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활동적인 풍경’ 김의선·신디하·s.a.h

디스토피아 너머의 세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서초구에 있는 페리지갤러리서 김의선, 신디하, s.a.h(심유진, 한지형) 등이 참여하는 전시 ‘활동적인 풍경’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35세 이하 젊은 작가에 주목하는 기획전 프로그램 ‘Perigee Unfold’의 일환으로 준비됐다. 

‘활동적인 풍경’은 기후위기의 현실을 바라보며 가까운 미래의 디스토피아와 그 너머의 새로운 풍경에 관한 상상을 토대로 구성됐다. 전시 제목은 애나 르웬하웁트 칭의 저서 <세계 끝의 버섯>서 따왔다. 더 이상 행위하는 인간을 위한 정지된 배경으로 보기 어려운 그 자체로 활성화된 환경을 일컫는다. 

물질과

이번 전시서 환경은 우리가 ‘자연’이라 칭해온 환경과 오늘날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미래의 풍경을 그리는 이번 전시서 자연과 인공물, 물질 세계와 온라인 세계의 풍경은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은 채 서로 얽히며 연출된다. 

▲신디하= 동식물을 비롯한 비인간 존재의 건축술에 관심을 보여 왔다. 스스로 건축하는 물질을 상상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석회동굴과 오래된 콘크리트 건물을 겹쳐 바라보며 건물 지하서 자라난 시멘트 종유석과 석순의 모습을 설치 미술로 선보인다.

이는 작가의 상상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사례다. 석회암에 든 탄산칼슘이 물에 녹았다가 굳는 과정서 동굴이 만들어지듯 누수가 계속되는 건물서도 종유석과 석순이 만들어질 수 있다. 


건물은 겉보기에는 단단하게 고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인간의 의도 너머로 움직이는 물질이 되곤 한다. 물에 의해 녹고 부식되거나 작은 달팽이가 표면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 

신디하는 인간이 사라진 세계에 남겨진 콘크리트 건물이 다른 비인간 존재와 끊임없이 마주치며 탄산칼슘을 섭취하기 위해 모여든 달팽이 군락지가 돼가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 장면서 우리는 쓰임을 다하고 방치된 물질이 비인간 생명의 새로운 둥지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음을 바라보게 된다. 

35세 이하 젊은 작가 주목
칭, <세계 끝의 버섯> 참고 

▲김의선= 그물망을 통해 서로 다른 물질을 마주치도록 하고 자신과 타인의 작업 사이를 연결하는 환경을 만든다. 유기적인 재료를 연구하면서 예민하고 가변적인 재료를 주로 다뤄왔다. 이번 작업에선 묽은 흙이 철 섬유로 만든 망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서서히 건조되면서 조형을 형성한다. 

흙은 그물망의 어떤 곳에서는 실타래처럼 가느다랗게, 다른 곳에서는 조금 더 두껍게 뭉쳐져 덩어리를 만들면서 유기체의 형태처럼 뻗어나간다. 떠다니는 물질은 얇은 구조물에 매달려 일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이 같은 풍경을 마주하다 보면 미묘하지만 ‘늘어진 긴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미세하고 지속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이 장면에는 우리의 시각으로 충분히 감각할 수 없는 활동이 내재돼있기 때문이다. 

▲s.a.h(심유진, 한지형)= 이미지와 현실 세계가 중첩되는 지점을 주의 깊게 사유해 왔다. 온라인게임을 매개로 이미지 과부하 시대의 폐허를 상상한다. 이들은 ‘유저에게 주어진 너무 높은 자유도로 인해 통제 불능 상태에 도달한 오픈 월드 게임’을 제시한다. 


인간에 의해 활발하게 개발되면서 점점 우리에게 불리한 환경이 돼가는 지구와 은유적으로 겹쳐볼 수 있다. 이 게임은 다수의 사용자가 게임 속 세계에 자유로운 변형을 가하면 모든 키가 동시에 활성화되고 결국 어떤 기능도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공격과 방어의 기술이 함께 발현되는 오류를 보여주는 조형물은 지나치게 활성화된 상태가 도리어 정지 상태에 가까워지는 역설을 나타낸다. 

온라인

페리지갤러리 관계자는 “이번 전시의 작업이 공유하고 있는 키워드는 ‘세계 (만들기)’다. 현 세계의 면면을 감각하고 가까운 미래를 상상하며 폐허가 돼가는 풍경을 저 너머가 아닌 현실로 직시하고 그 폐허로부터 나타나게 될 새로운 움직임을 가늠해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시를 준비하며 이들이 함께 해온 것은 온전히 홀로 존재하는 내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환경의 일부를 이루는 구성원이자 타자와 얽힌 존재로서 나를 감각하는 연습이었다”며 “이 같은 연습은 오늘날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이자 함께할 미래를 조금 더 연장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다음 달 7일까지.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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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