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돌아온 킹메이커' 김한길 민주당 대표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5.06 15: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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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자루 쥔 구원투수 '위기의 민주당 살릴까'

[일요시사=사회팀] 김한길 민주당 대표에게는 '원죄'가 있다. 참여정부 시절 '기획 탈당'이란 초강수를 택했던 그는 대선 패배의 여파로 정가를 떠났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끝난 줄 알았던 그의 정치 인생은 민주당의 위기와 함께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이젠 권력의 정점에서 '정계개편'의 칼자루까지 거머쥐었다.



대세를 뒤집기에는 구도가 너무 뚜렷했다. 친노 대 비노의 혈투로 불렸던 민주당 지도부 경선에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웃었다. 대선 이후 달라진 당내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였다.

비노 맑음
친노 흐림

이번 지도부 경선에서 일찍이 대세론을 굳힌 김 대표는 당내 비주류의 좌장으로 불린다. 본인은 누구보다 '비주류'로 불리는 걸 싫어하지만 그의 과거 행보는 '비주류'를 넘어 '반노'로 불릴만한 구실을 여럿 제공했다. 김 대표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반역자'라는 오명. 참여정부 말기, 김 대표가 탈당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정치 행로를 걸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지난 2007년 2월, 김 대표는 22명의 의원과 함께 열린우리당 탈당을 선언했다. 명분은 '신당 창당을 통한 대선 승리'였다. 김 대표는 후발 주자로 합류한 염동연 의원 등 23명의 의원과 함께 '통합신당의원모임'을 발족했다. 정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 사건은 결론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등에 비수를 꽂은 일로 비견됐다.

같은 달 10일, 김 대표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위치한 중소기업인력개발원에서 1박2일간의 일정으로 '통합신당의원모임' 워크숍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국정 운영을 실패로 규정하면서 중도 노선의 신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이날 김 대표는 "슬프지만 결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탈당의 변을 밝혔다. 또 "국민들은 진작부터 이대로는 안 된다고 신호를 보냈지만 우리는 모른 척 했었다"며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해서 이대로 변하지 말고 주저앉아 (대선) 패배를 기다려야 한다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당의 대선 패배를 막기 위해 자신이 탈당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07년 대선에서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은 패배했다. 이명박 당시 후보는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김 대표의 결정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다. 대선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당을 지켜야 할 중진의원이 대규모 탈당을 주도했다는 사실은 결과 여하를 떠나 당시 지도부에 큰 상처를 남겼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옹호론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2006년 당내 원내대표로 있을 당시 참여정부와 마찰을 빚어왔다는 사실은 그의 탈당 명분을 희석시켰다.

대세론 속 일찌감치 승기 "비주류가 웃었다"
경선서 과열된 갈등봉합 숙제…안철수 문제는?

탈당 이후 김 대표는 "중도를 아우르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며 구 민주당과 합당했다. 중도통합민주당의 출범이었다. 하지만 그가 주장한 '대통합 정당'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김 대표는 대선을 눈앞에 둔 8월, 중도통합민주당에서 탈당했다. 열린우리당과의 공조를 못마땅하게 여긴 까닭이다. 당시 김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노무현 프레임을 깨버리겠다"고 말하는 등 대선 기간 내내 참여정부와 선을 그었다.

김 대표가 떠난 중도통합민주당은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됐다. 그리고 대통합민주신당이 내세운 정동영 후보는 17대 대선에서 참패했다. 대선 후 불거진 '책임론'에서 김 대표는 자유롭지 못했다. 2008년 1월, 김 대표는 "대선 대패에 책임을 지겠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계에 입문한 지 12년 만에 야인으로 돌아간 것이다. 

두 번의 탈당
반역자 꼬리표

김 대표는 정치인이기 이전 언론인으로 더 유명했다. 미국 생활 당시 <한국일보> 미주지사 기자, <중앙일보> 미주지사 지사장 등을 역임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 <김한길과 사람들>을 통해 존경 받는 언론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김 대표가 처음부터 언론인의 길을 걸었던 건 아니다. 건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그는 서울 중앙여고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김 대표는 자신이 졸업한 학교의 석좌교수를 비롯해 명지대학교 초빙교수로 임용됐다.

김 대표의 장점은 '글'에 있다. 1981년 소설 <바람과 박제>를 통해 등단한 그는 <미국일기> <여자의 남자>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등의 소설집을 간행하며,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큰 인기를 누렸다. 가수 조영남의 히트곡 '화개장터'의 숨겨진 원작자가 김 대표라는 사실은 2010년 알려져 큰 화제를 낳았다.

김 대표가 정치와 인연을 맺게 된 건 1996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를 승낙하면서부터다. 비례대표로 15대 국회에 입성한 그는 16대와 17대를 거치며 정치 거물로 자리매김했다. DJ 정부 때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그는 나이에 비해 빠른 승진으로 주변의 시샘 섞인 눈총을 받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는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의 대선후보 선대위에서 선거기획을 총괄한 자타공인 '전략통'이다. 스스로도 '킹메이커'란 별칭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과 탁월한 협상력은 지난 두 번의 대선을 통해 검증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김 대표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2008년부터 긴 칩거에 들어갔다. 그래서 혹자는 김 대표가 정계 은퇴를 선언한 것으로 오인하기도 했다. 가능한 말을 아꼈던 탓에 언론 노출도 없었다. 이 시기 김 대표는 외부 접촉을 최대한 자제한 채 집필 활동에 전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가 정계 복귀 신호탄을 쏘아올린 건 칩거로부터 3년이 지난 2011년이다.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후보군 중 김 대표가 거론된 것. 김 대표도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를 통해 "출마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며 정계 복귀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고심 끝에 불출마를 선택했다. '안철수'라는 흥행티켓 앞에서 김 대표의 선택지는 넓지 않았다. 당시 김 대표는 민주당 당원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서울시장 후보경선에 나가기보다 정권교체를 위해 필요한 민주당의 변화와 혁신을 실현하는 일에 성심껏 기여하고자 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았다. 이어진 글에서 김 대표는 "오늘의 위기를 자초한 것은 당의 최고 지도부"라며 "지도부의 무능과 계파 싸움 추태에 민주당이 상처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주류' 좌장 이미지가 김 대표에게 덧칠해진 순간이었다.

4년만의 귀환
비주류의 역습

서울시장 선거 후 새누리당이 각종 악재로 골머리를 앓을 무렵, 민주당(당시 민주통합당) 지도부는 김 대표에게 손을 내밀었다.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서울 광진갑에 김 대표를 전략 공천한 것이다.

김 대표는 "중앙당으로부터 서울 광진갑 지역에 출마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심 끝에 받아들였다"며 "반드시 승리해 정권 교체에 앞장서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정송학 새누리당 후보와 맞붙었던 김 대표는 52.1%의 득표로 당선됐다. 국회 재입성에 성공한 것. 김 대표는 당선 직후 당 대표 출마 가능성을 내비치며 '당권'을 향한 의욕을 내보였다.

당시 김 대표는 "4년 전 정권을 뺏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며 "그러면 정권을 찾아올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김 대표가 첫 당권 사냥에 나선 2012년 4월. 이해찬 당시 상임고문과 박지원 최고위원의 이른바 당·원내대표 담함 의혹이 불거졌다. 김 대표는 크게 반발하며 "소위 계파의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분들이 밀실합의로 당직을 나눠 갖겠다는 것은 참으로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박 최고위원은 압도적인 득표로 원내대표에 안착했다. 남은 건 이 고문의 당 대표 선출 여부. 이에 대항마로 떠올랐던 게 바로 '탈계파'를 주장한 김 대표다.

김 대표는 "패권적 계파정치에 민주당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자신을 당 대표로 뽑아줄 것을 읍소했다. 또 "친노니 친호남이니 하는 명찰을 모두 떼어버리고 우리당 모두가 오직 '대선승리'라는 하나의 명찰을 달고 한마음으로 나아갈 때"라고 강조했다. 올해 지도부 경선에서 들고 나왔던 구호를 당시부터 주창한 셈이다.

김 대표는 울산에서 열린 지역 대의원 첫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며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소위 말하는 '흥행 대박'을 터트린 것. 이후 김 대표는 지역 순회 과정에서 이 고문과 엎치락뒤치락하는 시소게임을 거듭하며 선전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결국 이 고문의 벽을 넘지 못했다. 최종 득표 6만6187표. 이 고문과는 1471표 차이로 2위를 기록했다. 첫 도전에서 쓴맛을 삼켜야 했던 김 대표다.

최고위원에 선출된 김 대표는 지도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김 대표는 지도부 선출 후 열린 첫 번째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 대의원과 당원들에게 가장 많은 표를 받고도 당 대표가 되지 못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일반 국민이 참여한 모바일 투표에서 패배했다는 데 아쉬움을 드러낸 것.

김 대표는 18대 대선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단일화 협상이 진행되기 전 안철수 캠프의 박선숙 총괄본부장과 회동하는 등 안 후보 측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김한길의 의중이 안철수에 쏠려 있다"는 의혹이 나온 것도 이 시점이다.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지난해 11월 김 대표는 최고위원직을 전격 사퇴했다. "정치쇄신을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고 용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문 후보가 민주당의 쇄신을 이끌 수 있도록 남은 지도부도 용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최고위원과 이 고문은 이를 일축했다. "지도부 사퇴로 민주당에 내분이 있는 것처럼 비춰서는 안 되고, 힘든 때일수록 당 지도부가 남아 문 후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이를 두고 김 대표가 '후보 흔들기'를 했다는 소문이 난립했다. 만약 문 후보가 당선된다면 '친노'의 약진으로 김 대표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 자명해보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또다시 대선에서 패배했다. 문 후보가 분전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넘기는 역부족이었다. 대선 패배 직후 '친노 책임론'이 급부상했고, 가장 큰 수혜자는 김 대표였다. 지도부는 총사퇴했고, 비상대책위원회 선출 과정에서 '원내대표 추대론' '비상대책위원장 추대론' 등이 고개를 들었다. 당은 대선에서 졌지만 덕분에 김 대표의 역할이 조명받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지난 3월 김 대표는 '계파정치 청산'과 안 후보를 껴안는 '더 큰 민주당론'을 내세워 또 다시 당권 도전에 나섰다. 오는 5월 전당대회를 통해 당대표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두 번의 대선을 거치며 비주류 좌장으로 우뚝 선 김 대표는 "계파의 이익을 당의 이익보다 앞세우고 계파의 이해를 국민의 이해보다 앞세우는 정치는 이제 끝장내야 한다"면서 '안철수 지지세력'을 껴안는 변화를 촉구했다.

DJ 권유 정계입문…대통령 만든 공신
4·11 총선 전후 비주류 좌장 급부상
"친노? 비노? 계파부터 청산"

5·4 전당대회를 앞두고 후보들 간 경쟁이 본격 궤도에 오르면서 자연스레 '김한길 대 반(反)김한길' 구도가 짜여졌다. 강기정, 이용섭 의원을 비롯한 범주류계는 비주류인 김 대표를 압박하면서 단일화 논의를 이어갔다. 특히 강 의원은 "김한길 당선이 혁신이라는 것은 또 다른 패권적 발상"이라며 김 대표를 겨냥한 강도 높은 공격을 이어갔다.

당 외곽에서도 '김한길 대세론'에 찬물을 끼얹는 성토가 이어졌다. 직계 친노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 강연에서 "국민연금법 등 참여정부 주요 정책을 통과시키려할 때 대통합민주신당 만든다고 선도 탈당해서 본회의장 복도에서 커피 마시면서 기권표 던진 분들이 민주당 당 대표가 되겠다고 한다"며 쓴소리를 날렸다. 김 대표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표현이었다.

이 가운데 당권을 차기하기 위한 주류와 비주류간의 자존심 싸움은 날로 격화됐다. 지난 28일 강 의원과 이 의원은 '김한길 대세론'을 저지하기 위해 단일화를 선언하는 등 최후까지 계파대결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치고받기식 폭로가 연일 이어지며 양측은 큰 내상을 입었다.

갈등봉합 관건
정계개편 촉각

김 대표는 최근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친노니 비노니 주류니 비주류니 하는 말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자신의 목표는 '이기는 민주당'이라는 뜻도 분명히 했다.

남은 건 김 대표가 자신이 주장한 '계파청산'을 완수하고 국민을 위한 민주당으로 거듭날 것인지 여부.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정계개편'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그 출발은 '안철수 신당'이란 설명.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안철수 신당을 반길 세력은 분명 새누리당밖에 없을 것"이라며 "야권의 재구성이 있다면 그 중심에 민주당이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안철수 줄대기'가 사실이 아니란 것. 그러면서 김 대표는 "자신이 거름이 돼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는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과연 김 대표가 경선 과정에서 과열된 갈등을 봉합하고 제1야당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 주사위는 던져졌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김한길 대표는?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한국일보> 미주지사 기자, <중앙일보> 미주지사 편집국장·지사장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석좌교수, 명지대 초빙교수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인수위원회 위원·대변인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기획특보
▲제16·17대 총선 기획단장·본부장
▲제17대 건설교통위원장, 국회운영위원장
▲37대 문화관광부 장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국회 문화방송체육통신위원회 위원
▲15·16·17·19대(4선·광진갑) 국회의원
▲현 민주당 당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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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 장지선 기자 =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가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업계에서는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내부는 엉망진창이라는 풍문이 돌고 있다. 레이블 간의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번졌고 주력 IP는 과거와 비교해 힘을 못 쓰는 모양새다. 연예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하려는 걸까? 2024년 5월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열사 자산 총액과 자본 총액을 더한 자산이 5조원을 넘긴 곳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2024년 3월 공개한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하이브 자산 총계는 5조원을 넘었다. 당시 기준으로 재계 순위 85위에 올랐다. 빛 좋은 개살구?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기업의 의무가 늘어난다. 엄격한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상징성도 얻는다. 실제 하이브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최초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국가 차원에서 하이브가 ‘업계 1위’로 인정받은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K팝의 세계화로 앨범, 공연, 콘텐츠 등이 주요 수익원인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급격히 성장한 것이 반영됐다”고 지정 배경을 밝혔다. 하이브의 대기업집단 지정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의 갈등이 한창 불거질 무렵에 이뤄졌다. 앞서 2024년 4월 하이브는 그룹 뉴진스 등이 소속된 레이블 어도어를 이끌고 있던 민 전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를 진행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 이른바 ‘민-하 대전’의 시작이었다. 이후 뉴진스, 다른 레이블까지 싸움에 뛰어들었다. 뉴진스는 자신들의 프로듀서는 민 전 대표라고 주장하면서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다른 레이블은 민 전 대표가 제기한 표절 의혹 등에 반발해 소를 제기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계약 문제도 송사로 번졌다. 그 사이 뉴진스는 쪼개졌고 멤버 1명은 계약 해지 후 피소됐다. 내부 문제 외에도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카카오와의 갈등도 현재 진행형이다. 카카오와 하이브는 ‘아이돌 명가’로 불리는 SM을 인수하기 위해 엄청난 출혈 경쟁을 벌였다. 인수전이 과열되면서 카카오가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범수 의장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가 보석 석방되기도 했다. 1900억원대 부당이득 혐의 경찰 영장 청구, 검찰 반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두문불출 상태였다. 미국에 머물다가 인터넷 방송 BJ ‘과즙세연(본명 인세연)’과 거리를 걷는 사진이 찍혀 입길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행보를 알기 어려웠다. 방 의장이 프로듀싱을 도맡아 온 방탄소년단(BTS)도 ‘군백기(군대+공백기)’ 상태였다. 하지만 BTS의 광화문 공연 이후 방 의장에 대한 언급이 늘었다. BTS는 멤버 전원이 군대에 다녀온 뒤 ‘완전체’ 첫 행보로 광화문 공연을 선택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하이브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성사된 공연은 각종 논란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하이브에 특혜를 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 시점도 이때다. 지난달 21일 광화문 일대는 경찰 등에서 동원된 경비 인원으로 삼엄했다. 광화문 인근을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문이 이뤄졌고 그 수위는 살벌했다. 공연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도 검문 대상으로 지목됐고 결혼식 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사람도 어김없었다. 정부와 전폭적인 지원에도 BTS 공연을 위해 광화문에 모인 인파는 예상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앞서 26만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공연 직후 경찰은 4만명으로 추산했고 하이브는 10만여명으로 발표했다. 어떤 기준을 갖다 대도 예상치보다 적은 인원이 모이면서 공연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모두의 광장인 광화문을 사기업이 특정 시간대에 독점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회사 뒤에 숨어 있나 실제 BTS의 광화문 공연은 ‘관급 행사’를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 전 국무총리가 하이브를 방문했고 서울시는 공연 당일 경비를 위한 회의를 여러 번 진행했다. 물 샐 틈 하나 없는 경비 체제를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안전 관리에만 경찰 6700여명 등 모두 1만5000명에 이르는 인력이 동원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가세했다. 이 대통령은 공연 전에는 안전 관리를 당부하는 목소리를 냈고 공연 이후에도 호평을 남겼다. 이 대통령은 공연 이후인 지난달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번 공연은 광화문 홍보를 넘어 대한민국 홍보에 결정적이었다”며 “기획을 잘 해서 잘 진행했다”고 평했다. 대통령까지 언급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공교롭게도 방 의장에 대한 비판으로 튀었다. 방의장이 현재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점, 그 내용이 주식과 관련된 것이라 정부 정책에 반한다는 점 등이 화두가 됐다. 이 대통령은 ‘주가조작은 패가망신’이라면서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방 의장은 하이브 IPO(기업 공개) 이전인 2019년 기존 투자자들에게 상장 계획이 지연될 것처럼 설명하는 등 기망행위를 통해 주식을 매수하고 이후 자신과 관련된 사모펀드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에 지분을 넘기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이 추산한 부당이득 액수는 19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7월 이 대통령의 ‘주가조작은 패가망신’ 경고 이후 주식시장을 교란한 혐의를 받는 인사들에 대한 금융 당국의 제재가 강해졌다. 당시 지목당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방 의장이었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7월16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금지 위반 혐의로 방 의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경찰도 같은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미국 압박 경찰 발끈? 검․경의 중복 수사 우려까지 불거졌던 사안은 경찰이 내사에 착수한 2024년 말 이후 1년 반이 지나도록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경찰은 지난해 9월 방 의장을 처음 소환한 이후 같은 해 11월까지 총 5차례 조사했다. 이후 5개월간 추가 소환이나 신병 확보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늑장 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2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구속영장 청구 하루 전인 지난 20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방 의장 수사는 거의 마무리됐다”며 “법리를 검토 중이고 머지않은 시간 내에 종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고 다음 날 방 의장에 대한 신병 확보에 나선 것이다. 방 의장 측은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그의 변호인단은 “장기간 성실히 수사에 협조했음에도 구속영장이 신청된 것은 유감”이라며 “향후 법적 절차에도 충실히 임해 최선을 다해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국대사관의 압박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최근 방 의장의 미국 방문과 관련해 출국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경찰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한에는 오는 7월4일 예정된 미국 독립기념일 250주년 행사 참석과 BTS의 월드투어 지원 필요성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방 의장은 출국금지 상태다. BTS 광화문 공연부터 특혜 의혹 솔솔 나와 주한미국대사관의 행보에 경찰 내부는 격앙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BTS 콘서트나 독립 250주년 기념행사 등을 고리로 미국 측을 움직여 수사 편의를 우회 압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지난해 미국으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는 상황이라 방 의장이 입을 맞추거나 도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경찰의 신병 확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이브는 국민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주한미국대사관의 서한 발송이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하이브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행사 참석을 요청받은 적도 없고 출국금지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구속 갈림길에 서 있던 방 의장은 검찰의 구속영장 반려로 한숨 돌리게 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 24일 방 의장에게 신청된 구속영장을 돌려보냈다. 검찰은 “현 단계에서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 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일단 구속 위기는 피했지만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하이브의 최대 변수가 되는 모양새다. 하이브는 핵심 IP인 BTS 컴백으로 최대한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상황에서 광화문 공연이 한 차례 논란이 된 데 이어 오너 리스크까지 덮쳤다. 무엇보다 방 의장이 하이브에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만큼 향후 상황에 따라 발생할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너 리스크 K-팝도 영향 연예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하이브를 넘어 K-팝 업계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우리나라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K-팝의 이미지가 업계 1위 수장의 오너 리스크로 얼룩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방 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