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군 의문사' 애끊는 눈물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8.14 11:5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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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소금 뿌린 고통 속에 삽니다"

[일요시사=사회팀] 그들이 물었다. 왜 10년도 지난 일에 아직도 미련을 두느냐고. 그러나 아들의 싸늘한 주검을 마주한 순간 유족의 시간은 멈췄다. 그들은 아들이 죽던 날의 끔찍한 기억을 수백번 아니 수천번이고 복기하면서 무관심이라는 또 다른 벽과 싸우고 있다.



여름의 찌는 듯한 햇살이 머리를 내리쬐던 지난 6일. 경기도 화성에서 만난 고 강태기 상병의 유족은 담담히 기자를 맞이했다.

장례 못한
유족의 고통

벌써 10년도 지난 일. 하지만 유족의 쓰라린 상처는 그들의 가슴에 10년째 응어리져있었다.

"내 심장을 반으로 갈라 소금을 뿌린데도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어요." 강 상병의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강 상병은 지난 2003년 1월12일 육군50사단 123연대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하던 중 의문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 사건을 조사한 헌병대 정모 중사 등은 강 상병의 죽음을 자살로 결론짓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자살의 원인은 애인의 변심, 그러나 강 상병에게 '애인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헌병대는 '짝사랑하는 여자의 변심'으로 자살 원인을 수정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10년째 평행선을 긋고 있다.

유족 측은 당국의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고인의 아버지는 "아들의 사망 당시 주번 사령,사관,하사의 보고 내용이 하나도 없던 것은 물론 아들의 죽음을 우리가 확인하자 '빨리 부검을 해야 한다'고 말한 군 관계자의 태도에서 이질감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고인의 부검에 입회한 외삼촌의 진술서 등 관련 자료를 보면 유족이 아닌 평범한 사람도 가질만한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강 상병은 목을 매달아 숨진 것으로 돼있는데 외삼촌은 "자살이라면 목 턱부터 귀 밑으로 밧줄 자국이 있어야 하지만 뒷머리(뒷 목덜미)에 밧줄 자국이 선명한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헌병대가 자살의 증거로 제시한 나일론 밧줄 역시 매듭이 엉성해 누군가 사고 후 자살로 위장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설명했다.

또 외삼촌은 "부검 당시 위에서 확인된 내용물이 사건 당일 부대가 제공한 점심식사 메뉴와 달랐다"며 사망시간과 사건 당일 고인의 동선 일부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제3의 의료기관을 통해 감정한 강 상병의 경추 상태는 그가 자살자가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서울정형외과 등 복수 의료기관이 X-RAY를 통해 판독한 고인의 목에서는 '1번 경추 골절' 및 '황인대' 파열이 발견됐다.

감정서에 따르면 목을 매 자살할 시 (심한) 추락으로 인한 견인력이 작용하지 않으면 골절 또는 황인대 파열의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특정 조건 하에 골절이 발생한다고 하여도 스스로 목을 매면 '1번 경추'가 아닌 '2번 경추'가 골절되므로 고인은 자살 후의 일반적인 외상을 보이고 있지 않은 것으로 진단됐다.


오히려 담당의는 "(고인에게) 외부로부터의 급작스런 충격이 가해져 두부(머리)에 황인대 파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덧붙였다. 황인대 파열은 사고 후 2~3시간 내외의 신속한 수술만 있어도 생존할 수 있는 증상으로 의사는 설명했다.

아울러 기자가 확인한 돌연사 혹은 타살의 증거로는 ▲생전 고인의 유족, 선후임, 지휘관 등 모두가 어떠한 자살 징후나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한 점 ▲고인과 함께 군생활을 했던 한 병사가 "그곳에서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며 "시체를 옮긴 뒤 자살로 조작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던 점 ▲유일한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짝사랑하는 여자의 변심'을 조사기관인 헌병대 스스로가 오판했다고 인정한 점 ▲사체가 의사(縊死)했을 시 동반되는 배변이나 사정이 없었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헌병대는 "타살 가능성 및 안전사고의 가능성이 없음으로 자살로 수사를 종결한다"며 유족 측이 제기한 의혹을 일축했다.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정확한 자살 경위는) 태기(고인)와 신만이 알고 있다"는 답변으로 뭉뚱그렸다.

타살과 자살
명예가 달렸다

강 상병의 시신은 지금 국군수도 병원 영안실에 보관돼 있다. 정식 명칭은 영안실이지만, 실은 차가운 냉동고다. 이 어두컴컴한 냉동고에서 강 상병의 육신은 오늘도 진실이 밝혀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강 상병처럼 화장도 못한 채 냉동고에 보관돼 있는 시신은 모두 23구. 그마저도 진실을 밝힌다며 부검을 해 온전히 수습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모두 146기의 유골이 매장을 거부한 채 이승을 떠돌고 있다.

강 상병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러 올해도 네 번을 갔다 왔는데 아직도 그곳에 가면 숨부터 막히더라"며 "자식의 부검 사진을 받아든 내가 어떻게 맨 정신으로 10년을 버텨왔는지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강 상병 사건처럼 과거로부터 군내 사망사고가 자살로 둔갑한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군 의문사 의혹이 점화된 도화선이자 산 역사로 불리는 '김훈 중위 사망사건'도 어느덧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15년을 맞았다.

사고사를 자살로?…10년째 뒷짐 진 국방부
사인 두고 유가족 제기한 의문점 수두룩
냉동고 보관 시신 23구…매장도 못한 유골 146기

그동안 국방부는 "김훈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단정할 수 없다"는 입법,사법,행정부의 판단에도 끝내 '버티기'로 일관했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8월 "김 중위가 자살했다고 볼 수 없음으로 순직처리를 해야한다"는 권고를 냈다.

하지만 국방부는 "자체 보강 조사를 하겠다"고 밝힌 뒤 이면으로는 김 중위의 자살 증거를 모으는 등 "김 중위가 자살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국방부 조사본부가 작성한 '육군 중위 김훈 사망 재조사 추진경과'에 따르면 군은 "(김훈 중위의)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 여부"에만 조사 초점을 맞췄다. 또 정신과전문의, 심리학자를 관련 전문가로 섭외, 사실상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로 사건을 종결시켰다.


국방부는 김훈 중위 사건이 일어난 1998년 2월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김 중위가 타살됐다"는 의미 있는 증거들을 모두 무시했다. 그가 사망한 1998년 2월24일, 국방부가 수사 시작도 전에 "김 중위가 자살했다"고 브리핑한 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죽음이 아무 의심도 없이 땅 속에 묻혔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구슬픈 비가 내리던 7월의 주말. 서울 인근 한 커피숍에서 만난 김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은 산더미 같은 자료를 일일이 설명하며, 국방부의 행태를 강력히 비판했다.

앞서 복수 언론에 수십차례 보도된 것처럼 김 중위는 누군가에 의해 타살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범인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 전 중장은 "내 아들을 죽인 범인을 찾는 것보다 잘못된 진실을 바로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고인에 대한 순직처리와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일부 잘못 알려진 것과 달리 김 전 중장은 아들의 순직처리와 관련한 국방부의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했다. 국방부는 지난 3월 "김 중위를 순직처리 하겠다"고 브리핑했다가 돌연 말을 바꿨는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김 전 중장에게 돌아갔다.

김 전 중장은 "그 일이 있고 나서 엄청 많은 사람들의 축하 전화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순직처리를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국방부가 또다시 유족에게 상처를 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족은 애간장
국방부는 모르쇠


지난 7월5일 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주관한 '군에서 의무복무 중 사망한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정책토론회' 자료집을 보면 승장래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은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대법원이 김 중위의 자살을 인정했다"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이어 승 전 본부장은 "법률 전문가들도 (김 중위의) 자살을 인정했다"며 김 중위의 순직처리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승 전 본부장과 국방부 조사본부는 김 중위의 순직을 군내에서 가장 끈질기게 반대하는 세력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김 중위 사망 당시 JSA 경비중대장으로 재직한 김익현 대위는 ▲자신의 지휘 부대가 북한과 긴밀히 내통했고 ▲최전방에서 부하가 사망했으며 ▲고인이 된 부하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음에도 일체의 징벌 없이 최근 대령까지 진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과거 김 대위(대령)와 함께 JSA에서 근무했던 모 병사의 진술서에 따르면 김 대위는 음주가 금지된 판문점에서 만취 상태로 목격되는 등 지휘관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김훈 사건'과 함께 김 대위는 오히려 탄탄대로를 걸었다. 군 의문사 책임자가 오히려 더 인정받고 있는 꼴이다.  

김 전 중장은 "4개 국가기관은 물론 대한민국의 99%가 '자살이 아님'을 알고 있는데 오직 국방부 일부 책임자들만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이제 다시는 군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자살이냐 아니면 오발이냐'고 묻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훈 중위 순직 15년째 모르쇠
책임자 '떵떵' 유가족 '피눈물'

기자가 확인한 '김훈 중위 부하 병사 진술서'에 따르면 사건 직후 병사들의 증언이 자살과 타살로 서로 엇갈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진술을 자살로 조율하는 건 수사관들. 한 병사는 군에서 원하는 진술을 해주는 대가로 용돈을 받았다는 진술을 하기도 했다.

진술을 받아내기 위한 수사 과정에서의 강압적인 방법도 눈길을 끌었다. 폭언이나 폭력은 기본이고, 동료 부대원들을 포섭해 따돌리기까지 하니 "정말 죽고 싶었다" "내가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한 번 고민이 시작되면 결국 다른 동료들의 진술에 맞춰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앞서 언급한 '강 상병 사건' 역시 핵심 증인들이 갑자기 말을 바꾸며 침묵을 선택해 사건이 장기화된 케이스다.

그리고 이 같은 비극의 궁극적인 원인은 군이 초동수사를 소홀히 한 채 사건의 초점을 자살로 몰고 가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의문사 사건'의 경우 처음부터 군 당국이 타살을 의심하고, 사건을 면밀히 수사했었더라면 유족이 피눈물을 흘린 시간은 진실을 규명하는데 걸린 26년이란 시간보다 훨씬 짧았을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승원 일병 사건'도 마찬가지. 어머니의 15년에 걸친 끈질긴 싸움이 아니었다면 '이 일병'을 향한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행위, 성추행 등의 범죄행위는 '자살'이란 은막 속에 그대로 감춰졌을 것이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앞장서고 있는 고상만 김광진의원실 보좌관은 의문사 문제 해결을 위한 아주 간단하면서도 과감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병원의 의료사고처럼 군 사망사고의 입증 책임을 군 당국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즉 "자살이 아니다"라는 논리적 정황을 유족이 아닌 군이 직접 입증하란 것이다.

고 보좌관은 "신체검사 때 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군대에서 죽은 채로 나오면 그 책임은 당연히 국가에 있는 것"이라며 "유족이 군의 조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민,관,군이 합동으로 조사단을 편성, 재조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의문사 해결
입증을 군에게

그리고 이를 위해 선행돼야 할 건 바로 군 사망자에 대한 예우개선이다. 자살과 타살에 대한 예우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진실규명 역시 어렵기 때문.

김광진 의원실이 현재 입법을 검토 중인 '의무 복무 중 사망 군인에 관한 특별법(가안)'을 보면 "의무 복무중인 사병, 그리고 마찬가지로 의무 복무 기간에 있는 부사관 및 장교에 대해 의무 복무 중 사망했다면 '국가유공자법'에 따라 순직 처리된 경우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사망 군인에 대해서 특별법에 의거, 현행 국가유공자법에서 부여하는 보훈 혜택으로 똑같이 예우한다"는 조항이 있다.

법안을 관통한 논리는 명쾌하다. 국가가 필요해 데려갔으니 무사히 나오도록 책임을 지는 것도 결국 국가의 몫이란 것.

이 특별법안은 본래 9월 정기국회서 입법이 예고됐으나 여야가 대치중인 관계로 조기 처리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입법 취지가 상임위인 국방위 소속 의원들의 고른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긴 전쟁을 치른169명의 유족들이 한시름 놓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그려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척 장군의 공개 편지

국군 통수권자이신 대통령님께 요청합니다.

1998년 2월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241GP에서 사망한 김훈 중위 아버지입니다.

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께서 김훈 중위 사건을 포함한 군 의문사 사건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시고, 적극적으로 조치해 주실 것을 요청 드립니다. 

그 이유는, 군을 기피하는 사회에서 국가와 군을 위해서 충성을 다한 젊은 장병들이 군에서 사망하였을 경우, 국가가 관리를 소홀히 하고, 형식적인 수사 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군에서 사망한 장병들을 개인이 나약하여 군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군부적격자로 낙인을 찍어 자살자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에서는 3일에 1명씩 자살자로 처리되고, 그 인원은 1년이면 100여명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매년 수백명의 유족들이 피눈물을 뿌리면서 슬픔과 고통, 불명예 속에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국민들을 군의문사 유족이라고 합니다.

(이런 유족들이 있다는 건) 많은 국민들이 매우 불행한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훈 사건에서 보듯이 지난 15년 동안 입법부인 국회국방위원회, 사법부인 대법원, 그리고 행정부인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그리고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조사한 결과 4대 국가기관에서는 군의 수사가 잘못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김훈 중위는 자살자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타살의 증거를 갖고 있지만 범인을 지목할 수 없어 진상규명불능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발 벗고 나서서 전우의 명예와 국민의 인권을 찾아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헌법에 명시된 기본사명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부당하게 일체 근거도 없이 자살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시정명령을 내렸는데 이것을 항거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것은 국방부가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입니다.

저는 국방장관에게 12번이나 내용증명을 보내고 올바른 재수사와 사건조작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국가가 의무만 강요하고, 국민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누가 국가를 따르겠습니까?

대통령님께서는 이런 군의문사 사건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적극적으로 조치해주시면 국민의 행복, 국가의 안보력이 크게 증진 될 수 있습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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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