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K-뷰티 황태자 36세 김병훈

8개월 만에 2조5000억 ‘잭팟’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에이피알이 한국 뷰티 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오랫 동안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지켜온 ‘투톱 체제’가 무너지고, 에이피알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이다. 단숨에 국내 증시 뷰티 업종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서면서 뷰티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에이피알은 주가 23만원에 장을 마감했다.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8조7500억원으로, 국내 뷰티 기업 가운데 1위 자리를 굳혔다. 전날 종가 기준 시총 7조9322억원으로 아모레퍼시픽(7조5339억원)을 제친 데 이어, 이틀 만에 또다시 주가를 끌어올리며 업계 정상 자리를 확실히 한 것이다.

 

K뷰티 No. 1
폭발적 성장

불과 1년5개월 전 상장 당시 시총 1조원 규모였던 점을 고려하면, 폭발적인 성장세가 아닐 수 없다. 

에이피알의 시총이 아모레퍼시픽을 넘어선 시점은 지난 6일이다. 이날 종가 20만8500원을 기록하며 시총 7조9322억원으로 올라섰다. 25년간 업계 1위를 지켜온 아모레퍼시픽을 제친 순간이었다. 에이피알은 이후 상승 곡선을 그리며 단숨에 8조원을 돌파했고, 그 기세는 업계 전반에 충격을 안겼다.

뷰티 시장에서는 “에이피알이 드디어 아모레의 턱밑까지 쫓아왔다”는 말이 나오더니, 이제는 “뷰티 업계의 거장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김병훈 에이피알 대표는 지난 7일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어제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에이피알이 국내 뷰티 기업 시총 1위에 등극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송년회 때 우리는 ‘모두가 인정하는 K-뷰티 No. 1 회사가 된다’는 목표를 세우고 O.N.E 전략을 마련했다”며 “8개월 만인 어제 에이피알은 시총 1위가 됐다”고 소회를 전했다.

김 대표는 성과에 도취되지 않고, 다음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에이피알과 에이프로의 열정과 노력이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쁘다”면서도 “언제나처럼 성과에 취하지 않고 더 큰 무대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전했다.

에이피알은 올해 2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 84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202%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매출은 3277억원으로 111% 증가했다.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이다. 특히 화장품 및 뷰티 부문에서만 2270억원을 올리며 전년 대비 3배 성장했고, 뷰티 디바이스 부문 매출도 900억원을 넘기며 32% 성장했다.

매출을 보면 해외시장, 특히 미국에서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에이피알의 해외 매출 비중은 78%에 달한다. 이 중 29%가 미국 내 매출이다. 국내시장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에이피알 주가는 신고가를 연일 경신했다. 현재는 8조원을 넘어서며,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을 동시에 제치는 기염을 토했다.

주식시장 안팎에서는 김 대표의 경영 감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단순히 제품만으로 승부하지 않고, 기획·마케팅·브랜드 전략을 종합적으로 설계한 결과라는 것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성장 속도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오랜 시간 오프라인 유통망을 중심으로 견고한 입지를 다져온 데 비해, 에이피알은 상장 1년5개월 만에 업계 1위 자리에 올랐다. 짧은 시간 안에 보여준 폭발적 성장세는 ‘신흥 강자’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에이피알 성공 신화…업계 시총 1위
아모레·LG생건 누르고 신흥 강자로

증권가 역시 에이피알의 성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다. K-뷰티 열풍을 기반으로 한 화장품 매출 급증, 뷰티 디바이스 부문의 안정적 성장, 그리고 해외시장에서의 두드러진 성과가 고르게 상승한 점 때문이다. 단순히 ‘반짝 효과’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있다는 분석이다.

김 대표의 도전정신은 뷰티 업계에도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기존 대기업 중심으로 흘러가던 화장품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데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김 대표의 도전정신과 전략적 판단이 에이피알을 단숨에 업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며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그가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김 대표가 창업을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어린 시절 깨달음이 동력이 됐다. 그는 중학교 시절, 사내 정치를 이유로 직장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의 충격은 훗날 “직접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안정된 직장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이 창업 결심으로 이어진 셈이다.

대학 시절에도 그는 일찍이 창업가의 길을 모색했다. 김 대표는 연세대학교 재학 중 교환 학생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머무르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려 했다. 당시 가상 착장 서비스 ‘이피다’, 데이트 중개 애플리케이션 ‘길하나사이’ 등을 차례로 론칭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알람 애플리케이션(앱), 커플 미션 앱, 소셜커머스 등도 시도했으나 마찬가지였다. 김 대표는 나중에 “블루오션이라고 불리는 시장은 사실상 소비자 니즈가 없어서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수차례 실패를 겪은 뒤에도 창업에 대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실패 속에서 교훈을 찾아냈다. 당시를 돌아보며 그는 “남들이 하지 않는 건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 말 속에는 ‘금광처럼 보이는 아이템도 소비자들이 실제로 필요하지 않다면 시장성이 없다’는 통찰이 담겨있다. 이런 경험은 훗날 에이피알 사업 모델을 세우는 과정에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젊은 세대
공략 효과
 

김 대표의 진짜 전환점은 광고 대행업에서 찾아왔다. 여러 번의 창업 실패 이후 그는 광고 대행을 맡으며 패션과 뷰티 분야에서 실적을 쌓았다. 광고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그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광고가 뛰어나도 제품의 품질이 받쳐주지 않으면 소비자는 곧 등을 돌린다는 점이었다. 이 경험이 그에게 새로운 결심을 안겨줬다. “차라리 직접 제품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광고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결국 소비자가 인정하는 제품 자체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창업이 시작된다. 2014년 김병훈 대표는 공동창업자 이주광 전 대표와 함께 ‘에이프릴스킨’을 설립했다. 이것이 에이피알의 시작점이다. 초기에는 특정 품목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소비자의 반응이 좋은 제품에 집중해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판매했던 제품 중에는 지금은 사라진 고체 비누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시행착오 과정은 소비자와 시장을 빠르게 학습하는 기회가 됐다.

2017년, 회사 이름은 ‘에이피알(APR)’로 바뀌었다. ‘에이프릴스킨’을 포함해 ‘메디큐브’ ‘널디(NERDY)’ ‘글램디바이오’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김 대표의 경영 전략은 ‘미디어 커머스’였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같은 대기업이 백화점·마트 등 오프라인 채널에서 성장한 것과 달리, 김 대표는 SNS를 적극 활용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광고를 통해 소비자 반응을 즉각 확인하고, 피드백에 따라 제품 기획과 광고 전략을 신속히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읽고 가격·제품·기술 중 하나라도 확실히 차별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 전략은 젊은 세대 공략에 특히 효과적이었다. 김 대표는 제품을 사용할 특정 타깃층을 미리 정해두고 그들의 취향과 소비 패턴에 맞춰 마케팅을 설계했다. 주 타깃은 SNS 사용이 활발한 10~30대였다. 소비자 맞춤형 기획과 빠른 피드백 반영 대기업이 갖추기 어려운 신속함을 보여줬다.


실적 역시 곧바로 반응했다. SNS 광고를 통해 인지도를 쌓은 에이프릴스킨은 국내외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다만 김 대표는 이 시점에서 또 한 번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미디어 커머스에 머무르지 않고, 오프라인 채널 진출과 글로벌 시장 확대가 뒤따라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8조 돌파
목표 달성
 

이후 그는 메디큐브·에이지알·널디 등 실적이 좋은 브랜드를 앞세워 백화점·올리브영 등에 입점시켰다. 이 전략은 결과적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창업 초기의 실패 경험, 광고 대행업을 통해 얻은 통찰, 그리고 미디어 커머스에서 오프라인·해외시장으로의 확장은 김 대표의 경영철학을 잘 보여준다. 그는 “경험하는 모든 순간을 배움으로 바꾸자”는 원칙을 강조해 왔다.

지난 2020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정말 힘든 일도 많았지만 한순간도 헛되지 않았다. 조직 운영과 마케팅 방법을 모두 현장에서 배우며 성장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에이피알의 성공은 김 대표의 집요한 도전과 반복된 실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대표가 에이피알을 미디어 커머스 기업에 머물게 하지 않고 성장하게 만든 결정적인 선택은 ‘뷰티 기기’로의 확장이었다. 이듬해 그는 화장품 브랜드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제품력과 기술력이 결합해야 소비자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 무렵 선보인 메디큐브의 뷰티 기기 라인은 시장에서 빠르게 주목을 받았다.

대표적인 제품이 ‘에이지알(AGE-R)’ 시리즈다. 고주파, 초음파, LED 등 다양한 기술을 접목한 기기는 화장품 소비에 익숙했던 고객층을 새로운 시장으로 끌어왔다. 김 대표는 “화장품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렵다. 기술과 기기를 결합해야 한다”는 판단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특히, 뷰티 기기로의 확장은 해외시장에서도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해외 소비자들은 ‘한국의 뷰티 기술’을 경험하는 데 매력을 느꼈다. 특히 집에서도 전문적인 스킨 케어를 할 수 있다는 콘셉트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와 맞물려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오프라인 클리닉 방문이 어려운 상황에서 ‘홈케어’ 수요가 커진 것이다.

김 대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국내에서 성공한 모델을 해외에 그대로 적용했다. SNS 기반 마케팅, 인플루언서 협업, 빠른 피드백 반영이라는 기존 전략을 미국·유럽 시장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그는 현지 MZ세대가 이용하는 플랫폼과 문화를 철저히 분석해 현지화 전략을 세웠다.

특히 카일리 제너, 헤일리 비버 등 미국 젊은 층에게 큰 영향력을 가진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한 마케팅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SNS에서 확산된 이들 협업 콘텐츠는 곧바로 판매량 증가로 이어졌다. 김 대표는 매년 매출의 20% 안팎, 약 1000억원 이상을 광고선전비에 투자했다. 단기간에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는 데 집중한 것이다.

뷰티 기기로 해외시장 공략
특히 미국 내 성장세 압도적

실적은 눈에 띄게 성장했다. 에이피알은 2024년 기준으로 해외 매출 비중이 전체의 78%를 차지할 정도로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시장에서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시장을 노린 결과였다.

올해 연매출은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전년 대비 세 자릿수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어 업계 안팎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성장세와 함께 주주 환원 정책도 등장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1343억원 규모의 배당을 실시하고, 300억원 규모 자사주 소각을 발표했다. 주주 친화적인 행보를 내놓자 내부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무명 스타트업이었던 에이피알이 이제는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업계를 흔들고 있다. 국내 화장품 산업이 두 대기업 중심의 양강 구도로 굳어져 있던 상황에서, 신생 기업이 새로운 성장 모델을 제시하며 판을 바꿔버린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에이피알은 SNS 마케팅으로 반짝 성장한 기업이 아니다. 소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품 기획과 마케팅을 동시에 돌리는 구조를 정착시켰고, 뷰티 기기와 화장품을 결합한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냈다”며 “이 점이 해외에서도 통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경제 전문 뉴스 <블룸버그>는 ‘36세 뷰티 재벌, 한국의 새로운 억만장자 되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김 대표를 소개했다. 미국 경제지 <비즈니스 인사이더> 역시 ‘카일리 제너도 반한 스킨케어 기기를 만든 한국의 새로운 밀레니얼 뷰티 억만장자’라며 김 대표를 조명했다.

단기간에 이뤄낸 빠른 성장과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해외 언론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김 대표는 최근 제6회 포니정 영리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포니정재단은 “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의 새로운 길을 연 차세대 경영인”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앞서 <블룸버그>가 그를 ‘밀레니얼 억만장자’로 주목한 데 이어, 국내에서도 그는 혁신성과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국내 투자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상장 직후 1조원 규모에 불과했던 에이피알의 기업가치는 불과 1년 반 만에 8조원대에 올라섰다. 증권가에서는 “에이피알이 단순한 화장품 제조사를 넘어 글로벌 마케팅 플랫폼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오랫 동안 시장을 점유해 왔지만, 신흥 기업이 단기간에 업계를 뒤흔들어 버렸다. 특히 SNS 바이럴 마케팅, 해외 MZ세대 타깃 전략은 전통 대기업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줬다. 

밀레니얼
억만장자

뷰티 업계에서는 에이피알을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직접 제품을 만들고, 뷰티 제품에 기술력을 결합해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는 전략에 김 대표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김 대표는 글로벌 소비 시장에서 통하는 브랜드 파워를 보여줬다. 미국에서의 매출이 국내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에이피알이 독자적 성장 동력을 갖췄다는 신호다. 이는 K-뷰티 산업의 판도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imsharp@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