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으로 튄 흉악범 6인 추적> <단독> ‘필리핀 도박왕’ 은닉 재산 추적

감쪽같이 사라진 400억 “본부인 뒤지면 나온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필리핀 도박왕’ 김모씨가 송환된 지 8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범죄수익 환수는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 수사기관은 차명계좌와 가상화폐를 가지고 있는 두 번째 부인에 집중했지만 <일요시사>는 범죄수익을 현물로 들고 있는 첫 번째 부인에 집중했다. 

온라인 도박장을 운영하며 1조3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필리핀 도박왕’ 김모씨가 검거됐지만 범죄수익은 아직 환수되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사정기관에서는 수사 중이라고 하지만 김모씨의 부인인 양모씨는 꾸준하게 부를 축적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인터폴
적색수배

김씨의 도박사이트 운영은 2014년 10월부터 이뤄졌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2019년 9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김씨가 필리핀서 사무실을 마련하고 불법 온라인 도박사이트를 운영한다는 결정적인 첩보를 입수했다.

경찰은 관련 첩보 자료를 국정원과 함께 분석한 뒤 김씨를 포함해 22명에 대한 국제형사경찰기구(이하 인터폴) 적색수배를 발부받고, 국정원·필리핀 수사 당국과 2년간 이들의 행방을 쫓았다. 

김씨는 최고급 리조트에 거주하며 마이바흐 등 고가 외제차량 10대를 타는 초호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평소 무장 경호원들도 대동하고 있어 검거하기도 쉽지 않았다.


지난 2021년 9월18일, 경찰과 필리핀 코리안데스크 담당관, 필리핀 이민청 도피사범 추적팀 FSU, 현지 경찰특공대 등 30여명으로 꾸려진 검거팀은 김씨의 거주지를 급습해 그의 신병을 확보했다. 

그러나 필리핀 형사사법체계를 잘 아는 그는 현지서 형사사건에 엮이면 재판 종결 전까지는 한국으로 추방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국내 송환을 계속 미뤘다. 이에 경찰은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을 통해 필리핀 법무부에 조기 송환 협조를 요청했다.

경찰은 지난해 7월부터 필리핀 법무부와 매주 실무회의를 열었고, 양국 간 공조로 필리핀 법무부의 추방 결정을 끌어냈다.

그는 막판까지 국내 송환을 늦추려고 발버둥 쳤다. 추방 결정이 난 뒤에도 다시 제3자로 하여금 자신을 위조수표 사용 등 조세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게 한 것이다. 필리핀 법무부가 추방 결정을 번복하자 이 같은 사실을 보고받은 이상화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는 송환 협조를 재차 강력하게 요청했다.

결국 필리핀 법무부가 이 대사의 요청을 받아들이며 그의 시도는 불발됐다.

결론적으로 경찰은 김씨와 2020년부터 필리핀에 체류 중이던 조직원 20명 중 16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서울청 마약범죄수사대를 중심으로 국내 조직원 177명 중 166명을 검거해 사실상 범죄조직을 와해시켰다. 김씨는 지난해 8월 말 송환돼 구속 기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1조3000억 매출에 40억만 추징?
콘도 300여채·골프장 회원권도


수사기관서 김씨의 조직을 와해시켰지만 아직 범죄수익 환수는 이뤄지지 않았다. 법원이 필리핀서 함께 검거된 조직원들에게 평균적으로 2억원의 추징금을 선고했으며 검찰은 총책인 김씨에게 단 40억원만 특정했을 뿐이다. 김씨에게 구형된 40억원의 추징금이 인용되더라도 1조3000억원 중 80억원은 매우 적은 금액이다. 

당초 수사기관들은 김씨의 범죄수익을 환수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필리픽 길거리 환전소서 대량으로 환전하는 일명 ‘환치기’, 가상화폐 계좌에 수익을 넣었다가 빼는 방식, 차명계좌 등의 방식으로 수익을 은닉해 환수가 쉽지 않았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코인 거래소와 환전소, 대포통장 추적은 어려운 편”이라며 “범죄수익환수를 담당하는 수사관들이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은 당초 김씨의 두 번째 와이프 A씨가 차명계좌, 가상화폐 계좌 등을 관리하고 있다고 봤다. 마땅한 직업도 없고 집안이 좋지 않은데 필리핀의 청담동으로 꼽히는 곳에서 생활하고 자녀를 사립국제학교에 보내며 호화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요시사>는 김씨의 첫 번째 와이프에 주목했다. 

김씨의 첫 번째 와이프인 양씨가 김씨의 검거 이후에도 김씨와 생활하던 초고급 주택서 경호원을 대동하고 골프를 치러 다니는 것이 필리핀 현지서 매우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또 양씨는 김씨가 검거된 이후에도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해외여행을 지속적으로 다녀왔으며 최소 10여명의 경호원을 데리고 시내를 누비고 다니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양씨는 김씨의 범죄수익을 이미 현물화해 둔 상황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필리핀 마닐라에 콘도 300여채, 골프장 회원권을 구매했으며 필리핀 법인도 운영 중이다.

양씨는 김씨와 자신의 친척, 직원들의 명의, 필리핀 차명 등을 이용해 콘도를 매입해 왔다. 해당 콘도의 평균적인 공시지가는 500만페소(23일 기준 한화 약 1억1700만원)이다. 다시 말해 양씨가 차명 등으로 매입한 콘도의 총가격은 한국 돈으로 351억원에 달한다.

양씨는 해당 콘도들을 임대하면서 부가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씨가 가지고 있는 콘도들은 마닐라서도 부촌에 꼽히는 지역에 몰려 있다. 필리핀은 부촌과 외곽지역의 월세가 많이 차이 나는 편이다.

환치기
숨겼다

마닐라의 부촌으로 꼽히는 타기그에 있는 보니파시오 글로벌시티의 경우 가구가 냉장고와 에어컨 정도만 구비돼있는 콘도 한 유닛의 월세가 필리핀 돈으로 13~15만 페소(약 304만~351만원)에 달한다. 필리핀은 주차장도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에 주차장을 포함하면 월세도 10만원서 15만원 정도 더 늘어나게 된다.

같은 도시의 원룸 형식의 콘도도 5만5000페소(약 128만원)에 달한다.


양씨가 매입한 콘도는 모두 부촌에 발코니까지 있는 대형 콘도로 평균 가격이 13~15만페소의 임대료를 받고 있다. 즉 양씨는 범죄수익으로 매입한 콘도 임대료로만 4500만페소(10억5345만원)를 달마다 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해당 콘도의 SPA(Special Power of Attorney)를 모두 양씨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SPA는 우리나라로 치면 전권위임장으로 해당 콘도서 나오는 임대료는 물론 매매 등 행위의 전권을 모두 SPA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위임된다.

다만 필리핀서도 한 사람이 여러 개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부담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양씨는 필리핀에 부동산 대행 업체를 설립해 해당 콘도들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양씨는 필리핀서 최고급 골프장에 프리미엄 회원권 3장을 갖고 있는데 사우스 우드, 하이랜드CC 등 3곳으로 파악된다.

필리핀 골프장 회원권 중계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하이랜드CC의 회원권은 300만페소(7035만원)에 거래 중이다. 사우스 우드는 A와 B로 나뉘어 있는데 A 회원권은 550만페소(1억2897만원), B 회원권은 600만페소(1억4070만원)이다. 썬벨리CC의 경우 국민 골프장 답게 40만페소(937만원)에 팔리고 있다. 

두 번째?
첫 번째!


<일요시사>가 파악한 바로는 양씨는 사우스 우드나 하이랜드 정도의 골프장 회원권을 2장 정도 더 갖고 있었으나 최근 일어난 골프붐에 맞춰 더 많은 가격을 받고 팔기도 했다. 그는 콘도 및 골프장 회원권으로 범죄수익 354억4939만원을 현물화했으며 골프장 회원권 (약 1억원으로 산정)매매가 2억원과 최소 10억5345만원을 달마다 번 것으로 계산된다.

김씨가 송환됐을 때부터 계산하더라도 양씨는 범죄수익 439억7499만원가량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지점은 양씨는 이미 국내 법원서 김씨의 범죄수익은닉을 도운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라는 것이다. 이미 범죄수익은닉죄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버젓이 범죄수익을 통해 수익을 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통상 범죄수익은닉의 공범의 재산은 동결된다. 한 예로 화천대유자산관리의 대주주 김만배씨가 대장동 개발 수익을 숨기는 데 가담한 측근과 가족 등의 재산이 동결된 바 있다. 재산 동결은 보통 수사했던 검찰팀서 법원에 공범에 대한 추징보전을 신청하고 법원서 인용돼야 한다.

하지만 김씨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해당 절차는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수사기관은 추가 범행 정황이 포착돼 신중을 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필리핀 현지에는 아직 붙잡히지 않은 김씨의 조직원들이 다시 온라인 도박장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양씨가 범죄수익을 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조직원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도박장에 대한 수사를 위해 신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속영장 발부에도 수사 스톱
“김씨 보석되면 추적 어려워”

사정기관 관계자는 “양씨의 경우 필리핀서 한인식당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등 소재지가 분명하다”며 “다만 조직원들이 운영 중인 온라인 도박장에 대한 정보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해당 범죄수익과 온라인 도박장 운영 모두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자세한 내용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 자세히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검 관계자는 “필리핀에 수사관이 2명 나가 있는 것은 맞지만 해당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파견됐는지에 대한 것은 답변이 불가하다”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아직 수사기관들은 필리핀 현지 경찰이나 이민청과 공조 등을 하지 않고 있으며 그저 범죄수익은닉으로 구속영장만 청구된 상황인 것이 드러났다.

필리핀 이민청 관계자는 “양씨는 현재 해당 범죄 전력으로 장기간 타국가 체류가 불가능하다”며 “다만 출국금지 등의 조치는 아직 취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 국제공조팀 관계자도 “현재 양씨에 대한 국제공조는 아직까지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김씨가 온라인 도박장을 운영하며 1조3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면 순이익은 최소 3000~4000억원이 된다”며 “하지만 양씨가 운용한 범죄수익은 400억도 되지 않는 상황서 수사기관은 해당 정보를 알고 있더라도 처음 수사 방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A씨가 가지고 있다는 차명계좌나 가상화폐를 추적하는 것은 더욱 시간이 많이 드는데 확실한 범죄수익을 환수하고 계속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들에 대한 정보나 노출돼있는 범죄수익도 놓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김씨가 보석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이미 현물화
시간이 없다

한 서초동 변호사는 “김씨는 필리핀 감옥서부터 감옥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며 “김씨가 기소된 범죄 혐의는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범죄단체조직뿐이라 형량이 낮게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인 만큼 김씨가 형량 3분의 2 이상 구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 김씨가 보석 신청을 했으니 이번엔 인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김씨의 구속이 풀리면 지금 현물화된 범죄수익도 자취를 감출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3월7일 김씨의 보석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당시 김씨 측 변호인은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반면 검찰은 김씨가 필리핀서 검거된 뒤에도 허위 사건을 만들어 송환을 지연시키는 등 또다시 해외로 도피할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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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