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GH 그림자' 허태열 비서실장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2.26 15: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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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 상자 들고 청와대 입성…물음표 운명

[일요시사=사회팀] 허태열 전 의원이 비서실장으로 내정되자 정치권에서는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우려 섞인 반응이 새어나왔다. 한편에서는 허 비서실장의 과거 행적을 비추어 권부 핵심 기구 수장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는 허 비서실장. 그의 꿈은 2대에 걸쳐 '박통' 일가를 보필하는 것이다.



"국민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박근혜의 복심'으로 불리며 비서실 수장 자리를 꿰찬 그는 인선 직후부터 수많은 구설에 올랐다.
 
전방위 사퇴압박
출발부터 삐그덕

급기야 지난 2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해명자료까지 발표했다. "저로 인해 국민들께 많은 심려를 끼쳐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사과만으로 끝나선 안 된다"는 각계의 강도 높은 비난 여론은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먼저 허 비서실장은 박사학위 논문 표절 혐의를 받고 있다. 허 비서실장은 지난 1999년 건국대 행정대학원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결정 참여자 간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해 그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해당 논문은 연세대 행정학과 이종구 교수의 논문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허 비서실장의 박사논문은 이 교수가 1996년 <한국행정학보>에 실은 '지방정책에 대한 이론모형의 개발과 실증적 적용'을 표절한 것이다.


허 비서실장 명의로 된 13쪽 분량의 원문 중 6쪽이 토씨하나 안 틀리고 이 교수의 논문과 일치했다. 통상 논문 표절 논란은 타 연구자의 연구 방법을 모방하거나 결과를 인용하는 등의 행위가 있을 때 불거진다. 때론 논문 안에서 단어와 문장이 비슷한 배열 구조를 가질 때도 표절 의혹은 제기된다.

그러나 허 비서실장의 논문은 ‘표절 수준을 넘어서 복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허 비서실장은 이 교수의 논문 2∼7쪽을 그대로 복사해 차용했다. 두 논문을 비교한 한 전문가는 “그간 많은 표절 사례를 봤지만 이처럼 똑같이 베낀 건 처음”이라며 이번 논란에 대해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박 복심' 대표적 친박계 "친정체제 구축 완성"
정치권서 우려…각종 의혹 등 과거 행적 불거져

그러나 허 비서실장은 오히려 대담했다. 그는 해명자료에서 "논문작성 과정에 있었던 시간적 제약 등으로 세밀한 준비가 부족했다"면서 "저는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다. 제 나이가 올해로 68세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고 주장했다.

허 비서실장이 논문을 작성한 시기는 1999년으로 알려져 있다. 허 비서실장은 박사 과정에 있던 1995년부터 충북도지사를 지냈고, 1999년 무렵에는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현실적으로 박사학위를 따기 위한 논문 작성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허 비서실장의 논문을 둘러싸고 '대필의혹'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그의 보좌진 중 한 명이 허 비서실장의 지시로 논문을 대필했다는 의혹이다.

관련 당사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지만 허 비서실장은 "논문을 작성할 당시 이 교수를 만나 자문을 받았고, 원저자가 알고 있어 표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박사논문 표절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과거 논문 표절로 새누리당을 자진 탈당한 문대성 의원의 사례를 비춰봤을 때 '이중 잣대'라는 세간의 따가운 눈총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문 의원은 자신이 2008년 국민대에서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이 2007년 김백수 박사의 논문을 표절한 정황이 드러나자 당선 후 9일을 버티다가 탈당했다. 사하갑을 지역구로 했던 친박계 현기환 전 의원은 문 의원이 잠적하자 그의 위치를 수소문해 자진 탈당을 설득하는 등 강한 압박을 행사했다. 그 결과 문 의원은 결국 새누리당 당적을 포기했다. 

하지만 이번 친박계의 대응은 달랐다. 사퇴 압박은커녕 허 비서실장 지키기에 급급한 형국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 관계자는 "모두가 친박계를 두려워해 납작 엎드려 있다"며 "(사퇴에 대해) 말하고 싶어도 서로가 눈치 보느라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부산·대구와 척을 지면 박근혜 대통령과의 교섭채널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라며 "괜히 앞장섰다가 어찌될지 모른다"고 몸을 사렸다.

박근혜 인사는
아무도 못말려

박근혜 정부의 인사코드 중 하나인 부산. 허 비서실장의 정치적 고향도 부산이다. 경남에서 태어나 부산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지난 16대 총선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기고 부산 북·강서을에서 당선된 바 있다.

당시 선거 과정에서 있었던 지역감정 유도 발언은 특히 유명한데 허 비서실장은 공동 유세현장에서 "민주당은 전라도 사람이 키우고 전라도 사람이 사랑하고, 우리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부산시민이 키우고 부산시민이 사랑했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이어 "중앙정부에서 부산사람을 찾을 수 없어 눈에 띄면 천연기념물이라고 부른다"며 "여러분 자녀들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수완이 좋아도 (앞으로) 다 틀렸다. 앞으로 우리 아들·딸들이 남(호남인)의 눈치나 살피며 종살이하지 않을 것이라 누가 자신할 수 있겠냐"고 지역감정을 자극했다. 이처럼 지역감정을 바탕으로 철저히 노 전 대통령을 공략한 허 비서실장은 53.2%의 득표율로 금배지를 다는데 성공했다.

허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지난 16대 대선에 출마했을 때도 "민주당은 노 후보 하나만 경상도고 나머지는 다 전라도다"라고 발언하는 등 지역감정 부추기기에 앞장섰다. 그러나 많은 부산시민은 허 비서실장을 지지했다. 허 비서실장은 부산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이렇듯 능력을 인정받은 허 비서실장은 2008년 7월 열린 한나라당 제10차 전당대회에서 정몽준 의원 등과 함께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당시 이를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허 비서실장의 실질적인 당내 영향력보다는 친박계 출신이라는 이점이 작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친박계 인사라는 꼬리표가 허 비서실장에게는 득이 된 셈.

박근혜 대통령과 허 비서실장의 공생은 2006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당 대표를 맡았던 때 허 비서실장은 시장과 도지사를 두루 경험한 행정 능력을 인정받아 당 사무총장에 선임됐다. 그리고 2008년, 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된 허 비서실장은 일약 친박계 실세로 급부상했다. 친이 세력에 맞서 친박 진영을 지키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것.


나아가 허 비서실장은 박 대통령의 두 차례 대선 도전을 곁에서 지키며, 깊은 신뢰를 구축했다.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박 대통령도 지난 19대 총선을 앞두고서는 허 비서실장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이를 나서서 만류하는 등 남다른 신임을 드러냈다.

허 비서실장은 지난 1974년부터 11년 동안 청와대에서 일했다. 당시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그는 육영수 여사 서거 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았던 박 대통령과 몇 차례 만남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남다른 인연 탓에 박 대통령은 허 비서실장에게 믿음을 보이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허 비서실장도 내정 발표 직후 "비서실장은 귀는 있지만 입은 없다"고 말해 '믿음을 지키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입을 무겁게 하겠다는 것.

부친에 이어
2대째 충성

그러나 허 비서실장의 과거를 들추면 신중치 못한 발언들이 눈에 띈다. 가장 유명한 건 이른바 "섹스 프리" 발언이다.

허 비서실장은 지난 2010년 정희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이 주최한 한 경제정책 포럼에 참석해 "섹스 프리(Sex free)하고 카지노 프리(Casino free)한 금기 없는 특수지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관광사업 육성을 위한 성매매 및 도박 규제 완화를 전제한 것으로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섹스 프리'라는 말은 큰 논란을 일으켰다.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와 배치되는 어휘였기 때문.

비난이 잇따르자 허 비서실장은 "국민정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외국의 유명 관광지인 라스베이거스 같은 자유로운 관광특구를 만들자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허 비서실장의 막말 논란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허 비서실장은 1년 전인 2009년 한나라당 부산시당 국정보고대회에서 "좌파는 빨갱이"란 말로 논란이 됐다.

허 비서실장은 "요즘 좌파라고 하지만 빨갱이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의 달콤한 추억을 잊지 못한다"며 "좌파는 80%의 섭섭한 사람들을 이용해 끊임없이 세력을 만들고 이명박 대통령을 흔들고 있는데 그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게 민주당"이란 연설을 했다. 그가 정치를 시작하며 늘 반복했던 '색깔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발언이었다.

이외에도 허 비서실장은 2008년 광복절에 일본으로 골프 여행을 떠났다가 구설에 올랐다. 국회 원구성 협상을 앞두고 돌연 일본 오사카로 출국한 것.

며칠 후 "일본에서 골프를 쳤다"는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허 비서실장은 친일파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에 대해 허 비서실장은 "구마노라는 세계문화유산을 보러갔다"고 해명했으나 이를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허 비서실장의 과거 발언은 이처럼 그다지 믿음직한 인상을 주진 못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그의 도덕성에 있다는 것이 몇몇 관계자의 증언이다. 소위 말하는 고위 공직자 비리 '그랜드슬램'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 허 비서실장은 병역면제, 부동산투기, 공천헌금 의혹을 모두 받고 있다.

"과거에는 이중 한 가지만 있어도 도덕성에 치명적인 흠결이 갔는데 최근에는 이런 일이 워낙 비일비재하다보니 이에 대해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고 한 인사청문위원은 귀띔했다. 허 비서실장이 불거진 의혹들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서실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의혹 검증 작업이 녹록치 않다는 게 한 국회 관계자의 증언이다. 이를 모를 일 없는 허 비서실장도 "이번 비만 피하면…."이란 마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우선 허 비서실장은 신체장애로 병역면제를 받았다. 1976년 폐결핵으로 인한 왼손 검지·중지·약지 등 손가락 마비(수지강직)가 그 면제 사유였다. 하지만 허 비서실장은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생활하고 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왼손의 이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병무청은 지난  2004년 수지강직 증세가 병역면제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판단하고 이를 면제사유에서 제외했다. 이에 대해 허 비서실장은 "폐결핵 합병증으로 손가락 마비가 왔었는데 지금은 치료를 통해 호전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복사 수준 논문 표절…"섹스프리" 막말 구설수
부동산투기·병역·공천헌금 등 의혹 그랜드슬램
색깔론 신봉자…노무현 이긴 지역감정 '살아있네'

허 비서실장은 부동산투기 의혹도 함께 받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3억5000여만원 상당의 배우자 명의 땅이 매입 당시보다 시가가 몇 배 이상 뛰었기 때문이다.

허 비서실장의 부인은 1997년 8월 이 논을 샀는데 영농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했다는 전력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농지법은 농업인이 아닌 사람의 농지 소유를 금지하고 있었다. 이에 허 비서실장의 부인은 '농사경력 1년, 선진 영농 매진'이라는 영농 계획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실제로 땅을 산 뒤 농사를 짓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자연스레 땅투기 의혹이 불거지는 상황.

이에 대해 허 비서실장은 "처음에는 아내가 직접 농사를 짓다가 소작을 맡겼고,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한국농어촌공사에 토지 운영을 위탁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 2005년 KBS와의 인터뷰에서 허 비서실장은 이 같은 의혹이 불거지자 "여자가 팔 걷어붙이고 농사짓는 것 봤냐"면서 "겸사겸사 농사짓고 땅값이 오르면 좋은 거 아니냐"고 말했다. 사실상 혐의를 시인한 셈.

아울러 허 비서실장의 동생 허모씨는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공천 대가로 지인으로부터 5억원을 받아 챙겨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을 고발한 선관위는 허씨의 형인 허 비서실장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의뢰를 요청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허 비서실장은 "동생과는 몇 년간 의절하다시피 살았다"면서 "총선을 앞두고 동생과 만난 건 사실이지만 감이 안 좋아 심하게 야단치고 나왔다"고 진술했다. 허 비서실장은 공천헌금 수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부인은 땅투기
동생은 헌금수수

청와대 비서실은 정부 관료 인선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요충지로 인사청탁과 헌금이 가장 많이 오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공천헌금 수수 무혐의 처분을 받은 허 비서실장이 앞으로 얼마나 깨끗한 비서실을 운영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허태열 비서실장은?

▲경남 출생
▲부산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 법대 졸업
▲건국대 행정학박사
▲제8회 행정고시 합격
▲의정부시장
▲부천시장
▲충북 도지사
▲16·17·18대 국회의원(부산 북·강서을)
▲한나라당 사무총장 및 최고위원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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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