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1·2심서 무죄 판결을 받았던 딜레마존 사고가 지난 4월, 대법원서 판단이 뒤집혔다. 이 같은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 운전자들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딜레마존 유죄 확정에 운전자 58%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또 교차로 한복판서 차를 급하게 멈추면 더 위험하다는 지적과 함께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차로에 진입하기 전 황색 신호가 켜질 때 운전자는 교차로 가운데 갇히더라도 일단 멈춰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지나가야 할지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딜레마에 빠지기 쉬운 교차로 정지선 부근을 ‘딜레마존’이라고 한다. 브레이크를 밟고 서거나 액셀을 밟아 달리기도 애매해서다.
답이 없다
대다수 운전자는 딜레마존서 황색등이 들어와도 교통의 흐름을 생각해 액셀을 밟고 그 구간을 지나가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이제는 고민을 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황색 신호가 켜진 것을 보면서도 교차로 진입 직전에 정지하지 않았다면 신호위반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재차 나왔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원칙적인 판단이 담긴 판결에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운전 현실을 모르는 판결”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일요시사>는 실제 서울 지역 내 교차로 진입 직전 황색 신호가 켜지면 차량이 멈추는지, 아니면 그냥 달리는지 신논현역 사거리와 영등포구청 사거리를 찾아 각각 30분 동안 확인했다.
지난 2일 오후 1시께 신논현역 사거리는 많은 차량으로 교통이 혼잡했다. 청색 신호서 황색 신호로 바뀌는 순간 대다수 차량은 멈추기보다는 빠져나가기에 급급했다. 교차로에 진입한 마지막 차량은 속도를 내서 통과하는 모습도 확인됐다. 황색 신호에 멈춘 차량은 뒤따라오던 차량을 급제동하게 하면서 경적 세례를 받기도 했다.
같은 날 오후 2시께 영등포구청 사거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황색 신호에 멈추는 차량은 드물었다. 황색 신호가 켜졌지만, 상당수의 차량들은 빠르게 교차로를 통과했다. 또 제동거리가 충분히 확보됐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통과하는 차량들이 수두룩했다.
택시 운전경력 20년 차인 A씨는 “황색 신호에 멈춰야 하는 건 알고 있지만, 갑자기 멈춰버리면 뒤 차량과 추돌 사고가 나기 때문에 그냥 지나간다”며 “교차로 진입 전에 황색 신호가 켜지면 속도를 높여 통과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풀 브레이크 밟다 뒤차가 쾅
1·2심 무죄서 유죄로 뒤집어
버스 운전 경력 8년 차라고 자신을 소개한 B씨는 “황색 신호서 버스는 멈출 수가 없다”며 “갑자기 멈추게 되면 승객이 다칠 수 있어 지나가야 한다”며 “횡단보도에 걸쳐 있으면 민원이 들어와 어쩔 수 없이 황색 신호에는 지나간다”고 설명했다.
교차로 한가운데서 정지할 경우 교통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뿐만 아니라 정지선을 앞두고 무리하게 급제동할 경우 화물차량 등 후방 차량에 추돌 위험이 높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지난 4월12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과실치상 혐의 등으로 기소된 운전자 C씨의 상고심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인천지법으로 환송했다.
C씨는 지난 2021년 7월25일 오전 8시45분경 경인고속도로 부천IC서 승용차를 몰다 교차로 신호가 좌회전 신호서 황색 신호로 바뀌었지만 정지하지 않고 그대로 가다가 사고를 냈다. C씨는 좌측서 우측으로 직진하던 오토바이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와 동승자가 각각 전치 3주, 14주의 상해를 입었다.
사건의 쟁점은 교차로 진입 직전 황색신호가 켜졌을 경우, 차량 정지에 필요한 거리가 교차로 정지선까지 거리보다 길어 주행을 계속한 게 신호위반에 해당하는지였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황색 신호가 켜진 순간 C씨의 차량에 정지선까지 거리가 8.3m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해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C씨가 황색 신호에 따라 차량을 정지시킬 경우 사거리 한복판에 정지될 가능성이 있어 신호위반 행위로 평가할 수 없다”며 “오토바이가 적색신호를 위반해 출현할 것을 예상하기 어려운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마찬가지로 2심 재판부도 “교차로에 진입하기 전에 신호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면서 감속 운행해 황색 신호로 바뀌는 경우 어떤 상황이든 교차로 진입 전 정지해야 한다는 주의의무가 있다고 할 근거는 없다”며 검찰 측의 항소를 기각했다.
멈추다 추돌 사고 나면…
“운전 현실을 모르는 판결”
그러나 대법원은 “교차로 진입 전 황색 신호로 바뀐 이상 차량 정지거리가 정지선까지의 거리보다 길 것으로 예상되더라도 교차로 직전에 정지하지 않았다면 신호를 위반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6조 2항의 ‘황색의 등화’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해당 조항엔 차량이 정지선이나 횡단보도 또는 교차로 직전에 정지해야 하며, 교차로에 조금이라도 진입한 경우 신속히 교차로 밖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교차로에 이미 진입한 상황이 아닌 상황서 황색 신호가 켜졌다면 그 즉시 멈춰 세워야만 한다는 뜻이다.
교통사고 사건을 주로 다루는 한문철 변호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서 판결문 내용을 소개하며 “정지선이 가깝든 교차로가 가깝든 무조건 브레이크를 밟아라. 사고가 나든 복잡해지든 무조건”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의 황색등 규정은 45년 전인 지난 1979년 만들어져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운전 중 교차로 진입 직전의 황색 신호등 점등 시 멈추지 않으면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운전자의 인식은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8일 자동차 전문 리서치 기관 ‘컨슈머인사이트’가 운전자 52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8%는 황색 신호서 정지하지 않으면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비동의’ 응답을 내놨다. 이어 ‘동의’가 35% ‘잘 모르겠다’가 6%였다.
현실은…
또 운전자 다수가 딜레마존서 황색등이 켜지면 ‘정지한다’고 답했음에도 ‘무조건 정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한편 이번 조사는 교차로 황색 신호등서 무조건 멈추지 않으면 위법이라는 지난 4월 대법원 판결이 계기가 됐다. 조사는 6월 3주 차(20~24일)에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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