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북한산 수상한 예배당 실체

아무도 찾지 않는 국립공원 교회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북한산국립공원 자락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유령 호텔’이 있다.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호텔 아카데미 하우스’다. 하지만 호텔은 온데간데없이 ‘교회’와 ‘카페’만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지난달 19일, 버스를 타고 4·19 민주묘지를 지나 종점에 도착했다. 버스 기사는 “내리세요. 여기가 종점입니다”라고 말했다. 내린 곳은 차고지였다. 가파른 언덕을 한참 올라 숨이 턱까지 차오르자 북한산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120억짜리
‘유령 호텔’

입구에 들어서자 큼지막한 글씨로 적힌 ‘호텔 아카데미 하우스’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간판 옆에는 금세라도 쓰러질 듯한 낡은 경비실이 있었는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입구에는 누구도 지키고 서 있지 않았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붉은색 지붕의 주택이 보였다.

창문에는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하얀 외벽을 따라 검은 물자국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십자가 두 개가 단상 위에 놓여있었고 양옆으로는 예배용 벤치가 줄지어 자리하고 있었다. 영락없는 예배 공간이었다.

그곳을 나와 위쪽으로 좀 더 걷자, 4층짜리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1층에서는 인부들이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공사 중인 듯한 그 건물이 바로 호텔 본관이었다.


호텔 아카데미는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이하 총회) 소유다. 총회는 2007년 무렵 서울 강북구 수유동, 북한산국립공원 자락에 있던 호텔 아카데미와 주변 건물들을 120억원을 들여 매입했다. 총회는 자체 부동산을 처분하고, 교단 산하 여신도회·남신도회 등 여러 기관의 기금을 모아 인수 자금을 마련했다.

어렵게 모은 재원으로 인수한 호텔 아카데미는 숙박업을 통해 수익을 내고 교단 재정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출발했다.

이후 총회 유지재단은 호텔 운영을 시작했다. 호텔 운영은 임차 업체 A사에 위탁을 맡겼다. 계약에 따라 호텔은 A사가 맡아 운영을 이어가고, 유지재단은 임대료를 통해 수익을 확보하는 구조였다.

당시 총회는 “호텔 임대 운영을 통해 수익을 받아 각 기관에 배당하겠다”고 보고했다. 애초 계획은 객실 운영으로 기본 수익을 내고, 식당이나 부속 시설 등 부대 사업을 통해 추가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운영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계약 초기부터 9년간 호텔은 적자를 면치 못했고, 결국 임대계약이 해지됐다. 호텔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와 시설 유지비가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 원인이었다.

계약이 해지된 뒤에는 상황이 더 악화됐다. 리모델링 공사를 맡았던 시공업체가 공사 대금을 받지 못했다며 유치권을 행사하고 나선 것이다. 유치권은 공사비 미지급 시 시공업체가 건물을 점유하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법적 절차다.

적자 운영으로 공사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자 이런 사태가 이어진 것이다. 결국 총회가 인건비를 직접 부담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애초 위탁 운영을 맡은 A사가 충당해야 할 인건비를 총회 유지재단이 수년간 대신 지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억원이 지출됐다는 사실이 특별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호텔 무단 용도변경
10년간 카페로 사용

2017년, 총회는 이례적으로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총회 설립 이후 처음으로 총회장이 직접 공인회계사를 내부 특별감사로 임명해 진행했다. 감사 범위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간의 총회 업무였고, 이 과정에서 호텔 아카데미 운영과 관련한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지적됐다.

특별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호텔 운영 관련 전체 통장 잔액이 유지재단 결산보고서에서 누락된 점 ▲위탁 운영 과정에서 인건비 총액에 대한 합의가 없었던 점 ▲운영 인건비를 유지재단이 직접 지급한 점 ▲사용처와 상품권 구입 내역이 불분명한 점 등이 명시됐다.

<일요시사>가 만난 총회 소속 목사 이모씨는 “호텔에는 장로 출신 인사들이 재정부장으로 들어가 수천만원대 연봉을 받으며 근무했다”며 “운영이 적자인 상황에서도 두 명의 장로가 각각 4년씩 8년간 재직하면서 총회와 투자 기관에 손해를 끼쳤다. 이는 명백한 배임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감사 과정에서 이런 문제들이 드러났지만, 총회원들에게 공식 보고조차 되지 못했고, 결국 유인물 배포 수준에서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위탁 운영을 맡았던 A사가 2014년 10월31일자로 계약을 해지하면서 호텔 아카데미는 사실상 문을 닫았고, 이로 인해 무려 10년 가까이 호텔 영업을 하지 못했다. 호텔 임차인을 오랫동안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총회 유지재단은 2015년 1차 임대를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새로운 임차인을 물색했지만 쉽지 않았다. 국립공원 내부라는 입지 조건은 장점이기도 했지만 단점이 되기도 했다. 건물 자체가 노후화돼 대규모 개보수가 불가피했고, 그만큼 초기 투자비가 막대했다.

게다가 유치권 처리 문제까지 남아 있어, 운영에 나서려는 업체 입장에서는 투자 대비 수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같은 악조건이 겹치면서 임대 협의는 번번이 무산됐고, 결국 호텔은 2014년 계약 해지 이후 2021년까지 약 7년 동안 사실상 방치됐다.

지난 2021년, 총회 유지재단은 장기간 방치된 호텔 아카데미를 다시 정상화하겠다며 임차인 모집에 나섰다. 건물은 이미 폐허에 가까운 상태였고, 유치권 문제까지 얽혀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는 공개입찰 방식을 택했다. 입찰에는 다섯 개 업체가 응찰했다.

유지재단 소위원들은 단순히 서류만 검토하지 않고 직접 업체 현장을 찾아가 재정 상태와 사업 계획을 꼼꼼히 확인했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재무 건전성이 양호하고 구체적인 미래 비전을 제시한 ‘B사’가 최종 선정됐다.

그해 6월10일, 유지재단과 B사 간 임대계약이 체결됐다. 계약 조건은 보증금 5억원, 월 임대료 5000만원(연간 6억원), 계약 기간 10년이었다. 특히 유치권 정리 비용은 임차인 부담으로 명시됐다. 계약 체결 직후 B사는 본격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대금 미지급
유치권 행사


10개월에 걸친 공사에 투입될 추산 비용은 약 40억원에 달했다. 초기 투자 규모가 워낙 컸던 만큼, B사는 단기간에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 손실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B사는 호텔 객실 52실을 대부분 철거하고, 1층부터 4층까지 대형 카페와 베이커리, 음료 판매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객실을 없애고, 새로운 용도로 전환한 것이다.

전면 개보수 공사를 마친 뒤 2022년 5월, 호텔 아카데미는 대형 카페로 업종을 전환해 다시 문을 열었다. 문제는 이 시점부터 호텔 아카데미가 본래 허가받은 숙박업이 아닌 전혀 다른 목적 시설로 운영됐다는 점이다.

이모씨는 “호텔 아카데미는 숙박업으로 등록돼있지만 실제로는 약 10년간 숙박 영업을 하지 않고, 카페로 운영했다”고 지적했다. 즉, 허가받지 않은 무단 용도변경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국립공원 내에는 상업시설 허가가 제한된다. 자연공원법 제20조는 ‘국립공원 구역 안에서 건축물의 신축·증축·개축·용도변경 등을 하려면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상업시설이나 종교시설은 자연공원 보전 목적에 맞지 않기 때문에 허가가 나는 경우가 드물다. 예외적으로 국립공원이 지정되기 전 있던 기존 건물에 한에서만 허용된다.


호텔 아카데미 또한 국립공원이 조성되기 이전에 있던 건물로서 허가받은 것이지만, 이미 있던 건물이라도 허가 목적 이외로 쓰는 건 ‘용도 위반’에 해당하며 불법이다.

호텔 아카데미는 숙박시설로 등록된 만큼 관광진흥법과 숙박업법의 적용을 받는다. 숙박업법 제6조는 숙박자가 이용할 때 성명, 주소, 연락처 등을 기재한 명부를 작성해 관계 기관의 요구 시 제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모씨는 “실제 투숙객을 받은 기록이 없다. 명부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제출도 불가능하다”며 “호텔 직원의 4대 보험 가입 내역이나 근무 기록도 없다”고 지적했다. 호텔 영업을 했다는 흔적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2014년 이후 호텔 아카데미에서 카페가 아니라 호텔 객실을 이용했다는 후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심지어 한 카페 이용자는 해당 기간 방문 시 호텔은 운영되지 않았다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배당금 ‘0원’
수익 행방 묘연

영업 초반에 카페 운영 매출은 나쁘지 않았다. 월 매출 2억5000만원~3억5000만원 수준이 유지됐다. 그러나 초기 공사비가 예상 지출액보다 컸고, 금리 인상과 자재비 상승 등 외부 요인까지 겹치며 B사는 심각한 자금난에 빠졌다. 이로 인해 임대료가 연체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각종 공과금에 큰 규모의 공사비까지 미지급하게 됐다.

인테리어 공사 업체에서 또 한 번 유치권을 행사하는 일이 발생했고, 2022년 11월부터 2024년 1월까지 15개월간 연체가 이어져 연체금이 9억2000만원에 달했다.

이에 더해 ‘30객실 미설치’ 문제로 시정명령이 떨어졌다. 관광호텔업 등록 기준 기본 요건은 객실이 30실 이상이어야 하지만, 기존 객실을 철거해 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강북구청은 2022년 11월부터 3차례에 걸쳐 시정명령을 내렸다. 1차 시정명령 후 이행이 없자 2차로 15일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고, 벌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이어 3차 계고장이 발부됐으나 객실은 복원되지 않았고, 결국 4차 면허 취소 단계까지 갈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B사는 이를 해결하지 못한 채 2022년 하반기부터 제3자 양도를 모색했다. 운영권을 넘기려 했지만 권리금 조정에 어려움을 겪어 협상은 번번이 결렬됐다.

이후 결국 유지재단은 변호사를 선임해 명도소송을 제기하고, 카드 매출 계좌 가압류와 점유이전금지가처분도 신청했다. 법원은 2023년 11월22일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을 확정했다.

그러다 2024년 1월15일, B사는 돌연 임시 휴업을 선언하고 정문을 폐쇄했다. 강북구청에는 휴업 신청을 하며 행정처분을 유예받았다. 건물 곳곳에는 인테리어 업체가 유치권 행사 중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고, 전기와 수도도 끊겼다.

유지재단은 다시 신규 임차인 모집에 나섰고, 세 곳의 업체가 응모했다. 그중 북카페와 미술관 카페 등 다수의 지점을 운영하며 재무 상태가 안정적이라고 평가되는 C사가 선정됐다.

유지재단은 C사와 협의한 끝에 유치권 정리 비용 17억원을 절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C사와 유지재단이 각각 8억5000만원을 내 유치권 문제를 해결했고, 이후 객실 30실도 복원해 행정처분을 취소시켰다.

수억 헌금으로 만든 산자락 ‘불법 채플’
‘호텔 아카데미’ 기금 모아 120억에 매입

하지만 이모씨는 이에 대해 “유지재단이 교인들의 헌금으로 유치권 비용을 대신 갚아준 셈”이라며 “이는 배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호텔 인수 당시 투자했던 교단 산하 기관들에는 2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배당금이 지급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유지재단은 2차 계약 당시 “월세 5000만원을 받는다”고 보고했지만, 실제 수익은 기관에 배분되지 않았다. 이모씨는 “기관들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만, 돈의 행방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교회당 불법 개축’이다. 유지재단은 아카데미 하우스 내에 ‘채플’을 만들기로 했다. “북한산을 찾는 이들이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여기엔 약 4억원이 투입됐고, 개축 비용은 전국 교회에서 모은 헌금으로 충당했다.

그러나 자연공원법상 종교시설은 국립공원 내에서 허가되지 않는다. 문제의 채플은 ‘숙박시설 개축’으로 허가받았다. 무단으로 용도를 변경해 사용했다는 뜻이다.

이모씨는 구청에 무단 용도변경으로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강북구청은 “2023년 숙박시설 용도로 허가했으나 현장 확인 결과 종교시설로 사용 중임을 확인했다”며 “무단 용도변경에 따른 행정조치를 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이모씨는 “이미 구청이 상황을 알고도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22년 유지재단 이사장인 육순종 목사는 SNS에 “채플 공사에 도움을 준 전·현직 강북구청장, 구의원, 환경부와 국립공원 관계자, 서울시 총괄건축가 등에 감사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이어 “설계도면 자체가 교회 건축으로 진행됐고, 설계비만 1900만원이 집행됐다”며 “언론 보도에서는 2022년에 교회를 짓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구청은 2023년에 숙소로 개축 허가를 했다고 답했다. 이는 이미 교회 건물이 완공된 상태에서 숙소로 허가를 내줬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그는 “준공검사(사용승인) 과정에서 숙소로 허가를 내줬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강북구청의 답변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일요시사>는 육 목사의 SNS 글에 대해 “구청에서 종교시설임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축이 이뤄진 것이 아니냐”고 질의했지만 “SNS 내용은 육순종 목사의 개인적인 사견일 뿐, 강북구청과 연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몰랐다?
자가당착

이모씨는 “호텔 운영 당시 총회가 누락한 통장 잔고와 인건비 지출 내역, 수익금의 행방 등을 명백히 밝히고 채플을 짓는 데 들어간 교인들의 헌금을 돌려줘야 할 것”이라며 “강북구청은 종교시설 개축을 허가한 이유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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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