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명’ 청년 변호사 생존전략

사건 수임 위해 이것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후 국내 변호사 수는 점차 급증해 왔다. 하지만 법무법인에서는 신입 변호사 채용을 줄이고 있다. 변호사 시험만을 보고 달려온 신입 변호사들은 실무적인 조언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사건을 수임하고 개업한 사무실을 운영 중이다.

현재 우리나라 변호사 수는 3만5000명을 넘어섰다.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은 재판 승리를 위해 전문성이 있는 변호사 혹은 판·검사 출신의 변호사를 선임하는 데 열중이다. 이런 상황에 신입 청년 변호사들은 사건 수임을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변호사
3만명

법무부가 매달 발표하는 변호사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 22일 기준 등록 변호사 수는 3만5983명이며 개업 변호사는 2만9687명에 달한다. 국내에 등록된 변호사 수는 지난 2006년 1만명을 돌파해 8년 만인 2014년 9월 2만명을 돌파한 후 지난 2019년 3만명을 돌파했다.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의 도입 이후 변호사 수는 급증했다. 매년 평균 1400~1700여명이 로스쿨을 졸업한 지 3년 이내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변호사 수의 급증은 변호사 시장에 양극화를 불러왔다. 연차를 쌓으며 전문성을 키웠던 변호사와 검사 및 판사 출신 변호사들은 수월하게 사건을 수임하고 있지만 저연차의 변호사들은 한 달에 한 건의 사건을 수임하기도 어려운 것이 실정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서울 지역 저연차(1~3년 차) 개업 변호사들의 평균 사건 수임 건수는 1.1건이다. 일반적인 형사 사건 수임료가 50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소송 과정서 사용되는 비용과 세금 등을 제외한 약 300만원가량이 이들의 한 달 수입인 셈이다.

전체 변호사 시장의 평균 수입인 2억4600만원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한 개업 변호사 A씨는 “일반적으로 사무실을 한 달 사용하는 데 200만원서 250만원이 든다”며 “한 달에 한 건의 사건을 수임하는 것만으로는 사무직을 고용할 수도 없고 사무실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사무실이 없으면 의뢰인들이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빚을 내서 사무실을 운영한 적도 많다”고 토로했다.

반면 대형 로펌의 경우 기업 관련 사건을 맡거나 수임료가 큰 형사 사건을 맡다 보니 변호사에게 돌아가는 수입도 많은 편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거대 로펌인 김앤장의 지난 2022년 매출은 1조3000억원 수준이다. 이를 김앤장의 1인당 변호사 매출로 환산하면 13억원에 달한다.

중소형 로펌서 근무하는 신입 변호사들도 400만원 이상의 월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로펌에 들어가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최근 10대 로펌서 신입 변호사 채용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등록변호사 3.5만명, 개업 변호사 3만명
“한 달에 사건 하나 수임하기도 어려워”


올해 10대 로펌서 법조 경력을 시작한 신입 변호사는 총 255명으로, 지난해 278명보다 23명(8.3%) 감소했다. 2022~2023년 감소폭(18명, 6.1%)보다 커졌다. 10대 로펌 신입 변호사 수는 2022년 296명에서 계속 줄고 있다.

올해 로펌별로는 ▲김앤장 54명 ▲태평양 42명 ▲광장 39명 ▲세종 38명 ▲율촌 31명 ▲화우 23명 ▲바른 12명 ▲지평 10명 ▲대륙아주 6명 순으로 채용했다. 법무법인 동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입 변호사를 채용하지 않았다.

대형 로펌에서는 신입 변호사를 채용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교육하더라도 다른 경쟁 로펌으로 이직하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차라리 건설 부동산, 자본시장 등 특정 업무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경력 변호사들을 집중 영입하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채용을 담당하는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예전처럼 신입 변호사를 뽑아서 로열티가 있는 구성원으로 키워내는 방식에 한계가 생긴 것 같다”며 “로펌에서는 통상 팀별 수요를 고려해 2년 전에 미리 뽑았는데 요즘은 시장 트렌드가 빨리 변해서 중대재해 등 사건이 터지면 그때그때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는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설 자리가 없는 신입 변호사들은 개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변호사시험 합격 후 단 6개월의 실무 경험만으로 사무소를 온전히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뢰인들은 전문성이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많은 법무법인이 ‘성범죄 전문’ ‘성범죄센터’ ‘성범죄 전담’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문구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변호사법 제23조 제2항은 변호사 광고를 규정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변협은 이에 근거해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 제4조에 14가지 조항으로 광고 내용을 제한하고 있지만 소비자인 의뢰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광고를 내세우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 개업 변호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건 수임 후 경험을 쌓기 위한 생존전략을 펼치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한 개업 변호사는 법원과 경찰에 거의 상주하고 있다. 변호사를 수임하지 않고 고소를 진행하거나 재판을 진행하는 의뢰인을 포섭하기 위함이다.

신입 변호사
생존전략

서초동에 사무소를 개업한 지 2년이 지난 변호사 B씨는 “개업 초기에는 공유 사무실을 사용하면서 시간이 될 때마다 법원과 경찰서에 머물렀다”며 “그곳에서 고소하러 온 사람들에게 명함을 나눠주고 무료로 법률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연이 닿은 의뢰인의 소송을 잘 마무리하자 조금씩 입소문을 탔고 이제야 개인 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며 “명함을 돌리고 다닐 당시 ‘변호사가 앵벌이를 하냐’ ‘자존심도 없냐’ 등 같은 변호사에게도 비난받기도 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직업인데 폼 잡으려다 굶어 죽을 순 없다는 생각이 더 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개업 변호사 C씨는 남들이 맡지 않는 사건을 수임하다 해당 분야 전문 변호사로 취급받고 있기도 하다.

C씨는 “개업 초기 4달 동안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고 그저 법률 상담만으로 하루하루 먹고 살았다”며 “그러던 중 성범죄 가해자가 ‘국선변호인을 선임하지 않겠다’ ‘새로운 변호사를 선임하겠다’며 재판을 미루고 연락이 왔다. 죄질이 너무 나빠서 사건을 수임하지 않으려는 고민도 했지만 결국 그 사람을 변호했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사건의 재판을 마무리하고 나니 다른 변호사들이 꺼리는 사건들에 대한 수임 요청을 많이 받게 됐다”며 “이후 ‘돈에 미쳐서 성범죄자만 변호한다’는 눈총을 받으며 많은 사건을 수임하다 보니 정말로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린 사람들도 사건을 의뢰하러 왔고 결국 성범죄 전문 변호사로 취급받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많은 사건을 수임하기 위해 수임료를 대폭 낮춘 변호사도 있었다. 그는 개업 후 형사사건 수임료를 300만~400만원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의뢰인과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유튜브나 개인 SNS에 전문지식을 공유하는 변호사도 늘었다. 특히 젊은 변호사들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함은 물론 온라인에 법률 상식을 담은 웹툰이나 카드 뉴스를 게재하고 있다.

한 유튜브를 운영 중인 2년 차 변호사는 “최근 <굿파트너> <지옥에서 온 판사> 등 변호사나 판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며 “드라마서 나온 장면에 대해 법률 상식 등을 알려주는 콘텐츠 역시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 후 ‘유튜브 보고 연락드린다’ ‘유튜브서 설명해 주신 상황이 제 상황과 유사한데 어떡하죠’라며 사건을 의뢰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전에는 의뢰인들이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이력만 갖고 ‘내 사건을 잘 해결해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접근을 못했다면 유튜브 등으로 친밀감을 먼저 쌓아 더 쉽게 상담을 진행하거나 수임을 요청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반성문
대필도

열심히 노력해 사건 수임을 하는 변호사들도 있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을 이용한 수입을 거두는 변호사도 있다. 대표적으로 반성문을 대필해 주고 돈을 받는 것이다.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은 형량을 깎아보려는 의도로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한다. 물론 반성문을 제출한다고 해서 무조건 감형이 되진 않지만 대부분 형사 사건의 피고인들은 반성문을 제출하기에 판결문에는 적시되지 않지만 부정적인 요소로 고려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이에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들은 의뢰인 상황에 맞는 반성문 작성 요령을 알려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반성문을 대필해 주는 법무법인이나 변호사들은 사건을 수임하지 않고 그저 반성문을 대필해 주고 있는 것이다.

반성문을 대필해준다는 광고를 내건 법무법인 소속의 한 저연차 변호사는 “탄원서와 반성문 각각 5만원가량을 받고 대필을 진행 중”이라며 “한 사건을 수임하게 될 경우 길면 1년의 시간이 걸리지만 반성문의 경우 상황에 맞는 반성문 포맷이 있기에 하루도 안 걸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같이 일하는 한 동료는 사건 수임은 전혀 하지 않고 반성문과 탄원서 대필만 한 달에 100부서 200부 정도 진행한다”고 말했다.

반성문이나 탄원서가 한 부에 5만~6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대필만으로 1000만원서 1200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변호사도 있는 셈이다. 

이어 “대필 의뢰인에게 질문을 하고 상황에 맞게 쓰는 거라 대필이라는 것이 티가 날 수 없다”며 “우리가 써준 반성문을 의뢰인이 다시 옮겨 적어달라는 안내만 지킨다면 5만~6만원에 과태료나 형량을 줄일 수 있다”고 자신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변호사가 반성문을 대필하거나 법적 상식으로 드라마를 리뷰하는 행위 모두 변호사 시장이 포화상태라 벌어진 일이라고 보고 있다. 너무 많아진 변호사 수로 법률 서비스 질이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률 서비스의 질 양극화는 로스쿨 양극화서부터 시작된다. 어떤 곳은 30%대 합격률로 겨우 유지하고 있다”며 “학교별로 군을 나눠 경쟁시키고 평가하는 등의 방법을 활용해 활력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앵벌이부터 반성문 대필까지...
“로스쿨 이후 법률 서비스 하락해”

성중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제법, 노동법 등 굉장히 중요한 과목들도 변호사 시험 선택과목에 들어가지 않으면 학생들이 거의 안 듣는다. 기초 법학이 죽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실무적으로 사회에 나가서 중요하게 쓰일 법적 윤리나 관련 과목들이 시험 과목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폐강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당초 도입 취지를 넘어 법학이라는 학문을 유지하려면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성 교수는 “현행 3년의 교육 기간이 짧은 감이 있다”는 지적도 했다.

이어 “예전에는 법대 4년에 사법연수원 2년을 공부하고 훈련받았는데 지금은 6년치를 3년 안에 욱여넣다 보니 교육적인 포화가 이뤄진 것 같다. 3년 공부하고 합격하면 1년 정도는 따로 연수원서 교육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법학전문대학원은 수업서 판례 하나만 갖고도 한 시간 동안 난상 토론을 하는데, 우리는 변호사시험 대비용 암기 위주의 수업만 하는 측면이 있다”고도 말했다. 

김정욱 서울변호사회 회장도 로스쿨 제도 안팎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부적으로는 입학 정원에 대한 결원보충제 연장 문제, 입학 전형의 공정성 문제, 변호사시험 5회 탈락자에 대한 구제 문제, 6개월 실무 수습의 문제 등이 있고, 외부적으로는 로스쿨 제도 도입 시 논의됐던 유사법조직역 통폐합 문제, 변호사 과다 배출 문제 등이 있다”며 “이 같은 문제들은 상호 간 연결돼있으며 국민을 위한 로스쿨 제도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박기태 변호사는 신입 변호사들이 제대로 된 사건을 수임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알아낼 수 없는 점을 근본적인 문제로 꼽았다.

“변호사 업계
근본적 문제”

그는 “의뢰인을 대하는 방법, 사무실을 운영하는 방법, 광고나 블로그, 유튜브를 사용하는 방법 등 신입 변호사가 알아야 할 것들은 산재해 있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나눠 주는 사람이 없다”며 “예전에는 사법연수원을 통해 선후배 관계가 생길 수 있었고, 현직 법조인인 교수들이 조언을 주기도 했으나 사법연수원 제도가 로스쿨 제도로 변화하면서 정보가 공유되는 범위가 좁아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믿을 만한 멘토도 없고, 변호사로서 알아야 할 정보가 부족한 채로 사건을 수임하기 급급한 신입 변호사들이 제대로 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kcj5121@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