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몽키하우스’ 미군 위안부 수용소 ①연재를 시작하며…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11.17 04:02:41
  • 호수 15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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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몽키하우스’를 찾아가는 날엔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래도 소요산 등반객은 꽤 많은 편이었다. 허나 그들 중에 옛 양공주 성병환자 수용소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겨우, 어느 모시옷을 정갈히 갖춰 입은 할머니가 가리켜 주는 곳으로 올라갔다.

언덕 하얀 집

거긴 격주로 각설이 패들이 공연하는 데라는데, 공일인지 몇몇 남녀가 탁자 앞에 앉아 토론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몽키하우스가 어디죠?”

“우린 원숭이 안 키워요.”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르기도 했고…이 부근이라던데….”

“글쎄요.”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백색이나 회색 건물은 없었다. 나뭇잎 사이로 높다랗고 거무칙칙한 벽의 뒷면만 보일 뿐이었다.

잡초를 헤치며 슬슬 돌아갔다. 그러자 갑자기 옆면과 정면이 누르스름하게 변색된 2층짜리 건물이 나타났다. 1970년대엔 흰색이었다는데 언젠가 연노란 색으로 덧칠한 듯싶었다.

페인트가 벗겨져 희끄무레한 본디 색이 드러나고 군데군데 세월의 곰팡이가 거무스레 낀 모양이었는데, 뒷벽이 왜 그렇게 검은지는 짐작되지 않았다.


페인트나 곰팡이라기보다 검은 비닐막을 쳐 놓은 것 같기도 했으나, 대체 왜 그랬을지 의문이 일었다.

건물 앞의 공터엔 잡초가 무성히 자라나 전체적으로 하나의 폐허였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 벽면에 출입금지 경고문이 동두천 경찰서장 명의로 붙어 있었다. 일단 들어섰다. 폐허의 공간에서나마 과거의 진실을 캐내야 했기에 현재의 경고를 잠시 무시했다.

하지만 70년대 경찰관의 엄포와 달리 현시대 경관의 경고는 분명 일리가 있었다. 어둑스레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내 스스로 위험 지역임을 느꼈던 것이다.

건물 일부가 언제 어디서 무너질지 모를 만큼 낡았고 실제로 천정의 합판이 찢겨진 채 간혹 무언가 툭툭 떨어져 내렸다.

발밑에선 계속 유리조각 밟히는 소리가 났고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풀썩풀썩 먼지가 일었다.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된 건물 내부는,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치 수십 년 전에 숨진 거대한 괴물체의 내장 속 같았다.

네티즌이 올려놓은 동영상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팀이 찍어 방송한 화면을 이미 본 상태였으나 실제로 현장을 둘러보니 머리끝이 쭈뼛 설 지경이었다.

우선 밖에서 보기와 달리 방(room)이 엄청 많았다.

큰방, 작은방, 구석방…통로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줄느런히 늘어섰다. 그 속엔 폐물로 변해 버린 군용 담요, 핸드백, 화장품통, 찢어진 원피스, 깨어진 거울 따위가 먼지를 덮어쓴 채 나뒹굴어 있었다.

폐쇄되기 전까지 수용돼있었을 여자들의 모습과 삶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활명수 병과 잡지책이 보이길래 집어내 오물을 털고 살펴보았더니, 상표가 거의 지워졌거나 책장들이 완전히 들러붙은 상태라 펼쳐서 어떤 의미를 파악하긴 어려웠다.


‘시대를 착각하면 안 돼. 이 속엔 아마 70년대, 80년대, 90년대가 뒤섞어 있을 테니까….’ 생각하며 폭 좁은 가파른 시멘트 계단을 걸어 2층으로 올라갔다.

귀신이라도 나올 듯이 음산한 느낌이었다. 죄 아닌 죄로 갇힌 몸일지언정 여자들의 숙소라 그런지 황폐해진 수많은 방들엔 화장품과 거울의 누추한 잔해가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거울을 닦아서 혼령의 모습이나마 한번 새겨 볼까 하다가 옥상으로 올랐다.

하늘을 쳐다보며 심호흡을 했다. 잔뜩 흐리긴 했지만, 그곳은 쇠창살로 인해 갈기갈기 찢기지 않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자유를 향해 날아가려던 무수한 여인들이 떨어져 죽거나 불구 신세가 된 곳이기도 했다.

인터넷 동영상으로 볼 땐 좀 긴가민가 했는데, 실제로 가녘으로 가서 내려다보니 일반 건물과 달리 까마득이 높아 만약 뛰어내린다면 즉사 또는 중상을 입고 말 듯싶었다.


모시옷 정갈히 입은 할머니
가리켜 주는 곳으로 가보니…

‘나라 힘이 약해…… 어쩔 도리 없는 상황에서, 벼랑을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몸을 버린 경우도 있을 텐데…그녀들을 일률적으로 양갈보니 똥치니 화냥년으로 낙인 찍는 건 비겁한 짓이 아닐까? 여자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채 왕을 닮은 친일파 친중파 친미파 놈들은 희희낙락거리며 부귀영화를 누렸으면서….’

바람이 불자 저쪽 멀리 허연 감시초소를 둘러선 나무의 푸른 잎새들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런데 그중에서 좀 외떨어진 한 나무의 잎새는 유난히 파르르 떨어댔다. 무엇엔가 잔뜩 겁먹은 듯……

몸통과 이파리에 납빛이 감도는 게 은사시나무가 아닐지 짐작해 보았다.

을씨년스런 분위기 때문인지, 문득 그건 오래 전 이곳에 갇혀 고통당하거나 억울하게 죽은 여인들의 겁먹은 혼령이 스며든 게 아닌가 싶어 애처로웠다.

그리고 공터 여기저기 피어나 부슬비에 젖어 떠는 꽃들은 귀신의 원망이나 소망인 양 느껴져 한참 바라보았다.

‘아, 왜 이렇게 방치해 두는 걸까? 건물을 헐어내 버리기보다 잘 활용해 기념관을 만들고 작은 위령비라도 세운다면 어떨까.

하기야 신성한 한미혈맹을 위하여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해 있는 동안엔 쉽지 않은 일이겠지. 그렇지만 과거의 치부라 할지라도 모른 척하기보다 진실되게 기억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좋지 않을까?

의존과 종속 관계를 끝내고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존중할 때 참다운 한미동맹의 우정이 더욱 돈독해지지 않을까 싶은걸. 우리 스스로 자존감을 버리고 비굴하게 굴어서 그렇지, 성숙한 인간답게 당당해진다면 미국 사람들도 오히려 멋진 친구라며 존중해 줄 텐데……

다른 분야에서는 그런 저력을 많이 갖췄는데, 유독 국방 부문에선 왜 그리 미숙한 꺼병이처럼 의타심을 못 버리고 자꾸 어리광이나 부리려는 사람이 많은지 몰라….’

언제 다시 올지 몰라 다시 한번 찬찬히 둘러본 후 건물 밖으로 나와, 혼령인 듯 떨고 있는 이름 모를 하얀 꽃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보지가 내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할머니의 구슬픈 절규가 떠오른다. 미군 기지촌 여성들의 고통과 상흔 그리고 수치심은 그녀들만의 것이 아니라 온 민족의 것이다.

동두천, 평택 등을 비롯한 미군 주둔지만 기지촌이 아니라 한국 땅 전체가 그런 상황이라고 말한다면 과연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한 이후로 이른바 양공주, 양색시, 양갈보 등으로 불린 ‘미군 위안부’ 들의 비참한 삶을 그린 작품은 무척 많았다. 대부분 미군 부대 주변의 클럽을 무대로 술과 춤과 몸을 파는 여자들의 얘기였다.

물론 성병치료소를 단편적으로 언급한 경우도 없지 않았으나, 동두천 몽키하우스를 본격적으로 탐사해 다룬 장편소설은 이 작품이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나라가 약해…

이 작품은 그 모든 이전 문제작들의 도움을 입어 씌어졌다.

그리고 고통스런 옛 기억을 떠올려 어렵사리 증언해 주신 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더불어, 그분들의 애달픈 삶을 살펴 정리하고 여생을 조금이나마 따뜻이 보살피려 애쓰는 의정부의 두레방, 동두천의 새움터, 평택의 햇살사회복지회의 도움에도 감사드린다.


[김영권 작가는?]

진주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소’가 당선되고 <작가와비평> 원고 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대통령의 뒷모습> <선감도: 사라진 선감학원의 비극> <죄의 빙점 형제복지원> <자물쇠 속의 아이들: 어린 북파공작원의 비밀> <보리울의 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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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법원은 내란 혐의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에게 철퇴를 내렸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400여일 만이다. 이날 선고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는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악명을 이어가게 됐다. 5명의 전직 대통령에게 가해진 ‘대법정의 저주’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지난달 19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운명의 날’이었다. 각종 혐의로 받는 재판 중에 가장 핵심 사안에 대한 법원의 첫 번째 판결이 이날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앞서 관련자들에 대한 판결이 나오는 족족 유죄였기에 반전이라고 할 만큼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443일 걸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선고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내란 우두머리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로 윤 전 대통령은 최고형을 피해갔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이 형법상 내란죄가 맞다고 판시했다. 지 판사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자체는 헌법상 권한 행사로서 내란죄에 해당할 수 없고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그 목적에 따라 내란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비상계엄의 목적이 국회나 행정·사법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했다면 내란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사실관계의 핵심으로 군을 국회로 보낸 점을 꼽았다. 지 판사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게 실체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결국 군을 국회로 보낸 행위 자체가 내란죄 성립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에 부합한다는 취지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은 국회에 군을 보내 봉쇄하고 주요 정치인 등을 체포하는 방법으로 국회 활동을 저지·마비시켜 국회가 상당 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려는 목적을 내심으로 갖고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군대를 보내 폭동을 일으킨 사실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야당의 연이은 탄핵, 예산 삭감 등에 따른 국가 위기를 타개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비상계엄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에는 “명분과 목적을 혼동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지 판사는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고도 언급했다. 전두환·노태우·박근혜·이명박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 5명 국가 위기 상황 타개는 명분에 불과할 뿐 본질은 헌법기관의 마비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공수처가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다며 수사의 적법성을 문제 삼아 왔다. 재판부는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고 하더라도 검찰은 공수처 송부 기록 외 다른 증거들을 종합해 기소한 것으로 보이고 공수처가 수집한 증거를 다 빼더라도 피고인에 대해 유죄 판단을 할 증거가 충분하다”고 정리했다. 검찰과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이하 내란 특검)의 주장 중 윤 전 대통령이 장기 독재를 하기 위해 2023년께부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제압할 의도로 내외적 여건을 조성했다는 공소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준비가 허술했다는 것이다. 또 국회를 무력화할 계획 등에 관한 별다른 증거나 자료,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 무기징역 선고 외에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종사죄가 인정돼 징역 30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징역 18년, 조지호 전 경찰청장은 징역 12년, 김종식 전 서울경찰청장은 징역 10년, 목현태 전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장은 징역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최고형 피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선고 닷새 만인 지난달 24일 항소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법정의 기록은 물론, 훗날 역사의 기록 앞에서도 이번 판단의 문제점을 분명히 남겨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검의 무리한 기소, 그 전제 위에서 이뤄진 1심의 모순된 판단과 그 정치적 배경에 대해 저희는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이 중형을 선고받으면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의 ‘저주’가 이번에도 나타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법정 417호는 150석 규모의 형사 법정이다. 대법정 417호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곳에서 윤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 5명이 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별칭이 생길만한 대목이다. 전두환씨,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하늘색 반팔 수의 차림은 국민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최고 권력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법정에 서서 판결을 듣고 있는 모습 자체가 충격인 시대였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항쟁 관련 내란 우두머리(당시 내란 수괴) 등 혐의로 넘겨진 전직 대통령은 대법정 417호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1996년 당시 검찰은 반란 및 내란 수괴 외에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 등 총 10개 죄목으로 전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9개 죄목으로 기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전 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노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징역 22년6개월, 2심에서 징역 17년, 이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국정 농단 다스 재판 그로부터 30여년 뒤 윤 전 대통령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검찰 측 구형도 사형으로 같았다. 내란 특검은 지난 1월13일 “법률가로서 검찰총장까지 지낸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 누구보다 앞장서 헌법을 준수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헌법 질서 파괴로 나아간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피고인은 반성하지 않는다. 양형에 참작할 사유가 없고 오히려 중한 형을 정해야 한다”고 구형 배경을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의 1심 선고도 대법정 417호에서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으로 지위를 잃고 구속 기소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등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국민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2018년 4월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대기업 등으로부터 231억9427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2016년 10월 이후 불거진 국정 혼란의 장본인으로 박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태에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국정 혼란과 대통령 파면의 주된 책임은 피고인과 최순실에게 있다”며 “그럼에도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책임을 주변에 전가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받던 18개 혐의 중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 16개를 유죄로 봤다. 150명 규모 방청석 역사적 재판의 현장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10월5일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 벌금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다스의 실소유주를 이 전 대통령으로 결론 내리면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논란에 종지부가 찍힌 순간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2007년 대통령선거 기간 내내 피고인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됐지만 피고인의 결백을 믿는 다수의 국민 덕분에 피고인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며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의 막강한 권한을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 전체를 위해 행사해야 할 책무를 부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재판 결과 피고인이 친인척 명의를 빌려 다스를 설립해 실소유하면서 246억원가량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범행 기간이 길고 이득액이 상당하며 범행 당시 이미 국회의원, 서울시장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비판했다. 또 “의혹만 가득했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대통령 재임 시절 저질렀던 다른 범행이 함께 드러남으로써 당시 피고인을 믿고 지지했던 국민은 물론 사회 전반에 큰 실망과 불신을 안겼다”며 “그런데도 친인척이나 측근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등 책임을 전가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되풀이된 30년 역사 전직 대통령 관련 재판 등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 대법정 417호에서 열리는 건 규모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방청을 원하기에 대형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5명의 전직 대통령은 방청석의 150여명과 실시간으로 중계된 재판을 본 국민 앞에서 단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