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삶'을 그리는 화가 유기송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1.31 1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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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슬 퍼렇던 시절 목숨 걸고 그렸죠"

[일요시사=사회팀] 시사만화가로 알려진 유기송 화백은 인생의 대부분을 그림과 함께 살았다. 서양화를 배우며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림을 그렸고 이중 절반이 넘는 37년을 시사만화가로 활동했다. "모든 그림에는 작가의 생각이 들어간다. 사람의 생각이 매번 바뀌는 것처럼 그림도 항상 다른 의미로 새롭게 다가온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거장'만이 가진 아우라를 느꼈다.

1940년 인천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유기송 화백은 1968년 <서울신문> 미술부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그는 "만화에 재미를 느껴서 시사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 화백이 본격적인 시사만화가로서 활동한 것은 1989년 <세계일보>로 스카우트되면서부터다.

"그때는 배가 고파가지고…. 어디 취직하느냐가 문제였는데 그림을 그려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마침 기회가 닿은 <서울신문>에 들어갔지. 그리고 만화를 즐기면서 그리다보니 <세계일보>에 스카우트 된 거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시작

지면신문의 파급력이 막강하던 1970∼80년대. 시사만화가는 그 날의 그림 한 컷으로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다. 유신정권과 군부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유 화백은 기억나는 에피소드에 대해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 대통령 얘기를 꺼냈다.

"하루는 아민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을 그렸는데 3개월 뒤에 중앙정보부에서 찾아온 거야. 그때가 어떤 때였냐면 남북한이 서로 대립하던 시기였는데 북한 대사관 측에서 우간다 정부에 <서울신문>을 번역해서 보낸 거야. 아민 대통령 당신을 조롱했다고…. 아민 대통령이 화가 나니까 한국 대사관에 항의했고 대사관에서는 또 중앙정보부로 연락하고…. 그래서 끌려갈 수 있었는데 당시 서기호 사장이 손을 썼지. 그리고 나중에 아민 대통령을 좋게 그려서 다시 보내기로 하고. 지금은 이렇게 못하지."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던 시기였기에 "정부 차원의 외압이 있었느냐"고 유 화백에게 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유 화백의 대답은 다소 뜻밖이었다.

"개인적인 압력은 없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시사만화가들 불러 모아 회식을 했어."

유 화백에 따르면 중앙정보부 요원들은 시사만화가들을 간혹 개인적으로 만나기도 했다. 당시 각 언론사의 시사만화가들은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함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바뀐 미디어 환경에서 시사만화는 점차 지면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시사만화가들의 책임도 있어. 만화가들이 만화를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애. 그런데 시사만화는 아이디어와의 싸움인데…. 내 경우는 아침에 출근하면 점심 먹기 전까지 각 신문을 봤고, 점심 먹고 나서도 회의 할 때까지 아이디어 생각하고…. 그림은 30분이면 그리니까. 더 좋은 아이디어 나올 때까지 기다렸지. 그러다 보니 편집자가 와서 독촉하면 땀도 나고."

 60년 그림 그렸고, 절반 이상 시사만화가로 활동
"그림은 결국 아이디어…시사만화는 쉽게 그려야"

아이디어를 재차 강조한 유 화백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시사만화가의 사례를 소개하며 "어떤 만화가는 점심 먹고 바로 그림 그리고 오후 2시나 3시에 집에 가더라"면서 "한두 번은 그럴 수 있는데 계속 그러니까 너무 대충하는 건 아닌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도 들었다"고 회상했다.

"시사만화가를 하려면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독자들이 10초에서 30초 내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해. 그게 철칙이라고 생각해."


유 화백은 시사만화가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먼저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첫 번째 독자인 내가 이해해야 하고, 그 다음은 두 번째 독자인 편집자가 이해해야 하고, 최종적으로 모든 독자가 그림을 보고 바로 알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유 화백은 이를 위해 사람에 대한 관찰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고 설명한다. 2005년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그가 건넨 메모장에는 최근까지 그가 그린 수백 사람의 얼굴 스케치가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시사만화를 그만두고 여러 그림을 그렸는데 요즘은 성화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건강 문제가 좀 있는데…. 내가 살면서 지은 죄도 있고…. 그래도 주변을 보면 음악이나 이런 걸로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은 많은데 미술은 별로 없더라고. 그래서 그림을 더 그려야 할 것 같아."

한컷에 천당과 지옥 오가

유 화백은 건강 문제로 서울에 있는 작업실을 정리하는 것을 고민 중에 있다. 하지만 어디에서든 그림을 그리는 일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드러운 그림보다 거칠게 그리는 그림이 더 힘들다"며 "요즘도 그림을 그리며 삶을 새롭게 배운다"고 말했다.

그에게 그림은 '어떤 일'이 아닌 '삶' 그 자체였다. 유 화백은 <세계일보>에서 펜을 내려놓은 후 잠시 '표절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유 화백의 거친 그림에서 잠시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지만 이제 유 화백은 주변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묵묵히 걷는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 그의 뒤에서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동방 박사들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강현석 기자<angeli@ilyosisa.co.kr>

 

<유기송 화백 프로필>

▲ 1940년 인천 출생
▲ 1968년 <서울신문> 미술부 입사
▲ 1989년 <세계일보> 시사만화 연재
▲ 2003년 한불 수교 50주년 기념 현대작가 초대전
▲ 2005년 시사만화가 은퇴 후 파리 드코상갤러리 초대전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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