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금주령' 설왕설래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6.07 20: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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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에 뺨맞고 애주가에 화풀이?

[일요시사=사회팀] 청와대와 주요 정부 부처들에 때 아닌 '금주령'이 내려져 일부 애주가들이 당혹스러운 눈치다. 고위공직자들의 기강확립을 위한 결정이라지만 내부에서는 조심스레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박정희 대통령도 즐겨 마셨던 술을 왜 우리는 마시지 못하게 하냐"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대선 기간 새누리당 선거캠프는 참모진들에게 '금주령'을 선포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추문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12월20일. 김무성 당시 총괄본부장은 캠프 해단식에서 "피 말리는 접전기간 동안 욕만 많이 해 죄송하다"며 "지금 이 시간부터 금주령을 공식적으로 해제하겠다"고 말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달 11일 온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윤창중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윤 전 대변인은 대통령 방미 기간 중 자신을 수행하던 인턴 여대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현지 경찰의 수사망에 올랐다. 이른바 '윤창중 쇼크'가 청와대를 강타한 것이다.

이후 윤 전 대변인은 긴 잠행에 들어갔다. 현재로서는 정치적인 재기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윤 전 대변인의 도피성 귀국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는 이남기 전 홍보수석도 스스로 옷을 벗었다. 청와대의 '얼굴'인 홍보라인에 구멍이 뚫리면서 박근혜 정부는 큰 상처를 입었다.

대통령 취임 100일도 안 돼 벌어진 참사에 박 대통령이 직접 입을 열었다. 지난달 13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비서실 등 청와대 직원들의 공직 기강을 바로 잡겠다"고 말한 것. 그리고 청와대 전 직원들을 상대로 한 '금주령'도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수도승도 아닌데…

미봉책 급급 지적

지난달 16일 원내 입성에 성공한 김무성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청와대 공직자들이 금주선언을 해야 한다는 각오를 보여 달라"고 말했다. 대선 이후 해제됐던 금주령을 반년 만에 또 다시 들고 나온 셈이다.

이와 관련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역대 정권 중 이렇듯 공공연히 금주령을 내린 정부는 없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누가 봐도 '지나친 처사'란 지적. 이 관계자는 "윤창중을 임명하신 게 '그분'인데 결국 사고는 윤창중이 치고 수습은 아랫것들이 하는 꼴"이라며 "음주를 하고 안 하고는 공직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이렇게 일방적으로 처리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번 방미기간 중 일부 수행단이 현지에서 질펀한 술자리를 가졌다는 의혹도 제기됐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다른 정권의 해외순방 때보다 술자리가 적어졌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

한 여권 관계자는 (술자리를) 아무래도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밖에서 보면 지나치게 뻣뻣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즉 이번 '윤창중 사건'은 평소 직원들의 술자리가 과해져 생긴 문제라기보다는 윤 전 대변인 개인의 '품성' 문제라는 설명이다.

다른 관계자의 설명도 비슷하다. 그는 "우리(공직자)가 수도승도 아닌데 금욕적인 삶을 살 이유가 있느냐"며 "기자들과 커피를 마시면 소통이고 술을 마시면 (윗사람에게) 찍히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청와대 직원들을 상대로 술을 누구랑 얼마나 마시는지를 수시로 체크하며 기록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분위기는 관가 곳곳에 퍼져 웬만한 고위 공직자들은 신뢰할만한 사람이 아니면 술자리를 갖지 않는다고 전해졌다. 그리고 이마저도 최근에는 뜸하다는 게 한 국회 보좌관의 증언이다.

청와대·부처에 지시 "공직기강 확립 차원"
소잃고 외양간 고쳐…"보여주기" 의견도
"술 마시고 사고 치면 바로 모가지"

얼마 전 제2차 아시아·태평양 물 정상회의 참석차 태국 치앙마이로 출국한 정홍원 국무총리는 출국 전 간부들과의 티타임에서 "술을 못 마시는 사람만 수행원으로 데려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며 음주에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실제로 정 총리의 주량은 와인 1잔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고, 술을 마시지도 않을뿐더러 직원들의 음주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왔다고 한 매체는 밝혔다. 실제로 정 총리는 지난달 19일 열린 한인 대표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도 술 대신 오렌지 주스로 건배하며 '금주령'에 화답했다.



박근혜정부의 대표적인 '금주(禁酒)론자' 진영 보건복지부장관도 청와대발 금주령에 찬성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최근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여러 사건사고에는 술이 연루되는 경우가 많고 종종 불미스러운 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번 '윤창중 사건'도 결국에는 술이 개입된 걸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진 장관은 장관 취임 후 지금까지 "난 폭탄주 강권에 한 맺힌 사람" "재임 기간 중 폭탄주 문화 개선에 성과를 내겠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술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자리" 등의 발언으로 '애주(愛酒)론자'들의 우려(?)를 샀던 인물이다.

또 진 장관은 지난달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을 방문, 대표를 맡고 있는 홍재철 목사에게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술·담배를 줄일 수 있도록 기독교계가 금주·금연 캠페인을 펼쳐 달라"고 주문했다. 진 장관은 여타 독실한 기독교신자들처럼 음주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핵심부처에 (음주에 부정적인) 친기독교 인사들이 많다보니 금주령이 쉽게 탄력을 받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앞서 밝힌 진 장관을 비롯해 정 총리, 황교안 법무부장관, 서승환 국토해양부장관 등은 소문난 기독교 신자다.

또 허태열 비서실장, 이정현 정무수석,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 모철민 교육문화수석 등도 각각 자신의 교회에서 장로나 집사를 맡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번에 해임된 이 전 수석도 기독교를 종교로 갖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 청와대 관계자는 "단순히 종교 때문에 금주령이 탄력을 받는다는 설은 그저 억측에 불과하다"며 "국민들의 보는 눈이 있으니 금주령 같은 미봉책으로라도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의견을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의 의견 역시 대동소이했다. 그는 "고위 공직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게 술접대와 골프접대인대 그런 의미에서 술을 자제하라고 윗사람들이 모범을 보이는 건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며 "우리 공무원들은 이런 일 생기면 다 알아서 조심하고 그런다"고 의견을 덧붙였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윤창중 때문에…


술은 몰라도 골프는 친다?

지난 3월 국군 장성들의 골프 회동이 논란을 일으킨 후 국방부장관 명의로 각 부대에 공문이 발송됐다. "국민 여론을 의식해 골프 모임을 최대한 자제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최근 흐름은 "술은 안 마셔도 골프는 친다"는 게 정설. 비단 군뿐만이 아니라 정부 고위 부처에서도 "술자리를 가느니 라운딩을 가겠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사회 고위층의 골프 사랑이 남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암암리에 공무원들에게 '골프 금지령'을 내렸는데 이는 박 대통령이 골프를 그리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괜한 구설에 오르는 걸 경계해서라는 얘기가 많다. 하지만 직무에서 벗어나면 그들은 어김없이 필드로 향하는데 '윤창중 사건' 이후로는 골프 회동이 잠시 주춤하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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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