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로 새는 눈먼 나랏돈?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8.05 1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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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고 축내는 '버스왕' 꼬리 잡힐까

[일요시사=사회팀] '국민의 발'인 버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버스 회사에는 공공성을 담보로 막대한 정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투입된 예산이 각 업체별로 어떻게 집행되고 있는지 제대로 감시하는 곳은 하나도 없다. 정부의 관리·감독이 무뎌진 사이 일부 버스 회사들이 '눈먼 나랏돈'을 불법 전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정당국이 국내 굴지의 운송업체 A사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A사의 모 회장은 '버스왕'으로 불리는 버스재벌로 수천대의 버스 및 다수의 부동산을 소유한 대부호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 버스왕
지원금만 꿀꺽?

경기 외곽에서 만난 A사의 옛 직원 ㄱ씨는 과거의 답답한 기억 때문인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외부로 알려진 것과 A사의 참 모습은 다르다"며 일례로 '버스 인센티브 제도'를 끄집어냈다.

버스 인센티브 제도란 경기도가 대중교통 선진화 등을 명목으로 지난 200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 경기도내 각 운송업체는 '경영 및 서비스 평가'에 따라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씩 인센티브를 챙겨가고 있다.

ㄱ씨는 이 인센티브 제도를 A사가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사는 모두 15개의 운송업체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데 이들이 챙겨가는 인센티브는 막대하지만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제대로 아는 이가 거의 없다고 했다.


ㄱ씨는 버스업체에 대한 지원이 정부의 경영 및 '서비스' 평가에 따라 이뤄지므로 이 돈을 버스 회사의 모든 구성원과 "공정하게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기자가 확인한 평가 항목에는 ▲차내 서비스 수준 ▲교통사고 발생 및 위험지수 ▲운행횟수 준수율 등 버스 기사의 직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항목들이 있었다.

경기도 내 또 다른 버스업체에서 근무 중인 ㄴ씨는 자신의 회사로부터 이 인센티브 명목으로 "별도의 상여금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ㄴ씨가 있는 회사는 경기 외곽에서 시내버스 약 40대를 운행하는 작은 업체다.

ㄴ씨는 "상여금을 돌려받을 때 도에서 (지원금을)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써야한다고 말해 현금으로 돌려준다란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같은 지원금을 두 업체가 다르게 쓰고 있는 셈이다.

감점 피하려 사고책임 기사에
직원 길들이기로 악용 의혹

그렇다면 A사는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을 어떻게 쓰고 있을까.

ㄱ씨에 따르면 A사는 이 지원금을 '직원 길들이기'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ㄱ씨는 "나 그만 둘 때까지 일반 직원들은 인센티브를 구경도 못해봤다"면서 "말 잘 듣는 팀장급들에게만 금반지를 좀 해주고, 자체 사보에는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썼다고 홍보하는 등 국가 세금을 마치 선심 쓰듯 전횡했다"고 폭로했다.

몇 년 전 ㄱ씨는 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A사가 각종 위법적 근무를 강요하자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버스 회사에 만연한 저임금·중노동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A사의 유력 계열사인 모 운수업체 기사들은 회사가 정한 운행횟수를 맞추기 위해 하루 15∼18시간의 근무를 2∼8일 연속으로 했다. 이런 중노동으로 인한 과로와 수면부족은 졸음운전으로 이어져 잦은 사고의 원인이 됐다.

그러나 업체는 산재 및 공상처리를 회피함은 물론 사고의 손실보상을 기사 자부담으로 돌렸다. 운행 중 사고는 '보조금 지원'을 위한 정부의 서비스 평가 시 감점 요인으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즉 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회사 직원들을 쥐어짜내는 야만적인 행태가 업계 관습처럼 이어져온 것이다.

회사는 웃고
기사는 울고

A사는 경기 구리, 광주, 남양주, 의정부 등 경기 서부지역 시내버스를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동두천, 양주 등 경기 외곽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노선을 독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산, 경북, 충북 등을 아우르는 시외버스 노선도 A사 손아귀에 있다.

국내 버스업계에서 A사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회사 운영에 필요한 피복·정비·식품 업체를 자회사로 갖고 있으며,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터미널사업, 의료사업 등에도 진출했다. 더불어 A사는 한 유명 지역방송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확인됐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버스 업계 관계자는 "인센티브 외에도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유류세 등 보조금이 버스 운영이 아닌 다른 곳에 출자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사실상 돈이 업체로 넘어가면 이를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인천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ㄷ씨는 "성과이윤(버스 인센티브 제도)은 사실상 눈먼 돈"이라며 몇 장의 문서를 내밀었다. 인천시가 작성한 '성과이윤 지급현황 표'였다.

인천시는 지난 2009년 1월부터 버스 회사의 재정적자를 100% 보조하는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고 있다. 즉 인천시의 성과이윤은 경기도의 적자 보전과는 돈의 성격이 다른 플러스알파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인천시가 지난 2009년부터 각 업체별로 지급한 성과이윤은 모두 86억여원에 달한다. 전체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 돈은 고스란히 버스 업자의 호주머니를 채우고 있다.

매년 150억∼200억원 지급
인센티브 타내려 위장배차

인천시가 제정한 '수입금공동관리 준공영제 운영지침'에 따르면 "성과이윤은 성과평가 결과에 따라 사업자별 차등 지급 방식으로 운용한다"고 돼 있을 뿐 지원금의 사용목적과 사용처가 명기 돼 있지 않다. 이는 사업자가 받은 돈을 어디에 써도 법적 제제 근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인천 일대에서 A사와 같은 위상을 점하고 있는 버스재벌 B사의 경우는 각 계열사로 지급된 성과이윤을 취합했을 때 연간 수억원의 ‘공짜’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인천시가 작성한 '운수회사별 성과이윤 내역'에 따르면 업체 별 지급현황은 2009년 하반기 기준 ▲S여객 3855만원 ▲S버스 3549만원 ▲S교통 4171만원 ▲I교통 3366만원 ▲J교통 3121만원 등이다. 이 업체들은 모두 B사의 계열사로 지원금의 합은 약 1억8000만원에 이른다.

2011년 하반기를 기준으로 하면 ▲S여객 9471만원 ▲S버스 4268만원 ▲S교통 1288만원 ▲I교통 2296만원 ▲J교통 2262만원 ▲G버스 4696만원 등 2억4000여만원으로 2년 새 약 6000만원가량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묻지마 지원금
누구도 못말려

ㄷ씨는 "인천시는 준공영제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시로부터 지급된 인센티브 규모가 작지만 경기도는 자율 체제기 때문에 인센티브 지급 규모가 훨신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ㄷ씨는 "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평가 기간 동안 배차를 늘린 뒤 보조금을 받으면 다시 유휴차를 늘린다든가 오지 노선을 헐값에 인수한 뒤 보상금은 타내면서 배차를 줄이는 눈속임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기도의회 민경선 의원은 오래 전부터 A사의 독점적 버스 운영과 몰아주기식 보조금 책정을 비판해왔다. 그는 "A사가 교통 약자를 위한 저상버스를 도입하기로 해 놓고 기본 약속조차 이행하지 않았다"면서 "사실상 A사를 향한 지원금 퍼주기가 반복돼 왔다"고 지적했다.




민 의원이 제출한 '2011년 도정감사 자료'에 근거하면 A사는 경기도 전체 버스 재정지원의 3분의 1을 가져가면서도 ▲저상버스 도입율이 타 업체보다 낮고 ▲배차 가이드라인을 자주 위반했으며 ▲노후 차량 및 시설 개선 노력이 미흡했다. 그러나 A사는 어떤 페널티도 없이 매해 150억∼200억원의 재정지원금을 10년 가까이 도로부터 꼬박꼬박 가져갔다.

민 의원은 재정지원금을 부풀려 받는 수법으로 '차량 운행대수 부풀리기'를 지목했다. 실제 버스는 차고에 있지만 유류대를 허위로 작성, 운행대수를 부풀린 뒤 지원금을 실제보다 많이 타낸다는 것이다. A사 역시 이 같은 수법으로 몇 차례 배차를 줄였다가 현지 언론에 발각된 전력이 있다.

민 의원은 "여러 차례 A사와 관련한 위법 사항이 발견됐지만 지원금이 차감되거나 제대로 된 행정 조치를 취했던 적이 없었다"며 "재정지원금을 포함해 A사에 들어가는 정부돈만 600억∼700억원인데 이를 제대로 감독할 인력조차 없다"고 개탄했다.

2008년 A사로 지급된 인센티브는 59억원, 2009년은 64억원, 2010년은 42억원이다. 그리고 2011년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시내버스 인센티브 지원금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도내 버스업체 간 서비스 경쟁을 활성화하겠다는 복안이었다.

이에 따라 A사로 지급된 인센티브도 늘어났다. 기자가 확인한 2012년 A사 계열 한 운송업체 인센티브 지원금은 4억4000여만원. 경기도 한 관계자는 "자료 유출 및 세부 공개가 금지돼 있어 정확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매해 40억∼60억원 정도가 A사에 지원되고 있는 건 맞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이 인센티브 제도가 준공영제를 채택하지 않은 광역단체 입장에선 합리적인 제도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회 국토위 소속 한 관계자는 "이 인센티브 제도를 둘러싼 오해가 많은데 실제로 확인해보니 평가의 투명성이 높았다"면서 "오히려 경기도가 제일 먼저 도입한 뒤 다른 지자체가 이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당국 국내 굴지의 운송업체 내사
수천대 버스 보유한 '버스재벌'도마
정부 보조금 유용·횡령 여부에 초점

실제로 경기도는 투명한 평가를 위해 10여 명의 외부 전문가를 영입, '경영 및 서비스 평가' 때마다 담당 TF를 구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A사 외 기타 중소업체들은 급여를 제때 지급할 수 있게 됨으로써 내부 반응이 좋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다면 도의 공식적인 입장은 어떨까. 도 관계자는 "의혹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일부 대형 운송업체로 나랏돈을 퍼주는 게 아니란 얘기다.

이 관계자는 "잘 아시다시피 제도 자체는 다른 지자체에서 도입할 정도로 (그 합리성을) 인정받았고, 지원금을 산정할 때도 다각도로 검증하기 때문에 특정 업체에 돈을 퍼주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앞서 언급한 여러 의혹들을 차례로 해명하면서 "경기도는 준공영제가 아니기 때문에 적자 보전율이 30% 밖에 안 돼 업체들도 경영 상태가 열악한 편이다"고 반박했다.

A사 사정에 밝은 몇몇 관계자에 따르면 A사는 최근 일부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난을 타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도 관계자도 인센티브 지원금의 사적 전용에 대해선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한 관계자는 "업체에 지원금을 전달할 때 '직원들을 위해 쓰시라'고 권고하지만 그 이상은 경영 문제기 때문에 우리가 관여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업체 사정이 어려운데 인천시 업체처럼 인센티브를 주물럭할 수 있겠냐"고 의견을 전했다.

수상한 커넥션
악행은 여전해

그러나 ㄱ씨 등 A사에서 근무했거나 관계된 인사들은 A사의 자금 운용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과거 A사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불법으로 정치자금을 전달했던 전력이 있는 회사"라며 "전직 국회의장, 현직 경찰서장, 국토해양부 고위 공무원 등 A사가 로비한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닐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 익명의 제보자에 따르면 A사는 최근 사고를 낸 직원에게 반성문을 쓰게하고, 이를 사내 전 직원에게 사인 받게 하는 등 인권유린적인 지침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정된 운행횟수를 지키지 않고 버스를 차고지 인근 외곽 도로에 놀리는 등 편법을 부린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의 발'을 볼모로 한 A사와 관련한 의혹은 오늘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청라지구 버스비리 의혹

없던 '황금노선' 만들어 제공

인천경찰청 금융범죄수사팀이 지난 4월 버스업체로부터 향응을 제공받고 버스노선 변경 등 편의를 제공한 혐의(뇌물수수)로 공무원 황모(52)씨를 입건한 가운데 비슷한 정황이 포착돼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한 제보자에 따르면 인천 청라지구를 관통하는 '황금노선'을 허가해준 공무원 A씨는 현재 다른 부서로 보직을 옮겼다. 그러나 제보자는 공무원 A씨가 인천 한 대형 운송업체에 "황금노선을 무단으로 제공했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기자가 입수한 인천시 공문에 따르면 공무원 A씨는 지난 4월 "청라지구 개발지역 신규아파트 입주에 따른 시내버스 이용객의 불편을 해소하고자 버스노선의 신설 및 증차를 허가한다"고 명기했다.

하지만 준공영제가 시행 중인 인천시에서 신규 노선 허가나 증차가 '거의 없다'는 점에 주목한 제보자는 이를 특혜라고 지적한 것.

한편 인천경찰청 금융범죄수사팀은 시로부터 받은 보조금을 횡령한 혐의(업무상 횡령)로 신모(55)씨 등 버스업체 대표 4명을 지난 4월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2009년 1월부터 2010년 8월까지 시로부터 받은 버스준공영제 재정보조금을 임원·관리직 급여, 차량 할부금, 가스비 등에 불법 전용해 약 23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황씨는 버스업체 직원들과 함께 유흥업소에 다니며, 모두 26차례에 걸쳐 1400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고 버스노선 변경 등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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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