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이후···4인 파워게임> 고비 넘긴 이재명

‘공룡 야당’ 목줄을 쥐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2대 총선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민주당 공천이 ‘비명 학살’서 ‘과반 압승’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정치 행보에 마침내 파란불이 켜졌다. 대권주자로서의 행보도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오후 6시 정각을 알리는 카운트다운과 동시에 화면에는 지상파 3사(KBS·MBC·SBS)가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그동안 민주당이 바라던 151석을 훌쩍 넘은 숫자였다.

당과 지역구
모두 승리로

화면을 바라보던 이 대표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피었다. 개표 방송을 참관하던 지지자들은 박수와 함께 환호했다. 곧이어 인천 계양을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 대표가 국민의힘 원희룡 후보를 꺾으며 당선이 확실시됐다. 연이은 호재에 회의실은 또 한 번 지지자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선거 이튿날인 11일, 22대 국회의원 선거 최종 개표 결과 민주당은 175석(지역구 161+비례 14), 국민의힘은 108석(지역구 90+비례 18)으로 집계됐다. 국민이 정권 심판론과 야당 심판론 사이서 전자를 택한 것이다. 이로써 민주당이 과반을 넘기면서 다시 한번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지게 됐다.

이 대표의 득표율은 54.12%로 45.45%를 얻은 국민의힘 원희룡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원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계양 주민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그동안 저와 함께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이 대표는 지역구 승리에 대해 “유권자 여러분의 요구대로 이 나라 국정의 퇴행을 멈추고 다시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하겠다”며 “저에 대한 여러분의 선택은 윤석열정권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지만, 민생을 책임지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라는 책임을 부과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번 선거서 당과 지역구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정치권은 민주당의 심판론이 제대로 먹혔다고 봤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민주당이 180석이라는 거대 의석수를 가지고 그동안 대체 뭘 했냐”는 여론이 들끓었는데, 이를 뒤집을 만큼 민심이 크게 일렁였다는 분석이다.

이로써 제1당을 지켜낸 민주당은 막강한 입법 권력을 계속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범야권을 합하면 192석까지 가능한 만큼 신속처리안건인 패스트트랙으로 법안을 강행할 수 있고 반대 측의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하는 권한도 생긴다. 국무총리나 대법관 등 임명동의안은 물론 국회의장도 당에서 배출할 수 있다.

계양·민주당 둘 다 지켰다
리더십 회복에 대권도 탄력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22대 국회에 들어섬과 동시에 범야권과 힘을 합쳐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사수할 것으로 예측했다. 법사위원장은 법안 처리를 비롯한 체계자구 심사권을 가지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의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었는데 당시 쟁점 법안을 두고 여야가 강하게 부딪히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초반부터 법안·예산 처리의 주도권을 잡아 22대 국회에서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선거 이튿날 이 대표는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서 “이제 선거는 끝났다. 여야 정치권 모두가 민생 경제 위기 해소를 위해서 온 힘을 함께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당면한 민생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겠다”며 “대한민국을 살리는 민생 정치로 국민의 기대와 성원에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해찬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은 “이번에는 처음부터 당이 단결해서 꼭 필요한 개혁 과제를 단호하게 추진해나가는 의지와 기개를 잘 보여야 한다”며 당선인에게 사명감을 갖고 활동할 것을 당부했다.

김부겸 상임공동선대위원장도 “무능과 불통의 윤석열정부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견제함과 동시에 민생을 최우선시해 내일을 탄탄히 준비해 나가는 정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조속한 시일 내에 제1야당의 이재명 대표를 만나서 향후 국정운영의 방향에 대해서 논의하고 국가적 과제 해결 방안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주당은 지난 국회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시행한 각종 법안을 다시 띄우면서 용산 압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종섭 특검법’을 발의하겠다며 22대 국회 들어서기 전부터 정부여당을 몰아세우는 이들도 있었다.

숨 가쁜
법안 릴레이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양곡관리법을 시작으로 총 9번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중에는 노란봉투법, 방송3법, 간호법, 이태원참사특별법 등이 포함됐다.

특히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과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특별검사법을 다루는 일명 ‘쌍특검’을 강하게 재추진하겠단 입장이다. 쌍특검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지 55일 만에 재표결에 부쳐졌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결국 최종 폐기됐다.

이를 기점으로 민주당은 ‘민심을 거부했다’는 주장을 펼치며 심판론을 띄우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9일 법원에 들어서기 전까지 윤정부의 실점을 강조했다. 이날 이 대표는 서울중앙지법서 예정돼있던 대장동·성남FC·백현동 관련 재판 참석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11분간 말을 이어갔다.

이 대표는 “잡으라는 물가는 못 잡고 정적과 반대 세력만 때려잡는다”며 “총선을 겨냥해 사기성 정책을 남발해 분명한 불법 관권선거를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기자회견 도중 이태원 참사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오직 은폐에만 혈안이 된, 비정하기 이를 데 없는 정권”이라며 “‘입틀막’ ‘칼틀막’도 모자라서 ‘파틀막’까지 일삼는 바람에 독재화가 진행된 국가라고 국제사회로부터 비난받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어 “국민통합에 앞장서야 할 대통령이 최일선에서 이념전쟁을 벌이고 폭압적인 검찰통치가 이어지면서 대화·타협·공존은 사라지고 법치주의·삼권분립·헌정질서는 급격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며 “국민을 완전히 능멸하는 정권”이라고 쏘아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은 다른 때와 달리 날이 서 있다는 평을 받았다. 총선이 하루 남긴 시점이었던 만큼 자신을 향한 정치 수사의 부당함과 윤정부 심판론을 동시에 부각시킨 것이다.


계파 갈등
정면 돌파

결과적으로 이 같은 이 대표의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대선 패배의 쓰린 상처를 뒤로하고 자신의 얼굴로 치른 선거서 압승을 거두면서 대권주자로서 또 한 번 입지를 다졌다.

그동안 이 대표는 크고 작은 풍파를 겪었다. 2022년 3월 대선서 패했지만 곧바로 당권을 잡으면서 계파 갈등의 시작점을 알렸다. 이후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충돌하면서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도 생겼다.

지난 1월부터 친명과 친문(친 문재인)이 크게 부딪혔다. 공천 파동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면서 민주당이 이대로 총선에서 패배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됐다. 이 대표는 계파 갈등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지지율을 깎으면서까지 친명 체제 구축에 힘을 쏟았다.

줄 탈당이 이어지고 당적을 옮기는 이들이 생겼지만 이 대표는 노선을 틀지 않았다.

이 과정서 본인의 사법 리스크를 덜어내기 위한 ‘방탕 정당’이라는 비판도 적잖게 나왔다. 지난해 9월 자신의 불체포특권 가결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점에서다.


당시 국회서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표결에 부친 결과 재석 295명 가운데 찬성 149표, 반대 136표로 국회를 통과됐다. 국민의힘 111명과 정의당 6명 등 가결표를 던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120명을 제외하고도 최소 29명의 이탈표가 민주당서 나온 셈이다.

경선이 거듭되고 공천이 마무리될 때 즈음 더 이상 당내서 날선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 대표를 구심점으로 한 친명계가 당을 장악한 것이었다.

‘공천 학살’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이 대표는 혁신 공천을 강조했다. 결국 이번 총선서 민주당이 승기를 거머쥐면서 이 대표의 선택이 옳았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 대표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불체포특권도 지켜냈다. 민주당의 발목을 잡았던 방탄 프레임의 덫에 또다시 놓일 수 있는 상황이다.

공천 학살, 경선 후폭풍…
큰 그림 마지막 목표는?

방탄 논란은 여당은 물론 비명계 인사들이 여러 차례 지적했던 부분이다. 현재 민주당이 친명 일색으로 꾸려졌다지만 또다시 갈등이 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관건은 오는 8월에 열리는 전당대회다. 친명 지도부가 들어선다면 대선을 치르기 전 남은 3년 동안 이 대표의 정치 행보가 평탄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발자취와도 닮았다. 문 전 대통령도 2016년 총선을 석 달 앞두고 김종인 당시 선거대책위원장에게 권한을 넘긴 뒤 사퇴했다. 자신이 영입한 인물에게 모든 걸 맡긴 상태서 안정적으로 대권을 준비한 것이다. 이처럼 이 대표가 자신의 세력을 당 곳곳에 심고 떠날 것이란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해부터 정치권 안팎에서는 차기 당 대표를 추려내기도 했다. 경력이 많은 거물급 인사를 비롯해 ‘강경 친명’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하나둘 이름을 올렸다.

전남 해남·완도·진도에 당선돼 4년 만에 여의도로 돌아온 ‘정치 9단’ 박지원 당선인도 그중 하나다. 그는 선거 기간 동안 자신의 지역구는 물론 다른 민주당 후보를 찾아 선거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이 같은 행보를 두고 더 많은 지지자에게 자신을 알리는 등 차기 당 대표를 염두에 둔 ‘셀프 홍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 정청래·박찬대·우원식 등 굵직한 친명 의원 또한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거론된다.

현재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설’에 대해 강하게 선을 긋고 있다. 그는 지난달 기자회견서 전당대회와 관련한 질문에 “당 대표는 정말 3D 중에서도 3D”라며 “누가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일각에서는 친명으로 뭉친 민주당이 오히려 이 대표의 약점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대권주자로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중도층 표심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폭넓은 확장이 어렵다는 것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총선서 컷오프된 임종석 전 청와대비서실장과 경선서 탈락한 비명계 박용진 의원을 차기 당 대표로 거론했다. 이른바 ‘비명횡사 친명횡재(비 이재명계는 죽고 친 이재명계는 산다)’ 공천으로 논란이 됐던 인사를 지도부로 내세우면서 중도층에게 단합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다.

지금의 민주당은 이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한몸이 된 민주당은 21대 민주당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정치 호황기’를 맞은 이 대표의 두 손에 민주당의 생명이 달렸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화영 15년 구형, 이재명 재판 영향은?

선거를 이틀 앞둔 지난 8일 검찰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 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다.

이날 이 부지사는 최후 변론서 “검찰 조사 내내 저는 이재명 대표를 구속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구나 생각했다”며 “변호인도 ‘검찰이 사건을 이렇게 만들어가는구나’라고 표현할 정도로 검찰이 정치적 도구가 돼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고 거짓 증언과 허위진술을 강요하는 건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민주당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재명 죽이기’ 공작 수사를 해놓고 군사 독재 연상케 하는 정치검찰의 잔인한 구형”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부지사가 검찰 수사 과정서 대북송금 의혹에 이 대표가 연루돼있다는 진술을 하라는 압박을 받았다는 게 민주당 측의 주장이다.

현재 이 대표 또한 대북송금 의혹으로 재판을 받는 만큼 이 전 부지사의 형량이 영향을 끼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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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