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이기흥 잡은 유승민

탁구 영웅, 체육 대통령 됐다

[일요시사 취재 1팀] 안예리 기자 = ‘아테네의 영웅’이었던 유승민 전 대한탁구협회장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대한체육회장 선거서 3연임을 노리던 이기흥 현 회장을 꺾으면서 또 한 번 반전의 역사를 쓴 것이다. 역대 대한체육회장 중 최연소(43세)로 새로운 수장이 된 유 신임 회장은 한국체육계의 미래를 이끌게 됐다.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 소재의 올림픽홀서 열린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서 가장 많은 표(34.5%)를 얻은 유승민 후보가 당선됐다. 이번 선거에는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 김용주 전 강원특별자치도체육회 사무처장, 유승민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강태선 현 서울특별시체육회장, 오주영 현 대한세팍타크로협회장, 강신욱 현 단국대학교 명예교수까지 총 6명이 후보자로 출마했다. 

3연임 저지
변화 시발점

이번 선거는 역대 최대 경쟁률을 기록했다. 투표인단은 총 2244명이었고 대한체육회 대의원, 종목단체, 시·도 체육회, 시·군·구 체육회 임원 및 대의원, 선수, 지도자, 동호인들로 꾸려졌다.

2244명 중 1209명(투표율 53.9%)이 투표에 참여했고 유승민 후보가 417표 34.5%, 이기흥 후보 379표, 강태선 후보 216표, 강신욱 후보 120표, 오주영 후보 59표, 김용주 후보 15표, 무효표 3표로 유 후보가 최다 득표로 당선됐다. 유 후보와 이 후보는 단 38표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이 회장은 3연임을 노렸지만, 체육계는 기존 체제를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유승민을 선택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한국 체육계가 현 체제의 변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유 당선인은 지방체육회와 종목단체의 자립성 확보를 통한 동반 성장, 선수와 지도자 케어 시스템 도입, 학교 체육 활성화 프로젝트 추진, 생활체육 전문화를 통한 선진 스포츠 인프라 구축, 글로벌 중심 K-스포츠 육성과 대한체육회 수익 플랫폼 구축을 통한 자생력 제고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유 당선인이 내건 공약들은 많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 잡았다.

물론 공약만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동요시킨 것은 아니다. 유 당선인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체육회 가맹 68개 전 종목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지난 7일 유 당선인의 캠프 측 관계자는 “유 당선인은 출마 기자회견 이후 3개월 이상 대한체육회 가맹 68개 종목을 직접 체험하기에 나섰다”며 “계절적인 요인으로 체험이 어려웠던 패러글라이딩과 수상스키를 제외하고는 경기장과 코트를 일일이 찾아 대부분의 종목 체험을 마쳤다”고 밝혔다.

택견이나 태권도 같은 전통 무술과 배드민턴, 테니스 등 라켓 종목, 승마, 수영 등 전 종목을 직접 체험한 이유는 모든 종목을 경험하며 선수, 지도자와 만나 각 종목 선수들이 겪는 고충과 현안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현정화 전 탁구 감독은 “전 종목 체험은 유 당선인이 젊고 소통하려는 진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유 당선인은 선수 시절이나 탁구협회장 때도 엄청난 에너지로 목표한 것을 이뤄내는 집념이 있었다. 체육회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 것으로 확신한다”고 신뢰했다.

김택수 미래에셋 탁구단 감독은 “유 당선인이 선수로 최고 자리에 올랐고, 지도자와 행정가로서 성과를 내 자질을 검증받았다”며 “선거 공약은 직접 전국을 돌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체험을 바탕으로 진정성을 갖고 다가갔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38표 차’ 대한체육회장 당선 대이변
42세 역대 최연소 수장 “변화 선택”

이번 선거는 이 회장과 ‘반 이기홍 연대’ 간의 대결이었다. 이 회장의 직원 부정 채용 및 금품수수, 후원 물품 횡령, 선수촌 시설 관리업체 입찰 비리 의혹 등으로 유 당선인을 포함한 다섯명의 후보가 이 회장의 실정을 비판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여론은 이 회장의 3연임 성공을 점쳤다. 각종 비위 혐의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로부터 직무 정지를 당하고 사법 당국의 수사를 받아 비판 여론이 컸지만, 역대 최다 인원인 6명이 회장 선거에 입후보하고 ‘반 이기흥’ 단일화가 끝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 당선인은 야권 단일화 논의에 참여했었지만 “야권 후보들 사이에 권위 의식과 연장자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각종 의혹으로 수사 대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포츠공정위원회로부터 도전 자격을 승인받아 출마했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정부를 겨냥해 “문화체육관광부, 검찰, 경찰, 국회, 국조실, 감사원 등 거의 모든 국가 권력기관이 체육회 조사에 나섰다”며 “나를 악마화하고 있다”고 강력 항의했다.

이 회장은 문체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체육회장 집행 정지 신청 항고심서 1심에 이어 패했다. 체육회장에 당선된 뒤 국면을 전환시키겠다던 이 회장의 전략은 끝내 좌절됐다.

한편 유 당선인은 대한탁구협회 회장 재임 시절 ▲후원금 페이백 의혹 ▲2020 도쿄올림픽 탁구 국가대표 선발 과정서 선수 바꿔치기 의혹을 받았다.

지난 4일 열린 제1차 후보자 정책토론회서 그는 “후원금 유치를 위해 인센티브 제도를 만든 건 사실이지만, 총 100억원의 후원금 가운데 직접 끌어온 28억5000만원에 대해 단 한 푼의 인센티브도 받지 않았다”면서 “대한체육회 감사를 매년 받았고, 5년간 일하면서 개인적으로 법인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어 “도쿄올림픽 당시 경기력향상위원회서 추천한 선수가 있었지만 선발전 성적과 세계랭킹이 더 높은 선수를 최종 선발했다”며 “위원회서 추천한 선수를 뽑았다면 오히려 불공정했다는 사회적 논란이 일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당선인은 해당 의혹을 제기한 후보들에게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젊은 피
행정가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선수로부터 시작됐다. 안세영은 ‘28년 만의 금메달이라는 영광’을 안았지만, 대한배드민턴 협회의 비리와 불합리한 행정을 비판하고 한국 체육 행정의 변화를 요구했다.

안세영의 목소리는 개혁의 씨앗이 돼 닫혀 있던 체육계 내부의 말문을 틔웠다. 그동안 체육계에 뿌리 깊었던 비효율적 행정 시스템에 대한 젊은 선수들의 불만을 안세영이 대변함으로써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의 선거공약은 체육인들의 마음을 동요시켰다. 유 당선인은 체육계의 오래된 관습을 타파하고, 더 나은 행정과 투명한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공약으로 많은 체육인들의 지지를 얻었다.

유 당선인의 현재 가치관은 고단했던 선수 생활로부터 형성됐다. 선수 시절부터 뛰어난 면모를 보였던 그는 중학생 때 국가대표에 선발될 정도로 어렸을 적부터 천부적 재능을 보였다. ‘탁구 천재’라는 수식어만큼 타고난 재능이 있었지만, 부친과 함께 체력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등 노력파로 통한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이미 실업팀들이 서로 스카우트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고, 삼성생명의 후원을 받을 정도의 인재였다. 16세였던 1997년 아시아 주니어 탁구 선수권 단식 4강에 진출했으며, 단체전에선 우승했다.

유 당선인의 신승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의 신승 연대기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서 시작됐다. 당시 한국 탁구 국가대표였던 그는 탁구 남자 단식 결승서 중국의 왕하오(당시 세계랭킹 4위)를 4-2로 꺾는 ‘녹색 테이블 반란’을 일으켰던 역사가 있다.

앞서 1999년 주니어 아시아선수권서 당시 기대주였던 운명의 상대 왕하오를 처음 마주했다. 이때 왕하오를 단식 결승서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최고 유망주 반열에 올랐다.

이후 5년 만인 아테네올림픽서 왕하오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당시 거의 모든 기술적 측면서 우위에 있다고 평가받았던 그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압도적 경기력으로 결국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이번엔
역전승

2012년 은퇴 이후 유 당선인은 체육 행정가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 2016년 리우올림픽 기간 중에 쟁쟁한 후보였던 역도 장미란, 사격 진종오를 제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 위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IOC 선수 위원 당선 이후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선수촌장을 역임한 유 당선인은 2018 평창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내고, 대한탁구협회장 선거에 당선된 후 본격적인 체육 행정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유 당선인이 43세라는 젊은 나이에도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은퇴 후 쌓은 체육 행정가로서의 다양한 경험도 한몫했다.

선수 생활 25년, 지도자 2년, 대한탁구협회장과 IOC 선수 위원으로서 8년간 행정경험을 쌓아온 유 당선인은 대한탁구협회장 재임 중 세계선수권대회인 부산 탁구 세계선수권대회를 최초로 국내에 유치했다. 또 2018 평창기념재단 이사장으로서 ‘신남방 선수 육성 사업’ ‘드림 프로그램’ 등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유산 사업들을 차질 없이 추진했다.

유 당선인은 당선 확정 후 “선거 과정에선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이젠 더 이상 네 편 내 편이 없다. ‘스포츠’라는 한 지붕 아래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발전 방향을 고민할 수 있는 장을 열겠다”며 “당선 직후 모든 후보자들에게 전화를 드렸다. 이 회장께서는 잘하라고 말씀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수많은 현안에 대해 걱정했다.

주무 부처인 문체부와의 관계 회복은 가장 큰 숙제로 남아있다. 이 회장이 이끄는 체제 아래서 문체부와 체육회 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됐다.

문체부와 체육회는 국무총리 산하 민관 합동기구인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 인사 구성, 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 연임 제한 폐지 내용이 담긴 정관 개정안 승인, 예산 교부 등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갈등의 여파로 체육회 예산은 약 1000억원가량 줄어들었다. 특히 문체부는 대한체육회를 거쳐 시도체육회로 배정되던 예산 400억원을 직접 교부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체육회 주요 사업이 문체부 등 다른 기관으로 이관되면서 삭감 폭이 더욱 커졌다.

21년 전 왕하오 꺾듯
또다시 짜릿한 신화

이에 대해 유 당선인은 “나는 아직 누군가와 척을 져본 적이 없다. 그 부분은 부드럽게 잘 풀리지 않을까 싶다”며 “지금은 체육계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 정부와 소통으로 해결된다면 빠르게 대화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방체육회의 독립 행정과 예산 집행이 안 되면 줄기가 막힌다. 그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면서 “지방체육회의 경우 시간이 많지 않다. 아수라장이 돼버린 학교 체육 정상화에도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대한탁구협회장, IOC 선수 위원, 2018 평창기념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문체부와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유 당선인은, 정부와의 갈등을 해소할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현재 체육계는 정말 많은 현안을 갖고 있는데,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부족하지만, 열심히 그 역할을 해보도록 하겠다. 체육인이라는 자긍심을 잃지 말아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경쟁력을 한층 높이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체육회에 대해 “내부 조직은 물론, 사업 방식 등에 정체돼있거나 개선 여지가 있는 부분들을 찾아낼 것”이라며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바꿔 자존감이 낮아진 체육회 직원들에게 새로운 동기 부여를 하겠다. 개혁의 목적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집단 따돌림으로 사망한 철인3종경기 선수 고 최숙현의 부친으로부터 당선 직후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는 그는 “대한민국 체육이 건강하고 올바르게 갈 수 있도록 이끌어달라는 문자 내용을 확인하고 가슴이 먹먹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IOC 선수 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IOC 산하 인권 소위원회에 몸담으며 배우고 익힌 내용들을 적극활용해 체육인들의 인권 보장에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유 당선인에게는 2026 밀라노·코리티나담폐초동계올림픽,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아경기대회, 2028 LA 올림픽 등 다수의 국제종합대회가 기다리고 있다. 이들 대회서 좋은 성적을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도 맡았다.

또 생활체육 활성화 및 학교 체육 진흥 등 체육계 전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대한민국 스포츠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등 현안들이 포진해있다. 대한체육회장은 연간 4400억원의 예산 집행을 결정하며, 정회원 64개, 준회원 4개, 인정회원 15개 등 총 84개 종목단체를 총괄해야 한다.

새로운 바람
책임감 막중

유 당선인의 당선은 앞으로 체육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 올 것을 암시한다. 기존 관습을 타파하고 개혁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유 당선인은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다음달 취임한다. 임기는 2029년 2월까지로, 앞으로 4년간 한국 체육계의 미래를 책임지게 된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의 행보에 체육계의 미래가 달려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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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