놓였다. 역대 정권마다 반복된 '검찰 길들이기' 관행은 이번 정권에서 똑같이 되풀이됐다.

민주화 이후 검찰의 칼자루를 쥔 진영은 늘 역사의 승리자가 됐다. 이 같은 배경으로 지방선거를 앞둔 올해에는 검찰권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정치권은 새해 벽두부터 검찰 개혁을 화두로 팽팽한 줄다리기를 예고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달 상설특검·특별감찰관제 도입을 위한 법안심사소위를 수차례 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기도 한 상설특검·특별감찰관제 도입은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맞물려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여야는 검찰 개혁의 상징인 상설특검·특별감찰관법 연내 처리에 실패했다. 대신 이들은 진통 끝에 한 장의 합의서를 마련했다. 합의서에는 "올 2월 임시국회에서 상설특검 및 특별감찰관제 입법과 관련해 진정성을 갖고 합의·처리한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따라서 검찰 개혁의 향배는 다가올 2월이 돼야 명확한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인다.

GH 권력기관 차례로 장악…'길들이기'성공
베일 벗은 상설특검·특별감찰관 두고 정쟁

지난 대선 과정에서 검찰 개혁은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었다. 상설특검·특별감찰관제 도입은 검찰 개혁의 연장선상에서 풀이됐다. '정치권력의 시녀'란 오명 속에 있던 검찰을 '독립된 수사기구'로 견제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 1급 고위공직자가 상시 감찰의 대상으로 지목됐다. 감찰의 주체인 특별감찰관은 살아있는 권력의 목줄을 쥘 수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입법화를 위한 논의 과정에서 정치권은 슬그머니 개혁의 꼬리를 내렸다.

먼저 새누리당은 "대통령(행정부) 소속인 특별감찰관이 국회의원(입법부)과 법조인(사법부)을 감찰하는 것은 삼권분립 정신에 위배된다"는 논리를 폈다. 때문에 새누리당은 국회의원과 법조인을 감찰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공약 후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당은 얼마 전까지 새누리당의 주장에 동조했다가 뒤늦게 국회의원도 감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특별감찰관의 권한을 놓고 계좌추적, 통신내역 조회, 현장조사 권한 등 실질적인 조사권을 모두 빠뜨림으로써 입법 취지를 약화시켰다.


공안정국 조성
검찰이 앞장서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견제할 것으로 기대됐던 상설특검제 역시 기존 특검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어 '무늬만 특검'이란 비난을 듣고 있다.

원래 상설특검제는 ▲특별감찰관이 고위공직자의 위법행위를 적발하면 ▲특별검사가 검사에 준하는 권한을 갖고 ▲권력의 외압 없이 수사에 착수하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하지만 협의 과정에서 여야는 특별검사가 별도의 조직과 인력을 거느리고 있는 '기구특검안'을 폐기했다. 대신 필요할 때만 소집되는 '제도특검안'으로 잠정 합의했다. 입법 취지인 '상설'이란 말이 무색해진 셈이다.

더구나 새누리당은 특검 발동의 요건으로 법무부장관의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사실상 검찰권에서 분리되지 않은 형태의 특검인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놓고 보면 상설특검제는 결국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정권 고강도 사정작업 전망
주가조작·불법대출·자원외교 도마

정치권이 매스를 잘못 댄 사이 검찰은 '채동욱 색깔'을 지우고, 청와대가 보기에 흡족한 조직으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달 박 대통령은 김진태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전달하면서 "헌법을 무시하거나 자유민주주의까지 부인하는 것, 이것에 대해서는 아주 단호하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서 그런 생각은 엄두도 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김 총장은 자신의 취임식에서 "공동체의 안녕질서를 위협하는 불법 집단행동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라"고 화답했다. 또 최근 있었던 신년사에서는 "법과 원칙은 집단적 위력이나 불법 앞에서 굴복하거나 적당히 타협해서는 안 되며, 어떠한 주장이든 법의 테두리 내에서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총장은 철도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중요한 시험대에 놓였다"는 표현도 썼다. 박근혜정부의 국정기조와 묘하게 일치하는 대목이다.

지난달 19일 단행된 검찰 고위간부 인사는 이런 검찰 안팎의 분위기를 십분 드러냈다. 검찰 서열 '넘버2'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에는 김수남(사법연수원 16기) 전 수원지검장이 낙점됐다.

김 지검장은 지난해 7월 수원지검장으로 취임한 후 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연루된 통칭 'RO사건'을 지휘하며 청와대의 마음을 샀다. 김 지검장은 대검 중수3과장,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지낸 특수통이지만 광주지검 공안부장 등을 역임하며 공안수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김 지검장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미네르바(박대성씨) 사건'을 지휘한 경력으로 시민단체가 선정한 '검찰권 오·남용 검사'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때문에 공안수사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는 박근혜정부와 합이 맞을 것이란 평가다.

공안통 약진
국보법 만지작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장 정도의 인사면 청와대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이번 인사에서 마지막까지 김 지검장과 경합한 최재경(사법연수원 17기) 인천지검장은 능력은 좋지만 과거 한상대 전 총장과 각을 세운 게 마이너스가 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 지검장은 현직 최고 특수통으로 채 전 총장과 함께 범MB인사로 분류된다. 때문에 청와대 입장에서 요직을 맡기기에 부담스러웠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최 지검장은 이번 검찰 인사에서 고검장 승진이 좌절됐다.

특수통은 된서리를 맞았지만 공안통들은 대거 약진했다. 대전고검장으로 승진한 김희관(사법연수원 17기) 전 부산지검장은 검찰 내 손꼽히는 공안통이다. 그는 대검 공안기획관과 서울중앙지검 내 공안 부서를 총괄하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 등을 역임했다.

또 울산지검 공안부장을 지낸 조성욱(사법연수원 17기) 서울서부지검장은 광주고검장으로, 대검 공안부장을 지낸 임정혁(사법연수원 16기) 전 서울고검장은 신임 대검차장으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


대검 공안기획관 시절 '전교조 시국선언' 수사를 했던 오세인(사법연수원 18기) 대검 공안부장은 반부패부 초대 부장으로 임명된 지 2주일 만에 영전한 케이스다. 오 부장은 중앙지검 2차장, 중앙지검 공안1부장, 대검 공안2과장 등을 지낸 대표적인 공안통이다.

이처럼 공안통들이 검찰 내 요직을 꿰차면서 공안사건의 비중 역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 대법원 통계도 있다.

지난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모두 102명이다. 이는 10년 동안 가장 많은 수치다. 연도별로 보면 2004년 71명이었던 기소 인원은 이듬해 36명으로 줄었다가 2009년까지 3∼40명 안팎을 유지했다. 그러나 2010년 60명으로 증가한 후 2011년 74명, 지난해 98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또 지난해 국가보안법 사건 중 무죄가 선고된 사람은 모두 4명으로 2006년 참여정부의 0명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하지만 검찰이 공안사건만 주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검찰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2014년 검찰수사는 투트랙이 가동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형 공안사건을 축으로 특수부가 주도하는 이명박정권에 대한 사정이 동시에 이뤄질 것이란 설명이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대표적인 특수사건으로는 효성그룹의 탈세 사건, 동양그룹의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사건, 이석채 전 KT 회장의 배임 사건 등을 꼽을 수 있다.

'날개 단' 공안
'절치부심' 특수
투트랙 가동된다

사안 별로 보면 효성그룹의 탈세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조석래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되자 불구속 기소로 사건을 전환, 법리검토를 고심하고 있다. 또 검찰은 조현준 사장과 조현문 전 부사장, 이상운 부회장 등 오너 일가에 대한 처벌 여부를 놓고 적절한 수위를 검토 중이다.

동양그룹의 사기성 CP 발행 및 판매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현재현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수사팀은 동양그룹 사건이 대규모의 투자자 피해를 양산하고 사안이 중대한 점 등을 고려해 현 회장에 대한 구속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의 배임 의혹 등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도 1월 내에 수사를 종결한다는 방침이다. 앞선 이 전 회장을 4차례 소환조사한 수사팀은 1월 중순께 구속영장을 청구해 이 전 회장의 배임 혐의 등을 입증할 계획이다. 특히 이 전 회장의 이번 배임 사건은 야권의 유력 정치인과 연결된 비자금 수사로 확대될 수 있어 그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고위층 및 거물 정치인이 연루된 주가조작 의혹, CNK 주가조작 수사, 국민은행 도쿄지점 불법대출 수사 역시 관심의 대상이다. 더불어 검찰은 이명박정부의 자원외교와 관련한 내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위 사건들은 모두 지난 정권의 실세들과 연결돼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미제사건 수두룩
MB 사냥 나설까

비교적 정권으로부터 자유로운 특수수사와 달리 공안수사는 정국의 또 다른 블랙홀이 될 전망이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에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무단 열람·유출 의혹 사건, 국정원 여직원 감금 의혹 사건 등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새롭게 부임한 김 지검장의 판단에 따라 해당 사건들은 특정 정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검찰 안팎의 분위기는 "청와대의 기대를 저버릴 수 있겠냐"는 쪽으로 쏠린다. 즉 야당에게 유리한 수사결과는 아닐 것이란 예측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했다. "진보진영을 상대로 한 대형 공안사건이 올 지방선거 전 반드시 터질 것"이란 전언이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첩보 형태로 나돌았던 진보진영 유력 정치인의 정치자금 수사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내사가 종결됐다는 얘기도 조심스레 나온다. 죄가 있으면 따지는 게 검찰의 역할이라지만 '정치권력의 시녀'란 오명을 벗기엔 풀어야 할 오해가 너무 많아 보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검찰 '셀프 개혁' 어디까지?

'바꾸긴 바꿔야 하는데…' 반부패부 특수4부 신설

정치권 안팎에서 검찰에 대한 개혁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검찰이 자구적인 조직 개편을 통해 쇄신을 진행 중이다.

먼저 지난 4월 간판을 내린 대검찰청 중수부는 '반부패부'로 조직의 명칭이 변경됐다. 반부패부는 중수부와 달리 직접적인 수사 기능이 없는 부서로 일선 검찰의 특별수사를 지휘·감독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직접 수사 기능이 없는 만큼 수사기획관 직제는 폐지됐다. 원래 법무부와 검찰은 수사기획관 자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작은 정부' 기조에 맞춰달라는 안전행정부의 요구를 수용했다고 한다.

반부패부에는 특별수사지휘과와 특별수사지원과 등 2개 과가 운영되고 있다. 이 중 특별수사지원과는 기존 중수부 산하 첨단범죄수사과 업무에 범죄수익 환수 역할도 맡아 책임이 막중하다.

특히 계좌추적과 회계분석 전문 인력을 갖춘 반부패부는 미납된 추징금과 은닉된 범죄 수익을 찾아내 국고로 환수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편 검찰은 중수부 폐지에 따른 부정부패 수사 공백을 막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특별수사4부를 올 2월쯤 신설할 계획이다. 관심을 끌었던 대검 감찰본부 확대 개편안은 보류됐다.

앞서 법무부는 감찰기능 강화를 위해 대검 산하 감찰기획관과 특별감찰과를 신설하고 고검에도 감찰부를 설치하는 등의 조직 개편 내용을 밝힌 바 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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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