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사형수 대부’ 삼중 스님

재소자에 평생을 바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재소자 포교와 사회 적응을 지원해 온 삼중 스님이 지난 20일 세수 82세 법랍 66년으로 원적에 들었다. 60여년간 재소자와 함께하며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 삼중 스님은 무기수, 사형수 등의 교화 활동에 힘썼다. 사형 집행 현장을 마지막까지 지키며 ‘사형수의 대부’로도 불렸던 삼중 스님은 재소자 포교에 진력했다.

60년 가까이 사형수들의 교화에 힘써 온 ‘사형수의 대부’ 삼중 스님이 지난 20일 오후, 경주의 한 병원서 만성신부전증으로 투병하다 입적했다. 세수 82세, 법랍 66년. 삼중 스님은 심부전증으로 인해 이틀에 한번 혈액투석을 하면서도 재소자들을 위한 전법·교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투병 생활
교화 활동

지난 1942년 서울 서대문형무소 뒤편 단칸방서 태어난 그는 6·25 전쟁이 일어나자, 홀어머니 밑에서 피란 생활을 했다.

이후 1958년 경남 합천 해인사를 찾아 주지 청담 스님에게 “왜 중이 되려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세상서 가장 착한 사람이 되고 싶고, 죽음이 없는 영원한 인생을 찾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여기서 경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화엄사, 용연사, 자비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스님은 특히 소외된 이들의 생활 현장서 함께하는 동사섭 수행을 실천했으며 무기수, 사형수 등의 교화 활동에 힘썼다. 생전 인연을 맺은 사형수만 수백명에 이른다. 

삼중 스님은 지난 1967년부터 대구교도소를 시작으로 재소자 교화 활동을 펼쳤다. 당시 교도소는 목사와 신부들이 선교해 왔으나 스님은 전무했던 시절이었다. 대구교도소서 법사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스님은 곧바로 달려가 법사 직을 수락하고 교화 활동을 진행했다. 

재소자들과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점점 진지해지는 표정을 보고 ‘이제 이들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스님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사형수로 이어졌다. 거물 간첩을 시작으로 사형수들에게 법문을 전하는 일을 했고, 모두 500여명의 사형수와 만났다. 

세속에서는 죄를 지어 사형이라는 중형을 받았지만, 스님의 눈에는 모두 부처로 보였다. 그는 사형수를 상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사형 집행 현장을 지켜보기도 해 ‘사형수의 대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삼중 스님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며 형벌 체계의 불평등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22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사형이라는 제도 자체를 없애도록 국회서 법을 고쳐야 한다”면서 대신 종신형을 법정 최고형으로 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중 스님은 한국이 25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지만 “법무부 장관이 명령하면 집행이 재개될 수 있다”며 “제도적으로 사형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형수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고 이들이 능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기 힘들기 때문에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힘 있는 사람들은 대단한 변호사를 선임하니 그런 허망한 일을 안 당한다”고 지적했다. 

투석 중에도 교화 활동
맺어진 인연만 수백명

사형 집행 현장을 여러 번 지켜본 삼중 스님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돈이나 권력으로 잘 마무리해서 교도소에 가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힘이 없어서 작은 실수를 하고도 엄청난 형벌을 받는 사람이 지금도 있다”며 한국 사회의 형벌 체계가 강자에게 관대하고 약자에게 가혹하다는 인식을 강조했다. 

서진 룸살롱 살인 사건의 주범 중 한 명인 서울목포파 고금석이 삼중 스님을 만나 참회한 대표적 사형수였다.

고금석은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을 참회하며 수감 생활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형 집행 전까지의 짧은 생을 나눔에 썼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의 아이들을 위해 영치금을 써달라고 보내주는가 하면, 형 집행 후에는 신체 일부를 기증하기도 했다. 

서진 룸사롱 살인 사건은 지난 1986년 서울 강남 조직폭력배 간 다툼으로 8명이 잔인하게 살해되거나 중상을 입은 사건이다. 고금석은 유도 대학 출신으로 친한 선배들을 쫓아다니다 엉겁결에 싸움에 휘말려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험상궂은 외모나 잔인한 범행 수법과 달리 감옥에서는 3년간 매일 삼천배와 참선 등을 하며 교도소 내에서는 ‘선사’ ‘스님’ 등으로 불렸다. 또 자신의 영치금을 털어 산골 어린이를 돕는 선행도 베풀었다. 이런 고금석을 삼중 스님은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삼중 스님의 손에는 지금도 그가 만들어준 염주가 끼워져 있다. 지금은 오랜 시간이 지나 글씨가 닳아서 잘 안 보이지만 염주에는 고금석이 평소 좋아하던 경구들이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삼중 스님은 고금석이 사형수로서는 기록에 남을 만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독실한 불자로 어려운 재소자를 도와가며 자신의 죄를 참회했다는 것이다.

삼중 스님은 “지금까지도 여생을 이렇게 보낸 사형수는 본 적이 없다”며 “자신의 죄를 받아들였고, 사소해도 타인을 위한 일이라면 스스로 나서고 나누고 싶어 했다”고 회고했다. 

삼중 스님은 한국인 차별에 항거해 야쿠자를 사살하고 일본 교도소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던 재일동포 김희로의 석방 운동을 펼쳐, 석방과 귀국에 기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980년대부터 일본 교도소서 교화 활동을 시작했다. 이 과정서 한국인 차별에 격분해 일본인 야쿠자를 살해한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재일교포 김희로를 만나 사정을 듣고 그의 구명운동을 펼쳤다. 

사형제 폐지
재소자 구제

삼중 스님의 10년간의 구명운동으로 김희로는 지난 1999년 석방돼 국내로 돌아왔다. 또 일본서 교화 활동을 하는 스님들과 교류하며 200여차례 일본을 오가며 한일 관계의 가교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김희로 사건은 지난 1968년 2월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의 클럽 밍크스서 터졌다. 야쿠자는 빌려 쓴 돈을 갚으라며 협박한 뒤 김희로에게 “조센징, 더러운 돼지새끼”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어린 시절부터 일본서 살아오면서 온갖 차별과 모멸을 받아온 그는 이 한마디에 큰 분노를 느꼈다. 김희로는 갖고 있던 엽총으로 시즈오카현 야쿠자 두목과 그 부하를 사살했다. 

살해 후 그는 현장서 45km 떨어진 시즈오카현 스마타쿄의 후지노미 온천여관으로 달아나 여관 주인과 투숙객 13명을 인질로 잡고 장장 88시간의 인질극을 벌였다. 김희로는 이를 재일교포의 차별 문제를 부각하는 기회로 최대한 활용 했다. 당시 사건은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그의 인질극과 주장이 TV와 신문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됐으며 쉬쉬하던 재일교포의 인권과 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본격적으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그의 투쟁은 사건 나흘째에 기자로 위장한 수사관에 의해 전격 체포되면서 막을 내렸다. 체포 당시 김희로는 혀를 깨물어 자결을 시도했지만, 실패해 구마모토 형무소서 24년을 복역했다. 

삼중 스님이 교화를 위해 일본을 드나들던 중 그의 절절한 사연을 듣고 발벗고 석방 운동에 나섰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김희로의 석방 운동을 시작했다. 

1990년 10만명 서명을 시작으로 김희로의 가석방을 위한 서명운동 결과를 모아 세 차례 일본 규슈 갱생보호위원회와 일본 법무성에 보냈다. 수만명의 서명이 담긴 석방 청원서는 효력이 있었다. 

김희로의 석방을 구체화한 것은 1998년부터였다. 삼중 스님은 일본 법무성이 요구하는 신원인수보증서를 구마모토 형무소에 제출한 데 이어 김희로로부터 고국행 의사를 구두로 받아냈다. 이 같은 김희로의 귀국 의사는 이후 석방 절차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후 김희로는 1999년 6월7일과 7월16일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에 출옥 후 한국으로 가되 일본을 비방하지 않으며 오로지 삼중 스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제출했고, 이를 검토한 일본 정부가 석방을 최종 결정함으로써 그의 ‘31년 전쟁’이 일단락됐다. 

삼중 스님은 1980년대 초 대구 시립희망원서 장애인과 부랑자들을 돌보던 최소피아 수녀에게도 부처님오신날 거리서 모금한 성금 40만원을 전달하는 등 종교의 벽을 넘는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종교에 몸담았지만 끊어질 듯 말 듯했던 두 사람의 인연은 40년 가까이 이어졌다. 

삼중 스님이 최소피아 수녀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0년대 초다. 그는 시립희망원서 일하는 최소피아 수녀의 이야기를 접하고서 그해 부처님오신날 거리서 모금한 성금 40만원을 전달했다.

불심으로 모은 돈을 왜 다른 종교에 보내느냐는 말도 나왔지만 좋은 일에 보태는 것을 가리지 말자는 삼중 스님 의견에 뒷말은 없었다. 

그렇게 둘의 인연은 시작됐다. 스님은 최소피아 수녀를 만나러 희망원을 종종 찾았는데 누군가 피부를 잡아 뜯어놓은 듯 그의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인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억울한 사연
도움의 손길

당시 희망원 시설에는 지체·정신 장애를 함께 지닌 중복 장애인들이 많았다. 주사 하나 놓기 쉽지 않은 상황서 얼굴이 긁히고 잡히는 일이 많아지며 상처가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삼중 스님은 “얼굴에 그렇게 상처를 입고서도 또다시 주사를 놓으러 방으로 향하는 수녀님을 보니 내가 정말 정신적으로 깊이 반했다”고 떠올렸다. 

삼중 스님은 교도소 재소자 교화 일을 하며 언론을 통해 얼굴이 많이 알려졌지만 최소피아 수녀는 희망원 봉사를 하는 동안에도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았다.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다. 

한번은 삼중 스님이 언론사 기자를 불교청년회 회원으로 속이고 최소피아 수녀를 취재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가 기사가 크게 퍼지는 바람에 둘 사이가 급격히 틀어져 버렸다. 선의로 도와주려 했던 일이 큰 오해를 받게 된 것이다.

최소피아 수녀는 자신이 한 일은 하나님에게 보고하는 것이지,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는 것은 아니라며 스님을 나무랐다고 한다.

당시 삼중 스님은 “수녀님이 화를 많이 냈다”며 “최소피아 수녀도 이런 일이 있고 나서 10년가량 나와 거리를 뒀다”고 말했다. 

연락해도 외면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삼중 스님이 시설 설립에 어려움을 겪던 최소피아 수녀에 적십자사를 통해 도움을 받도록 연결해 주면서 마음을 되돌릴 수 있었다고 한다. 

삼중 스님은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 운동과 유묵을 찾는 데도 헌신했다. 아쉽게도 수십차례 중국을 방문했으나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본서 안중근 의사의 유묵 ‘경천’을 찾아내 이를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전했으며, 현재는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어려운 사람 그냥 못 지나쳐”
서진 룸살롱 고금석 참회 도움

삼중 스님은 살아생전 두 개의 염주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구명운동으로 풀려난 최씨가 과거 사형수 시절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염원을 담은 염주고, 다른 하나는 앞서 언급한 고금석이 생전에 금강경 법문을 새긴 것이다. 두 사형수의 삶과 죽음이 스며 있다. 

삼중 스님과 최씨의 인연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씨는 3인조 은행 강도살인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서울구치소에 복역 중이었다. 이미 대법원서 사형이 확정된 상황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형수 법문을 해온 삼중 스님은 그를 만났다. 최씨의 손에는 굵은 알의 염주가 들려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바람이 새겨져 있었다.

삼중 스님은 사형수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는 게 의아해 물어봤다고 한다. 최씨가 의연한 어조로 “스님, 저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고 답하자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모르게 두 명의 공범을 면회했다. 무기수였던 한 명의 공범은 이미 숨진 뒤였다. 나머지 한 명은 강도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했다. 

이 공범은 본인의 처지보다는 오히려 가족이 있는 최씨를 걱정했다고 한다. 이후 삼중 스님은 최씨를 믿고 구명운동을 시작했다. 변호사회 등의 도움으로 사건이 조작됐다는 의구심이 커졌다. 범행 현장은 숨진 피해자가 흘린 피투성이였지만, 최씨 의류에서는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다.

옷을 태우거나 버린 정황도 찾지 못했다. 

사건 당일 최씨는 얼굴 상처로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범행 현장 답사를 온 것으로 의심되는 또 다른 3인조 중 붕대를 감은 이를 봤다는 직원은 없었다. 숨진 피해자의 상처도 설명하지 못했다. 

결국 최씨는 경찰의 고문에 허위 자백을 했음이 드러났다. 각계의 노력으로 최씨는 사형수서 무기수로 감형됐고, 결국 19년 만에 특사로 풀려나기에 이른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최씨는 복역생활에도 서예 등을 익혀 교정작품전에 출전, 입상하기도 했다. 최씨는 석방 후 자신을 고문한 형사를 찾아가 용서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삼중 스님을 40년 가까이 스승으로 모시고 근래에는 주 3회 투석 치료 때 병원에 동행하기도 한 재가자는 “어려운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스님이셨다”며 “억울한 사형수도 여러 명 살리셨다”고 삼중 스님의 활동을 회고했다. 그러면서 “너무 존경했고 이런 분을 만난 것이 나에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가르침 전파
약자 대변인

삼중 스님은 <길> <가난이 죄는 아닐진대 나에게 죄가 되어 죽습니다> <사형수 어머니들의 통곡> <그대 텅빈 마음 무엇을 채우랴> <사형수들이 보내온 편지> <사형수의 눈물을 따라 어머니의 사랑을 따라> 등 여러 책을 남기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세상에 전했다. 약자를 보살피는 여러 활동 등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종정표창, 대한적십자사 박애상 금상, 대통령 표창, 국민훈장 목련장 등을 수상했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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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 장지선 기자 =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가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업계에서는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내부는 엉망진창이라는 풍문이 돌고 있다. 레이블 간의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번졌고 주력 IP는 과거와 비교해 힘을 못 쓰는 모양새다. 연예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하려는 걸까? 2024년 5월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열사 자산 총액과 자본 총액을 더한 자산이 5조원을 넘긴 곳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2024년 3월 공개한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하이브 자산 총계는 5조원을 넘었다. 당시 기준으로 재계 순위 85위에 올랐다. 빛 좋은 개살구?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기업의 의무가 늘어난다. 엄격한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상징성도 얻는다. 실제 하이브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최초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국가 차원에서 하이브가 ‘업계 1위’로 인정받은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K팝의 세계화로 앨범, 공연, 콘텐츠 등이 주요 수익원인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급격히 성장한 것이 반영됐다”고 지정 배경을 밝혔다. 하이브의 대기업집단 지정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의 갈등이 한창 불거질 무렵에 이뤄졌다. 앞서 2024년 4월 하이브는 그룹 뉴진스 등이 소속된 레이블 어도어를 이끌고 있던 민 전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를 진행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 이른바 ‘민-하 대전’의 시작이었다. 이후 뉴진스, 다른 레이블까지 싸움에 뛰어들었다. 뉴진스는 자신들의 프로듀서는 민 전 대표라고 주장하면서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다른 레이블은 민 전 대표가 제기한 표절 의혹 등에 반발해 소를 제기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계약 문제도 송사로 번졌다. 그 사이 뉴진스는 쪼개졌고 멤버 1명은 계약 해지 후 피소됐다. 내부 문제 외에도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카카오와의 갈등도 현재 진행형이다. 카카오와 하이브는 ‘아이돌 명가’로 불리는 SM을 인수하기 위해 엄청난 출혈 경쟁을 벌였다. 인수전이 과열되면서 카카오가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범수 의장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가 보석 석방되기도 했다. 1900억원대 부당이득 혐의 경찰 영장 청구, 검찰 반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두문불출 상태였다. 미국에 머물다가 인터넷 방송 BJ ‘과즙세연(본명 인세연)’과 거리를 걷는 사진이 찍혀 입길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행보를 알기 어려웠다. 방 의장이 프로듀싱을 도맡아 온 방탄소년단(BTS)도 ‘군백기(군대+공백기)’ 상태였다. 하지만 BTS의 광화문 공연 이후 방 의장에 대한 언급이 늘었다. BTS는 멤버 전원이 군대에 다녀온 뒤 ‘완전체’ 첫 행보로 광화문 공연을 선택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하이브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성사된 공연은 각종 논란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하이브에 특혜를 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 시점도 이때다. 지난달 21일 광화문 일대는 경찰 등에서 동원된 경비 인원으로 삼엄했다. 광화문 인근을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문이 이뤄졌고 그 수위는 살벌했다. 공연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도 검문 대상으로 지목됐고 결혼식 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사람도 어김없었다. 정부와 전폭적인 지원에도 BTS 공연을 위해 광화문에 모인 인파는 예상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앞서 26만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공연 직후 경찰은 4만명으로 추산했고 하이브는 10만여명으로 발표했다. 어떤 기준을 갖다 대도 예상치보다 적은 인원이 모이면서 공연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모두의 광장인 광화문을 사기업이 특정 시간대에 독점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회사 뒤에 숨어 있나 실제 BTS의 광화문 공연은 ‘관급 행사’를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 전 국무총리가 하이브를 방문했고 서울시는 공연 당일 경비를 위한 회의를 여러 번 진행했다. 물 샐 틈 하나 없는 경비 체제를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안전 관리에만 경찰 6700여명 등 모두 1만5000명에 이르는 인력이 동원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가세했다. 이 대통령은 공연 전에는 안전 관리를 당부하는 목소리를 냈고 공연 이후에도 호평을 남겼다. 이 대통령은 공연 이후인 지난달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번 공연은 광화문 홍보를 넘어 대한민국 홍보에 결정적이었다”며 “기획을 잘 해서 잘 진행했다”고 평했다. 대통령까지 언급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공교롭게도 방 의장에 대한 비판으로 튀었다. 방의장이 현재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점, 그 내용이 주식과 관련된 것이라 정부 정책에 반한다는 점 등이 화두가 됐다. 이 대통령은 ‘주가조작은 패가망신’이라면서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방 의장은 하이브 IPO(기업 공개) 이전인 2019년 기존 투자자들에게 상장 계획이 지연될 것처럼 설명하는 등 기망행위를 통해 주식을 매수하고 이후 자신과 관련된 사모펀드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에 지분을 넘기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이 추산한 부당이득 액수는 19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7월 이 대통령의 ‘주가조작은 패가망신’ 경고 이후 주식시장을 교란한 혐의를 받는 인사들에 대한 금융 당국의 제재가 강해졌다. 당시 지목당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방 의장이었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7월16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금지 위반 혐의로 방 의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경찰도 같은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미국 압박 경찰 발끈? 검․경의 중복 수사 우려까지 불거졌던 사안은 경찰이 내사에 착수한 2024년 말 이후 1년 반이 지나도록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경찰은 지난해 9월 방 의장을 처음 소환한 이후 같은 해 11월까지 총 5차례 조사했다. 이후 5개월간 추가 소환이나 신병 확보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늑장 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2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구속영장 청구 하루 전인 지난 20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방 의장 수사는 거의 마무리됐다”며 “법리를 검토 중이고 머지않은 시간 내에 종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고 다음 날 방 의장에 대한 신병 확보에 나선 것이다. 방 의장 측은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그의 변호인단은 “장기간 성실히 수사에 협조했음에도 구속영장이 신청된 것은 유감”이라며 “향후 법적 절차에도 충실히 임해 최선을 다해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국대사관의 압박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최근 방 의장의 미국 방문과 관련해 출국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경찰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한에는 오는 7월4일 예정된 미국 독립기념일 250주년 행사 참석과 BTS의 월드투어 지원 필요성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방 의장은 출국금지 상태다. BTS 광화문 공연부터 특혜 의혹 솔솔 나와 주한미국대사관의 행보에 경찰 내부는 격앙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BTS 콘서트나 독립 250주년 기념행사 등을 고리로 미국 측을 움직여 수사 편의를 우회 압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지난해 미국으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는 상황이라 방 의장이 입을 맞추거나 도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경찰의 신병 확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이브는 국민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주한미국대사관의 서한 발송이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하이브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행사 참석을 요청받은 적도 없고 출국금지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구속 갈림길에 서 있던 방 의장은 검찰의 구속영장 반려로 한숨 돌리게 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 24일 방 의장에게 신청된 구속영장을 돌려보냈다. 검찰은 “현 단계에서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 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일단 구속 위기는 피했지만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하이브의 최대 변수가 되는 모양새다. 하이브는 핵심 IP인 BTS 컴백으로 최대한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상황에서 광화문 공연이 한 차례 논란이 된 데 이어 오너 리스크까지 덮쳤다. 무엇보다 방 의장이 하이브에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만큼 향후 상황에 따라 발생할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너 리스크 K-팝도 영향 연예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하이브를 넘어 K-팝 업계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우리나라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K-팝의 이미지가 업계 1위 수장의 오너 리스크로 얼룩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방 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