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현장> ‘더러워야 팔리는’ 중고 속옷거래 실태

  • 최용환 cyh@ilyosisa.co.kr
  • 등록 2013.11.25 11: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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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액 묻은 스타킹 “싸게 팝니다” 생리혈 묻은 팬티

[일요시사=사회팀] 입던 속옷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여성들이 있다. 팬티-브래지어-스타킹-양말까지 종류는 다양하다. 속옷의 가격은 신체와 접촉하는 부위별로, 입었던 시기별로 상이한 가격이 책정된다. 은밀히 거래되는 속옷거래의 변태적인 실태를 알아봤다.




체취가 묻은 속옷을 거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양말까지도 거래된다. 이렇게 지저분한 거래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던 변태카페는 여전히 음성적으로 활동 중이다. 문제는 변태카페가 아닌 일반카페에도 이따금씩 페티쉬 관련 판매글이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야릇한 냄새 풍기는 변태적인 페티쉬 거래. 무엇이 문제일까.

벗는 여성들
양말도 거래

이미 몇 해 전부터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 암암리에 거래되던 중고 속옷거래가 이제는 일반 사이트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있는 법. 단순히 입던 속옷을 판매해 쉽게 돈을 버는 여성들과 속옷 냄새를 맡으며 성적쾌감을 얻는 변태적인 남성들은 상생관계에 놓여있다.

이들은 서로 아쉬울 것 없이 깔끔하게 속옷만 주고받고 쿨하게 헤어진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속옷 인증샷을 거쳐 택배로 거래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중고속옷 ‘직거래’가 인기를 끌고 있다. ‘입던 속옷 기본 3일 착용’ ‘직거래 가능’ 등의 친절한 설명은 기본이다.

직거래는 말 그대로 판매자와 구매자가 직접 만나서 상품을 확인하고 거래하는 것을 뜻한다. 중고속옷 직거래 역시 여성이 직접 속옷을 벗어서 구매자에게 준다. 이건 방송으로 치면 생방송이다. 이들은 은밀한 장소에서 팬티나 브래지어를 벗고 구매자에게 속옷을 전달한다. 살아있는 체취를 느낀 남성들은 판매자가 원하는 만큼의 금액을 쥐어준다.


여성 입던 속옷 직거래 “냄새 날수록 비싸”
구매자 앞서 벗어줘…원하면 직접 벗길 수도

보통 여성의 외모, 나이, 속옷의 상태(냄새)에 따라 가격은 책정된다. 중고속옷 가격은 어느 정도 기준이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다소 비슷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그런데 중고속옷 직거래가 자칫 유사성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어떨까. 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판매자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3일 동안 입고 있던 속옷 팔아요. 한 장에 3만원, 세트로 구매하면 5만원에 드려요.”

“입던 팬티 팔아요. 쪽지 주세요. 직거래 가능해요….”

지난 19일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다. 입고 있던 ‘속옷’이라는 말에 조회 수는 하늘을 치솟았다. 속옷을 원하는 남성들의 댓글도 여러 개 달려있었다. 마찬가지로 기자도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불과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새 쪽지가 도착했다.

“제 속옷 원하신다고 했죠? 카톡 아이디 알려주세요. 톡해요.”


‘아니, 이렇게 빨리 답장이 오다니….’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판매자의 요구대로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줬다. 그리고 그날 밤 메시지가 도착했다.

“팬티? 브래지어? 스타킹? 양말? 어떤 거 원해요?”

이에 무난하게 ‘브래지어’라고 답했다. 그리고 금액 이야기를 매듭짓고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지난 20일, 그녀의 요구에 발걸음을 옮긴 곳은 안양. 만나기로 한 지하철역 출구로 올라 그녀가 있는 카페로 향했다. 사람이 북적대는 카페 안에서 그녀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어디에 계세요?”

“여기요! 여기!”

통화하며 손을 흔들어 겨우 만났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그녀는 “지금 바로 가요”라며 당당하게 나갔다. 3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그녀를 무작정 따라가 도착한 곳은 인근 빌딩 지하 2층. 고민도 없이 남자화장실로 향했다. 그녀는 화장실 문을 잠그고 외투를 벗었다.

“돈부터 주세요.”

애초에 제시한 금액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녀는 입고 있던 니트를 훌러덩 벗었다.

“벗겨줄래요? 아니면 내가 벗든가? 원하는 대로 해요.”

기자는 순간 얼었다.

“벗어서 갈아입고 주세요.”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녀는 브래지어를 풀었다. 하얀 속살을 여과 없이 비친 그녀는 입고 있던 속옷을 완전히 벗어 건넸다.

“이거 이틀 입은 브래지어예요. 냄새 확인해 보세요.”

이렇게 얼떨결에 난생 처음 본 여성의 브래지어를 손에 쥐었다. 마치 성인드라마를 찍는 것 같았다. 비상식적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방에서 새 브래지어를 꺼내 입었다. 거래는 5분도 채 안 걸렸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화장실을 빠져나와 건물 밖으로 나왔다.

“브래지어 말고 팬티나 스타킹 필요하면 또 연락해요. 아직 취향을 잘 모르겠네요. 원하는 거 있으면 일주일 전에 연락해요. 미리 연락해야 속옷을 오래 입었다가 주죠.”

그녀는 마치 프로 같았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 말은 충격적이었다.

“초짜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대딸’도 가능해요. 속옷 사면 대딸은 2만원에 해줄게요.”


중고속옷 직거래는 단순한 속옷 거래를 넘어 유사 성행위의 은밀한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었다.

“안녕히 가세요. 필요하면 또 연락해요.”

“원하면 추가로”
  유사 성행위도

이처럼 속옷거래는 단순한 성적 취향을 넘어 직접적인 성적 접촉을 유발하고 있다. 물론 판매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직거래를 원하는 사람 대부분은 여성의 신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위험성을 안고 있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재밌는 건 이 여성들도 이러한 과정을 어느 정도 즐긴다는 것. 직접 체험한 속옷 거래의 실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판매되는 물건의 종류도 늘어 이제는 ‘소변’이나 ‘침’ ‘먹다 뱉은 빵’ ‘생리팬티’ 등이 거래되기도 한다. 여성의 소품이나 체취, 특정부위에 집착하는 ‘페티쉬 마니아’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얼굴 보고 결정…유사 성매매도
남성은 대부분 ‘페티시 마니아’

주요 포털사이트 등에는 여성들이 입었던 팬티나 스타킹을 판매하는 카페가 수두룩하다. 회원 가입을 제한하는 등 암암리에 비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는 카페도 있다. 판매자인 여성들은 속옷 차림의 실제 사진을 올리며 믿을 만한 좋은 상품이라고 홍보한다.

한 판매자는 자신을 23세, 163cm, 46kg의 스펙을 가진 섹시한 여대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녀가 판매하는 물품은 팬티, 브래지어, 스타킹 등이었다. 가격대는 2만∼5만원 선으로 속옷 착용 시기, 분비물 유무에 따라 가격에 변동이 있었다. 특히 이틀 이상 입던 최상품만 판매한다고 강조했다. 충격적인 건 타액과 소변, 영상 등을 함께 판매하고 있었던 것.

타액이나 소변의 경우 본인의 것임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전화 통화나 인증사진, 영상을 동봉해준다. 이 뿐만 아니라 자위영상을 4만원에 판매하고 있었으며 사진은 장당 2000원씩 받고 있었다.

또 다른 판매자의 글도 눈에 띄었다. 이 판매자는 자신의 팬티 안쪽 사진을 찍어 이메일로 보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1만원을 입금하면 음모를 찍어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판매자 또한 다른 판매자들과 다를 바 없이 신체사이즈를 상세히 공개했다. 26세, 169cm, 54kg, 75B컵 등. 특히 이 판매자는 소변을 보고 닦지 않기 때문에 소변냄새가 좀 독하다고 강조하며 ‘프리미엄’팬티라고 강조했다.

소변뿐만이 아니다. 팬티에 애액을 묻히면 최소 1만원이 추가된다. 팬티에 체모와 머리카락은 서비스로 넣어준다. 너무 더러워서 믿고 싶지 않은 글이었다.


충격적인 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진짜 ‘프리미엄’ 팬티는 따로 있었다. 이들이 말하는 진정한 프리미엄, 즉 스페셜 속옷의 정체는 바로 ‘생리혈’ 묻은 팬티였다.

한 판매자는 자신의 생리혈이 묻은 생리대와 속옷을 고가에 판매하고 있었다. 자주 거래하는 ‘단골 고객’에게는 직거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었다. 생리혈 묻은 팬티를 직접 만나서 주는 것이다.

더욱더 충격적인 건 직거래 시 구매자 앞에서 자신이 입고 있던 속옷을 바로 벗어준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판매자는 80%가 거짓”이라며 “저랑 한번 거래해보신 분들은 다른 사람들 거 못 산다”고 자신의 속옷에 대한 상품성을 자신했다.

부위·분비물 따라 가격 달라져

아무나 하는 단순한 투잡?

중고속옷 거래를 경험한 남성들은 적나라한 이용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수요가 공급을 앞서는 듯, 매우 뜨거운 반응이었다.

한 판매자는 “구매자와 판매자는 서로의 신상에 대해 묻지 않는 게 이 바닥의 불문율”이라면서도 “잘 모르긴 해도 20∼30대 샐러리맨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판매자들의 대부분은 용돈이 필요한 중고등학생이다. 판매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인기가 높고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된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대생을 포함해 직장인, 주부들에게까지 번져 새로운 영역의 투잡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추세다. 남성들과 직접적인 신체접촉이 없기 때문에 거래의 심각성을 망각한 듯 보인다.

몇몇 판매자들은 유사성매매업소에 발을 들여 돈을 버는 것보다 중고 속옷을 판매하는 걸 선호했다. 남성과 직접 얼굴을 대면하는 위험이 없고, 따로 시간을 들여 일할 필요도 없이 그저 입었던 속옷을 벗어주면 되기 때문에 투잡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저렴한 팬티 몇 장만 사서 입으면 되기 때문에 짭짤하다는 것.

용돈벌이의 블루오션인 중고 속옷거래. 그렇다면 이들의 수입은 어느 정도일까. 이에 대해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겠지만 지난 2010년 자신의 체액을 묻힌 속옷 등을 판매하다 경찰에 붙잡힌 20대 여성이 2000여만원의 이득을 봤다는 점을 고려하면 몇몇 판매자들의 수익은 단순한 용돈벌이를 넘어 선다고 볼 수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는 오래전부터 ‘부르세라숍’이라 불리는 여성 중고속옷 가게가 성했었다. 현재 일본에서는 청소년들의 중고속옷 판매를 금지시키고 있다. 구매나 알선행위 등에 대해서도 처벌을 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일본의 성문화가 개방적이긴 하지만 브르세라숍이 성행하면서 청소년 성매매(원조교제)나 기타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해 법으로 청소년을 상대로 한 중고속옷 거래를 금지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팬티 브래지어 스타킹
 세트로 사면 깎아줘요”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입던 속옷을 판매하는 행위는 처벌받을 수 있을까. 사실 과거에는 마땅히 처벌할 구실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정보통신법이 개정되면서 중고속옷 판매 행위에 제동을 걸 수 있게 됐다. 개정된 정통법 가운데 중고속옷 판매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항목은 행위에 공할 목적으로 음란한 물건을 제조, 소지, 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전화나 우편, 컴퓨터 등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영리를 목적으로 촬영물을 유포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이다.

이러한 정보통신법 개정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입던 속옷과 스타킹 등을 판매한 2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힌 사례가 있다. 지난 7월 충남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입던 속옷과 아동음란물 등을 판매한 혐의로 이모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3월 인터넷 변태카페 게시판에 속옷과 스타킹을 입은 사진을 판매하기 위해 글을 올렸다. 이를 보고 연락해 온 남성 9명에게 속옷을 판매해 19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결과 이씨는 자신이 입은 속옷임을 증명하기 위해 구매 남성들과 이른바 ‘착용샷’을 주고받았다. 입던 속옷의 거래 가격은 3만∼5만원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씨에게 속옷을 구매한 남성 가운데 아동음란물을 함께 구입한 남성 2명은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법망 사각지대
경찰 속수무책

이처럼 변태적인 속옷 거래를 막는 법적 장치는 마련된 상태다. 하지만 문제는 ‘직거래’다. 직거래는 이것으로 막을 수 없다. 직접 만나서 물건을 주고받고 변태적인 행위까지 이어지는 작금의 속옷 거래는 매우 음성적으로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의 변태문화의 확산은 막을 수 있을지언정, 음침한 곳에서 몰래 직거래하는 판매자와 페티쉬 마니아들을 막는 건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최용환 기자 <cyh@ilyosisa.co.kr>

 

[미니인터뷰] 속옷 판매자 A씨
“단골은 ‘대딸’서비스”

-중고속옷 거래는 어떻게 알았나?
▲얼마 안 됐다. 지난해 중고 카페에서 우연히 접했다. 한 판매자가 자신의 속옷을 판매하는 글을 올렸는데, 궁금해서 클릭해보니 입던 속옷을 원하는 남성들의 댓글이 수두룩했다.
 
-언제부터 시작했나?
▲중고 속옷 거래가 충격적이었지만 ‘이렇게도 돈을 벌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나도 똑같이 글을 올렸다. 나에게 쪽지가 쇄도했다. 그때부터 중고속옷 거래에 빠졌다.

-가격은 얼마?
▲팬티 3만원, 브래지어 3만원, 스타킹 2만원. 팬티와 브래지어를 세트로 사면 4만원에 준다. 스타킹까지 다 산다면 총 5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양말은 덤으로 주기도 한다.

-한달에 얼마나 벌고 있나?
▲거래량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매주 한 번은 거래를 하기 때문에 20만∼30만원 정도 버는 것 같다.

-직거래만 고집하는 이유는?
▲인터넷 거래는 위험성이 있다. 그리고 직거래를 하게 되면 좋은 점이 ‘단골’이 생긴다는 것이다. 택배를 보내는 것보다 근처로 불러서 속옷을 전해주는 게 더 편하다.

-직거래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보통 인적이 드문 화장실에서 거래한다. 화장실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구매자가 보는 앞에서 속옷을 벗어준다. 구매자가 원할 경우 직접 벗길 수 있는 기회도 준다.

평범한 30대 직장 여성
투잡…용돈벌이로 짭짤

-성매매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나?
▲브래지어를 벗기면서 가슴을 만지거나, 팬티를 벗길 때 엉덩이를 만지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성매매를 요구한 적은 없었다. 가벼운 스킨십 정도는 그냥 넘어간다.

-거래 중 자위를 해준 적이 있나?
▲솔직히 말하면 그냥 해주진 않는다. 팬티를 3만원에 살 경우 팬티를 내리고 2만원을 추가하면 그 자리에서 ‘대딸’을 해준다. 꾸준히 대딸을 요구하는 단골이 있다.

-구매자의 연령대는?
▲ 10대부터 40대까지 있었다.

-문제의식은 없나?
▲성매매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속옷을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건 없다고 본다. 물론 간혹 ‘대딸’을 요구하는 남성들이 있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다.

-앞으로 계속 할 건가?
▲나의 속옷을 찾는 단골 고객이 끊이지 않는 이상 계속할 생각이다.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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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이재명호 눈앞 암초들

닻 올린 이재명호 눈앞 암초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서 국민은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3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냈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앞길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지난 3일 치러진 6·3 조기 대선서 이재명 신임 대통령은 득표율 49.42%로 역대 대통령 중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8.34%,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0.98%를 각각 기록했다. 넘지 못한 과반의 벽 잠정 집계된 이번 대선 투표율은 지난 20대 대선보다 2.3%p 높은 79.4%였다. 이는 지난 1997년 투표율 80.7%를 기록한 15대 대선 이후 28년 만에 가장 높은 대선 투표율이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심판하기 위한 국민의 뜨거운 의지”라고 입 모아 말했다. 지난 20대 대선서 양 후보 간의 득표율 차이는 0.7%p이었던 만큼 이번 역시 두 후보 간의 격차가 관전 포인트로 제시됐다. 지난 3일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가 한국방송협회와 함께 실시한 대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51.7%, 김문수 후보는 39.3%로 두 후보간의 격차는 두 자릿수로 크게 벌어졌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대통령의 과반이 예상됐지만, 실제 투표함을 열자 김 후보가 40%대로 진입한 반면 이 대통령은 50%를 넘지 못했다. 두 사람 간의 격차는 289만표인 8.27%p였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 역시 출구조사 발표 직후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4%만 더 얻어서 55%로 안정 궤도를 유지하면 좋았을 것”이라며 내심 아쉬움을 비쳤다. 민주당은 선거 기간 동안 공을 들인 TK(대구·경북)서도 약세를 보였다. 선거관리위원회 개표 마감 결과 대구서 김 후보가 67.62% 득표한 반면, 이 대통령은 23.22%에 그쳤다. 경북서도 김 후보는 66.87%, 이 대통령은 25.52%로 지난 20대 대선과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초유의 사태인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임에도 격차가 크지 않고 보수 지역서 30% 벽을 넘지 못했다는 한계점이 제시된다. 40% 지지율을 등에 업은 국민의힘과 거대 여당인 민주당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전까지는 민주당이 과반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키면 대통령 혹은 국무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되돌리는 방식이었지만, ‘찐명’으로 꼽히는 김민석 전 최고위원이 국무총리로 내정된 마당에 더는 국민의힘이 손쓸 방법이 없다. 빗나간 출구조사…TK도 20%대 ‘뚝’ 여대야소 정국 ‘동물 국회’ 재연? 이번 하반기 국회가 역대급 ‘혐오 정치’로 얼룩질까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 대통령은 거듭 통합을 강조했다. 지난 4일 국회서 열린 취임 선서식서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며 “국민 통합을 동력으로 삼아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선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도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민 대통합을 위해 대통령 취임 후 첫 오찬 메뉴를 비빔밥으로 준비했다. 우 의장은 “지역과 세대, 계층, 다양한 의견이 모두 대한민국이고, 서로 조화를 이루고 화합하도록 이끄는 통합력이 도약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머뭇거릴 새도 없이 이 대통령은 곧바로 업무를 시작했다. 함께 국정을 운영할 내각 구성도 시급하다. 당분간은 윤석열 전 정부 출신인 각료들과 한 지붕 밑에서 일을 해야 한다. 조기 대선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 또한 정부 출범 76일 만에 전원 ‘문재인의 사람들’로 불리는 국무위원과 국무회의를 진행했다. 이날에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진행했는데, 이때 통일·외교·안보 기조가 다른 박근혜정부 인사가 함께였던 만큼 제대로 된 국정 운영이 어려웠다는 푸념도 들려왔다. 이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새 내각 구성 전까지는 ‘윤석열의 사람들’과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국무총리를 시작으로 각 부처 장관 등 주요 인사들을 검증하기 위한 인사청문회 등 절차가 남아 있어 내각 전부를 임명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어수선한 여의도 안팎 국무위원 선출을 위한 인사청문회 과정도 험난할 전망이다. 지난 3년간 이동관·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 박장범 KBS 사장 후보까지 피 튀기는 청문회가 밤낮으로 이어졌다. 공수교대가 이뤄진 이번 청문회서 국민의힘이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을 전망이다. 이 대통령을 둘러싼 다섯 건의 재판도 주목된다. 김혜경 여사의 법인카드 유용 논란과 대선 정국서 불거진 아들 도박 의혹도 논란이지만, 아직 털어내지 못한 본인의 재판들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현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파기환송심 ▲대장동 배임 및 성남FC 뇌물 의혹 1심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혐의 1심 ▲불법 대북송금 혐의 1심 ▲위증교사 혐의 항소심 등 총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투표 하루 전날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꼬집으며 “설사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재판이 예정대로 열리고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에 따라 벌금형 100만원 이상의 판결을 받을 경우, 두 달 안에 대선을 또다시 치러야 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예정된 재판은 오는 18일에 열리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다. 이는 지난달 1일 대법원이 1심의 무죄 판결을 엎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사안이다. 만일 재판부가 예정대로 사건을 처리한다면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에 따라 유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이 박탈되는데, 이때 대통령직 유지가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아울러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다루는 헌법 제84조의 해석 논란도 다시 불붙을 예정이다. 막 내리는 용산 시대 민주당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뒀다. 대선 전부터 민주당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의 구성 요건서 ‘행위’를 삭제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지만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입법 독재’ 프레임을 우려해 속도 조절에 나섰다. 윤 전 대통령이 개방한 청와대도 풀어야 할 숙제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2년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며 영빈관과 녹지원, 상춘재 등을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업무를 시작하는 만큼 우선은 청와대 수리를 기다리며 용산 대통령실을 사용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용산으로 가는 게 맞다. 대통령실 이전은 큰 비용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생도 심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빨리 청와대를 수리해서 그 (수리) 기간만 (용산에) 있다가 청와대로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예비 후보이던 시절에도 대통령 집무실에 대한 질문에 “상당히 고민이다. (용산 대통령실이) 보안 문제가 매우 심각해 대책이 있어야 되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지금 당장 어디 딴 데로 가기가 마땅치가 않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 혈세를 들여 미리 준비할 수도 없다. 그래서 보안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일단 용산을 쓰면서 다음 단계로 청와대를 신속하게 보수해 그 길로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윤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용산 집무실 환경에 “황당무계하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용산 대통령실서 가진 첫 기자회견서 “꼭 무덤 같다. 아무도 없다”며 “필기도구를 제공해 줄 직원도 없다. 컴퓨터도 없고 프린터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업 공무원 전원을 복귀시켜버린 모양”이라며 “곧바로 다시 원대복귀 명령을 해서 제자리로 복귀시켜야 할 듯싶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보수가 끝나는 대로 이 대통령이 집무실을 옮길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파기환송 선거법, 재판부 의지에 달려 청와대 복구, 극우 반격…험난한 여정 대통령 집무실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만큼 보안과 경호 등이 늘 지적 대상이 됐다. 관련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청와대가 100% 개방된 건 아니기 때문에 빠르게 보안 작업을 거친다면 올해 안에는 (청와대를) 집무실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정부종합청사 등 제3의 장소에 임시로 집무실을 마련하는 방안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JTBC와의 인터뷰서 “국정 책임자의 불편함 또는 찝찝함 때문에 수백억, 수천억을 날리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잠깐 (용산서) 조심해서 쓰든지 하고 청와대를 최대한 빨리 보수해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끝나지 않은 극우와의 싸움과 테러 위협도 현재 진행형이다. 계엄 옹호, 탄핵 반대 그리고 부정선거를 주장해 온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자유통일당 중심의 극우 성향 단체는 이번 대선 결과에 불복해 선동을 이어갔다. 광화문서 지지자들과 개표를 기다리던 전 목사는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되자 “선거관리위원회에 쳐들어가자” “불법 선거, 부정 투표”라고 소리쳤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 역시 부정선거론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어 대선이 끝난 후에도 잡음은 이어지고 있다. 황 전 총리는 용인의 한 사전투표소의 관외 회송용 봉투서 이미 기표된 용지가 나온 사례를 언급하며 “지난 대선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고 문자 그대로 부정선거의 스모킹 건”이라며 “그럼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자의 자작극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선관위 시스템이 얼마든지 조작 가능해서 투표 안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만들고 한 사람을 안 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국가정보원 조사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선관위를 도저히 믿을 수 있겠나”라며 “선거가 아니라 사기”라고 말했다. 현실 부정 테러 위협 이와 관련해 여권 관계자는 “망상에 불과하다. 갈라치기 정치의 원인”이라고 일축하며 “정치 성향이 맞지 않는 분들께선 지금 시국이 어수선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이번 대선은 내란 세력을 심판한 국민의 선택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