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나는 망령 '유신마케팅' 실태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1.11 10: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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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시대…'박정희 숭배' 전국서 돈질

[일요시사=사회팀] 경상북도를 기준으로 MB정부 5년간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기념사업'에 사용된 국고는 모두 1270억원이다. 민간 출자는 포함되지 않은 액수다. 18대 대선을 앞두고서는 '육영수 여사 생가 방문'이라는 관광 코스가 개발됐다. 그리고 지난달 19일 '대통령 박근혜'의 탄생과 함께 전국 곳곳에서는 잔치판이 벌어졌다.

새해 첫날 오전 11시 경기 안성 영평사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육영수 여사 신년 차례제'가 열렸다. 궂은 날씨 탓에 많은 인파는 모이지 않았지만 몇몇 스님들과 참가자들이 '박정희 추모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평사 주지인 정림스님과 신도들이 돈을 모아 건립했다는 '박정희 추모관'은 건립 대지 1만3200㎡(약 4000평), 총건평 1120㎡(약 340평) 규모다. 건립비용은 약 5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지상 3층인 이 추모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 등 유품 27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내가 좋아서 50억
땅 사는데도 70억

이 '박정희 추모관'을 건립한 정림스님은 "내가 좋아서 진행한 사업이며 절대로 정치권의 돈은 받지 않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추모관을 짓기 위해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열린 '박정희 추모관' 개관식에는 박근령 한국재난구호 총재가 참석했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캠프 특보단장을 지낸 박창달 전 의원도 자리를 지켰다. 영남학원 이사진이자 국립암센터 원장을 지낸 박재갑 교수, 황은성 안성시장 등도 함께했다. 이들은 추모관을 둘러보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시주를 받은 스님도 벽에 걸린 육영수 여사의 영정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반년이 흐른 구랍 20일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소식이 각 일간지 머릿면을 장식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21일 육 여사의 고향인 충북 옥천군은 "육영수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했다.

옥천군은 다가올 2017년까지 옥천읍 교동리에 있는 육 여사 생가 앞에 '육영수 기념관'을 설립한다는 방침이다. 부지 규모 5만㎡(약 1만5000평)에 이르는 이 사업은 대지매입까지 포함해 모두 140억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옥천군 측은 이중 절반인 70억원을 부담한다는 계획이다.

옥천군의 관광개발사업 담당자는 "오래 전부터 기념관 건립계획이 있어왔다"면서 "아직 계획서만 갖고 있고 올해 예산은 확보하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내년 정도면 대지 문제가 해결되고 기념관 건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육영수 기념관' 건립 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현재 농업진흥구역으로 묶여 있는 건립 예정 대지의 용도변경이다. 20명 남짓한 농부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이 땅은 농림수산식품부가 지정한 개발제한구역이다.

박 당선되자 곳곳에서 '잔치판'…일가 기념사업 봇물
생가 관광코스·기념관·추모관·테마공원 건립 추진

그러나 옥천군 측은 "올해 안에 토지 용도변경을 위한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정 대지에 대한 실사나 농부들과 얘기를 나눠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직 단계가 아니다"라는 답변을 내놨다.

옥천군은 이미 지난 2011년 37억원을 투입해 육 여사의 생가를 복원했다. 조선 전통한옥으로 꾸며진 이곳은 충청북도기념물로도 지정돼있다.


특히 육 여사의 생가는 대선을 앞두고 관광 패키지 상품으로 개발돼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 대선 기간 전국 곳곳에는 '고급 한정식을 제공하는 육영수 여사 생가 방문이 단돈 1만원'이라는 전단이 나붙었다. 대구에서는 관광 가격이 5000원까지도 내려갔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한 선심성 관광이 아니었겠느냐'는 의혹도 있었지만 당시 선관위는 "의혹만으로는 조사할 수 없다"며 뒷짐을 지었다.

비슷한 시기 옥천군은 육 여사의 전기 영화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와 관련된 소문으로 몸살을 앓았다. 아직 대선이 치러지지 않은 시점에서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영화를 지원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이에 옥천군은 "금전적 지원은 없다"고 못박았다. 옥천군의 문화사업 담당자는 "영화 제작사 측과 몇 차례 통화한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그리고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의 제작사 '드라마뱅크(대표 주기석)'는 지난해 11월 제작 발표회를 가졌다.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는 기획 단계부터 '유신 마케팅'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영화'라는 지적부터 '정치권이 돈을 댄 영화'라는 풍문까지 돌았다. 드라마뱅크 측이 밝힌 예상 제작비는 66억원, 이 영화의 투자를 총괄하고 있는 김용대 PD는 최근 있었던 제작발표회에서 "순제작비 46억원에 마케팅 비용이 20억원 정도 들어가며 현재까지 목표액의 절반 정도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유신 향기 솔솔
당선 특수 노려

지난해 사전 입수한 이 영화의 '투자 유치 파일'에 따르면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의 주 타깃은 40∼50대, 목표 관객은 1천만명 이상이다. 영화 관람료와 판권 등을 포함하면 제작비를 훨씬 웃도는 수백억원의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었다. 특히 드라마뱅크는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를 소개하면서 '육영수 여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세대가 이 영화를 통해 향수를 느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초 이 영화는 대선 바람을 타며 지난해 12월 개봉을 목표로 했지만 현재 크랭크인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제작사 측은 당시 투자자에게 "올해(2012년) 안에 무조건 개봉합니다"라고 말하며, 대선 특수를 암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기준 메인 투자사인 제일진흥주식회사를 제외한 개인 투자자 대부분은 50대 이상이었다.

이처럼 '유신 마케팅'을 노리는 건 비단 영화계뿐이 아니다. 영화와 동명의 뮤지컬인 <퍼스트레이디>는 '스타앤미디어(대표 박근태)'라는 제작사가 투자를 맡기로 했다. 지난달 7일 서울메트로 인재개발원에서 제작발표회를 연 <퍼스트레이디>는 연극 <육영수>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당선인에게 80.14%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낸 대구도 '유신 마케팅' 대열에 합류했다. 대구 소재 한 민간 호텔은 박정희 정권 시절 박 전 대통령이 자주 들렀다는 객실을 '박정희 테마룸'으로 개조했다. 대구시도 이에 가세했다. 박 당선인이 태어난 곳에 안내표지석 등을 설치, 박 당선자를 대구 마케팅에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박 당선인이 태어난 곳은 현재 대구 최고의 번화가로 그 흔적을 찾기 쉽지 않지만 대구시는 '박 당선인 기념사업'에 집념을 보이고 있다. 한 대구시 관계자는 "박 당선인이 살았던 곳에 생가가 남아 있으면 그곳을 관광지로 개발할 수 있는데 일단은 대지 매입 없이 안내표지석 등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관심 있는 시민들의 요구도 있었고, (박 당선인이) 당선됐을 때 현수막도 걸고 한 것을 보면 사업의 의미가 없지 않다"면서 "대통령 탄생지에 안내 표식을 하는 건 우상화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박 당선인이 정확히 어디서 태어났는지 조사 단계에 있고, 현재 있는 '대구 도심 골목투어 코스'에 박 당선자 탄생지를 포함하게 되면 일정 부분 추가 경제 이득도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대구시가 '유신 마케팅'의 일환으로 박 당선자 띄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 박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구미시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에 돈을 쏟아 붓고 있다.

지난해 입수한 구미시의 '박정희 대통령 추모관 건립 실시설계 용역 요청서'에 따르면 구미시는 지난달 7일 박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상모동 151번지 공원화 사업부지 내에 실시설계 용역 공개입찰을 공고했다. 생가 주변 1만5400㎡(약 4650평) 대지 규모로 35억원의 시 예산을 들여 시작된 이 공사는 13일 적격 심사를 마친 건설사를 상대로 개찰을 시작했으며, 현재 입찰이 끝나 착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새아침이 밝았네
홍보관이 열렸네

이 '박정희 대통령 추모관' 건립 사업은 인접 지역에서 진행 중인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조성 사업과는 별도로 관리된다. 각 사업마다 따로 예산이 배정돼있다. 최근 구미시가 입찰 용역 업체로 발송한 '과업 요청서'에 따르면 충남 아산에 있는 현충사는 '박정희 대통령 추모관' 건립 기준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박정희 홍보관'이라고 불리는 이 시설에는 유품 전시실과 기념품 판매소 등이 들어선다. 구미시는 착공일로부터 75일 이내에 공사를 완료하고 '박정희 홍보관' 주변을 관광특구로 개발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미 2008년부터 시작된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에는 도비 25억원이 지원됐으며 시비는 261억원이 집행될 것이라고 알려졌다.


이 '박정희 홍보관' 주변에는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최민희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이 새마을 테마공원 프로젝트에는 '박정희 동상' 주변 시설을 포함한 26만3553㎡(약 7만9000평) 대지에 총 792억원의 예산이 배정돼있다.

또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내에는 근면·자조·협동 이념관, 새마을운동 연수시설 등이 들어서며, 1960∼70년대 농촌마을이 재현된다. 구미시는 2015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구미시는 매년 정수정학회와 함께 '대한민국정수대전'을 주최하고 1억7000만원의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정수대전'은 구미시에 위치한 '박정희 체육관'에서 개최되며 박 전 대통령의 사상과 철학을 선양하고 그 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키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행사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올해로 96번째를 맞는 '박정희 탄신제'에는 매년 7500만원의 시 예산이 지원되고 있다. '박정희 탄신제'는 말 그대로 박 전 대통령의 생일인 11월14일을 기념하면서 열리는 행사로 시 예산이 투입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그간 안팎에서 끊이지 않았다.

육영수 전기영화 개봉 임박
비슷한 내용 뮤지컬도 제작

그러나 구미시는 2013년에도 탄신제 지원을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오히려 매해 700만원 규모로 지원되던 박 전 대통령 추모제 예산을 1500만원으로 증액 편성했다.

그리고 새해 첫 업무가 시작된 지난 2일 남유진 구미시장과 심학봉 의원, 김태환 의원 등은 새해 첫 일정으로 박 전 대통령의 생가 방문을 선택했다. 이날 오전 생가를 찾은 남 시장 등은 헌화를 분향하며 박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고개를 숙였다.

박 당선인의 취임이 다가오면서 향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만큼 박정희 복원사업도 다시 활개를 찾지 않겠냐"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중앙당 관계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주민들은 이를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1988년 '박정희 장군 전역지공원'에서 '군탄공원'으로 개명된 갈말읍 군탄공원은 최근 옛 명칭인 '육군대장 박정희 장군 전역지공원'으로 개명하기 위한 움직임이 한창이다. 몇몇 '박정희 추앙 단체'를 중심으로 획책되고 있는 이 운동은 박 당선인의 강원도 방문과 함께 탄력을 받고 있다.

군탄공원은 지난 1963년 박 전 대통령이 퇴역하면서 "다시는 나와 같은 불우한 군인이 되지 마라"라는 말을 남긴 곳으로 1969년 육군 5군단이 박정희 정권 당시 '박정희 장군 전역비'를 세우면서 공원화가 추진됐던 곳이다. 1976년 전역비를 중심으로 공원화가 조성될 당시의 대지 규모는 2만2845㎡(약 6900평)였다.

떴다 하면 유적
역시 유신스타일

지난 7월 박 당선인은 대통령후보 신분으로 강원에서의 일정을 소화하던 중 선친이 전역을 맞이한 육군 5군단을 찾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신과 동행하던 정호조 철원군수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전해졌다.
"철원에 전역비가 지금도 있어요?"
박 당선인의 윤창중 수석대변인이 구랍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첫 기자회견을 열 때 <월간 박정희>라고 적힌 종이봉투를 손에 꼭 쥐고 있던 건 우연이 아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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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