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처마가 문제? 귀촌 막는 황당 조건

개집도 건물이라고?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농촌의 한 작은 집, 그 안에서 삶을 새로 시작하려던 꿈은 ‘연면적’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혔다. 귀촌을 원하는 사람들은 고요한 산골서의 삶을 꿈꿨지만, 불합리한 도시의 기준에 좌절됐다. 귀촌을 장려한다던 정부는 농촌의 현실을 외면한 채 도시의 잣대를 들이댔다. 도시의 기준이 갈라놓은 길 위에서, 귀촌의 꿈은 멈춰서야만 했다.

귀촌 혜택을 받지 못해 귀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정부는 귀농·귀촌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세제 감면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취득세 감면 ▲재산세 면제 또는 경감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및 장기보유특별공제 확대 등이 있다. 귀촌 혜택은 초기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도시민의 지방 이주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부터 마련됐다.

진입의 벽

문제는 ‘취득세 감면’ 혜택이 ‘연면적 150㎡ 이하’의 주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 기준은 본래 도시 중산층 이하 계층을 대상으로 한 ‘국민주택 규모’ 기준으로, 한정된 예산 안에서 보다 많은 서민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즉, 도시의 아파트나 단독주택을 기준으로 정해진 면적이 농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농촌 주택은 구조가 다르다.

창고, 나무 저장소, 비가림 시설, 우물 덮개 같은 부속 공간은 생활과 농업에 필수적인 요소지만, 도시 기준으로는 모두 ‘거주 가능한 구조물’로 간주돼 연면적에 포함된다. 이로 인해 실제 거주 공간은 소형이라도 형식상 면적 초과로 혜택 대상서 제외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요시사>가 만난 50대 A씨는 귀촌을 준비하던 와중 난데없는 벽에 부딪혔다. 소형 농가 주택을 매수해 귀촌하려던 계획이, 정부의 귀촌 지원 혜택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해당 주택은 방 하나와 거실, 주방, 화장실이 전부인 소형 주택으로, 누구나 ‘작은 집’이라고 느낄만한 구조다. 상수도도 연결되지 않아 지하수나 우물에 의존하며, 택배조차 들어오지 않는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A씨는 “고급 주택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사람이 살기 힘들 정도의 불편한 조건을 갖춘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주택은 건축물대장상 약 45평(148㎡ 이상)으로 등록돼있으며, 부속 창고나 나무를 쌓아둔 임시 구조물 등이 포함되면서 연면적이 150㎡를 초과한다는 판단을 받았다. 농어촌주택 세제 감면 혜택은 연면적 150㎡ 이하 주택에 한해 적용되기 때문에, 혜택을 받으려면 연면적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세제 혜택 도시 기준?
귀촌 희망자들 좌절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연면적’의 해석이다. A씨는 “벽도 없이 기둥과 지붕만 있는 임시 창고, 땔감을 쌓아둔 나무 천장 같은 구조물까지 연면적에 포함됐다”며 “누가 봐도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인데도, 건축물로 간주됐다”고 주장했다.

담당 공무원은 항공 사진상으로 지붕과 기둥이 보이면 건축물로 간주한다고 설명했고, 이에 대해 A씨는 “지붕만 있어도 건물이라면 개집도 건물이냐”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군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실사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건축사가 제출한 설계도면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뿐이었다. 군청은 현장 확인 없이 항공사진과 서류만으로 연면적을 판단했고, 민원 처리 기한이 지나서야 “회의 중이라 답변을 연장하겠다”는 공지만 전달됐다.

더 큰 문제는 부속 창고를 연면적서 제외하려면 철거와 재등기 등의 행정 절차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A씨는 “그 창고는 20만원 정도의 자재로 만든 비가림 구조물일 뿐인데, 그것을 철거하고 건축물서 제외하려면 최소 35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며 “나무를 덧댄 정도의 구조물이 도시식 건축 잣대로 평가받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건축사에게 항의했지만 돌아온 말은 “법적으로 문제 없고, 도면대로 신고했을 뿐”이었다. A씨는 “건축사가 임시 창고까지 신고한 건 과잉이며, 그 때문에 혜택서 배제되는 상황”이라며 책임 회피성 태도에 불만을 나타냈다.

이는 비단 A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부 귀촌 예정자나 농촌지역 주민들 사이서도 꾸준히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도시형 건축 기준’이 전국 공통으로 적용되다 보니, 농촌 특유의 주거문화와 농사 기반의 주택 구조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지역 커뮤니티와 인터넷 부동산 카페에는 ‘부속 건물 때문에 귀촌 혜택에서 탈락했다’ ‘창고가 포함돼 연면적이 초과됐다고 통보받았다’는 사례가 다수 공유되고 있다. 특히 건축물대장과 실사용 면적 사이의 괴리, 항공사진만을 근거로 한 면적 산정, 구체적인 법령 기준의 부재 등에 대한 혼란은 지역을 불문하고 반복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자체마다 적용 기준이 다르다는 점도 문제다. 어떤 지역에서는 비슷한 구조물이 연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포함되는 식이다. 결국 동일한 기준에 따라 운영돼야 할 국가 정책이, 지자체의 재량에 따라 달라지는 현실은 형평성 논란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연면적’에 막힌 제2의 삶
지붕만 있어도 건물 취급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이에 “정책의 자의적 해석으로 인한 지방 차별”이라고 비판한다. 귀촌을 꿈꾸는 도시민들은 ‘정책을 신뢰하고 시골로 이주’를 결심했지만, 막상 현장서 마주하는 행정 절차는 예상과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건축사나 공무원의 해석에 따라 혜택 여부가 갈리는 구조는 귀촌 정책의 신뢰도를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지방자치연구소 관계자는 “현재의 연면적 기준은 도시형 주택을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시골 지역 특유의 생활 구조나 전통적 건축문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며 “시골서 거주하거나 귀촌을 시도하는 시민들을 위해 별도의 기준이 마련돼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도를 운용하는 지자체와 그것을 감독하는 중앙정부가 서로 책임을 미루기만 한다면, 정책은 현실서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가 귀촌·귀농 정책의 근본적인 제도 설계와 맞닿아 있다고 지적한다. 귀촌 장려 정책의 취지는 좋지만, 실제 행정적 기준이 도시 중심으로 설계돼있어 시골 실정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농촌의 주택 구조는 도시와 달리 부속 건물이나 임시 가설물이 많다.

이 때문에 서울식 연면적 계산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 왜곡을 부른다는 비판이 나온다. 도시형 연면적 계산 방식은 불법 증축과 과밀 주거를 막기 위해 엄격히 계산되지만 시골에선 생활 필수시설일 뿐, 거주 공간도 아닐뿐더러 주택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한 건축 관련 전문가는 “건축법상 연면적 기준이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적용되면, 실제 거주 면적이 작더라도 제도적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행정 판단에 유연성을 두거나, 비거주용 부속 공간을 별도 구분하는 방식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씨 역시 “실제로 내가 살고자 하는 공간은 작은 방 하나, 거실 하나일 뿐이다. 나무 쌓아둔 곳이나 플라스틱 판을 덧댄 비가림 공간까지 집이라고 우기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정부는 귀촌을 장려한다고 광고하지만, 막상 제도는 귀촌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탁상행정

현재 A씨는 귀촌 계획을 보류한 채 답답한 마음으로 행정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군청은 민원 처리기한을 넘긴 뒤 답변을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집을 살 수도, 안 살 수도 없는 채로 몇 주째 발이 묶였다”며 “정부 정책이 사람을 도와야지, 가로막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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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