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약자와의 동행’ 김기철 한국노총 서울본부 의장

“노동 존중의 시대 아직 멀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노동자가 죽어 나가고 있다. 내국인, 외국인, 청년 등 노동자의 죽음은 이제 더 이상 사회를 놀라게 하지 못한다.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는 법에 기댈 수도 없다. 노동의 가치는 나락으로 향하고 있다. 김기철 한국노총 서울본부 의장은 “노동 존중의 시대는 아직 멀었다”고 한탄했다.

19세 아들이 일터에서 갑자기 죽었다. 유가족은 진상규명을 위해 곡기를 끊었다. 회사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반복되는 청년 노동자의 죽음에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유가족의 외침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메아리로만 남았다. 또 다른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 그 메아리를 이어받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반복되는
노동자 죽음

화마가 노동자 2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2층 작업장서 시작된 불은 내국인 노동자 5명, 외국인 노동자 18명을 집어삼켰다. 인력 공급 과정을 두고 도급·파견업체가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사이 타국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의 죽음은 뒷전이 됐다. 어느 순간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 사망사고는 ‘관성’처럼 여겨지고 있다.

김기철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 서울본부 의장은 “노동자는 상품이 아니다.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자를 물건 취급하는 사용자를 향한 일침이었다.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 서울본부서 김 의장을 만났다. 해외 출장으로 다소 지친 기색이었지만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한국노총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함께 국내 노동계 양대산맥으로 불린다. 지난 1월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2022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한국노총의 조합원은 112만1000명, 노조 수는 2325개에 이른다. 한국노총은 2021년 이후 1노총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1노총은 노동계가 참여하는 정부 기구 등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김 의장은 2022년부터 산별노조 500여개, 조합원 약 19만명의 한국노총 서울본부를 이끌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 구성, 대의원 배정 기준 등의 문제로 재선거까지 치르는 우여곡절 끝에 22대 서울본부 의장으로 당선됐다. 당시 김 의장은 ‘화합과 복지의 서울노총’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선거에 나섰다.

김 의장은 “선거 과정서 규정 문제가 나왔다. 그게 법적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여러 가지 고통이 뒤따랐다”며 “특히 안타까웠던 점은 선거를 치르면서 노노 갈등이 야기된 부분이다. 화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본부의 ‘복지’ 제도를 강화해 궁극적으로는 조합원 간의 연대성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부연했다.

김 의장은 단체협약이나 임금교섭 등 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선봉장’보다는 산별노조를 지원하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국노총 지역본부는 각 노조가 사용자와 충돌이 발생했을 때 이를 교섭해나가는 과정서 힘을 실어주는 든든한 ‘뒷배’로 존재한다. 끊임없는 소통이 전제돼야 하는 기구다. 

택시회사 조합장으로 노동운동의 길
단체협약·임금교섭에선 강성 투쟁

김 의장은 “의장은 산별노조의 대표자와 항상 교류해야 한다. 조합원이 2만명에 이르는 대형 노조부터 50여명도 안 되는 작은 노조까지 모든 산별노조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려움도 많고 문제도 많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의장이 되자마자 의욕적으로 서울본부 ‘개조’에 나섰다. 

당장 선거 과정서 불거진 규정 문제를 손질했고 회계도 투명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도입했다. 오랜 시간 변동이 없던 직원의 임금도 손봤다. 김 의장은 “노동조합은 재정이 튼튼해야 제대로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노동조합의 힘은 조합원 규모와 재정서 나온다는 생각이다. 

외부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플랫폼 노동자나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 관심을 쏟았다. 또 서울시 25개구 노인 요양원에 김장 김치를 지원하고 장학사업을 벌이는 등 ‘복지’에 초점을 맞춘 사업도 꾸준히 진행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논의해 지자체 차원서 ‘약자와의 동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소통을 이어갔다.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김 의장은 지난 4월30일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국가산업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김 의장은 그 공을 서울본부 직원들에게 돌렸다. 그는 “우리 직원들이 열심히 노력해줘서 노동절에 훈장을 받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직원들에게)항상 고맙다”고 감사해했다. 

인터뷰 도중 김 의장을 찾는 직원들이 여러 차례 의장실을 드나들었다. 워크샵 단복을 제작하는 문제를 두고도 전화가 걸려 왔다. 김 의장은 직원들을 일일이 상대하면서 세부 내용을 살폈다. 오랜 시간 노동운동을 해온 사람에게 가질 수 있는 ‘선입견’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내부 개조
외부 활동

김 의장은 30년 넘게 이 길을 걸으면서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사업에 실패한 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시작한 택시 운전이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잠깐 하고 말아야지’라고 생각한 일이 노동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1992년 몸담고 있던 택시회사 노조 조합장으로 선출된 게 시작이었다.

김 의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고 나처럼 가방끈이 짧은 사람은 그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며 “또 사용자가 노조의 입을 막기 위해 돈을 쓰는 게 비일비재하던 시대였다. 나도 어느 날 사장이 봉투를 주길래 그걸 얼굴에 집어 던졌더니 그다음부터는 돈 얘기를 하지 않더라”고 회상했다.

조합원의 대표로 나선 김 의장은 임금교섭, 단체협약 등을 해내야 했다. 조합장은 조합원의 권익을 위한 자리인 만큼 사측으로부터 무엇이든 얻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발품을 팔아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손으로 써가며 단체협약서를 작성하던 시대였다. 결국 김 의장이 답을 찾은 건 ‘현장’이었다. 

김 의장은 “서점이라고는 종로서적, 영풍문고, 교보문고 3개밖에 없던 시절이다. 그런데 거기에도 근로기준법 관련 책은 많지 않았다. 찾고 찾다가 다른 회사 단체협약서가 괜찮다는 말을 듣고 그걸 구해봤다. 공부 끝에 126개 조항을 일일이 손으로 써서 ‘내 것’(단체협약서)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운행 도중 사고로 차를 폐차할 상황이 돼도 노동자에게 수리비를 요구할 수 없게 하는 등 단체협약 내용의 60% 이상을 관철시켰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김 의장은 1992년 처음 조합장에 당선된 이후 내리 12선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조합원은 내가 지킨다’는 신념이 만든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김 의장은 여러 차례 ‘내가 졌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자가 원할 때에는 언제든 휴가를 부여해야 한다고 돼있다. 그 조항을 가지고 연차휴가를 요구하다가 회사에 경영상 어려움이 있으면 (연차를)안 줘도 된다는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사측이 들고나오면 내가 지는 거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많이 배웠다”고 설명했다.

36년 동안 노동운동을 하며 현장서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온 김 의장에게 윤석열정부나 국회의원들의 탁상공론은 ‘그들만의 리그’였다. 노동에 대한 인식이나 사회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는데 정부 정책이나 국회의원 입법, 심지어 사법부의 판결까지 현장 상황과는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 의장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전반적으로 사회 구조가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한번 직장에 들어가면 거기에 매여 있어야 하고 장기 근속해야 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지 않았나. 젊은 친구들은 짧게 일하고 돈을 모아서 여행을 가거나 문화생활을 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 맞게 노동현장이 바뀌었다는 걸(위에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장서 찾은
답으로 행동

그러면서 운수 계통 이야기를 꺼냈다. 택시나 버스, 화물 등의 현장에 노동자가 없다는 것이다.

김 의장에 따르면 현재 운수 현장의 노동자 연령대가 고령화되고 있다. 60대 운전자가 30~40%를 차지하는 상황이다. 김 의장은 “택시에는 완전월급제, 버스에는 공영제가 언급되면서 임금이 줄었다. 당연히 노동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경기도 화성의 화재사고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 전주의 한 공장서 숨진 청년 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여의도의 국회의원 300명이 결국 ‘그들만의 리그’에 있다는 게 이런 것이다. 법을 만들 때 시행령 등을 통해 (법의)구멍을 잘 틀어막아야 하는데 표에 눈이 멀어 사고가 일어날 때만 반짝 시늉을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렇다 보니 법에 허점이 많고 사고가 일어나도 노동자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인간의 두뇌가 충격을 받으면 그게 딱 49일 간다고 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우리가 배운 게 뭐가 있나. 반복되고 반복되는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윤석열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30점’ 정도로 혹평했다.

김 의장은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 출신이라 검사 특유의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상명하복의 문화, 고집 같은 게 드러나면서 주변에 적을 만드는 식이다. 윤정부서 추진하는 노동개혁도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하다 보니 ‘노동탄압’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노조의 역할에 대해서도 비판을 제기했다. 노조의 정치 참여는 필요하지만 ‘세력화’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의장은 “노조가 정치 세력화되는 순간 노조는 죽는다. 어느 한쪽 편에 서게 되면 휘말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이번 총선 때도 노동계서 국회의원을 배출했지만 진정으로 노동운동을 위해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했다.

2022년 ‘화합과 복지’ 내세워 당선
노동조합 “정치 세력화되면 죽는다”

강한 어조로 윤정부와 국회의원에 대해 ‘쓴쏘리’를 쏟아내던 김 의장은 30여년 노동운동 과정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는 질문에 얼굴이 풀어졌다. 조합장 시절 사용자의 책상을 뒤엎거나 노숙투쟁, 단식투쟁 등을 언급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신 그는 후원과 봉사의 이야기를 꺼냈다. 

김 의장은 “1997년도인가 한 조합원이 찾아와 다른 조합원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아이가 샴쌍둥이라고 했다. 간만 하나고 다른 장기는 전부 따로 있는데 배가 붙어서 나온 샴쌍둥이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 놀라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사에 샴쌍둥이 소식을 알리고 모금 운동을 진행했다.

그 결과 샴쌍둥이 분리수술이 이뤄졌다. 분리된 쌍둥이 가운데 1명은 10세 때 사망했고 또 다른 1명은 현재 생존해 있는 상태다. 김 의장은 30년의 세월에도 두 아이의 이름을 정확히 언급했다. 살아 있는 1명은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김 의장에게 카드를 보낸다고 한다.

김 의장은 “(살아 있는) 아이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봉사를 다니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필리핀 한센인 마을 봉사와 후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의장은 “내 지인이 25년째 필리핀 한센인 마을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1년에 한 번 1000만원 정도씩 몇 년간 후원했다”며 “필리핀쌀이 비싼 편인데 그 한센인들이 고마움을 표현한다고 봉지에 쌀을 넣어서 주곤 한다. 한센병 때문에 손가락이 잘린 사람도 있고 그런데 그런 손으로 쌀봉지를 건네는 걸 보면 마음이 짠하다”고 밝혔다. 그는 “그럴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앞으로도 화합과 복지에 힘쓰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때로는 강성 투쟁도 필요하고 때에 따라서는 파업도 해야 한다. 하지만 파업은 생계와 직결된 부분이기 때문에 가능한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과거 조합장을 할 때 파업을 진행한 적 있는데 조합원들이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내 사전에 파업은 없다’는 신조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안타까워도
계속 가야

70대인 김 의장은 인생의 절반 가까이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그럼에도 노동 존중의 시대는 아직 멀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시대가 언제 올지 모르는 현실이 안타깝고 부끄럽다는 뜻도 드러냈다. 하지만 김 의장은 계속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언급하면서 “내 조합원만큼은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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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