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명’ 청년 변호사 생존전략

사건 수임 위해 이것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후 국내 변호사 수는 점차 급증해 왔다. 하지만 법무법인에서는 신입 변호사 채용을 줄이고 있다. 변호사 시험만을 보고 달려온 신입 변호사들은 실무적인 조언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사건을 수임하고 개업한 사무실을 운영 중이다.

현재 우리나라 변호사 수는 3만5000명을 넘어섰다.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은 재판 승리를 위해 전문성이 있는 변호사 혹은 판·검사 출신의 변호사를 선임하는 데 열중이다. 이런 상황에 신입 청년 변호사들은 사건 수임을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변호사
3만명

법무부가 매달 발표하는 변호사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 22일 기준 등록 변호사 수는 3만5983명이며 개업 변호사는 2만9687명에 달한다. 국내에 등록된 변호사 수는 지난 2006년 1만명을 돌파해 8년 만인 2014년 9월 2만명을 돌파한 후 지난 2019년 3만명을 돌파했다.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의 도입 이후 변호사 수는 급증했다. 매년 평균 1400~1700여명이 로스쿨을 졸업한 지 3년 이내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변호사 수의 급증은 변호사 시장에 양극화를 불러왔다. 연차를 쌓으며 전문성을 키웠던 변호사와 검사 및 판사 출신 변호사들은 수월하게 사건을 수임하고 있지만 저연차의 변호사들은 한 달에 한 건의 사건을 수임하기도 어려운 것이 실정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서울 지역 저연차(1~3년 차) 개업 변호사들의 평균 사건 수임 건수는 1.1건이다. 일반적인 형사 사건 수임료가 50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소송 과정서 사용되는 비용과 세금 등을 제외한 약 300만원가량이 이들의 한 달 수입인 셈이다.

전체 변호사 시장의 평균 수입인 2억4600만원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한 개업 변호사 A씨는 “일반적으로 사무실을 한 달 사용하는 데 200만원서 250만원이 든다”며 “한 달에 한 건의 사건을 수임하는 것만으로는 사무직을 고용할 수도 없고 사무실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사무실이 없으면 의뢰인들이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빚을 내서 사무실을 운영한 적도 많다”고 토로했다.

반면 대형 로펌의 경우 기업 관련 사건을 맡거나 수임료가 큰 형사 사건을 맡다 보니 변호사에게 돌아가는 수입도 많은 편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거대 로펌인 김앤장의 지난 2022년 매출은 1조3000억원 수준이다. 이를 김앤장의 1인당 변호사 매출로 환산하면 13억원에 달한다.

중소형 로펌서 근무하는 신입 변호사들도 400만원 이상의 월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로펌에 들어가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최근 10대 로펌서 신입 변호사 채용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등록변호사 3.5만명, 개업 변호사 3만명
“한 달에 사건 하나 수임하기도 어려워”


올해 10대 로펌서 법조 경력을 시작한 신입 변호사는 총 255명으로, 지난해 278명보다 23명(8.3%) 감소했다. 2022~2023년 감소폭(18명, 6.1%)보다 커졌다. 10대 로펌 신입 변호사 수는 2022년 296명에서 계속 줄고 있다.

올해 로펌별로는 ▲김앤장 54명 ▲태평양 42명 ▲광장 39명 ▲세종 38명 ▲율촌 31명 ▲화우 23명 ▲바른 12명 ▲지평 10명 ▲대륙아주 6명 순으로 채용했다. 법무법인 동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입 변호사를 채용하지 않았다.

대형 로펌에서는 신입 변호사를 채용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교육하더라도 다른 경쟁 로펌으로 이직하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차라리 건설 부동산, 자본시장 등 특정 업무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경력 변호사들을 집중 영입하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채용을 담당하는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예전처럼 신입 변호사를 뽑아서 로열티가 있는 구성원으로 키워내는 방식에 한계가 생긴 것 같다”며 “로펌에서는 통상 팀별 수요를 고려해 2년 전에 미리 뽑았는데 요즘은 시장 트렌드가 빨리 변해서 중대재해 등 사건이 터지면 그때그때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는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설 자리가 없는 신입 변호사들은 개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변호사시험 합격 후 단 6개월의 실무 경험만으로 사무소를 온전히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뢰인들은 전문성이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많은 법무법인이 ‘성범죄 전문’ ‘성범죄센터’ ‘성범죄 전담’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문구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변호사법 제23조 제2항은 변호사 광고를 규정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변협은 이에 근거해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 제4조에 14가지 조항으로 광고 내용을 제한하고 있지만 소비자인 의뢰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광고를 내세우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 개업 변호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건 수임 후 경험을 쌓기 위한 생존전략을 펼치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한 개업 변호사는 법원과 경찰에 거의 상주하고 있다. 변호사를 수임하지 않고 고소를 진행하거나 재판을 진행하는 의뢰인을 포섭하기 위함이다.

신입 변호사
생존전략

서초동에 사무소를 개업한 지 2년이 지난 변호사 B씨는 “개업 초기에는 공유 사무실을 사용하면서 시간이 될 때마다 법원과 경찰서에 머물렀다”며 “그곳에서 고소하러 온 사람들에게 명함을 나눠주고 무료로 법률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연이 닿은 의뢰인의 소송을 잘 마무리하자 조금씩 입소문을 탔고 이제야 개인 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며 “명함을 돌리고 다닐 당시 ‘변호사가 앵벌이를 하냐’ ‘자존심도 없냐’ 등 같은 변호사에게도 비난받기도 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직업인데 폼 잡으려다 굶어 죽을 순 없다는 생각이 더 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개업 변호사 C씨는 남들이 맡지 않는 사건을 수임하다 해당 분야 전문 변호사로 취급받고 있기도 하다.

C씨는 “개업 초기 4달 동안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고 그저 법률 상담만으로 하루하루 먹고 살았다”며 “그러던 중 성범죄 가해자가 ‘국선변호인을 선임하지 않겠다’ ‘새로운 변호사를 선임하겠다’며 재판을 미루고 연락이 왔다. 죄질이 너무 나빠서 사건을 수임하지 않으려는 고민도 했지만 결국 그 사람을 변호했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사건의 재판을 마무리하고 나니 다른 변호사들이 꺼리는 사건들에 대한 수임 요청을 많이 받게 됐다”며 “이후 ‘돈에 미쳐서 성범죄자만 변호한다’는 눈총을 받으며 많은 사건을 수임하다 보니 정말로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린 사람들도 사건을 의뢰하러 왔고 결국 성범죄 전문 변호사로 취급받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많은 사건을 수임하기 위해 수임료를 대폭 낮춘 변호사도 있었다. 그는 개업 후 형사사건 수임료를 300만~400만원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의뢰인과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유튜브나 개인 SNS에 전문지식을 공유하는 변호사도 늘었다. 특히 젊은 변호사들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함은 물론 온라인에 법률 상식을 담은 웹툰이나 카드 뉴스를 게재하고 있다.

한 유튜브를 운영 중인 2년 차 변호사는 “최근 <굿파트너> <지옥에서 온 판사> 등 변호사나 판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며 “드라마서 나온 장면에 대해 법률 상식 등을 알려주는 콘텐츠 역시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 후 ‘유튜브 보고 연락드린다’ ‘유튜브서 설명해 주신 상황이 제 상황과 유사한데 어떡하죠’라며 사건을 의뢰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전에는 의뢰인들이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이력만 갖고 ‘내 사건을 잘 해결해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접근을 못했다면 유튜브 등으로 친밀감을 먼저 쌓아 더 쉽게 상담을 진행하거나 수임을 요청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반성문
대필도

열심히 노력해 사건 수임을 하는 변호사들도 있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을 이용한 수입을 거두는 변호사도 있다. 대표적으로 반성문을 대필해 주고 돈을 받는 것이다.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은 형량을 깎아보려는 의도로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한다. 물론 반성문을 제출한다고 해서 무조건 감형이 되진 않지만 대부분 형사 사건의 피고인들은 반성문을 제출하기에 판결문에는 적시되지 않지만 부정적인 요소로 고려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이에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들은 의뢰인 상황에 맞는 반성문 작성 요령을 알려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반성문을 대필해 주는 법무법인이나 변호사들은 사건을 수임하지 않고 그저 반성문을 대필해 주고 있는 것이다.

반성문을 대필해준다는 광고를 내건 법무법인 소속의 한 저연차 변호사는 “탄원서와 반성문 각각 5만원가량을 받고 대필을 진행 중”이라며 “한 사건을 수임하게 될 경우 길면 1년의 시간이 걸리지만 반성문의 경우 상황에 맞는 반성문 포맷이 있기에 하루도 안 걸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같이 일하는 한 동료는 사건 수임은 전혀 하지 않고 반성문과 탄원서 대필만 한 달에 100부서 200부 정도 진행한다”고 말했다.

반성문이나 탄원서가 한 부에 5만~6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대필만으로 1000만원서 1200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변호사도 있는 셈이다. 

이어 “대필 의뢰인에게 질문을 하고 상황에 맞게 쓰는 거라 대필이라는 것이 티가 날 수 없다”며 “우리가 써준 반성문을 의뢰인이 다시 옮겨 적어달라는 안내만 지킨다면 5만~6만원에 과태료나 형량을 줄일 수 있다”고 자신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변호사가 반성문을 대필하거나 법적 상식으로 드라마를 리뷰하는 행위 모두 변호사 시장이 포화상태라 벌어진 일이라고 보고 있다. 너무 많아진 변호사 수로 법률 서비스 질이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률 서비스의 질 양극화는 로스쿨 양극화서부터 시작된다. 어떤 곳은 30%대 합격률로 겨우 유지하고 있다”며 “학교별로 군을 나눠 경쟁시키고 평가하는 등의 방법을 활용해 활력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앵벌이부터 반성문 대필까지...
“로스쿨 이후 법률 서비스 하락해”

성중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제법, 노동법 등 굉장히 중요한 과목들도 변호사 시험 선택과목에 들어가지 않으면 학생들이 거의 안 듣는다. 기초 법학이 죽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실무적으로 사회에 나가서 중요하게 쓰일 법적 윤리나 관련 과목들이 시험 과목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폐강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당초 도입 취지를 넘어 법학이라는 학문을 유지하려면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성 교수는 “현행 3년의 교육 기간이 짧은 감이 있다”는 지적도 했다.

이어 “예전에는 법대 4년에 사법연수원 2년을 공부하고 훈련받았는데 지금은 6년치를 3년 안에 욱여넣다 보니 교육적인 포화가 이뤄진 것 같다. 3년 공부하고 합격하면 1년 정도는 따로 연수원서 교육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법학전문대학원은 수업서 판례 하나만 갖고도 한 시간 동안 난상 토론을 하는데, 우리는 변호사시험 대비용 암기 위주의 수업만 하는 측면이 있다”고도 말했다. 

김정욱 서울변호사회 회장도 로스쿨 제도 안팎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부적으로는 입학 정원에 대한 결원보충제 연장 문제, 입학 전형의 공정성 문제, 변호사시험 5회 탈락자에 대한 구제 문제, 6개월 실무 수습의 문제 등이 있고, 외부적으로는 로스쿨 제도 도입 시 논의됐던 유사법조직역 통폐합 문제, 변호사 과다 배출 문제 등이 있다”며 “이 같은 문제들은 상호 간 연결돼있으며 국민을 위한 로스쿨 제도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박기태 변호사는 신입 변호사들이 제대로 된 사건을 수임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알아낼 수 없는 점을 근본적인 문제로 꼽았다.

“변호사 업계
근본적 문제”

그는 “의뢰인을 대하는 방법, 사무실을 운영하는 방법, 광고나 블로그, 유튜브를 사용하는 방법 등 신입 변호사가 알아야 할 것들은 산재해 있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나눠 주는 사람이 없다”며 “예전에는 사법연수원을 통해 선후배 관계가 생길 수 있었고, 현직 법조인인 교수들이 조언을 주기도 했으나 사법연수원 제도가 로스쿨 제도로 변화하면서 정보가 공유되는 범위가 좁아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믿을 만한 멘토도 없고, 변호사로서 알아야 할 정보가 부족한 채로 사건을 수임하기 급급한 신입 변호사들이 제대로 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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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