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고 당하는’ 공모주 신종 사기 피해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4.16 10:00:57
  • 호수 14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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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따블 유혹에 10억 묻었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사기는 언제나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최근 ‘공모주 사기’가 기승이다. 여느 사기와 마찬가지로 SNS를 통해 이뤄지며 유명인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들은 앱 설치를 강요하고 돈을 빨리 입금하지 않으면 원금도 찾을 수 없다는 식으로 협박한다. 신속한 경찰 신고로 통장 거래를 막는 게 중요하지만, 돈을 되찾을 수 있을진 알 수 없다.

공모주 투자 열풍이 거세다. 올해 1분기 상장한 기업 대부분이 따블(공모가의 2배) 이상을 기록할 만큼 공모주 광풍이 불었다. 주로 중소형 종목들이 이끈 공모주 열풍은 2분기까지 이어질 전망이며, 청약 대어들이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경쟁률
2000대1

지난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모두 14곳이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상장(스펙, 이전상장 제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2곳이 상장 첫날 따블 이상을 기록했다. 지난 1월에 상장한 우진엔텍과 현대함스는 따따블(공모가의 4배)을 기록한 반면, 지난 2월에 상장한 이에이트와 유일한 코스피 상장 기업 에이피알은 따블을 기록하지 못했다.

올 1분기 공모주 열풍은 광풍 수준이었다.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서 공모가 희망 범위 상단 초과 제출은 흔한 일이 됐으며 일반 청약서도 경쟁률 1000대1은 물론 2000대1도 종종 발생했다.

지난 2월 초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발표와 함께 증시가 오르면서 공모주의 열기가 다소 잠잠해질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로 1분기 상장 기업 중 유일하게 따블 기록에 실패한 이에이트와 에이피알 모두 2월 말에 상장한 기업으로 이 같은 흐름이 3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관측됐다.


그러나 지난달 상장한 기업 4곳(케이엔알시스템, 오상헬스케어, 삼현, 엔젤로보텍스) 모두 상장 첫날 따블을 기록해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

업계는 공모주 열풍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고가 역대 최대 규모인 77조원을 돌파했다. 같은 달 1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13일 기준 증권사 CMA 잔고 총액은 77조518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6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역대 최대 수준이다.

주식거래 활동 계좌 수는 처음으로 7000만개를 넘었다. 주식거래 활동 계좌 수(지난 13일 기준)는 7068만1101개로 집계됐다. 1년 전(6423만1970개)에 비해 10% 늘었다. 주식거래 활동 계좌는 10만원 이상의 금액이 들어 있으면서 최근 6개월간 거래에 한 번 이상 쓰인 계좌를 말한다. 개인투자자의 주식투자 관심도를 반영한 지표다.

증권가는 IPO(신규 상장) 시장에 관한 관심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봤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가격상승 폭 400% 확대와 신규 상장 종목의 쏠림으로 관심이 집중됐던 분위기가 올해도 지속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공모가 2배” 잇단 상장 투자 광풍
“입금 안 하면 원금도 못 찾아” 협박

말 그대로 공모주 열풍이다. 문제는 이런 빈틈으로 공모주 주식리딩 투자 사기가 성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유명 연예인 등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해외에 사무실을 두고 공모주 주식리딩을 통해 투자를 유도한 뒤 186억원을 편취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경찰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사기 등 혐의로 국내 총책 A(37·여)씨 등 11명을 구속하고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해외로 도주한 관리책 3명을 인터폴 적색 수배했다.


지난 3일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 범죄수사대에 따르면, A씨 등은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SNS 등에 유명 투자전문가를 사칭해 무료 주식 강의를 해준다는 광고를 올리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이어 강의에 참여한 피해자를 단체 대화방 등 메신저로 끌어들인 뒤 투자 전문 교수를 자칭하며 ‘고수익 보장’ 등 투자를 유도했고, 11개 대포통장을 이용해 186억원을 받아냈다. 이들 범죄 피해자는 85명에 달한다.

이들은 의심을 피하려고 투자 관련 책자를 보내거나 가짜 해외 유명 증권회사 주식 앱을 이용해 실제로 수익금이 창출되는 것처럼 보여주기도 했다. 또 사칭한 교수 이름이 포털사이트에 검색되도록 허위 인터넷 기사 웹페이지까지 만드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피해자들은 적게는 4000만원서 많게는 10억원까지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투자금 인출이 계속해서 거부되자 경찰에 고소장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계좌 추적 등을 통해 이체된 투자금이 인출된 후 백화점 상품권으로 세탁된 정황을 포착하고 점조직으로 이뤄진 인출책, 세탁책, 국내 총책을 순차적으로 검거했다.

경찰에 붙잡힌 국내 총책 A씨 등은 해외총책과 공모해 한국어에 능통한 중국인을 두고 피해자를 상대로 투자 권유 상담 등 업무를 담당할 역할로 고용해 해외총책 사무실에 파견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조직원 월급 지급과 근태 관리를 담당한 직원도 파악됐다.

이들은 자신들 사건이 뉴스에 나오자 해외총책과 영상을 공유, 경찰 수사에 대비하기도 했다. 경찰은 수사를 토대로 A씨 등 해외 도주한 관리책 3명을 추적함과 동시에 해외총책과 추가 조직원에 대해서도 조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나 못 믿어?”
유명인 사칭

이 같은 공모주 사기는 대체로 유명 연예인을 앞세워 홍보한다. 최근 SNS에서는 유명 연예인 B씨를 앞세워 ‘경제학 수업’을 한다고 홍보한 사기 행각도 있었다. 유명 연예인 B씨는 “주식과 경제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돈은 자유다! ○○○ 경제학 수업이 오늘부터 시작합니다!”라는 게시물을 게재했다.

그는 “2013년 나는 난소암을 진단받았다. 당시에 내 딸 ○○은 막 걷기를 배우는 나이였다. 나는 사람들을 웃기는 게 직업이기에, 대중이 걱정하지 않도록 하고 싶어서 가발을 썼다”며 “다양한 선택 중에 있었다. (투병생활 중에)나는 암 환자와 투자자가 매우 유사한 문제를 고민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난소암 치료를 마치고 나서 주식투자에 집중해 지난해 100억원 이상 벌었다. (돈을 벌고 난 뒤)나는 주식투자 교류 그룹을 만들어 승률이 98% 이상인 AI 주식 측정 도구를 도입했다”며 “여러분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기꺼이 돕겠다. 우리 함께 부의 자유를 실현하자. 혼자서 고군분투하지 마라.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투자 커뮤니케이션 커뮤니티는 평생 무료로 신규회원을 모집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간단히 말하면, 유명 연예인이 주식투자로 큰돈을 벌었고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도 도용한 가짜 광고였다. 실제로 B씨 소속사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광고 게시물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는데, 딱히 해결 방안도 없다. 해당 연예인은 주식투자 및 어떤 리딩방과도 관련이 없다”고 전했다.


이런 식의 가짜 광고 중에는 공모주 사기도 있었다. 이들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밴드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광고로 유인해 ‘리딩방’에 입장을 유도한다. 

피싱범 일당은 친절하게 안부를 물으며 신뢰를 쌓는다. 그러면서 직업, 거주지 등 신상정보를 파악한 후 이를 토대로 사기 금액을 측정해 투자를 종용한다. 처음에는 얼마나 벌었는지 내역을 보여주며 안심하게 만든 뒤, 피해자들에게 3~5배 넘는 이익을 얻게 해주겠다며 소액을 투자하라고 권유한다. 피해자들에게 대출까지 종용하며 투자하도록 유도한다.

피해자가 SNS 광고나 문자메시지로 연락해오면 “100% 성장하는 비상장 주식이다. 올해 하반기에 상장 예정인데, 지금 공모주 청약을 해야 많은 주식을 배정받고 싼 가격에 매수가 가능하다”며 바람을 넣는다. 이후 거짓말을 통해 가짜 주식거래 앱 설치를 유도하고, 바람잡이를 동원해 투자자를 속여 투자하도록 만든다.

투자자가 출금을 요구할 경우 수수료·세금 등을 핑계로 추가 납입을 요구하거나 검찰·금융당국을 사칭해 과징금이 부과됐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노후 준비 
돈 다 날려

또 기관 계좌로 공모주 청약을 하면 저렴한 가격에 많은 물량을 배정받을 수 있다고 권한다. 이후 가짜 주식거래 앱 화면에 공모주가 입고된 것처럼 꾸민 뒤 출금을 요구하면 수수료, 세금, 보증금 등 각종 명목으로 추가 입금을 요구하고 자금을 편취한다.


이들은 SNS로만 활동하는 특징이 있다. 또 환불을 요구하거나 더 이상 추가 입금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SNS 계정과 대화방을 폐쇄하고 바로 잠적하는 사기 행태를 보인다. 

피싱범들은 유명인을 도용한 광고를 통해 클릭을 유도한다. 업계에선 조회수와 노출빈도를 고려할 때 소요된 마케팅 비용은 수십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방송인 유재석 등을 앞세운 사기 광고 게시물의 조회수는 50만회를 육박했다.

공모주 사기 피해를 당한 C씨는 모친이 계속해서 돈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은 후 뒤늦게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평상시 엄마는 나한테 돈을 빌려달라고 하지 않는데, 며칠 동안 하루에 500만원씩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추궁해보니 공모주에 투자했다고 털어놨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모친이 공모주 청약을 넣었는데 업체서 “돈을 더 넣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된다”고 협박했다. 8000만원을 입금했는데, 같은 날 오후 4시까지 7000만원을 더 넣어야 수익금은 물론 원금도 되찾을 수 있다고 종용했다는 것이다.

C씨의 모친은 공모주 투자를 위해 자신의 자산뿐 아니라 딸, 외할머니, 여동생의 돈까지 빌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출까지 받지는 않았다.

“엄마가 단톡방서 공모주 청약에 당첨됐는데 돈을 기한 안에 넣어야 회수할 수 있다고, 며칠 전부터 돈을 급하게 보내 달라고 한다”는 C씨 민원 전화에 금융감독원은 “이상한 것 같다.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하라”고 조언했다.

애초에 공모주 청약은 이름 없는 작은 증권사에서 하는 게 불가능한 데다, 공모주 청약을 한다고 해서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투자금, 중국으로 흘러가면 못 찾아”
개인투자자의 공모주 배정은 불법

C씨는 바로 112에 해당 업체를 피싱 범죄로 신고하고 계좌지급정지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 경우는 단순한 보이스피싱이 아닌 경제범죄에 해당됐다. 보이스피싱은 계좌지급정지 조치를 바로 할 수 있는 반면, 경제범죄는 그렇지 못했다. 피해 당사자가 직접 경찰서에 가서 신고해야 했다.

하지만 C씨 모친은 공모주 투자가 사기라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C씨의 경찰 신고에 대해서도 주저했다. 

C씨 모친이 사기라고 인지한 것은 해당 업체의 “최근 해당 투자증권사로 속여 말한 피싱 사기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공지사항을 보고난 뒤였다. 공지사항에 따르면, 회사는 개인과의 거래 및 공모주 청약을 하지 않고, 어플을 따로 관리하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도 법적 강요 및 협박을 하지 않는다.

C씨 모친은 그가 “엄마는 어플을 통해 투자했고, 공모주 청약에 당첨됐다고 했고, 기한 안에 돈을 넣지 않으면 원금을 잃을 수 있다고 했다. 투자증권사에 해당되는 피해 사례다.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조언하자 그제서야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누군가 신고해서 세무조사가 들어왔다. 세금을 먼저 지불해야 원금을 뺄 수 있다” 등의 협박과 함께 해당 업체의 단체 카톡방은 난리가 났다.

C씨는 모친과 함께 경찰서로 향했다. 모친은 불안한 노후 대비를 위해 주식에 투자한 것이었다. 밴드를 통해서 1대1로 대화를 건 ‘박 팀장’이란 사람에게 1000만원씩 무려 16번이나 돈을 보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돈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담당 경찰은 “현재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사기 수법이라 사이버 수사대서 병합해 수사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보낸 돈을 찾기는 어렵다. 계좌 주인을 찾아도 00년생 이런 식인데, 중국으로 들어갔으면 더 찾기 힘들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C씨는 “공모주 사기는 아직도 수사 중이긴 하지만, 돈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손 벌리기 싫어 투자한 것이다. 이런 마음을 이용하는 나쁜 사기는 전부 없어져야 한다”고 분개했다.

발 빼기
어렵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기관투자자가 개인투자자를 대신해 공모주를 배정받는 행위는 불법이므로 절대 응하지 말아야 한다. 제도권 내 금융회사는 단체 채팅방 등을 통해 주식거래 앱 설치를 유도하지 않는다. 금융회사를 사칭한 불법 업체에 속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제도권 내 금융회사가 아닌 업체와의 거래 피해는 금융감독원 분쟁 조정 대상도 아니라, 피해 구제가 어렵다. 불법 주식거래 앱으로 인한 피해 방지를 위해서는 신속한 사이트 차단이 매우 중요하므로 온라인상 게시물을 발견할 경우 금융감독원에 적극적으로 제보해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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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