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 풀린’ 한국식품산업협회 복합적 비위 의혹

회장단 교체 앞두고 터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식품업계 회사 192개가 모여 만든 한국식품산업협회에서 또 잡음이 생겼다. 올해 초 협회장 후보자 선출과 관련해 이사회 정관을 마음대로 고치려고 했다는 논란에 이어 복합적인 비위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새로운 협회장 선출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 협회를 완전히 쇄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국내 식품업계를 대표하는 비영리단체인 한국식품산업협회에 대한 회비 유용, 부정 청탁 채용, 노동법 위반 등 복합적인 비위 의혹이 일었다. 업계에서는 회장 선거 관련 이사회 정관 변경 논란에 이어 이번 논란이 겹치며 협회가 복마전이 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회비 걷어
사적 유용

<일요시사>가 확보한 한국식품산업협회의 회계 자료에 따르면 협회는 지난 2023년 9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사업추진비로 1750만5000원을 사용했다. 품목은 ▲타월 100개 ▲양산 100개 ▲와인 120병 ▲골프공 100개 ▲청소기 100대 ▲기프트 카드 30개 등이다.

내부 관계자 A씨는 이중 80% 이상을 회장과 부회장이 사적으로 반출했다고 말했다. 회계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 물품들은 회장 및 이사회 임원들이 외빈에게 선물하거나 이사회 임원들이 반출했다.

특히 와인 같은 경우 입고된 후 외빈 선물용으로 사용되지도 않았다. 회장부터 부장까지 개인적인 용무로 와인을 반출을 했으며 심지어 회장단 회의에서 음용했다. 구체적으로 와인 92병 중 63병이 회장단 및 이사회 임원들이 유용했다. 120병을 주문하고 행사 등 공식 일정에서 28병만 사용한 셈이다.


A씨는 “행사 기념품 용도로 물품을 주문하면서 과도한 양을 주문했다”며 “이후 창고에 물품을 보관하다가 개인 소유 품목인 듯 회장단과 이사회 임원들이 이를 유용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몇몇 물품들은 농림식품부 공무원 개인 주소와 한국식품과학회 소속 교수 개인 주소로 보내지기도 했다. A씨는 이들이 받은 품목 중 차량용 청소기 같은 경우 가격이 6만2000원에 달해 이른바 김영란법에 위반된다고 꼬집었다.

김영란법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 청탁 및 공직자 등의 금품 등의 수수를 금지함으로써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같은 지적이 나오자 협회는 사업추진비를 활용한 기념품 구매와 관련해 “이사회 및 총회를 거쳐 편성된 예산으로 기념품을 마련해 협회 창고에 보관하고 워크숍, 학술대회, 회원사 및 유관기관 방문, 내방객 응대 등에 사용했다”며 “개인적 유용은 없다”고 밝혔다.

사업추진비로 산 물품 맘대로 반출
한 임원 예산으로 스마트워치 구매

협회의 반박에 A씨는 “단순히 예산을 편성했다고 해서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며 “기념품이라는 용도의 모호성을 악용한 과다 지출 정황이 있고, 누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수불 대장·내역 공개는 물론 기념품 단가와 수량 등 예산 집행 세부내역 공개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회원사들의 회비도 사업추진비로 사용되는데 이런 것을 밝히지 않은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협회 예산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의혹도 있다. 제보에 따르면 협회 임원 B씨는 사적으로 사용할 갤럭시 워치를 협회 예산으로 구매했다.


B씨는 협회에 갤럭시 워치를 사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B씨의 지시를 받은 직원이 협회 회계팀과 이야기를 한 후 나온 방법이 한 업체에 토너 구매 대금으로 처리를 하는 것이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직원 C씨는 D업체에 토너 구매 대금으로 처리가 가능한 지 물었고 D업체는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에 C씨는 D업체에 33만4900원짜리 갤럭시 워치 사진을 보냈고 업체는 이를 구매하고 삼성 ML-D115 토너 3개 구매대금으로 33만6000원을 요청했다. 이에 C씨는 컬러토너까지 포함해 거래명세서와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C씨에 따르면 B씨가 갤럭시 워치를 요청한 것은 두 번이다. 지난 2023년 10월경과 지난해 11월에 요청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토너 결제대금으로 결제된 임원의 갤럭시 워치는 모두 협회 교육 회계에서 처리됐다. 교육 회계는 식품영업자 등의 교육 수입비이자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감독하는 예산이다. B씨는 해당 예산을 사적 유용했으며, 업무상 횡령 및 배임죄로 고발이 가능하다. C씨도 사문서 위조와 횡령 및 배임죄 공범에 해당한다.

지속된
인사 문제

또 채용 비리 의혹도 제기됐다. 제보에 따르면 협회는 전·현직 법령위원분과위원회 위원장의 자녀, 식품의약품안전처 수입검사 관련 부서 소속 공무원 자녀, 한국강소기업협회 임원의 자녀를 채용했다.

A씨에 따르면 이들 일부는 면접 점수가 사후에 조정됐으며 일부는 평가표에 점수를 기입하지 않은 채 특정 지원자를 우선순위로 올렸다고 한다.

협회는 채용 과정에 대해서 “정관과 인사규정에 따라 대부분 공개 경쟁 전형을 통해 채용했으며, 필요한 경우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특별 채용을 했다”며 “2024년에는 국제박람회 준비와 운영에 필요한 전문가를 영어 능통자로 심의해 특별 채용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협회의 반박에 A씨는 “공개경쟁 또는 인사위원회 심의로 특별채용을 진행했다고 하지만 당시 특별채용 심사 대상자는 1명”이라며 “경쟁 없는 특별채용은 사실상 내정된 채용이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이어 “해당 인물들의 이력서 수집 경위, 출처 등에 대해서도 답을 하지 않았다”며 “해당 채용에 대한 공정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누가, 어떻게, 왜 그 지원자의 이력서를 추천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협회 내부에서는 특정 인사를 잔류시키기 위한 인사 지연 문제가 있다는 의혹도 계속 불거지고 있다. 제보에 따르면 지난해 임원추천위원회 제도가 도입됐음에도, 부회장 후보자 미적격 판단 이후 후속 공고가 수개월째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직원들
임금체불


협회 내부에서는 그 이유로 현직 부회장의 장기 잔류를 위한 전략적 지연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협회 임원추천위원회 운영규칙 제5조에 따르면 상근임원 후임자 선정을 위해 임기 만료 2개월 이전에 구성해야 하며, 예정되지 않는 결원이나 그 밖의 사유로 인해 후보자 추천이 필요할 때에는 지체 없이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협회는 이에 대해 “현재 협회장 선출 절차를 다시 가동한 만큼 비상근 회장 후보자 등록을 마감하고 임시총회를 통해 최종 선출하게 되면 부회장 선출을 진행할 것”이라며 “특정 인사를 잔류시키기 위해서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실시한 지도 점검에서도 협회는 다수의 노동법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우선 상시 10인 이상 사업장임에도 불구하고 변경된 취업규칙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하지 않아 근로기준법 제93조를 위반했다. 노동청은 관련 규정에 따라 취업규칙 신고 및 증빙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며, 협회는 지난 5월21일자로 신고를 완료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2024년 1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5개월간 총 5차례에 걸쳐 125~129명에 이르는 직원들에게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미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지급액은 총 3193여만원으로, 이는 근로기준법 제56조(통상임금의 50% 이상 가산지급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

협회는 지난달 24일 해당 기간 초과 근로자에 대한 수당을 재산정해 전액 지급했다고 밝혔다.


퇴직자 임금체불도 확인됐다. 협회는 퇴직한 직원 4명에게 연차유급휴가 미사용 수당과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 근로기준법 제36조(퇴직 시 14일 이내 금품 지급 의무)를 위반했다.

다수 노동법 위반 불거져
부처·협회 자녀 특채까지

또 퇴직자 3명에게는 초과근로수당을 반영한 퇴직금 차액 53만원가량이 누락된 것으로 드러났다. 협회는 퇴직급여보장법 위반 지적을 받은 뒤 지난달 18일자로 해당 금액을 정산해 지급했다.

이에 대해 A씨는 “퇴직자 중 일부만 임금이 재조정돼 지급됐고, 나머지는 아무런 통보 없이 배제됐다”며 “단순 체불을 넘어 고의적 은폐이자 선택적 지급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통상임금과 관련해서는 “2024년 12월 통상임금 기준 변경에 따라 고용노동청의 시정 지시에 따라 추가 지급을 완료했으며, 고의로 은폐하거나 수당을 축소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A씨는 이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2024년 12월 대법원 판례와 2025년 2월6일자로 개정된 고용노동부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에 따라,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는 명확하게 정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협회는 수개월간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고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이는 단순한 해석 오해가 아닌,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을 통해 시정 지시까지 내려진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협회는 고용노동부 통상임금 지침 개정 당일에 협력 노무사에게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에 대해 물었고, 해당 노무사는 ‘기본 연봉의 15% 중 10%에 해당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것이 타당하다’ ‘통상임금은 상여금을 1/12로 나눠 매월로 적용해야 한다’ ‘대법원 판례 확정 시점부터 초과근로수당을 소급 지급해야 한다’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협회는 해당 사실을 지난 2월7일 인지하고도 수개월간 통상임금 적용을 지연한 채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고, 결국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지적 후에야 시정 조치를 이행했다”며 “협회의 해명과 달리 의도적인 은폐가 있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부 발칵
“조사 중”

협회의 해당 비위들은 현재 국민권익위원회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고발된 상황이다.

식약처는 지난 9일 감사반을 협회에 투입해 정관 준수 여부, 예산·인사 집행의 적법성 등 전반을 점검했다. 감사는 ‘불시 점검’ 형식으로 이뤄졌으며, 목적사업 수행과 회비 운영, 조직·인사 등 법인 운영 전반이 대상이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해당 민원을 청탁금지제도과로 이첩해 조사 중이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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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