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밀려 떠나는' 강만수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4.02 16: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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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킹만수'…정권 바뀌자 삼십육계 '퀵만수'

[일요시사=사회팀] 예상은 했지만 너무 급작스러웠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결국 새 정부 인사 태풍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대표적인 MB맨으로 불리며 권력의 정점에 섰던 그는 지난 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쓸쓸히 자리에서 내려왔다. 강 회장의 퇴장으로 MB노믹스는 이제 종언을 선언했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28일 사의를 표명했다. 임기를 1년이나 남긴 상황에서 강 회장은 중도 낙마하며, 김재철 MBC사장과 함께 정권 물갈이의 신호탄이 됐다.

산업은행 민영화 등
손댄 사업마다 실패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낙하산으로 분류됐던 그는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하며 '산업은행 민영화'의 특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받은 미션은 일단 실패로 끝났다.

우선 박근혜 정부는 민영화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달 있었던 경제정책방향 브리핑에서 "4월 말쯤 발표되는 추경 예산안을 통해 세수 확충이 판가름 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앞선 정부가 2013년 예산안에 산은금융지주 매각 금액인 2조6000억원을 편성한 것에 대한 답변이었다. 무리하게 추진됐던 산업은행 민영화를 다시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강 회장의 자리도 위태로워졌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교체대상 영순위로 지목됐던 그는 'MB노믹스'의 영욕을 뒤로 한 채 쓸쓸한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 MB색채가 강한 강 회장은 함께 가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의 경질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던 것도 청와대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실 강 회장은 누구보다 MB와 가까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외부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산 적이 많지만 내부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은 축에 속한다.

강 회장을 아는 기자들은 그가 "공직생활 내내 당당하고 의욕적으로 일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그와 대화를 나눠 본 사람들은 "강 회장이 다양한 화제에 맞게 이야기를 끌어갈 줄 알며, 워낙 아이디어가 많아 사업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적이 많다"고 회고했다. 강 회장의 '비상한 두뇌'가 의심할 여지 없다는 얘기다.

MB노믹스 뼈대 잡은 설계자…5년간 탄탄대로
소망교회서 이명박 만나 경제 실세로 급부상

경남 합천 출생인 강 회장은 경남고를 수석 졸업한 뒤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1969년 서울대를 졸업한 강 회장은 다음해 행정고시(8회) 재정직에 수석 합격했다. 이른바 엘리트코스를 밟은 것이다.

그의 공직 생활은 세무서에서 시작됐지만 곧 능력을 인정받고 재무부로 거처를 옮겼다. 강 회장은 세제국 사무관으로 근무하며 1977년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실무자로 이름을 올렸다. 늘 많은 프로젝트가 강 회장 앞에 몰릴 정도로 재무 분야에서 강 회장은 전문가로 정평이 났다.


그런 그가 1985년 한국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주미국 한국대사관 재무관으로 추천된 것이다. 그는 1988년까지 미국에 머물며 국가의 녹을 먹었다.

미국 생활 중에도 강 회장의 엘리트 본능은 빛났다. 친분이 있던 IMF의 테이트 재정국 부국장의 추천서를 받아든 강 회장은 전공인 법학 대신 경제학을 선택해 뉴욕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는 1987년 다섯 학기(계절학기 포함) 만에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온 강 회장 앞에는 탄탄대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재무부 보험국장·국제금융국장 등을 거쳤으며, 1994년부터는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의 세제실장으로 근무했다.

그리고 1995년 제14대 관세청장에 오른 강 회장은 1996년 통상산업부 차관을 꿰차며, 권력의 핵심에 접근했다. 1997년 재정경제원 차관이 된 강 회장은 2000년대 들어 잠시 공직에서 내려와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파워 엘리트
MB와 손잡다

지난 2004년 한나라당의 제17대 국회의원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한 강 회장은 이 무렵부터 정치권과 끈끈한 연을 맺고 비상을 준비했다.

누가 뭐래도 그는 IMF 사태를 직접 실무적으로 경험한 경제통이다. IMF 이후 금융시스템의 초석을 다진 것도 그다. IMF 당시 강 회장은 지원 자금 협상은 물론 금융감독·중앙은행제도 개편 등에 참여해 목소리를 냈다. 이런 강 회장을 일찍부터 눈여겨보던 이는 MB였다.

두 사람은 1981년 소망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된 건 2000년이다. 강 회장이 한나라당 미래경쟁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다. 당시 위원장은 바로 MB였다. 서로 교감한 둘은 2005년 공적인 자리에서 재회했다. MB가 서울시장으로 재임 중이던 2005년, 강 회장을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원장으로 부른 것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주도한 청계천 복원 사업, 대중교통체제개편 등의 연구는 모두 강 회장의 손을 거쳤다. 이를 통해 강 회장은 MB의 핵심 참모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3년 뒤인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첫 경제 수장으로 강 회장이 선임됐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통합된 기획재정부의 초대 장관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때 설계된 'MB노믹스'는 분란의 시작이었다.

MB노믹스는 서민경제를 파탄 낸 주범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를 주창한 이는 강 회장이었다. 재무부 시절부터 금융시장 자율화와 개방 등을 추진하며 신자유주의 경제노선을 드러낸 강 회장은 정권 초기 고환율 정책을 고집해 수입 물가를 상승시켰다. 이는 서민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으며 이 때문에 MB와 강 회장은 '리만브라더스'라는 오명을 얻었다.

그러나 강 회장은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마이웨이를 걸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 정서와 다소 동떨어진 그의 튀는 어록은 연일 화제가 됐다. 유명한 건 법인세 관련 브리핑이다.


강 회장은 취임 첫 공식브리핑에서 법인세 인하와 관련 '대기업만 이득을 본다'는 지적에 대해 "대기업이 더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세금 경감 시 더 많은 혜택을 보는 건 당연하다"고 반박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상속세와 관련해서도 "상속세는 폐지하느냐 마느냐 보다 세율 등을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 상속세 인하 가능성을 열었다. 앞선 자리에선 "앞으로 상속세를 두는 나라는 자본도피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 측의 권고를 소개하는 등 'MB노믹스'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종합부동산세 완화도 강 회장의 신념이었다. 그는 '부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각계의 지적에도 "종부세는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조세"라는 철학을 굽히지 않았다.

혼쭐난 고환율 정책
그래도 '마이웨이'

그는 기본적으로 주위 여론에 전혀 부담을 갖지 않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 정권의 주요 정책 기조였던 '747 경제공약'에 관해서도 "그건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것이지 그걸 구체적으로 달성하리라 생각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답하는 등 허를 찌르는 화법으로 유명했다.

사실 IMF 사태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이 있는 강 회장이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이 됐다는 것 자체가 이명박 정권의 도덕불감증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란 지적이 많았다. 1998년 관가를 떠났던 강 회장의 복귀는 이래저래 불협화음을 양산했다.


2009년 1월 강 회장은 기획재정부 장관에서 퇴임했다. 하지만 강 회장에게는 다른 임무가 주어졌다.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으로 활동했던 강 회장은 2011년 3월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 행장에 취임했다.

경제 관료 출신이 산업은행 책임자로 선임된 전례가 없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강 회장은 금융 산업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회장에 부임했다. 이를 두고 낙하산 논란이 계속됐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강 회장이 산은금융지주 회장직에 취임하자 '메가뱅크론'도 고개를 들었다. 그는 과거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부터 우리금융과 산은금융, 기업은행의 합병을 주장했는데 이는 자본유출 위험성이 높아 고도의 검증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강 회장은 산은금융지주 민영화와 메가뱅크를 역설하며 경영 전선을 주도했다.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메가뱅크 성사의 한 축인 우리금융지주 인수에 실패한 것이다.

당초 강 회장의 취임을 두고 한국 금융 산업의 새판짜기가 시작될 것이란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메가뱅크는 무산됐고 부임 초반부터 기업은행·우체국·농협·SC제일은행 등의 인수설로 시장 혼란만 가중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특히 종합금융그룹을 세워 금융시장 발전을 주도하겠다는 밑그림이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하자 그 책임은 강 회장에게 돌아갔다. 강 회장 개인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우리금융지주 입찰 무산은 여러모로 파급력이 컸다. 인수 당사자인 우리금융과 학계로부터 '관치금융의 극치'란 뭇매를 맞은 건 그의 커리어에 큰 오명으로 남았다. 이와 동시에 산은금융지주의 민영화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우리금융 인수가 무산되면서 산은금융지주 민영화도 사실상 불가능한 미션이 돼 버린 것이다.

낙하산 인사란 꼬리표 때문에 기업 내부 지지도 얻지 못했다. 노조는 강 회장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간부급들은 "힘 있는 회장의 취임으로 속도감 있는 변화를 예상했는데 실망스럽다"며 등을 돌렸다. 좌우로 협공을 받는 형세 속에 강 회장은 힘을 잃었다.

이 같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강 회장은 홍콩상하이은행(HSBC)의 서울지점 인수를 추진했다. 이때 당시 협상이 타결됐다는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 그러나 결론은 협상 결렬이었다. HSBC가 내건 직원 고용승계 등의 요구를 산은금융지주는 들어줄 수 없었다. 협상 3개월 만에 산은금융지주는 손을 털고 테이블을 빠져나왔다.

굵직한 프로젝트를 연이어 놓친 강 회장은 이후 해외 출장을 반복하며 활로를 모색했다. 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강 회장이 국내외를 오고가는 동안 이명박 정권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 강 회장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탄력을 받았다. 이에 발맞춰 감사원은 강 회장의 목줄을 죄었다.

 

'박근혜 시대' 쓸쓸히 자리서 내려와
정권 물갈이 신호탄…낙하산들 긴장

지난달 14일 감사원은 '금융공기업 경영실태' 발표를 통해 다이렉트 뱅킹의 치부를 드러냈다. 다이렉트 뱅킹은 강 회장이 사활을 걸고 추진한 대형 사업이다.

강 회장은 취약한 자금 조달 구조 개선을 목표로 이 사업을 추진했는데 이와 관련 산은금융의 2012년 총자산이 전년 대비 20조원이나 증가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강 회장 역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다이렉트 뱅킹'을 치적으로 홍보하는 등 자신감을 내보였다. 지점 유지비용을 고객에게 수익으로 돌려준다는 발상은 일반 국민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감사원은 다이렉트 뱅킹이 역마진으로 손실이 나는 구조란 걸 밝혀냈다. 구체적인 액수까지 집어냈다. 예금자보험료와 지급준비금 등 관리비용을 잘못 산정해 지난해 460억원의 손해를 봤으며, 올해 말까지 예금 손실액이 1094억원, 고금리 예금상품 전체 손실은 1440억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뿐만 아니라 영업이익을 부풀려 임직원의 성과급을 최대 41억원이나 더 지급한 점, 개인금융 부문 확대를 위해 영업점을 늘리면서 5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점 등을 문제 삼았다. 금융권 최초의 사내대학으로 알려진 KDB금융대학교 역시 사실상 MB주도의 '일자리 기념관'이란 비아냥을 들으며 감사 대상에 올랐다.

마이다스의 손?
마이너스의 손!

돌이켜보면 강 회장은 계사년 신년사에서 산업은행 민영화나 기업공개(IPO)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았다. "민영화 추진과 함께 글로벌 성장기반을 확대하고 강한 KDB그룹문화 형성에 힘을 쏟겠다"고 의욕을 드러낸 지난해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강 회장은 최근 "나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그동안 (사퇴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지 못했다"면서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주요 금융지주회사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앞두고 강 회장은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누구보다 화려한 경제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그의 마지막치고는 너무나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강 회장을 지지했던 한 금융권 관계자는 "처음부터 감사원의 감사가 강 회장을 정조준하고 들어오는데 어쩔 수 있었겠냐"면서 "그래도 강 회장은 눈치 안보고 마지막까지 버틸 줄 알았는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강만수는?

▲1945년 출생
▲1969년 서울대학교 법학과  
▲1985년 주미국대사관 재무관
▲1994년 재정경제원 세제실 실장
▲1995년 제14대 관세청 청장
▲1996년 제3대 통상산업부 차관
▲1997년 제4대 재정경제원 차관
▲2000년 디지털경제연구소 이사장
▲2005년 제9대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원장
▲2007년 제17대 인수위 경제1분과위 간사
▲2008년 기획재정부 장관
▲2009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겸 경제특보
▲2011년 산은금융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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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