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서방파 대굴욕 전말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2.18 14: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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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두목님 개망신…김태촌 뜨니 '동네북'

[일요시사=사회팀] 서울 청담동 유명 고깃집 사장이 서울 도심 한 가운데서 납치됐다. 고깃집 사장의 정체는 유명 조폭이었다. 연예계는 물론 정·재계에도 발을 뻗친 이 거물을 누가 납치한 것일까. 그리고 그들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80년대 전국구 주먹시대를 열었던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씨가 지난달 5일 세상을 떠났다. 김씨를 기억하는 이들은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김씨의 빈소로 시시각각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범서방파 조직원 나모(48)씨도 있었다. 나씨는 김씨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인물로 유족들과 함께 김씨의 장례식을 도맡아 옛 보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킨 심복 중의 심복이다.

김태촌 사후
최측근 납치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나씨는 범서방파와 경쟁 관계에 있는 국제PJ파 조직원 조모(54)씨 등에게 납치·폭행을 당했다. 나씨의 납치 사건은 지난 3일 벌어졌다. 범서방파 조직원으로 전해진 익명의 제보자 A씨에 따르면 이날 가해자 조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나씨에게 전화를 걸어 "할 말이 있으니 잠깐 만나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와 나씨는 과거 금전거래를 하는 등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두 사람은 서울 강남구 청담사거리 인근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청담사거리에는 나씨가 운영하는 유명 고깃집이 있었다. 특별한 의심 없이 조씨를 만나러 간 나씨는 이날 오후 9시께 차를 몰고 나타난 조씨를 만났다.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조씨는 나씨에게 "나와 이야기 좀 하자"며 나씨의 승차를 권했고, 차에 탄 나씨는 조씨에게 납치당했다.

조씨의 차량은 경기도 용인 기흥 방면으로 향했다. 이동 과정에서 조씨는 조폭 5명과 함께 나씨를 폭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함께 있던 조폭 5명이 국제PJ파 소속인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나씨를 납치한 차량은 서울을 떠난 지 약 5시간 만인 다음 날 오전 1시50분께 기흥 휴게소에 도착했다. 나씨는 그곳에서 조씨 등에게 "소변이 마려우니 내려달라"고 말한 뒤 차량 밖으로 급히 빠져나왔다. 휴게실 식당에 숨은 나씨는 곧장 경찰에 납치·폭행사실을 신고했고, 신고 사실을 눈치 챈 조씨 일당은 즉각 사건 현장에서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3대 패밀리 주축 악명 높은 전국구 조직
사실상 1인자 국제PJ파에 납치·폭행

사건 관련 진술에서 A씨는 "조씨가 나씨에게 '곧 큰 도박판이 열리니 2억원을 준비하라'고 전했다"면서 "국제PJ파는 오래 전부터 범서방파와 경쟁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기회를 엿보다가 이번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씨는 경찰 조사에서 개인적 채무 관계로 일어난 말다툼이 커진 사건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 간의 세력 다툼을 말한 A씨와 개인 원한을 말한 나씨의 진술이 상호 엇갈리는 상황. 현재 경찰은 금전 관계로 인한 납치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끊임없이 조폭 간 세력 다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나씨와 조씨 모두 오래 전부터 거대 조직의 실력자로 지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초 A씨는 이번 사건을 전하며 "나씨가 최근 범서방파 새 두목으로 추대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나씨가 새 두목으로 추대돼 조직을 이끌어왔다는 소문은 와전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나씨와 고인인 김씨가 워낙 친밀했다 보니 "나씨가 조직을 다시 추스르지 않겠느냐"는 소문이 확대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씨 주변을 수년간 취재해 온 한 기자는 "나씨가 범서방파에서 행동대장을 맡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복수 언론에 이미 확인된 내용으로 나씨는 김씨가 전성기를 맞았던 1980년대부터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86년 7월 인천에서 벌어진 뉴송도호텔 사건에 개입한 김씨는 나씨에게 사주해 뉴송도호텔 H모 사장을 습격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 뉴송도호텔 사건은 서울고검 P모 부장검사의 이권개입 파문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검사와 조폭간의 검은 커넥션이 드러났고, 이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P검사는 결국 옷을 벗었고 폭행을 사주한 김씨는 수감됐다. 특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김씨는 수감 이후 많은 수하를 잃었는데 약해진 범서방파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나씨는 계속 김씨 곁을 지켰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가 수감과 출소를 반복하던 90년대. 범서방파 출신 조직원들은 차례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들 대부분은 연예매니지먼트, 외식 사업 등에서 성공을 거뒀다. 사업가로 변신해 큰 성공을 거둔 나씨 역시 고깃집 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항간에서는 김씨가 출소 후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자 몇몇 후배들이 김씨에게 예우 차원에서 돈봉투를 건넸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김씨 주변에서는 "김씨가 잘 모르는 돈을 받았다가 또다시 사정기관의 표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 것 같다"는 증언도 들렸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김씨는 돈봉투를 거의 받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씨 곁을 꾸준히 지킨 나씨는 김씨 투병 중에도 남몰래 수천만원의 치료비를 수차례 건넸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의심이 많았던 김씨지만 그런 김씨도 나씨에게만큼은 마음을 터놨던 것으로 보였다.

은퇴한 실력자
최대조직 보스

김씨가 대외적으로는 손을 씻고 신앙 활동에 전념한 사이 나씨는 사업을 더욱 확장시켰다. 특히 나씨가 1999년부터 운영했던 고깃집은 명사들의 단골집으로 더욱 유명세를 치렀다. 2000년대 초반 연예인들이 즐겨 찾는 고깃집으로 수차례 전파를 탔던 P고깃집은 분점을 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 집의 단골 명사로 알려진 배우는 한류스타 B씨, 남자 배우 S씨, P씨, K씨, L씨, 여자배우 L씨, S씨, C씨, H씨 등이며, 가수 L씨와 J씨, 개그맨 L씨와 Y씨도 이 고깃집에 자주 나타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깃집 사장인 나씨의 휴대폰에는 400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다. 주로 연예계 종사자들이 많은데 웬만한 방송 드라마 종영 파티도 이 고깃집에서 열릴 정도로 연예계와 나씨의 친분은 두텁다.

특히 가수 K씨는 나씨의 고깃집 운영이 어려워지자 수천만원을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등 나씨와 각별한 우정을 과시해 눈길을 끌었었다. 한때는 의형제라고 불릴 정도로 붙어 다니며, K씨 측근들과 자주 술자리를 갖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04년 나씨는 수입 소고기를 한우로 둔갑시켜 팔다가 경찰에 탈세 혐의로 체포됐는데 이때 탄원서를 제출한 것도 바로 K씨다. K씨 외에도 L씨와 Y씨 등이 "나씨는 예술을 이해할 줄 아는 분"이라며 법원의 선처를 호소했다. 나씨는 수입 갈빗살과 안창살을 한우로 속여 팔아 모두 42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기고, 10억여원에 이르는 세금을 포탈한 혐의를 받았다.

나씨는 지난 2007년 H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도 연루됐다. 당시 행동책이었던 범서방파 출신 오모씨가 그룹 측 관계자와 나씨가 운영하는 고깃집에서 만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물론 나씨가 직접 폭행에 관여한 건 아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나씨의 마당발 인맥은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됐다. 나씨가 지금도 조폭계 거물로 분류되는 건 이 같은 넓은 인맥에 기인한다는 것이 사정기관의 중론이다.

이와 관련 한 경찰 관계자는 "나씨가 과거 '3대 패밀리'로 불렸던 범서방파 출신인 건 사실이나 실질적인 역할은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나씨가) 아마도 사업이 잘 풀리면서 오래전 현역을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실제 경찰은 현재 범서방파 조직원을 11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50대에 가깝거나 이미 50대를 넘긴 원로급으로 일선에서 조직 활동을 벌이기에는 다소 나이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나씨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 때문에 주변에서는 늘 나씨를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씨가 한우를 공급받았던 호남 일대의 축산 농장도 조폭들의 은신처로 의심받았을 정도다.

특히 과거 범서방파와 사이가 좋지 못했던 조폭들은 돈벌이가 여의치 않을 때면 과거 조직원들을 찾아가 '반강제적인 도움'을 요청했는데 주로 성공한 사업가들이 그 타깃이 됐다. 그리고 이들 사업가 중 일부는 현역들의 꾀임에 넘어가 다시 조폭 사업에 발을 들이는데 나씨가 지금도 이들 조폭의 이권다툼에 개입됐는지 여부는 현재로선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은퇴 했다니까
돈만 내놓으쇼

이런 나씨를 납치한 국제PJ파는 호남을 근거로 한 광주지역 최대폭력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PJ파는 1986년 무렵, 광주 충정로에 있는 국제당구장과 PJ음악감상실을 주 집결지로 애용했는데 이를 수사하던 당국은 이들을 묶어 국제PJ파로 분류했다. 그러면서 국제PJ파라는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국제PJ파의 탄생 배경과 관련 한편에서는 범서방파 일원이었던 김모씨가 서열 문제로 조직을 나와 국제PJ파를 만들었다는 설이 들린다. 하지만 호남을 근거로 한 조직이 워낙 많은 탓에 이들의 계보가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라는 설이 더 유력하다.

현재 범서방파와 국제PJ파 전쟁설이 도는 이유는 양 조직 모두 호남 출신 조폭이라는 공통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일찍이 전국구 반열에 올라선 범서방파와 달리 국제PJ파는 호남에 남아 세를 키웠다. 이는 양 조직 간의 격차를 불러왔다. 범서방파 김씨가 정·관계를 주무르며 사업의 스케일을 불린 것과 달리 국제PJ파의 조씨 등은 독자 사업에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것. 실제 조직원 규모에서는 두 조직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굴리는 돈다발'이 다르다 보니 양 조직 간 격차가 벌어졌다는 설명이다.


김씨 수감 후 범서방파는 대부분 서울에 자리 잡고 안정적인 소득원을 찾았다. 하지만 국제PJ파는 1990년대부터 광주지검의 집중 수사를 받으며 사실상 와해 수순을 밟았다.

개인적인 원한? 조직 세력다툼?
"조만간 피 튀는 전쟁 일어난다"
범서방파 vs 국제PJ파 혈전 임박

재계와의 커넥션을 담당했던 현모씨, 여모씨 등이 구속됐고 이번 납치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조씨도 수감됐다. 국제PJ파가 이제 막 전국구로 올라설 무렵이었다.

그러다보니 국제PJ파는 늘 범서방파에 대해 '매스컴이 만들어 낸 조폭'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세력도 약하고 깜냥도 안 되는 조직이 한 마디로 너무 과대 포장됐다'는 푸념이었다.

국제PJ파는 호남에 남아 다른 조직과 '전쟁'도 하고 조직 보존을 위해 여러 활로를 개척하는 등 나름 조직범죄를 벌여왔다. 하지만 범서방파는 알려진 것에 비해 조직 활동도 전무하고, 그 흔한 업소 관리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 2000년대 중반까지 조직원이 12명으로 축소된 범서방파와 달리 국제PJ파는 58명을 유지하며 그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나 조씨 등 수뇌부는 이미 너무 많이 사정기관에 노출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서울에 기반이 있는 조직들은 손을 씻고도 먹고 살 수 있었지만 지방 조직들은 돈을 벌기 위해 서울에 자리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국제PJ파가 하우스 도박 등을 서울 인근에서 벌여온 것은 바로 본격적인 서울 진출의 신호로 해석됐다. 지방에서 안 되는 장사를 하느니 위험부담이 좀 있더라도 서울에서 돈 되는 장사를 하겠다는 속셈이다.

지난 2011년 나씨가 모친상을 당하자 김씨는 빈소로 조화를 보냈다. 국제PJ파도 조화와 함께 빈소에 방문했다. "내가 친하거나 존경하진 않아도 지킬 땐 지키는 게 건달들의 룰"이라고 한 전직 조폭은 얘기했다. 이렇듯 김씨 생전까지만 해도 양 조직 간 전쟁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김씨가 그들 세계에서 분명한 '선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성이 다르다고 한 관계자는 얘기한다. 이 관계자는 거듭 "조만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 경찰 관계자는 "서울 한복판에서 조직 대 조직 간의 전쟁은 힘들지 않겠냐"고 예상했다. 조직으로 움직이면 형량도 배가 되는데 그것도 현행범으로 체포될만한 일을 누가 하겠냐는 것이다.

전쟁보다
조직보존

이렇듯 이번 사건을 둘러싼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조씨 등은 현재 나씨 납치·폭행 외에도 공갈 등의 혐의로 경찰 수배를 받고 있다. 그들은 현재 비닐하우스 등에서 속칭 '산도박'을 벌이고 있을 수도 있고, 오피스텔 등을 빌려 '하우스 도박'을 펼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나 분명한 건 최근 국제PJ파 자금줄이 여의치 않다는 사실적 정황이다. 이 같은 전제 하에 '조직 대 조직'의 전쟁은 힘들어도 '조직 대 개인'의 린치는 앞으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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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