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옥시 50억 거부하는 이유

손 놓은 환경부 머리만 굴린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옥시레킷벤키저가 출연한 기부금 50억이 낮잠만 자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책임 인정이 아닌 ‘인도적 차원’의 기부금이다 보니 피해자들도 받길 거부하고 있다. 사용된 금액은 2700만원. 쌓인 이자만 8억이 넘는다. 환경부는 10년째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배·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서 돈을 받을 수 없다. 피해구제법을 재정비하는 게 급선무.” 가습기살균제 참사 한 유가족의 말이다.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가 압박을 받아 토해낸 50억원은 1%도 사용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거부도 한몫하고 있지만 사실상 환경부가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사실상 방치

옥시는 지난 2014년 3월 폐 손상을 입은 피해자들을 지원한다며 환경부 산하기관인 환경보전협회에 50억원을 기탁했다. 법적 책임과 무관하게 ‘인도적 차원’의 기부금 형태로 출연한 것으로, 제대로 된 사과를 하기 2년 전이다.

피해자들은 옥시가 책임 인정과 피해에 대한 정식 배·보상 없이 기부금으로 면피하려 한다며 수령을 거부했다. 기부금을 받으면 책임 문제를 흐리게 할 수 있고 추후 배·보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반대로 환경부는 당시 옥시, 환경부, 환경보전협회가 체결한 협약에 따라 옥시의 기부금을 활용하기 위한 별도의 운영위원회를 꾸리려 했다. 운영위는 피해자들에게 기부금을 어떻게 배분할지 결정하는 역할을 할 계획이었으나 구성 과정서 피해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설립이 무산됐다.


이후 옥시의 출연금 50억원은 어느 곳에도 활용되지 못한 채 환경보전협회 계좌에 예치돼 10년째 방치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이자만 8억4900만원이 쌓여있는 상황이다.

환경부는 방치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나 옥시의 기부금 50억원을 활용할 방도가 없다는 입장이다. 수령을 거부하는 피해자들의 생각도 달라지지 않았고 10년 전 협약을 당장 이행할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급속히 호흡곤란으로 진행되는 원인미상의 간질성 폐질환 환자들 및 가족들을 지원’한다는 게 협약서 내용인데 현재는 이에 해당하는 피해자 범위가 넓어져 협약을 이행할 실효성이 사실상 상실됐다”고 말했다.

옥시·애경, 법적 책임 여전히 나 몰라라
10년 넘게 피해자 늘어 협약 실효성 의문

‘원인미상’은 당시 가습기살균제와 피해자들의 폐질환 간 인과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삽입된 문구다. 당시 신고된 피해자 규모는 100~200명 수준이다. 그러나 환자가 늘어나면서 현재는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만 5000명이 넘는다.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환경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이 나온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 출신 한 관계자는 “협약 내용을 수정하거나 피해구제법을 손봐야 하는데 10년 동안 활용 방안을 찾지 못했다는 건 핑계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가습기살균제 살인 기업이라고 비판받는 옥시와 애경산업은 여전히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22년 4월 피해구제 조정안을 거부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가습기살균제 피해보상을 위한 조정위원회는 피해자 유족에 2억~4억원, 최중증(초고도) 피해자들에게 연령에 따라 최대 5억여원을 지급하라는 최종 조정안을 마련해 피해자 단체와 기업에 보냈다.


SK케미칼·SK이노베이션·LG생활건강·이마트·홈플러스 등 9개 기업이 이를 위해 마련해야 하는 재원은 최대 9240억원 수준으로, 가습기살균제 판매율이 가장 높은 옥시는 절반 이상을, 애경도 수백억원을 부담할 것으로 추정됐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옥시가 폐 손상 1·2단계에 대해 배상해 왔다고 주장하지만 그동안 배상한 피해자는 405명에 불과하다”며 “3000명 넘는 피해자가 옥시 제품을 사용했는데 나머지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수는 7000여명으로 수가 매우 많고, 피해자 단체도 30곳에 달한다. 2011년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 10년 이상 진상규명과 피해구제가 미뤄지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피해자마다 처한 상황이 다양해 조정안에 대한 입장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조정안에 피해자 단체들도 절반은 반대했다고 한다.

피해 지원 안건도 거부 “돈 많이 든다”
정부 공식 인정 사망자만 약 1900명

하지만 피해자들이 모두 수용했더라도, 돈을 내야 하는 기업이 반대할 경우 애초 조정안은 성립될 수 없었다.

무산된 조정안은 가장 높은 피해등급인 ‘초고도’ 피해자의 경우 최소 8392만(84세 이상)~최대 5억3522만원(1세)을 받고, 사망자 유족들은 최소 2억(60세 이상)~4억원(0~19세)을 받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피해자들은 조정안에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미래 치료권’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관련 내용은 담기지 못했다.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가습기살균제 사망자는 1900여명에 육박한다.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환경단체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유족 등은 지난 7월 서울 여의도 옥시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1년부터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겪어온 임성호씨가 향년 58세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지난 5월31일 기준 정부에 신고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총 7948명으로, 임씨의 사망 전까지 피해자 중 사망자는 1859명이었다.

임씨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옥시싹싹 가습기살균제와 롯데마트의 PB상품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그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던 때는 자녀 중 첫째가 3살이고, 둘째와 셋째가 태어난 시기다. 임씨의 자녀 셋은 모두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겪고 있다.

2020년쯤 임씨는 백혈병 진단을 받았는데 병원 측은 폐이식 이후 복용해 온 약물 부작용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올해 초 상태가 악화된 임씨는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고 6개월간 투병했지만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자녀 중 2006년생인 첫째는 폐손상 가능성이 크다는 판정을 받았고, 둘째와 셋째는 천식 피해자로서 피해구제법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임씨가 사망한 날 대법원은 원고 측 피해자와 피고 측 국가가 각각 제기한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이로써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서 국가가 원고 5명 중 3명에게 300만∼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한 2심 판결이 확정됐다.

모르쇠 일관


이는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공론화된 뒤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이 확정판결은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과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라는 살균성분이 포함된 ‘세퓨’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다가 아이가 사망하고, 상해를 입은 두 가족이 가해 기업과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 대한 것이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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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