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사형수 대부’ 삼중 스님

재소자에 평생을 바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재소자 포교와 사회 적응을 지원해 온 삼중 스님이 지난 20일 세수 82세 법랍 66년으로 원적에 들었다. 60여년간 재소자와 함께하며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 삼중 스님은 무기수, 사형수 등의 교화 활동에 힘썼다. 사형 집행 현장을 마지막까지 지키며 ‘사형수의 대부’로도 불렸던 삼중 스님은 재소자 포교에 진력했다.

60년 가까이 사형수들의 교화에 힘써 온 ‘사형수의 대부’ 삼중 스님이 지난 20일 오후, 경주의 한 병원서 만성신부전증으로 투병하다 입적했다. 세수 82세, 법랍 66년. 삼중 스님은 심부전증으로 인해 이틀에 한번 혈액투석을 하면서도 재소자들을 위한 전법·교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투병 생활
교화 활동

지난 1942년 서울 서대문형무소 뒤편 단칸방서 태어난 그는 6·25 전쟁이 일어나자, 홀어머니 밑에서 피란 생활을 했다.

이후 1958년 경남 합천 해인사를 찾아 주지 청담 스님에게 “왜 중이 되려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세상서 가장 착한 사람이 되고 싶고, 죽음이 없는 영원한 인생을 찾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여기서 경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화엄사, 용연사, 자비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스님은 특히 소외된 이들의 생활 현장서 함께하는 동사섭 수행을 실천했으며 무기수, 사형수 등의 교화 활동에 힘썼다. 생전 인연을 맺은 사형수만 수백명에 이른다. 

삼중 스님은 지난 1967년부터 대구교도소를 시작으로 재소자 교화 활동을 펼쳤다. 당시 교도소는 목사와 신부들이 선교해 왔으나 스님은 전무했던 시절이었다. 대구교도소서 법사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스님은 곧바로 달려가 법사 직을 수락하고 교화 활동을 진행했다. 

재소자들과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점점 진지해지는 표정을 보고 ‘이제 이들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스님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사형수로 이어졌다. 거물 간첩을 시작으로 사형수들에게 법문을 전하는 일을 했고, 모두 500여명의 사형수와 만났다. 

세속에서는 죄를 지어 사형이라는 중형을 받았지만, 스님의 눈에는 모두 부처로 보였다. 그는 사형수를 상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사형 집행 현장을 지켜보기도 해 ‘사형수의 대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삼중 스님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며 형벌 체계의 불평등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22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사형이라는 제도 자체를 없애도록 국회서 법을 고쳐야 한다”면서 대신 종신형을 법정 최고형으로 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중 스님은 한국이 25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지만 “법무부 장관이 명령하면 집행이 재개될 수 있다”며 “제도적으로 사형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형수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고 이들이 능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기 힘들기 때문에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힘 있는 사람들은 대단한 변호사를 선임하니 그런 허망한 일을 안 당한다”고 지적했다. 

투석 중에도 교화 활동
맺어진 인연만 수백명

사형 집행 현장을 여러 번 지켜본 삼중 스님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돈이나 권력으로 잘 마무리해서 교도소에 가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힘이 없어서 작은 실수를 하고도 엄청난 형벌을 받는 사람이 지금도 있다”며 한국 사회의 형벌 체계가 강자에게 관대하고 약자에게 가혹하다는 인식을 강조했다. 

서진 룸살롱 살인 사건의 주범 중 한 명인 서울목포파 고금석이 삼중 스님을 만나 참회한 대표적 사형수였다.

고금석은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을 참회하며 수감 생활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형 집행 전까지의 짧은 생을 나눔에 썼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의 아이들을 위해 영치금을 써달라고 보내주는가 하면, 형 집행 후에는 신체 일부를 기증하기도 했다. 

서진 룸사롱 살인 사건은 지난 1986년 서울 강남 조직폭력배 간 다툼으로 8명이 잔인하게 살해되거나 중상을 입은 사건이다. 고금석은 유도 대학 출신으로 친한 선배들을 쫓아다니다 엉겁결에 싸움에 휘말려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험상궂은 외모나 잔인한 범행 수법과 달리 감옥에서는 3년간 매일 삼천배와 참선 등을 하며 교도소 내에서는 ‘선사’ ‘스님’ 등으로 불렸다. 또 자신의 영치금을 털어 산골 어린이를 돕는 선행도 베풀었다. 이런 고금석을 삼중 스님은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삼중 스님의 손에는 지금도 그가 만들어준 염주가 끼워져 있다. 지금은 오랜 시간이 지나 글씨가 닳아서 잘 안 보이지만 염주에는 고금석이 평소 좋아하던 경구들이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삼중 스님은 고금석이 사형수로서는 기록에 남을 만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독실한 불자로 어려운 재소자를 도와가며 자신의 죄를 참회했다는 것이다.

삼중 스님은 “지금까지도 여생을 이렇게 보낸 사형수는 본 적이 없다”며 “자신의 죄를 받아들였고, 사소해도 타인을 위한 일이라면 스스로 나서고 나누고 싶어 했다”고 회고했다. 

삼중 스님은 한국인 차별에 항거해 야쿠자를 사살하고 일본 교도소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던 재일동포 김희로의 석방 운동을 펼쳐, 석방과 귀국에 기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980년대부터 일본 교도소서 교화 활동을 시작했다. 이 과정서 한국인 차별에 격분해 일본인 야쿠자를 살해한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재일교포 김희로를 만나 사정을 듣고 그의 구명운동을 펼쳤다. 

사형제 폐지
재소자 구제

삼중 스님의 10년간의 구명운동으로 김희로는 지난 1999년 석방돼 국내로 돌아왔다. 또 일본서 교화 활동을 하는 스님들과 교류하며 200여차례 일본을 오가며 한일 관계의 가교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김희로 사건은 지난 1968년 2월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의 클럽 밍크스서 터졌다. 야쿠자는 빌려 쓴 돈을 갚으라며 협박한 뒤 김희로에게 “조센징, 더러운 돼지새끼”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어린 시절부터 일본서 살아오면서 온갖 차별과 모멸을 받아온 그는 이 한마디에 큰 분노를 느꼈다. 김희로는 갖고 있던 엽총으로 시즈오카현 야쿠자 두목과 그 부하를 사살했다. 

살해 후 그는 현장서 45km 떨어진 시즈오카현 스마타쿄의 후지노미 온천여관으로 달아나 여관 주인과 투숙객 13명을 인질로 잡고 장장 88시간의 인질극을 벌였다. 김희로는 이를 재일교포의 차별 문제를 부각하는 기회로 최대한 활용 했다. 당시 사건은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그의 인질극과 주장이 TV와 신문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됐으며 쉬쉬하던 재일교포의 인권과 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본격적으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그의 투쟁은 사건 나흘째에 기자로 위장한 수사관에 의해 전격 체포되면서 막을 내렸다. 체포 당시 김희로는 혀를 깨물어 자결을 시도했지만, 실패해 구마모토 형무소서 24년을 복역했다. 

삼중 스님이 교화를 위해 일본을 드나들던 중 그의 절절한 사연을 듣고 발벗고 석방 운동에 나섰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김희로의 석방 운동을 시작했다. 

1990년 10만명 서명을 시작으로 김희로의 가석방을 위한 서명운동 결과를 모아 세 차례 일본 규슈 갱생보호위원회와 일본 법무성에 보냈다. 수만명의 서명이 담긴 석방 청원서는 효력이 있었다. 

김희로의 석방을 구체화한 것은 1998년부터였다. 삼중 스님은 일본 법무성이 요구하는 신원인수보증서를 구마모토 형무소에 제출한 데 이어 김희로로부터 고국행 의사를 구두로 받아냈다. 이 같은 김희로의 귀국 의사는 이후 석방 절차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후 김희로는 1999년 6월7일과 7월16일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에 출옥 후 한국으로 가되 일본을 비방하지 않으며 오로지 삼중 스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제출했고, 이를 검토한 일본 정부가 석방을 최종 결정함으로써 그의 ‘31년 전쟁’이 일단락됐다. 

삼중 스님은 1980년대 초 대구 시립희망원서 장애인과 부랑자들을 돌보던 최소피아 수녀에게도 부처님오신날 거리서 모금한 성금 40만원을 전달하는 등 종교의 벽을 넘는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종교에 몸담았지만 끊어질 듯 말 듯했던 두 사람의 인연은 40년 가까이 이어졌다. 

삼중 스님이 최소피아 수녀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0년대 초다. 그는 시립희망원서 일하는 최소피아 수녀의 이야기를 접하고서 그해 부처님오신날 거리서 모금한 성금 40만원을 전달했다.

불심으로 모은 돈을 왜 다른 종교에 보내느냐는 말도 나왔지만 좋은 일에 보태는 것을 가리지 말자는 삼중 스님 의견에 뒷말은 없었다. 

그렇게 둘의 인연은 시작됐다. 스님은 최소피아 수녀를 만나러 희망원을 종종 찾았는데 누군가 피부를 잡아 뜯어놓은 듯 그의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인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억울한 사연
도움의 손길

당시 희망원 시설에는 지체·정신 장애를 함께 지닌 중복 장애인들이 많았다. 주사 하나 놓기 쉽지 않은 상황서 얼굴이 긁히고 잡히는 일이 많아지며 상처가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삼중 스님은 “얼굴에 그렇게 상처를 입고서도 또다시 주사를 놓으러 방으로 향하는 수녀님을 보니 내가 정말 정신적으로 깊이 반했다”고 떠올렸다. 

삼중 스님은 교도소 재소자 교화 일을 하며 언론을 통해 얼굴이 많이 알려졌지만 최소피아 수녀는 희망원 봉사를 하는 동안에도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았다.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다. 

한번은 삼중 스님이 언론사 기자를 불교청년회 회원으로 속이고 최소피아 수녀를 취재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가 기사가 크게 퍼지는 바람에 둘 사이가 급격히 틀어져 버렸다. 선의로 도와주려 했던 일이 큰 오해를 받게 된 것이다.

최소피아 수녀는 자신이 한 일은 하나님에게 보고하는 것이지,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는 것은 아니라며 스님을 나무랐다고 한다.

당시 삼중 스님은 “수녀님이 화를 많이 냈다”며 “최소피아 수녀도 이런 일이 있고 나서 10년가량 나와 거리를 뒀다”고 말했다. 

연락해도 외면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삼중 스님이 시설 설립에 어려움을 겪던 최소피아 수녀에 적십자사를 통해 도움을 받도록 연결해 주면서 마음을 되돌릴 수 있었다고 한다. 

삼중 스님은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 운동과 유묵을 찾는 데도 헌신했다. 아쉽게도 수십차례 중국을 방문했으나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본서 안중근 의사의 유묵 ‘경천’을 찾아내 이를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전했으며, 현재는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어려운 사람 그냥 못 지나쳐”
서진 룸살롱 고금석 참회 도움

삼중 스님은 살아생전 두 개의 염주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구명운동으로 풀려난 최씨가 과거 사형수 시절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염원을 담은 염주고, 다른 하나는 앞서 언급한 고금석이 생전에 금강경 법문을 새긴 것이다. 두 사형수의 삶과 죽음이 스며 있다. 

삼중 스님과 최씨의 인연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씨는 3인조 은행 강도살인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서울구치소에 복역 중이었다. 이미 대법원서 사형이 확정된 상황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형수 법문을 해온 삼중 스님은 그를 만났다. 최씨의 손에는 굵은 알의 염주가 들려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바람이 새겨져 있었다.

삼중 스님은 사형수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는 게 의아해 물어봤다고 한다. 최씨가 의연한 어조로 “스님, 저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고 답하자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모르게 두 명의 공범을 면회했다. 무기수였던 한 명의 공범은 이미 숨진 뒤였다. 나머지 한 명은 강도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했다. 

이 공범은 본인의 처지보다는 오히려 가족이 있는 최씨를 걱정했다고 한다. 이후 삼중 스님은 최씨를 믿고 구명운동을 시작했다. 변호사회 등의 도움으로 사건이 조작됐다는 의구심이 커졌다. 범행 현장은 숨진 피해자가 흘린 피투성이였지만, 최씨 의류에서는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다.

옷을 태우거나 버린 정황도 찾지 못했다. 

사건 당일 최씨는 얼굴 상처로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범행 현장 답사를 온 것으로 의심되는 또 다른 3인조 중 붕대를 감은 이를 봤다는 직원은 없었다. 숨진 피해자의 상처도 설명하지 못했다. 

결국 최씨는 경찰의 고문에 허위 자백을 했음이 드러났다. 각계의 노력으로 최씨는 사형수서 무기수로 감형됐고, 결국 19년 만에 특사로 풀려나기에 이른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최씨는 복역생활에도 서예 등을 익혀 교정작품전에 출전, 입상하기도 했다. 최씨는 석방 후 자신을 고문한 형사를 찾아가 용서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삼중 스님을 40년 가까이 스승으로 모시고 근래에는 주 3회 투석 치료 때 병원에 동행하기도 한 재가자는 “어려운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스님이셨다”며 “억울한 사형수도 여러 명 살리셨다”고 삼중 스님의 활동을 회고했다. 그러면서 “너무 존경했고 이런 분을 만난 것이 나에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가르침 전파
약자 대변인

삼중 스님은 <길> <가난이 죄는 아닐진대 나에게 죄가 되어 죽습니다> <사형수 어머니들의 통곡> <그대 텅빈 마음 무엇을 채우랴> <사형수들이 보내온 편지> <사형수의 눈물을 따라 어머니의 사랑을 따라> 등 여러 책을 남기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세상에 전했다. 약자를 보살피는 여러 활동 등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종정표창, 대한적십자사 박애상 금상, 대통령 표창, 국민훈장 목련장 등을 수상했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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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 없는’ 민주-혁신 복잡한 셈법

‘양보 없는’ 민주-혁신 복잡한 셈법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고심 끝에 평택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선거 전면에 등장하면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또다시 경쟁 상대가 됐다. 그동안 두 당은 꾸준히 아군에서 적군으로, 적군에서 또다시 아군으로 돌아서길 반복했다. 이번에는 양보 없는 진검승부라는 점에서 정치권의 이목이 쏠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간의 신경전이 예상된다. 지난 2월 합당 논의로 훈풍이 부나 싶더니 불과 두 달 만에 등을 돌렸다. 혁신당 조국 대표가 평택을에 출마를 선언하면서 지방선거 판도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평이 나온다. 그럼에도 살아남다 민주당과의 합당이 무산된 이후 혁신당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상처만 남은 합당 추진”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양쪽 진영의 파열음만 계속됐다. 합당 무산 이후 지난 3월, 양 당은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지금까지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민주당은 “지금 전면적인 선거 연대를 위한 위원회로 규정하지는 않는다”며 지방선거 지역구 배분과 같은 구체적인 선거 협상 가능성에는 사실상 선을 그었다. 다시 독자 노선을 걷게 된 혁신당은 자강론에 힘을 실었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자릿수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합당 논의가 오가던 중 혁신당의 실무는 ‘올스톱’이었다. 논의 시기는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었던 만큼 혁신당은 남들보다 반 발 늦게 선거 대열에 합류했다. 고심 끝에 조 대표 ‘국민의힘 제로(0)’와 ‘부패 제로(0)’ 실현을 앞세워 평택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평택을은 지난 1월 민주당 이병진 전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및 부동산 실명법 위반 혐의로 당선무효형인 벌금 700만을 받아 재보궐이 확정된 곳이다. 조 대표는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히며 “혁신당의 13번째 국회의원이 돼 집권 민주당 소속 의원보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내란 완전 종식, 진짜 개혁 완수’라는 시대적 과제를 책임지고 실천하겠다”며 “개혁의 강도가 약해지는 것을 막고 내란 이후 대한민국을 위한 입법과 정책으로 국민주권정부의 성공을 더 강력히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조 대표의 출마지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저마다 추측에 나섰다. 그중에서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과 경기 평택을·안산갑, 부산 북구갑·해운대갑 등이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됐다. 그때마다 조 대표는 출마지를 묻는 질문에 “제가 가야 국민의힘이 당선될 수 없는 곳” “험지인 곳” 등 조건만 나열할 뿐 확답을 내놓지 않았다. ‘벼랑 끝 조국’ 스스로 올라간 시험대 사실상 마지막 기회...평택을 출사표 기자회견에서 조 대표는 평택을을 출마지로 택한 배경에 대해 “일찍부터 이번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선의 최상위 목표는 극우 내란 정치세력을 심판하고 국민의힘을 제로로 만드는 것임을 반복해 밝혀왔다”고 밝혔다. 이어 “동시에 국회의원 재선거가 이뤄지는 곳에는 귀책 사유가 있는 정당이 무공천을 해야 한다는 원칙 역시 일관되게 강조해 왔다”며 “평택을 출마는 정치인이 된 후 줄기차게 역설해 온 이 같은 저의 비전과 가치, 그리고 원칙과 소신에 따라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자신이 평택에 연고가 없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그럼에도 평택을 도약시킬 비전과 정책, 실행할 능력만큼은 누구보다 앞선다고 감히 자부한다”며 “중앙정치에서 평택의 목소리를 키우겠다. 평택의 현안이 곧 국가적 과제가 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평택 시민들께서 조국을 선택해주시면 반드시 큰 정치로 보답하겠다. 반드시 평택 시민들이 자랑스러워할 큰 정치인이 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조 대표의 출마 선언 이후 평택을은 단숨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이곳은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와 자유와혁신 황교안 대표가 출사표를 던진 곳이다. 국민의힘에서는 유의동 의원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아직 후보를 내지 않았지만 민주당이 대열에 합류하면 최대 5파전으로 치러지게 된다. 일찌감치 이곳에서 터를 닦았던 김재연 상임대표는 곧바로 반발에 나섰다. 김 상임대표는 “오랜 고심 끝에 내놓은 답이 고작 제가 당의 명운을 걸고 뛰고 있는 이곳 평택인가”라며 “대의도 명분도 없는 평택 출마를 철회하라”고 목소리 높였다. “며칠 전부터 언론인들이 사실 여부를 물어올 때마다, 저는 ‘절대로 그럴 일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는 그는 “조국이라는 정치인의 상식과 양당이 맺어온 신의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제까지도 저는 조국 대표의 ‘동지애’를 의심하지 않으려 했다”며 “정치는 원래 이토록 비정하게 신의를 밟고 올라서는 아수라장이어야 하나?”라고 지적했다. 찢어지는 여당 표? 평택이 ‘험지 출마’라는 조 대표의 주장에 대해서도 “지금 평택을이 험지가 맞느냐”라며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민주·진보 단일후보가 범보수 후보를 52.5% 대 29.4%로 압도하는 곳”이라고 꼬집었다. 진보당을 비롯해 여권 내에서도 평택이 과연 험지가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를 의식한 듯 조 대표는 “평택을은 19·20·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내리 승리한 곳으로 민주개혁 진영에게 험지 중 험지”라며 출마 명분 굳히기에 나섰다. 조 대표는 기자회견 당시 “평택에는 친윤(친 윤석열) 부정선거 음모론자이자 내란 피의자인 황교안씨가 깃발을 들었다. 그는 평택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 앞에서 전한길씨가 주도한 극우 집회까지 참여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민주당 같은 경우 후보난을 겪고 있다면 국민의힘은 후보가 각축하고 있다”며 “(평택을이) 국민의힘에는 평지고, 민주당 또는 다른 범민주 진보 진영엔 험지라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한 혁신당 관계자 역시 “(조 대표는) 평택, 안산, 군산 세 지역을 놓고 상당히 오랫동안 고심을 거듭했다”며 “귀책 사유로 보궐선거를 치르는 지역인 동시에 국민의힘이 당선될 가능성이 있고, 또 혁신당에게 험지가 아닌 지역을 추리다 보니 평택을이 최종 선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대표가 선거 대열에 합류하면서 여당인 민주당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조 대표는 또 평택을 재보선의 귀책 사유가 민주당에 있으므로 ‘무공천 원칙’이 지켜져야 할 곳이라고 강조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여가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조 대표의 출마가 합당 무산에 대한 일종의 ‘위약금’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합당 무산으로 혁신당 의원들은 물론 당직자, 지지자들 까지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라며 “그 이후에 선거 연대 이야기가 나왔지만 물밑 접촉도 미지근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상 민주당 반대에 부딪혀 합당이 무산된 그림이지 않았나. 조 대표 입장에서는 평택을 출마를 굽힐 이유가 없다”며 “따라서 혁신당은 민주당에게 당당히 무공천 원칙을 요구할 명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커지는 마음의 빚 민주당도 ‘전 지역 공천’ 기조를 굽히지 않고 있다. 조 대표가 평택을 출마를 선언한 다음날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말했다시피 재보선은 전략공천이 원칙이고 전 지역에서 공천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 황명선 최고위원은 역시 “조 대표가 출마 선언을 하며 민주당에 무공천을 요구했다”며 “돌아보면 조 대표가 22대 비례의원으로 (당선)됐다가 사임하고 그래서 비례를 다른 분이 승계했고 이번에 평택에서 출마하게 됐으니 어떻게 보면 굉장히 큰 귀책 사유 아니겠나”라고 직접 겨냥했다. 이 같은 발언은 2024년 12월 조 대표가 대법원에서 자녀 입시 비리 등 혐의로 실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가 지난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광복절에 특별사면된 것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평택을을 둘러싼 신경전이 길어질수록 민주 진영의 분열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이 조 대표의 대항마로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내보낼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면서 평택을이 ‘사법 리스크 공방’으로 번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문제는 ‘김용 평택을 카드’는 민주당에게도 갈등의 뇌관이다. 김 전 부원장에게 공천을 주지 않으면 민주당 내 친명(친 이재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다. 관련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 전 부원장은 안산 출마를 희망했지만 결국 당 지도부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며 “출마지를 놓고 마지막까지 고심을 거듭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조 대표의 출마는 울산시장 선거까지 영향을 미쳤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진보당 선거 연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울산시장 후보는 민주당, 평택을 후보는 진보당으로 단일화한다는 관측이 우세했는데 조 대표가 선거 대열에 합류하면서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게다가 혁신당 황명필 의원이 울산시장에 출마를 선언한 만큼 이곳에서도 교통정리가 시급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진보당 김종훈 울산시장 후보는 민주당을 향해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촉구했다. 김 후보는 “저와 진보당이 이번 지방선거에 임하는 가장 큰 목표는 내란 청산”이라며 “전국의 모든 민주, 진보, 개혁 후보님들께 이 자리를 빌려 말한다. 내란 청산을 위해, 국민을 위해 모두가 힘을 합치자”고 제안했다. 울산까지 부는 출마 후폭풍 골머리 앓는 범여권 지도부 회견에 배석한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 역시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실질적으로 민주·진보 개혁 세력이 하나로 모여 총선 189석의 성과를 만들고 대선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며 “이번 지방선거도 똑같은 방식으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울산 선거 연대가 헝클어질 조짐이 보이자 민주당 김상욱 의원도 ‘후보자 주도 단일화’를 공개 요청했다. 김 의원은 김종훈 후보의 단일화 제안에 “두 팔 벌려 환영한다”며 혁신당 황명필 울산시장 후보를 향해 단일화 동참을 촉구했다. 김 의원은 “전국 최대 제조업 도시 울산에서, 노동자의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지키며 미래산업으로의 전환을 이끄는 일은 어느 한 당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며 “민주당과 진보당, 혁신당이 함께할 때, 울산은 그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 후보는 “3인이 선의의 경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출마 선언 당시 “제가 (민주·진보)진영의 후보 중 가장 큰 교집합을 담고 있고, 따라서 가장 강력한 합집합을 만들 수 있다”며 “더 나은 정책을 공유하고, 울산의 밝은 미래를 설계하는 단일화를 통해 본선에서 승리하겠다”고 밝혔다. 한 혁신당 관계자는 ’조 대표의 평택을 출마가 민주당-진보당 선거 연대 계획을 꼬이게 했다‘는 지적에 대해 “유권자 입장에서 봤을 때 이미 짜놓은 판에 후보들끼리 연대하는 것이 오히려 정치 야합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유권자들은 힘 있는 후보를 원한다. 그런 점에서 어디서든 진보당과 아름다운 경쟁을 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평택을 선거의 핵심은 단일화다. 또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조 대표와 체급이 맞는 후보를 내보내야 (단일화) 논의를 테이블에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 상황을 봐서는 조 대표의 완주 의지가 뚜렷해 보인다. 당 대표가 낙선하면 체면도 구겨지고 더 나아가 당이 존폐 위기까지 놓인다. 단일화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사활을 거는 조 대표를 설득할 만한 주자를 내세워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붙느냐 마느냐 이어 “민주당과 혁신당 간의 합당 논의가 없었으면 두 당이 조금 더 편하게 단일화를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정 대표가 조금만 양보를 해주는 제스처를 보여도 민주당 지지자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서니, 양쪽 모두 입장이 곤란하긴 마찬가지”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일각에서는) ‘합당 논의를 성급하게 띄운 것도, 지지자를 설득하지 못해 (논의를) 깬 것도 정 대표’라는 불만이 있었다”며 “결국 조 대표만 독박을 썼다. 민주당이 평택을에 조 대표보다 체급이 약한 후보를 내보내 자연스럽게 교통정리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부산 피해 간 조국, 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자신의 고향이 부산 북갑 선거에 출마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조국 대 한동훈’ 구도를 피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또는 제게 직접 연락해 ‘부산은 선택 안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밝혔다. 그는 “부산시장에서 박형준을 척결하고 쫓아내려면 (부산 북갑 선거에) 안 나가는 게 맞는다고 판단했다”며 “(민주당에서) 부산은 박형준 시장으로부터 뺏어와야 하는 지역구다. ‘박형준 대 전재수’ 구도가 중심이 돼야 하는데 제가 나가면 ‘조국 대 한동훈’으로 구도가 바뀌면서 부산시장 선거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를 얘기하더라”고 전했다. 조 대표는 민주당의 주장에 공감했다. 그는 “박형준을 정말 그만 보고 싶은 부산 출신 사람으로서 그 말이 이해되더라”며 하정우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을 거론하며 “나가면 충분히 이기실 수 있을 것 같다"고 언급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