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횡령극> '성균관 스캔들' 풀스토리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4.15 14: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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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독 오른 선비님 "끝까지 오리발"

[일요시사=사회팀]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자두(오얏)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유명한 격언이다. 그러나 갓을 고쳐 쓴 건 물론이고 자두 열매까지 따먹다가 걸린 선비가 있다. 바로 최근덕 성균관장. 국내 유림의 대표이자 국내 7대 종교 지도자 중 1명인 최 관장의 공금 횡령 사건을 놓고 성균관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배우 송중기는 지난 2010년 방영된 KBS2TV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을 통해 이른바 출셋길에 올랐다. 그리고 2013년, 또 다른 '성균관 스캔들'의 주인공 최근덕(80) 성균관장은 지난 9일 호송길에 올랐다.

'유림의 수치'
구속수사 망신살

최 관장은 국고보조금 유용과 공금 횡령으로 대구지검 안동지청에 구속 수감됐다. 이른바 '성균관 스캔들'로 불리는 사상 초유의 횡령 사태다.

앞서 최 관장은 <성균관 스캔들> 방영 당시 "성균관은 우리 전통에서 유일무이한 국립대학이자 국가 경영 인재를 양성한 요람으로 '스캔들'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건 명예훼손"이라며 KBS 측에 드라마 제목 변경을 요구했다.

하지만 얄궂은 운명은 최 관장을 진짜 '성균관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한국 유림의 수장인 최 관장은 국내 7대 종단 지도자 중 최초로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최 관장은 국내 유교 본가인 성균관과 전국 134개 향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최 관장은 자승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김희중 천주교주교회의 대주교, 홍재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 남궁성 원불교 교정원장, 임운길 천도교 도령,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과 함께 나란히 국내 7대 종교 지도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 19일 최 관장은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의장 자격으로 청와대에 초청됐다. 이 자리에서 최 관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했다. 그러나 채 한 달도 못돼 최 관장은 영어의 몸으로 재소자들과 함께 밥을 먹는 신세가 됐다.

성균관은 국내 최고의 정통 유학 기관으로 그 역사만 600여년에 달하는 한국 유교의 총아다. 해방 이후부터는 전통 유교의 현대화에 힘쓰며 유학의 가치를 알리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리고 최 관장은 유교 개혁의 선봉장으로 각인돼있다. 성균관 역사 상 '최장수' 수장인 최 관장은 지난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성균관장을 맡았다. 또 2003년에는 전임자의 잔여 임기를 이어받아 현재까지 직위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7대 지도자가 '헉'…공금 수십억 꿀꺽
장기집권 중 반대파 표적 "진흙탕 권력 암투"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최 관장은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 유학과 교수로 임용돼 정년을 마쳤다. 전통 서당에서 교육 받은 마지막 세대인 최 관장은 지난 1955년부터 성균관 사무에 관여해 '성균관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린다.

최 관장은 취임 일성으로 "유교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개혁이며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유교도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관장은 실제로 유교 내부의 파격적인 변화를 이끌었는데 종묘 제례에 여성의 참례를 허용하고, 향교의 실무 임원인 장의(掌議)에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등 개혁·개방에 주력해왔다. 하지만 이 때문에 유림 내부에서는 반대파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개방을 앞세운 최 관장은 외부 활동도 활발히 벌였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건 물론 국제유교연합회를 창립,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또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대표회장 등을 지냈다.

장기집권 후폭풍
비리고발 이어져

하지만 최 관장은 관장직을 10년 넘게 유지하면서 결국 화를 불렀다. 권력을 장기 독점하는 과정에서 일부 유림 세력과의 갈등이 표출된 것. 최 관장은 지난 2006년 관장추대위를 만들어 추대위원들이 관장을 선출하도록 하는 내용의 성균관 장정(법)을 개정했다. 그리고 장정 개정 이후 최 관장은 연임에 성공했다. 최 관장의 이 같은 처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헌법을 개정해 유신 체제를 만든 것에 비견됐다.

그리고 급기야 지난 2007년에는 관장 선출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재단법인 성균관 이사장에 취임한 조홍규 전 민주당 의원이 최 관장의 임기 연장 문제를 공식적으로 거론하며 최 관장의 사퇴를 압박한 것.

그러나 성균관 측은 "종단의 수장인 성균관장에 대해 이사회장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임기 연장은 대의원인 전국 유림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정당한 절차를 거쳐 결정된 것"이라는 반박을 내놨다.

최 관장의 임기 연장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잡음이 불거진 가운데 지난해 1월 성균관 부관장인 J씨는 성균관의 치부를 드러냈다. 최 관장이 성균관 공금 25억여원을 횡령했다는 폭로였다.

당시 J씨는 최 관장을 횡령 혐의로 고발하며 "최 관장이 매년 운영자금으로 받은 공금 25억여원을 횡령해 아파트를 사는 등 개인 용도로 유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J씨의 내부 고발을 둘러싸고 권력 암투라는 소문이 돌았다. 성균관 부관장 선임을 둘러싼 내분이 고발로 이어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성균관 부관장 임명은 유림 원로에게 임명권을 위임받은 성균관장이 결정하는 구조로 사실상 성균관장이 전권을 쥐고 있다. 이 상황에서 부관장 선임 문제로 앙심을 품고 있던 일부 세력이 최 관장을 공격한 것이라는 내부 증언이 이어진 것. 이 때문에 J씨의 고발은 성균관 내부에서 큰 호응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혐의의 상당 부분이 사실로 확인됐다"며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고발의 저의야 어떻든 경찰이 파악한 사건의 진위는 J씨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지난해 6월,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최 관장이 부관장 11명으로부터 매해 운영자금을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건네받았고, 이중 일부인 25억2000만원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며 피의 사실을 공표했다.

또 검찰은 성균관 회계 담당자를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성균관 운영자금 집행내역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최 관장은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검찰 조사에서 최 관장은 "운영자금으로 받은 25억2000만원 중 18억여원을 공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며 증빙자료를 제출했다. 또 "부관장들로부터 헌성금을 받는 건 성균관의 오랜 관행"이라는 진술을 덧붙였다.


최 관장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수사의 관건은 J씨 등 부관장들이 낸 '헌성금'의 성격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헌성금을 낸 J씨 측은 "헌성금은 공금이며, 최 관장은 공금을 유용했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고, 최 관장 측은 "헌성금은 공금이 아닌 관장의 품위유지비"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특히 최 관장의 입김이 닿았던 성균관 측은 "음해세력이 최 관장에게 씌운 억울한 누명"이라는 탄원과 함께 "성균관의 어려운 재정 때문에 관장이 직접 헌성금을 직접 관리해왔다"고 해명했다. 최 관장과 J씨 측의 진실공방이 예고된 상황.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최 관장에게 불리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났다.

2010년 이후 성균관의 한 해 평균 수입은 15억여원 규모로 전해졌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받는 국가보조금과 성균관 유림들로부터 걷어지는 회비를 더한 금액이다.

최 관장은 이 돈을 개인 또는 가족 명의의 통장으로 관리해왔다. 계좌 사이에 돈도 수억원씩 오갔다. 충분히 개인 유용이 의심받을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 관장은 "본인 이전에도 부관장들의 기부금으로 성균관을 운영해왔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지난 1월 밝힌 J씨 측의 주장은 달랐다. J씨는 "최 관장이 펀드에 공금을 투자하는 등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며 "운영이 어렵다는 핑계로 늘 관장이 돈을 더 요구했다"고 증언했다. 최 관장을 고발한 J씨 등 5명은 "매해 2천만원이 넘는 돈을 성균관에 기부했으나 자금과 관련한 어떠한 말도 관장으로부터 전해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즉 돈을 납입한 사람의 대부분은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몰랐다는 설명. 결과적으로 성균관의 자금 운영은 투명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내는 사람 따로
쓰는 사람 따로

지난 3월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지 못하자 성균관 안팎에서는 의문이 제기됐다. 사건이 이대로 유야무야 끝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또 서울중앙지검이 최 관장의 횡령 사건을 대구지검 안동지청으로 이송하면서 '축소 수사'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기우였다.

당시 검찰은 비교적 성격이 명확했던 9억7000여만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헌성금에 대해 최 관장의 횡령 혐의를 입증할만한 증거를 모으고 있었다. 이 가운데 최 관장의 추가적인 피의 사실이 안동지청에서 포착된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성균관은 지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청소년 인성교육 현장교실' 사업을 명목으로 매해 8억원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최 관장의 측근인 성균관 직원 K씨는 한문·예절교재의 제작비용을 과다 책정하는 수법으로 5억4700만여원을 횡령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던 안동지청은 K씨의 입을 통해 놀라운 얘기를 전해 들었다. 최 관장이 K씨에게 국고보조금 중 5000여만원을 빼돌릴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K씨에 따르면 성균관은 교재 제작을 주문하면서 실제 비용보다 부풀린 대금을 인쇄 업체에 지급하고, 나중에 일부를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정부 지원금을 착복했는데 이중 5000여만원이 최 관장에게 흘러들어갔다는 증언이었다.

붙잡힌 K씨는 모든 범죄 사실을 시인하고, 결재서류와 통장 사본, 인쇄업체와의 거래내용 등 관련 자료를 검찰에 제출했다. 그리고 검찰은 최 관장이 국고보조금을 포함한 1억7000만원을 마치 부관장들로부터 헌성금을 받은 것으로 속여 자신의 계좌에 입금한 사실을 추가로 적발했다.

기부금에 국고보조금까지 손대
'1년 수사' 측근들 줄줄이 구속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최 관장과 연루된 추가적인 비리 혐의가 계속 쏟아지면서 검찰은 구속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혐의 사실을 모아 한꺼번에 기소하겠다는 복안이었다.

먼저 성균관 교무부장인 Y씨는 국고 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으며, 성균관이 운영하는 한국선비문화수련원 원장 L씨도 정부보조금 93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수사 과정에서 Y씨 등이 최 관장의 제자이자 측근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검찰은 그들이 빼돌린 돈의 일부가 최 관장에게 전해졌을 것으로 보고 수사력을 집중했다. 좁혀지는 수사망에 최 관장에 대한 구속 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최 관장과 관련한 혐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성균관 내부의 목소리도 달라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성균관에게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이 올 것이라는 기류가 형성된 것.

K씨가 구속 수감되는 것을 지켜본 한 성균관 관계자는 "최 관장에 대한 사법처리가 지연될수록 성균관의 대내외 이미지나 위상은 더욱 추락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팎의 따가운 눈총 속에 최 관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유림회관 3층 대강당에서 성균관 정기총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최 관장은 "항간에 떠도는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말고 일치단결하여 유림회관건립에 매진하자"며 "성균관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유림의 앞날은 밝을 것입니다"라고 연설했다. 그리고 그 연설이 유림들 앞에서 한 마지막 연설이 됐다.

지난 9일 검찰은 부하 직원에게 국고보조금 유용을 지시하고 공금을 개인용도로 사용한 혐의로 최 관장에 대한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영장을 심사한 대구지법 안동지원 이혜란 판사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구속영장이 떨어지자 최 관장은 흰색 두루마기 차림으로 법원에 출두했다. 성균관 관계자 4명이 최 관장의 곁을 지켰다.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최 관장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법원으로 들어간 최 관장은 선비의 상징인 두루마기 대신 범죄자가 입는 수의를 입게 됐다.

혐의 눈덩이
엄정수사 촉구

최 관장 구속 후 몇몇 유림들은 "선조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며 망연자실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에서는 "전체 유림의 수치"라는 분노의 목소리가 들렸다.  

며칠 전 경북도청년유도회와 안동청년유도회, 유교문화선양회 등 유림단체들은 성명을 냈다. "전국 유림의 명예를 실추시킨 최 관장과 성균관 운영진의 즉각적인 퇴진과 엄정한 사법처리를 촉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최 관장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던 유림 왕조는 그의 구속과 함께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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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