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400m 금빛 레이스 서민준·조엘진·이재성·김정윤

한국 계주 영광의 첫 골드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한국 육상이 세계 종합대회 남자 400m 계주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금빛 질주는 0.3초의 극적인 차이로 이뤄졌고, 한국 육상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지난달 27일 독일 보훔에서 열린 ‘2025 라인-루르 하계 세계대학경기대회(U대회)’ 남자400m 계주 결승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38초50이라는 기록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38초80)을 제치고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대표팀은 서민준(서천군청), 나마디 조엘진(예천군청), 이재성(광주광역시청), 김정윤(한국체대)으로 구성됐다.

스타터
서민준

이번 경기는 시작 전부터 유리한 싸움은 아니었다. 대표팀은 예선에서 39초14로 전체 7위를 기록하며 결선 막차를 탔다. 하지만 결승전에서의 경기력은 완전히 달랐다. 첫 주자인 서민준 선수가 안정적인 출발을 끊었고, 이어 나마디 조엘진 선수가 예선보다 한층 공격적인 질주로 흐름을 바꿨다.

세 번째 주자 이재성 선수는 격차를 줄였고, 마지막 주자 김정윤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하며 극적인 역전승을 완성했다.

0.3초의 차이는 숫자로는 미미해 보이지만, 기적이나 다름없는 결과였다. 한국이 국제 종합대회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2019년 나폴리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이래, 약 6년 만에 이룬 최고 성적이자, 한국 육상이 단거리 릴레이에서 아시아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결과였다.

현지 중계진은 경기 직후 “한국이 놀라운 배턴 워크로 전력을 다했다”며 “매 구간마다 균형 잡힌 스피드가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국내외 육상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사상 처음 세계 종합대회에서 계주 정상에 오른 것은 한국 육상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선수들이 입국했던 지난 2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는 많은 취재진이 몰려 이들의 귀환을 환영했다. 현장에서 나마디 조엘진 선수는 “우리가 1위를 차지했을 때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며 “2번 주자는 내 강점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김정윤 선수는 “예선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분석하고 팀 전체가 전술을 다시 맞췄다”며 “결승은 그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 경기였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날 오후, 자신의 SNS를 통해 대표팀의 우승을 언급하며 “끈끈한 팀워크가 만든 감동의 드라마”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육상이 유니버시아드 등 세계 종합대회 릴레이 종목에서 우승한 것은 처음으로, 더욱 뜻깊은 성과”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수없이 흘린 땀과 오랜 인내의 시간이 마침내 빛나는 결실로 이어졌다”며 “9월 도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당당히 도전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 육상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번 400m 계주의 첫 주자는 서민준 선수였다. 서천군청 소속인 그는 계주의 출발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맡아, 안정적이면서도 힘 있는 출발로 팀의 흐름을 주도했다. 단 한 순간의 실수가 전체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릴레이 경기 특성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지만, 0.3초 차 승부였던 결승전에서 결정적인 발판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민준 선수는 실전에서 차분히 제 몫을 해내는 유형의 선수로, 전국 단위 대회에서 차근차근 경험을 쌓으며 성장해 왔다. 경기력의 기복이 적고 꾸준히 자신의 기록을 경신해 온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단거리 계주 종목에서 안정적인 주자로 주목 받아왔으며, 성인 무대에서도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는 육상에 대해 “나는 재능형보다는 노력형”이라고 말하곤 했다. 서민준 선수의 성장에는 많은 훈련과 반복, 그리고 경기 경험이 밑바탕으로 깔려 있다. 학교 운동부 시절부터 기본기 훈련에 충실했고, 대학 무대와 실업 무대를 병행하며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성장을 이어왔다.

‘0.3초’ 차이로 역전승
남아공 제치고 결승 통과

특히 주종목인 100m와 200m 개인 종목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팀워크가 중요한 계주에서의 역량이 돋보이면서 대표팀 내 핵심 멤버로 발탁됐다. 결승전 1번 주자로 나선 서민준 선수는 순간 반응 속도에서 밀리지 않고 곧바로 두 번째 주자 조엘진 선수에게 원활한 배턴 패스를 성공시켰다.

경기 직후 서민준 선수는 “우리 팀의 호흡이 이뤄낸 결과”라며 “1번 주자로 부담은 컸지만 나를 믿고 있는 팀원들이 있기에 흔들리지 않고 뛸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향후 목표에 대해 그는 “기록보다 중요한 건 팀의 완성도”라며 “국제대회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팀의 일원으로 뛰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2번 주자로 나선 조엘진 선수의 활약도 눈길을 끌었다. 빠른 속도와 강한 추진력으로 계주의 중심 구간을 맡아 상대를 압박했고, 특히 서민준 선수와의 배턴 패스, 이어 이재성 선수에게 연결되는 흐름 모두 안정적이었다.

조엘진 선수는 한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이국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다. 그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했지만 일과 함께 취미생활을 하며 이를 극복했다. 특히 조엘진 선수는 그림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조엘진 선수가 대중에게 처음 얼굴을 알린 건 트랙 위에서가 아니었다. 그는 지난 2016년 KBS2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출연한 아역 배우 출신이다. 극 중 우르크 지역의 한 소년으로 등장해, 의료 봉사 중이던 온유(치훈 역)에게 “이거 말고 염소 사줘, 염소 키우고 싶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당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분쟁과 가난 속에서도 생존을 갈망하던 소년의 대사는 극의 감정을 이끄는 장면 중 하나로 회자됐다. 드라마 출연 당시 그는 짧은 머리에 귀여운 이목구비로 등장했다. 촬영장에서 송혜교와 온유 등 배우들과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추며 잠시나마 연기자로서 활동했다. 그러나 연기를 이어가지 않고, 육상 선수의 길을 걷게 됐다.

염소 소년
조엘진

조엘진 선수가 육상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육상 멀리뛰기 선수 출신의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운동 감각과 신체조건이 어릴 때부터 뛰어났고, 특히 하체 근력이 두드러졌다. 어릴 적부터 “체격이 좋아 뭐든 잘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던 그는, 실제로도 빠른 스피드와 좋은 신체조건으로 주목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육상에 뛰어든 이후, 그는 각종 청소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전국체육대회, 전국육상경기대회 등에서 100m, 200m, 400m를 가리지 않고 금메달을 휩쓸었다. 2024년에는 최고 수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홍콩에서 열린 인터시티육상선수권대회 20세 미만 남자 100m 부문에서 10초35를 기록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전국 단위 대회인 제104회 전국체육대회 남자고등부 100m와 200m에서 모두 금메달을 차지하며 실력을 입증했고, 제105회 대회에서는 18세 이하부 400m 금메달까지 추가해 전 종목 석권을 이뤘다. 전국종별육상경기대회에서도 100m 금메달을 차지하는 등 고등학교 시절에는 사실상 단거리를 휩쓸었다.

실업팀 예천군청에 입단한 이후에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줬다. 2024년에는 성인 무대 데뷔전인 아시아육상선수권 대표 선발전 남자 100m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구미에서 열린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400m 계주 결선에서도 한국 대표팀으로 출전해 38초49의 역대급 기록을 올리며 대회 최초 금메달을 가져왔다.

특히 그는 2025년 중국 광저우 세계릴레이선수권대회에서도 연일 기록을 경신했다. 예선에서 38초56, 패자부활전에서 38초51을 기록하며 계주팀의 상승세를 이끌었고, 이는 대표팀의 신뢰를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예천군청 소속 실업팀에서 훈련을 이어가면서 국가대표 단거리 계주 주자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업계에서는 조엘진 선수에 대해 “신체조건과 기술적 균형이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한다. 특히 단거리에서 드물게 100m, 200m, 400m 모두 소화할 수 있는 탄력성과 지구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도 높은 성장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중심축
이재성

훈련 태도 역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는 공식 인터뷰에서 “기술보다 멘털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감독님과 함께 훈련하며 더 단단해진 것 같다”고 밝혔다. 후배들과의 훈련에서도 집중력을 놓치지 않으며, 실전 감각을 유지하는 데 철저한 선수로 알려졌다.

3번 주자는 바통을 이어받은 뒤 코너를 돌아 마지막 주자에게 연결하는 핵심 구간을 책임진다. 속도와 기술, 체력의 균형이 필요한 자리다. 이재성 선수는 이 구간을 안정적으로 책임졌다.

팀의 맏형이자 주장인 광주광역시청 소속 이재성 선수는 오랜 기간 국내 무대에서 꾸준히 활약해 온 선수다. 고교 시절부터 전국체전과 전국육상경기대회 등에서 꾸준한 성적을 올렸으며, 성인 무대에서도 100m와 200m 모두를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스프린터로 평가받아왔다.

2025 아시아육상선수권에서도 이재성 선수는 400m 계주 멤버로 출전해 한국 신기록 수립에 기여했다. 당시에는 ‘고승환-서민준-조엘진-이재성’으로 구성된 팀이 38초49의 기록으로 아시아선수권 첫 금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계주의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이번 U대회에서는 고승환 대신 김정윤이 마지막 주자로 배치됐고, 이재성은 다시 3번 주자로 팀의 중심축 역할을 해냈다.

한국체육대학교 소속인 김정윤 선수는 대표팀의 막내 주자이자 마지막 주자인 앵커 역할을 맡았다. 가장 빠른 속도를 유지하며 승부를 결정짓는 자리다. 그는 이번 결승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마지막 주자와 접전을 펼친 끝에 0.3초 차로 결승선을 먼저 통과했다.

김정윤 선수는 대표팀 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선수 중 하나다. 대학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이어온 그는 단거리 전 종목에서 고른 기량을 보이며 계주 멤버로 낙점됐다. 앞선 세계육상릴레이선수권에서도 대표팀으로 출전해, 연달아 한국 기록을 경신한 경력도 있다.

세계 대회 뜻깊은 성과
금메달 들고 금의환향

특히 그는 올해 들어 체중과 근육량을 조절하며 후반 스퍼트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대회에서 안정적인 마지막 주자로 활약하며 금메달 획득의 마침표를 찍었다. 김정윤 선수는 인터뷰에서 “결승선 직전까지 승부가 확실치 않았지만, 평소보다 더 집중하며 마지막 힘을 짜냈다”며 “대표팀에서 경쟁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앞으로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경기 종료 직후, 금빛 질주를 마친 선수들의 얼굴에는 땀과 함께 복합적인 감정이 엿보였다. 믿기지 않는 결과 앞에서 벅찬 환희를 느끼는 모습이었다.

2번 주자로 뛰었던 조엘진 선수는 “처음에는 우리가 1위를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며 “2번 주자는 내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고,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 가슴이 벅차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예천군청 소속 선수로서, 부끄럽지 않은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번 주자로 안정적인 출발을 이끈 서민준 선수는 “계주는 혼자 뀌는게 아닌 팀 경기다. 흐름을 잘 이어주는 데 집중했다”며 “모두가 자기 역할을 잘해줬고, 앞으로도 국제대회에서 이 팀으로 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3번 주자 주장 이재성 선수는 “예선에서 기록이 좋지 않아 고민이 많았지만, 결승에서는 모두가 하나 되어 뛰자는 생각만으로 임했다”며 “국가대표로 금메달을 따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인데, 그걸 해냈다는 사실이 아직도 꿈만 같다”고 말했다.

피니시를 책임진 마지막 주자 김정윤은 “배턴을 받자마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절대 뺏기지 말자,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뿐이었다”며 “이렇게 큰 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계주팀은 내년 2026 아이·나고야아시안게임, 2027년 세계선수권, 그리고 2028년 LA올림픽까지, 향후 3년간 굵직한 국제 무대를 앞두고 있다. 선수 개인의 기량 향상뿐 아니라, 현재의 팀워크를 유지하며 국제 경쟁력을 갖춘 대표팀을 꾸려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피니셔
김정윤

육상계는 이번 결과를 계기로 “드디어 한국도 계주에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저력을 갖췄다”고 평가하면서도, “지속적인 관리와 장기적 지원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을 아끼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선수 개인의 체력 관리, 부상 방지, 심리적 컨디션 유지 등이 향후 대회를 앞두고 핵심 과제로 꼽힌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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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